정부와 정치권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요구에도 의료계 시선이 싸늘하다. 교육부는 대학교의 자율적인 의대생 휴학 승인을 카드로 꺼내 들었지만, 협의체 참여가 무의미하다는 회의론이 여전하다.
이는 대통령실에 대한 의료계 불신에서 기인한다. 대통령실이 여당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야당과 의료계가 함께하는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나온 결론을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이 전에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나 수가협상 등 정부 주도 협의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
협의는 서로의 입장 차를 좁혀나가는 과정이지만, 그동안 정부가 보여왔던 협의는 정부의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결론에 빌미만 주는 것이라는 게 의료계에 만연한 정서다.
이런 불신엔 사회적 비용이 든다. 일례로 한국경제연구원이 2008년 발표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 보고서를 보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수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
이 보고서는 광우병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에 따른 손실을 다루고 있는데, 사회 불안정이 1년 이상 지속될 시 거시 경제적 비용이 3조7000억 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국민의 심리적 부담 비용과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생산적 손실을 포함하면 그 피해는 더욱 커진다.
이번 의료대란도 정부에 대한 의료계 불신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 사태라고 본다. 정부는 현장을 떠난 의사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의대 증원 추진 과정이 투명했고 그 여파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지금 같은 대란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결국 정부는 의료개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태 수습에만 약 2조 원의 재정을 쏟아부었다. 또 전공의 없는 상태에서의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해 3년간 10조 원의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다.
많은 전문가가 사회적 신뢰의 요소로 책무성과 투명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정부의 공개성 확대 및 보장, 정보 접근성 강화 등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회 청문회·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정부 모습을 보면 투명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의료계 지적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적어도 현 사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이 사태를 해결할 단초라면 더욱 강한 책무성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서 동등한 협의가 가능하고, 나온 결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확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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