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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트랙에는 사람이 많다

[메디칼타임즈=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약리학 3차 시험이 끝났다. 어제는 밤을 샜고, 다음 주는 병리학과 예방의학, 신경생리학 시험이 몰아친다. 그리고는 본과 1학년의 한 학기가 장장 2년 만에(예기치 않은 휴학 기간을 셈하여) 끝이 난다.본과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공부량이 많아서,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는 아니고, 그냥 내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가 빤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매몰될 내가 보였다. 그저 의사로서의 배움에 성실히 임하면 된다는 대전제보다, 그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것들, 이를테면 성적, 시험 결과나 완료도 같은 것들에 매몰될 나. 학기 시작 전에는 하는 데까지만 하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면 돼, 수없이 혼자 글을 쓰고 되뇌이면서 생각 정리를 해보았지만 내심은 별로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8월 개강 이후 4개월은 예측 그대로 흘러갔다. 훅 줄어든 수면 시간, 어마어마한 공부량에 쫓겨 만성적으로 갖게 된 초조감, 매주 시험 결과에 따라 널뛰는 흥분과 좌절. 이 모든 것은 빵빵하게 하루하루를 채워 내 일과를 아주 불건강하게 부풀렸다. 엊그제 병리학 교재에서 본 Myocardiac hypertrophy에 빠진 심장처럼, 비대해진 하루를 짊어지고 사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이다.그것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는 지난 주말이었다. 1주일에 최다 시험을 3개까지는 경험해보았지만, 학기의 마지막 2주 동안은 시험 7개에 실습까지 하나가 몰아칠 예정이었다. 그에 대비하여 지난 주말에는 당장 다음 주에 봐야 할 약리학 3차 시험 준비는 우선 잠시 밀어두고 다른 과목을 준비했다. 아침 8시부터 스터디카페에 앉아 밥도 먹지 않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다 지나 문득 진도를 짚어보니 헛웃음이 나왔다.분명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오늘 계획한 목표량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모자랐고, 아침에 한 페이지는 다시 펼쳐보면 새롭기만 했다.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래도 나름 많은 로딩과 과제를 감당하면서 타파할 계획을 늘 세워왔는데 지금은 그 계획조차 세울 수가 없었다. 그대로 의욕이 꺾이자 더 이상 스터디카페에서는 버틸 수 없어 집으로 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자야 해, 하고 되뇌이면서도 속이 복잡했다. 외운 것과 외우지 못한 것, 이해한 것과 모르는 것이 한 뭉치로 뒤섞여 머리를 끈적하게 더럽혀 푹 자지도 못했던 지난주의 밤이었다.그렇게 주말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것도 괴로웠다. 학교에 가면 또 나보다 열심히 하고 나보다 많이 공부해둔 동기들이 있겠지. 체력도 좋고 머리도 좋은 애들이 좀 덜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내가 어찌어찌 나아갈 틈이라도 나올 텐데 이들은 열정까지 빠지는 면이 없어 나를 옴싹달싹 못하게 한다. 오늘 아침부터 그 풍경을 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무너진 몸과 마음을 그러앉고 돌아본 강의실에는 역시 열기를 온몸으로 뿜는 동기들이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집중하는 동기도, 눈을 감고 암기를 하다가 그대로 잠들 뻔한 동기도 있었다. 서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열을 내어 설명을 하고 머리를 싸매거나, 졸음껌에 커피를 연신 들이키는 풍경은 예사였다. 그런 동기들을 보자 주말 내내 부산하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를 더 무너뜨릴 줄 알았던 강의실은 되려 내 손에 펜을 다시 쥐게 했다.예전 같았으면 경쟁심이라고 읽었을 마음이다. 지기 싫으니까, 남들 하는 만큼 해야 하니까 다시 독기를 갖고 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나 경쟁으로 버틸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음을 알았다. 경쟁이 과열되었던 학기 초는 한참 지나 이제 마지막 몇 주만을 남겨두었는데도 공부할 것은 여전히 많고, 체력은 실시간으로 고갈되고 있으며, 모두가 전에 비해 지쳤다는 것이 자명했으니까. 이제는 충격을 받을 겨를도 없다. 순간순간 무너지는 자기 자신을 건져 올리며 달리기를 지속해야 하는 시기이다. 내가 주말에 넘어졌던 그 트랙은 다른 사람과 완주 시간을 경쟁하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완주를 두고 버티는 마라톤 트랙이었다.이를 인지하고 주변을 바라보자 확 체감되었다. 각자의 속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기들, 그러니까 동료들의 달리기가 있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버티며 뛰고 있다는 그 사실에 기운이 났다. 모두가 참 대단하고, 또 좋아 보였다.솔직히 말하면 주변인, 동료애,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타입은 전혀 아니다. 더 확실히 말하자면 오히려 혼자 시간과 로딩을 감내하고 버티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또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강의실로부터 전해져 온 그 감응이 더 나를 생경하게 했다.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늘 나 뿐이고, 그 생각은 바뀔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시간으로 대략 40명의 사람에게 건져 올려지는 감각은 참으로…낯설고 고마웠다.물론 그들이 내 어리숙한 동료들이 나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해준 것은 없었던 상황이나, 그저 내 옆을 뛰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근육에 에너지를 주는 기분이었다.동기라. 괜히 '同'자를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가 되어 같은 과정을 밟는 이 사람들은 너무 당연해서 무감해지나 또 당연하게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상처를 핥는다.고작 본과 1학년 한 학기가 지났으니, 앞으로 달려야 할 남은 트랙이 훨씬 더 길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 한 번 넘어지고, 또 시 일어나면서 위안이 되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알았다. 물통은 나만 하나밖에 못 든 줄 알았는데, 옆에 한 모금 정도야 나눠줄 사람이 있다는 것. 최소…40명 정도는. 나만 혼자 뛰면서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며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 똑같은 사람들 최소 40명은 있으니까.다음 주는 시험 5개가 남아있는 지옥의 한 주인데, 내 바보같이 우직한 동기들이 또 열심히 잘 버텨주길 바란다. 그럼 나도 수시로 고개를 들어 그 달리기에 합류할 힘을 얻을 터이니. 
2025-12-15 05:00:00젊은의사칼럼

의학을 오래 사랑하기 위해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1학년 정지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의학이라는 학문이 유독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몸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변화들을 읽어내는 일이 신기했고, 지식이 쌓일수록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이 보인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의대를 꿈꿨고, 결국 그 길 위에 서게 되었다.휴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온 첫 학기의 시작은 심장 파트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야말로 공부가 재밌었다. 심장이 전기 자극을 받아 움직이는 방식, 압력 변화로 판막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들, 구조들이 서로의 빈틈을 정확히 메우며 돌아가는 정교함이 경이로웠다.모르는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는 경험이 이어졌고, 그 과정 자체가 공부하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선배들이 말하던 "본과는 버겁다"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실감할 수 없었다. 공부가 어렵다는 감정보다 '배운다'는 감정이 먼저였다.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본과 수업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과목이 바뀌고 강의록이 매일 쌓이기 시작하면서, 의학을 향한 흥미는 서서히 압박과 의무감의 무게 속으로 밀려났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던 내용들도 "오늘 안 끝내면 내일 밀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내용의 의미보다 양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공부에 쫓기는 느낌. 내가 공부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공부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 그 감정이 하루하루 깊어졌다.그러는 사이, 나는 하루 세네 시간 남짓 자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아이패드를 열었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암기를 반복했다. 누워도 머릿속에서 외우지 못한 내용이 흘러나왔고, 꿈속에서도 족보 문제를 풀고 있었다.좋아서 시작한 공부인데, 어느새 좋아하는 마음이 도리어 나를 몰아붙이는 힘이 되어 있었다. 호기심 대신 초조함이, 성취감 대신 압박이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님을 알면서도 멈추기 어려웠다.그러다 최근 내분비학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처음으로, 나는 멈춰서 내 상황을 바라볼 시간이 생겼다.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이제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다'는 안도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여유 속에서, 나는 드디어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본과 생활을 보낼 수 있을까?"천천히 생각해보니, '의학을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만으로는 이 시간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 시작을 끌어주는 불씨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긴 시간을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되지 못했다.내가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이유도 결국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바람이 나 자신을 압박하는 기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마음을 지나치게 다그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닿았다.나는 여전히 의학이 좋다. 하지만 의학을 향한 열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그 마음 또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학을 통해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나 스스로가 어떤 상태인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앞으로의 나는 공부의 양이나 속도만을 기준으로 하루를 판단하기보다, 어떤 마음과 어떤 상태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에 더 귀 기울이려 한다.의학이라는 넓고 깊은 세계를 탐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시간, 좋아하는 마음이 무거운 짐으로 바뀌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나를 잘 챙기는 태도. 이런 것들이 결국 내가 이 길을 오래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5-12-08 05:00:00젊은의사칼럼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가톨릭 관동의대 1학년 배지섭 ]본과 1학년, 병리학 수업 시간이었다. 세포가 손상을 입더라도 일정 수준까지는 회복할 수 있지만,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시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던 중이었다. 핵이 쪼개지고 세포막이 터져버리면, 아무리 좋은 처치를 해도 돌이킬 수 없다. 그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배우던 그 강의실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지나간 인연 하나를 떠올렸다.그 시절의 나는 세포 하나를 지키는 법도 모를 만큼 철이 없었고, 나약했다. 내 나약함이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 그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바닥이 드러나려는 순간, 가장 쉬운 선택을 했다. 상대를 밀어내고 '나'라는 존재를 지키는 것. 하지만 그 '나'는 실은 위태로운 자의식에 불과했다. 인연을 스스로 끊어내는 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던 그때의 판단은,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 가장 큰 오판이었다.의학에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 '골든타임'이 있다. 생명에만 골든타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관계에도 분명한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나는 그때 내 방어기제에 갇혀 그 결정적인 시간을 놓쳐버렸다."나는 아직 당신을 잘 모른다", "나는 아직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관계를 망치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나'라는 존재의 중요도를 잠시 뒤로 미룰 줄 아는 용기였다는 것을. 내 세계를 포기하고 상대의 세계에 종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만나, 홀로 지켜내던 그 좁은 세계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우리'의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임을 그땐 알지 못했다.한때는 나를 통과해가는 모든 인연을 붙잡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내 곁에 두는 것이 능력이라 믿었던 적도 있다. 넓은 인맥, 많은 친구, 내가 그들을 잇는 징검다리가 되는 삶. 그 시절의 경험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내 세계의 폭은 분명 넓어졌다. 하지만 의학 공부가 깊어질수록 얕은 지식만으로는 생명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듯, 인간관계 또한 '폭'보다는 '깊이'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온다.수많은 인연의 스침보다, 단 한 명의 '내 사람'과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 우리는 그 시점을 놓친 대가로 가끔 뼈아픈 후회를 치룬다.최근 우연히 본 드라마의 대사가 폐부를 찔렀다. "저는 모든 만남과 이별이 운명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 모든 사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제가 세상을 구할 순 없겠지만 제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라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의사가 되기 전에, 내 곁의 사람조차 지키지 못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 줄 거라는 안일함. 그 안일함 속에서 뱉은 날 선 말들은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고 관계를 얼룩지게 했다. 그리고 "아차" 싶어 바로잡으려 했을 땐, 이미 관계는 병리학 책에서 보았던 그 '비가역적' 변곡점을 지난 뒤였다.이것이 타이밍이 가진 무서움이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죽어버린 세포가 되살아나지 않듯, 타이밍을 놓친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그렇다면 뒤늦은 후회와 반성은 무의미할까? 병리학적으로 이미 죽은 조직은 되살릴 수 없지만, 의사는 그 과정을 복기하며 다음 환자를 살릴 지혜를 얻는다. 나에게 이토록 아픈 '반성'은 지나간 시간을 바로잡을 순 없어도, 다가올 미래의 선택을 바꿀 힘이 된다. 인간은 결국 관계로부터 성장하기에, 이러한 뉘우침은 '특정 시절'과 '특정 사람'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가장 값비싼 배움일 것이다.어쩌면 그 시절의 미숙함과 그 사람과의 이별은,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가장 값비싼 '임상 실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지키는 일도, 결국엔 그 결정적인 타이밍과 깊이, 그리고 인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가르쳐주었으니 말이다.
2025-12-01 05:00:00젊은의사칼럼

나를 믿는다는 것은

[메디칼타임즈=고신의대 2학년 김민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다르게는, 초심을 기억하는 건 어렵다.그것이 내가 이번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을 지내며 한 생각이다.휴학 후 개강이 다가왔다. 하루에 7시간, 8시간씩 주에 6일.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지만 그 시간표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의 십대 시절 목표는 오직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1인분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고 기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조건에 의사는 완벽한 직업이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고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졸업해 나의 오랜 꿈을 이루리란 기대에 하루하루가 꿈같았다.하지만 휴학 기간의 나는 1인분은커녕, 마이너스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허전함을 채워보려 이것저것 도전을 해봤지만, 결국 내가 하고싶은 공부는 하지 못하고 둥둥 떠도는 상태. 본질에서 동떨어진 것만 같아 우울했다. 그래서 개강 후에는 모든 순간 공부했다. 과외를 끼운 사이사이에나, 밥을 먹다가도, 그리고 잠자기 전까지도 공부를 했다.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대면 개강 이후에는 상황이 변했다.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부하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저 친구는 아까 배운 내용을 바로 심화까지 해낸다거나, 이 친구는 해부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뛰어나다거나. 거기에 더해 누구는 어떻게 공부하고, 누구는 한번 보면 외우고, 누구는, 누구는, 누구는…. 들려오는 정보는 방대했다.'나는?'하는 생각에 감정을 갈무리하기 어려웠다. 나의 부족한 점이 보이고, 그 점을 채우기도 전에 계속해서 늘어나는 쏟아지는 정보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숨이 턱 막혔다. 다른 친구들은 더 빨리했을까, 이미 완벽하게 했을까…. 방법이 중요해졌고, 남들의 진도가 신경 쓰였다.그러다 탈이 났다. 하루에 두 시간씩 이주. 그렇게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하다 보니 몸살이 났다. 뭐가 그리도 바빴던 것인지. 열이 올라 공부를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멍하니 생각하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더라, 라는 물음에까지 닿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서? 이번 시험 성적을 잘받기 위해서?…아니, 다 아니다. 그냥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그 이유 하나였다. 의사가 되고싶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 그걸 잊은 채 단기적인 목표에 갇혀 나를 갉아먹기에 급급했다. 지금껏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기적인 목표를 생각하며 나만의 페이스를 찾기로 마음먹었다.우선, 나를 돌보기로 했다. 원래 나를 돌봐야 남을 돌볼 수 있는 법이다. 다시 '나의 리듬'을 만들기로 했다. 내내 쉬지 않고 공부만 하다 보니,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갔다. 무작정 공부하기보다는 정해진 시간만큼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쉬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질 때면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쉼이다'라고 생각하니 편해졌다. 또한, 짬이 날 때마다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했다. 카페에 갈 때는 괜시리 바다가 잘보이는 창으로 가고, 일요일에는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밥을 먹을 때만큼은 공부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떠들어댔다. 마음이 가벼웠다. 실제로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것을 하다보니 능률이 좋아졌다.그러다보니 점차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나를 위한 나만의 방법을 가장 잘 알고있는 것은 나일 터였다. 내가 어느 부분이 약한지, 어떻게 시간을 분배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달래가며 공부해야 하는지. 내가 공부해 온 모든 시간들이 증거이다. 거북이는 거북이이고, 토끼는 토끼다. 사람마다 맞는 공부의 방식은 다르고, 차이가 있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님을 이제는 안다. 다른 친구들이 어디를 공부하고 있는지를 비교하며 불안해하기 보단, 나는 내 맞춤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공부도 삶의 일부이자 살아감의 과정이다. 삶과 맞닿은 모든 일은 결국 나를 알아가고 기억해 내는 일이다. 내가 왜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그 이유를 찾았다면 잊지 않고 간직한다. 내게 맞는 방식을 찾아 수없이 시도하고, 그 과정을 버텨온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오늘도 조금은 흔들릴지라도 꾸준히 나 자신을 살아내보려 한다.
2025-11-24 05:00:00젊은의사칼럼

슬픔을 공부하는 일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1학년 노정연 ]기관 삽관 실습수업 날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모형의 기도를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와중,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앞에 모형이 아니라 부모님이 쓰러져 있다고 생각해라"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저는 정신을 똑바로 붙들고 침착하게 기관 삽관을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그저 울고만 있지 않으면 다행일 테죠. 상상만으로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상상이 아닌, 일상 속에서 마주할 다분히 현실적인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작년 한 해 동안 응급 구조대의 출동 건수는 336만 건에 달합니다. 하루에만 평균 9,000건 이상의 응급 환자 이송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슬픔은 마치 그림자 같아서 구태여 내려다보지 않는 한 우리는 항상 그 존재의 가능성마저 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세상에 이렇게 슬픔이 가득한데, 어떻게 매번 피해 가길 바랄 수 있을까요? 병원을 오가며 스쳐 지나갔던 수없이 많은 환자분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귓가를 울리던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니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미래에 의사가 되어 마주하는 환자분들과 가족분들 모두 잠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달파지는 슬픔들을 매순간 견디고 계실 것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이면서도 잔인한 이 문장의 무게를 이제서야 가늠하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의과대학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학문은 질병에 대한 것입니다. 주로 질병의 원리와 해결방안에 관한 내용들이죠. 의학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들을 분석한 후, 일관된 진단 기준 및 치료 방안 등을 개발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전에는 원인조차 알 수 없던 병들이 이제는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바뀌기도 했고, 수많은 환자분들께 새 생명을 선물하기도 했죠. 하지만 과연 이걸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의학에서 주로 다루는 수치들은 결코 눈물 흘리는 법이 없지만,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들은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안고 내원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엄청나게 슬프고, 또 어떤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황당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 개인에게 있어 질병은 정량화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하고도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과연 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로서 환자의 슬픔을 헤아리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신형철 문학 평론가는 저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 출판(2016))상대방의 고통에 결코 가닿지는 못하더라도, 그 한계를 슬퍼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슬픈 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슬퍼하는 누군가의 심장을 홀로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 인(人)자가 서로 기댄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형상화한 것처럼, 우리는 상대방을 결코 온전히 이해하거나 합일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잠시 쉬어갈 수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영원히 슬픔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함께 슬퍼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더 견딜 만하지 않을까요?앞으로 슬퍼하는 사람을 무수히 많이 보게 될 의학도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 가짐 중 하나는 슬픔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자의 슬픔을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의사의 덕목이자 윤리일 테니까요. 무엇 하나 동일한 슬픔이 없을 것이고 또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평생을 공부해도 계속 모자라고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2025-11-17 05:00:00젊은의사칼럼

사람의 모든 움직임은 근육에서 시작한다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뇌는 애초부터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거대하고 캄캄한 두개골 속에 갇힌 연두부 같은 뇌는 위험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도망갈 궁리를 한다.외부세계에서 입력된 위험 신호에 즉각적으로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튼튼한 두 다리와 두 팔은 어쩌면 뇌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충신과도 같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지켜왔고 살아냈다.슬프게도,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가 손상되어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지 못하거나, 신경 회로가 꼬이거나 끊어지는 등 다양한 원인 때문이다. 근육까지 신경이 전달되지 못하면, 작동하지 않는 근육은 서서히 기능을 잃는다.근섬유다발의 수가 줄어들고 근력은 점점 약해진다. 스스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심하게 위축되면 체중을 지탱하는 뼈가 골절에 취약해질 뿐 아니라, 전신의 대사 기능이 극심하게 저하된다. 그렇게 한 인생의 해가 저물어간다.교통사고나 추락으로 발생한 외상성 뇌손상 환자들, 도파민 분비 저하로 움직임이 느려지고 지속적인 떨림을 겪는 파킨슨병 환자들, 유전자 결함으로 3~5세경부터 근육이 점차 약화되어 운동 능력을 상실하는 듀센 근이영양증 환자들, 운동신경세포의 점진적인 파괴로 인해 근육이 약해지고 결국 호흡 기능까지 상실하는 루게릭병 환자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리 멀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포기할 수 없다. 의사는 몸 안의 병과 싸우지만, 공학자는 몸과 기계를 연결한다. 이 움직임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의학의 영역을 넘어 공학으로 확장되었다. 뇌와 기계를, 근육과 신호를 잇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시도는 이미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 뇌 깊숙한 곳에 전극을 삽입하는 뇌심부자극술은 수많은 파킨슨병 환자의 떨림을 멈춰주었고, 두개골 밖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하는 기술은 이미 임상에서 일상이 되었다.최근에는 더욱 정교해졌다. 빛, 소리, 초음파로 뇌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광유전학과 음향유전학이 등장했고, 스위스 연구진은 척수신경 자극으로 하반신 마비 환자를 다시 걷게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뇌 이식 칩으로 원숭이를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LG전자는 뇌파를 조율해 수면을 유도하는 이어폰을 내놓았고, 파낙토스는 뇌파로 정신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서울대 연구진은 생체적합성 소재로 뇌와 근육 손상을 최소화하며 신호를 주고받는 인공피부와 인공근육을 개발 중이다.그렇다면 이런 기술들은 왜 중요할까? 기존 치료법을 돌아보면 답이 보인다.모든 의사의 허리춤에는 두 개의 무기가 있다. 하나는 약물, 다른 하나는 수술이다. 약물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살려냈고, 수술은 암으로부터 우리의 수명을 늘렸다. 인류 의학사를 지탱한 두 기둥이다.하지만 두 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약물은 전신을 순환하며 부작용을 낳고, 수술은 절개와 마취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에 감염을 치료할 수 없는 사람, 고령으로 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더 큰 문제는 신경계 질환이다. 파킨슨병의 도파민 부족을 약으로 보충할 수는 있어도, 손상된 신경 회로 자체를 복구할 수는 없다. 루게릭병의 운동신경세포 파괴를 수술로 막을 방법은 없다. 약물은 너무 광범위하고, 수술은 너무 침습적이다. 신경계는 그 사이 어딘가의 정밀함을 요구한다.그때, 세 번째 무기가 등장한다. 바로 전자약이다.전자약은 약물처럼 전신을 떠돌지 않는다. 수술처럼 조직을 크게 절개하지도 않는다. 대신 전기, 빛, 자기, 초음파라는 에너지를 병변 부위에만 정확히 전달한다. 약물과 수술 사이의 빈틈, 바로 그 정밀한 공간을 파고든다.더 중요한 것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약물은 일방적으로 투여되고, 수술은 한 번의 결단이다. 하지만 전자약은 실시간으로 신경 신호를 읽고, 필요한 만큼만 자극을 조절하며, 환자의 상태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마치 신경계와 대화하듯이.뇌심부자극술부터 뉴럴링크, 그리고 우리 곁의 이어폰과 인공근육까지, 이 모든 기술이 전자약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은 약물과 수술을 대체하는 무기가 아니다. 세 무기가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경계라는 미지의 영역에 온전히 다가갈 수 있다.평생 앉아 지내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다. 약물도, 수술도 포기한 환자가 움직임을 되찾는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의사 면허증의 잉크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지만, 논문을 읽을 때마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다."나야, 전자약"
2025-11-10 05:00:00젊은의사칼럼

외과의사의 삶과 사명을 마주하다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3학년 안하은 ]본과 3학년, 첫 임상실습으로 마주한 외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생생한 현장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그려지던 외과의사의 멋진 모습과 고된 삶에 대한 막연한 그림은 지난 한 달간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학교에 복귀하고 설렘과 긴장 속에 내디딘 외과 병동의 첫걸음은 매일 새로운 배움과 성찰의 연속이었다. 새벽에 시작되는 응급 수술, 부족한 잠을 이겨내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병동을 도는 교수님들의 지친 뒷모습, 그 헌신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과연 나는 저렇게 환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깊은 고민에 잠기곤 했다.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수술실 밖에서 마주한 의사와 환자의 교감이었다. 성공적으로 암 수술을 마친 한 환자분은 교수님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아니었으면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교수님은 담담히 답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입니다. 환자분이 잘 이겨내신 덕분이지요."수많은 환자가 오직 의사 한 사람을 등대 삼아 기나긴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외과의사는 매일 필사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경이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무게가 얼마나 거대한 짐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실습을 돌며 만난 수많은 암 환자분들은 '치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암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완결되는 질환이 아니었다. 재발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며, 환자 스스로 기나긴 회복의 과정을 견뎌내야만 했다.특히 고령의 환자분들이 힘겨운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환자의 남은 삶의 질을 고려한 현명한 치료는 과연 어떤 것일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암의 완치를 목적으로 한 고통스러운 치료보다 환자의 고통을 줄여 평안한 마지막을 돕는 치료를 더 간절히 원하는 보호자들의 모습을 보며, 암 치료에 대한 관점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다.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케이스 환자로 배정받은 한 분을 만나며 더욱 깊어졌다. 대장 질환 수술을 위해 입원하신 고령의 환자분은 서툰 문진을 이어가는 내내 온화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진심을 다해 "내일 수술이 꼭 잘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감사하게도 그 환자분의 수술에 보조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수술 내내 고령의 환자분께서 부디 이 큰 수술을 잘 이겨내고 회복하시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회진 시간, 병상에 누워계시던 환자분께서 회복하시고 환하게 웃으시는 순간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는 경험을 했다. 짧은 만남에도 이토록 깊은 유대감과 감정이 생겨나는데, 수많은 환자와 관계를 맺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이별을 겪어야 하는 교수님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지난 한 달간의 외과 실습은 의사의 길이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매일 자신의 감정을 다잡고 환자에게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숭고한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길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명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더 치열하게 배우고 더 깊이 성찰해 나가려 한다.
2025-11-03 05:30:00젊은의사칼럼

나의 첫사랑, 글에게

[메디칼타임즈=단국대 본과 3학년 박정은 ]필자는 사랑이란 감정에 박하다. 웬만한 농도의 감정은 사랑이라 명명하지 않는다. 이런 까칠함을 뚫고 필자의 곁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들이 몇 있다. 그 가운데 유독 선명한 것이 '글'이다.필자의 삶에서 글은, 사랑하지 않았다면 용서할 수 없는 사건들의 주요한 원인 제공자였다. 어릴 적 등하교길의 짧은 시간도 활자 금단을 참지 못했던 필자는, 걸음마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글을 담으려다 결국 안경을 맞추게 되었고, 하루는 야단을 맞고 속상한 마음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다가 어머니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글과 관련된 것은 뭐든 좋았다. 활자 사이로 시선을 미끄러트리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고, 노트에 한땀한땀 글자를 새기는 것도 즐거웠다. 피아노 건반을 어루만지듯 키보드 위에서 문장을 빚어내는 시간 또한 사랑했다. 브라우저 북마크의 첫 자리는 언제나 국어사전이 차지했고, 생각과 감정을 담을 '적확한 단어'를 찾는 일은 그 자체로 유희였다. 그러니 글을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 건 어쩌면 필자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나이에서 n을 뺀 시간만큼 글을 오래 사랑하다 보니 관계에 균열을 만들 사건이 찾아왔다. 의대생 단체에서 편집장을 맡게 된 것이다. 글을 매개로 세상과 공적으로 관계 맺은 이 첫 경험은, 모순적으로 글과의 거리감을 낳았다. 개인의 회고와 서술을 넘어 기획과 편집이라는 층위에서 맞닥뜨린 새로운 고민들이 치열하게 타올랐고, 그 열기가 필자를 고요한 활자의 세계에서 끌어냈다.1. 읽히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매거진 편집장 시절, 필자 앞에는 저조한 구독률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해 필자는, 그간 산발적인 주제로 진행되던 인터뷰들에 하나의 주제 의식을 부여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부터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어떤 메시지 하에 개별 스토리를 응축시켜야 할까. 독자는 어떤 주제에 흥미를 느낄까." 평범한 대안에서 출발한 질문은 점차 혁신성을 띄었다. "우리는 왜 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와 롱폼을 고수하고 있을까? 관습의 유지인가 독자의 요구인가?" 생존을 위한 변화 앞에서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글은 타인에게 닿아 의미의 재생산을 거칠 때, 비로소 창조의 목적을 달성한다. 따라서 쓰는 행위를 넘어, '읽힐 글'에 대한 인식을 기획 단계부터 가져야 한다. 글감, 매체와 형식, 나아가 홍보에 대한 고민까지. 어미의 역할이 출산으로 끝나지 않듯, 창작자 역시 글이 사회와 관계 맺도록 이끌어야 한다.이후 발길을 옮긴 필자는 서비스 분야에서 운명처럼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단순히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서비스는 무엇인지. 그리고 창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고객에 닿게 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필자는 지금 전혀 다른 분야에서 동일한 질문을 붙잡고 있다.2. 글은 최종 종착지가 아니다.의정사태가 시작되고, 그와 관련한 책을 낸 뒤에도 필자는 같은 주제를 더듬었다. 그러나 문장을 쓸수록 이상할 만큼 답답했다. 필자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문장이 그랬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필자는 포괄적인, 그래서 무엇도 움켜쥐지 못한 문장들로 흰 바탕을 낭비하고 있었다. "자정해야 한다." "뿌리부터 고쳐야 한다." - 이 당연한 말들이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고 느꼈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변하지 않는 걸까.얼마나 많은 문장을 낙수시켜야 바위가 쪼개질 수 있을까.그때 처음으로, 글이 정말 세상을 바꾸는 '효과적인' 방식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현실의 복잡성은 활자가 담기엔 너무 입체적이다.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글일수록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만, 사회는 정답이 아니라 균형을 향해 나아간다. 설령 그 균형이 어긋남과 타협 위에 세워진 모순이라 해도, 사회는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그 평형을 좇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돈된 문장이라도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 문장을 겹겹이 쌓아도, 서술할 수 없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코드블루'가 전국으로 퍼지고 많은 이들이 잘 읽었다는 감상평을 전했지만, 상황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 변하지 않았다. 개인적 효능감은 높았으나 사회적 변화는 없었다. 무력했다. 그때 필자는 글이 닿지 못하는 그 바깥을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 후 필자는 행동을 기획하고 몸을 직접 움직였다. 대표자와 학생 사이의 단절을 메우고, 서로의 신념이 겨눠지는 장면을 막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성과는 미미했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나는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보다, 직접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글은 문제의 실마리를 더듬는 도구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해답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멈춰 서 글을 쓰는 대신 글이 가리키는 현실에 직접 부딪혀보기로 했다. 글은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첫 언어였지만, 더 이상 내가 머물러야 할 종착지는 아니었다.글은 내가 사랑한 첫 추상이다. 글을 통해 나는 이제까지 목격한 세상과 아직 목격하지 못한 세상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활자의 세계는 평온했고, 완벽했다. 그러나 헤세가 말했듯,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에게 그 껍질은 글이었다. 글은 한동안 나를 감싸 안아 세상을 안전하게 배우게 했지만, 결국 나는 그 다정한 포옹을 뿌리쳐야 했다.글은 더 이상 나의 전부가 아니다.세상으로 나아갈수록 내 안에서 글의 자리는 조금씩 좁아지고, 그 자리를 다른 세계의 일들이 채워간다. 그러나 글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선명하다. 사유의 습관, 언어의 온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감각. 그 뼈대를 가지고 나는 새로운 사회에 부딪힌다.돌아보면, 글을 떠나는 일은 애초에 글이 내게 남기려던 마지막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밟고 나아가도록 내어주는 일, 종국에는 자신을 찢고 나가는 것조차 응원하는 일. 어쩌면 그것은 글의 한계가 아니라, 글이 품은 가장 넓은 사랑의 형태일지 모른다.이제 나는 그 안온한 품을 떠나 독립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사랑의 방식을 품은 채 세상과 관계 맺는다. 그런 의미에서 글, 그는 나의 완벽한 첫사랑이다. 
2025-10-27 05:00:00젊은의사칼럼

아직은 학생이지만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그래, 지민이는 그래서 언제 의사가 되니?"반수를 포함해 의대생이 된 지 벌써 햇수로 6년째, 명절마다 듣는 단골 질문 1위다."아유, 아빠! 아직 한참 남았지~"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한마디는 덤이다. 그렇다. 앞으로 실습도 돌아야 하고 국가고시도 봐야 하니, 아무리 못해도 최소 2년 반가량은 남았다.양가를 통틀어 어쩌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의대에 진학한 사람이 되었다. 엄청난 꿈을 가지고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은 언제나 어른들의 큰 관심사이며, 의사라는 직업은 그 자체로 사회적 선망을 얻기 쉽기에 매번 친척들을 뵐 때마다 많은 질문을 받곤 했다. 요새는 어떤 과가 좋다더라, 어떤 과가 유행한다더라, 학교생활은 어떠냐 등등 말이다.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말들로 이렇다 저렇다 대답한 지 벌써 수년째다.조금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는 이따금씩 '의학적인' 질문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아는 게 없어 당황하기 일쑤였다. 정말로 놀기 바빠 아는 게 없던 예과 시절은 물론이고, 학교 편제상 본1 때는 기초의학만 배웠기에 어른들이 갑상선암을 물어오셔도 thyroid gland의 발생학적 기원만 알았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휴학 기간을 거치며 상당수는 까먹었지만 말이다.그래도 올해 추석은 조금 달랐다.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협심증을 앓고 있으셔서 꾸준히 다니시던 외래 이야기를 꺼내셨다. 매일 혈압을 재고 체중을 기록하라느니, 운동을 하라느니 하는 말씀이 참 귀찮다고 투덜거리셨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할아버지, 그래도 그냥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으셔야죠" 하고 웃으며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학교에서 배운 걸 떠올리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혈압과 체중 변화가 심장 부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드렸다. 또 친구분들이 "짜게 먹는 게 힘이 난다더라, 소금이 만병통치약이더라" 하신다기에, 나트륨이 몸속 수분을 붙잡아두어 심장이 더 힘들어진다는 걸 natriuresis 개념을 빌려 조심스레 말씀드렸다.엄마가 거들어 약 봉투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어떤 약인지 설명도 해드렸고, 이모들의 여러 건강 상담도 머릿속 지식을 박박 긁어내서 이것저것 말씀드렸다. 별것 아닌, 알량한 지식이었지만 어른들이 옆에서 "이래서 집안에 의사가 한 명 있어야 한다"며 반쯤은 너스레 섞인 칭찬을 해주셔서, 처음으로 '의대생으로써' 도움을 드린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필자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다.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칼같이 취업한 친구들도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고 곧장 사회로 나가 벌써 어엿한 사회인이 된 친구들도 여럿 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과연 나는 언제쯤 직업을 가질까, 돈을 벌까' 하는 생각이 든다.분명 대학을 오래 다녔는데, 나와 같이 놀던 다른 과 친구들은 다 졸업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꽉 채운 2년 반이 기다리고 있다니 말이다. 사촌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해서 이제 언니, 오빠들은 다 직장에 다니고 거의 나만 대학생이다.올해도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험이 있어서, 아이패드에 공부할 내용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내려와 할머니 댁 한 켠에서 밀린 내분비학 공부를 했다. 어른들은 만나뵐 때마다 다들 어려운 공부, 힘든 공부한다고 나를 치켜세워 주신다.내가 하는 공부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데, 이번에도 미리 했으면 될 일을 연휴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지금까지 온 건데… 볼 때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민망하기도 하다.지금껏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딱히 없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적인 시선 반쯤 그리고 전공에 대한 학문적 흥미 반이 나를 의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한 지 6년째가 되는 요즘에서야 처음으로 부모님, 친척들,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점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한두 군데씩 아픈 곳이 생기고, 내가 학교에서 당연하게 배운, 너무나 간단한 지식이 꽤나 전문적인 지식임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릴 때도 안 했던 멋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앞으로 짧게는 2년 반, 길게는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얼른 '우리 집 의사'로서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어디 가서 자랑하듯 우리 딸이, 우리 조카가, 우리 손녀가 괜찮은 의사다, 말씀하실 수 있게끔 제 역할을 다하는 한 명의 의사로 성장하고 싶다. 
2025-10-20 05:30:00젊은의사칼럼

부끄러움 많은 실습을 돌았습니다

[메디칼타임즈=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2년 반의 휴학을 마치고 드디어 학교로 돌아왔다. 첫 실습은 심장내과였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빳빳한 나의 가운처럼, 나의 뇌도 새것이 된 것 같았다. 그런 내 상황을 모르는 교수님께서 첫날 첫 회진에서 바로 질문을 던지셨다."몸이 엄청 붓고, 단백뇨가 이렇게 심하네. 뭘 생각해야 하지?" 주말에 벼락치기로 질문 족보를 암기했는데 신장 질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해서 눈알만 굴리던 나를 보는 교수님의 표정이 생생하다. 마치 고등학생이 인수분해를 못 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한참 정적이 흐르다 교수님은 공부 한번 해보라 흘리시고 빠르게 사라지셨다.회진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검색했다. 곧 내가 신증후군을 대답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느낀 감정은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주 강렬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래 단백뇨가 심하고 부종이 있어, 신증후군을 생각했어야 하고…' 그러나 그 다음은 또 백지가 펼쳐졌다. 어떤 질환이 신증후군을 일으키는지, 치료는 뭐였는지…그 모든 것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요하게 공부했으며, 적어도 기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교수님의 반응이 이해가 가면서 하루 종일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2년 반은 나의 모든 의학적 지식을 휘발시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그다음 날 심초음파실에서 교수님을 마주쳤을 때 공부해 오라는 말씀이 진심이었을까 말버릇이었을까 몇 번이고 고민하다,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어제 공부해 오라고 하신 환자, 신증후군 같습니다" 교수님의 반응을 보았을 때 말버릇으로 하신 질문이었음이 판정이 났지만, 왠지 기뻐 보이셨다."맞아 신증후군 환자지… 그래 이 환자가 너 케이스 환자로 하자. 조금 어려워 보여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부하는 셈 치지 뭐. 그 환자 너 케이스로 해라!" 나는 어제의 멍청함을 약간이나마 갚은 것 같아 기뻐하면서 환자 번호를 받았다. '조금 어려워 보여서 고민하고 있었는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처음으로 EMR에 로그인하고 환자의 혈액 검사 결과 창을 열었을 때, 검사 항목의 절반 정도가 빨갛게 되어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동기들은 급성 심근경색, 판막 질환과 같은 전형적인 심장내과 케이스를 받은 반면, 내 환자는 신장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심부전이 온 케이스로 전신에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내 친구들의 환자는 모두 수술 후에 퇴원한 후에도, 나의 환자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 주 내내 입원 중이었다. 나는 매일 환자를 보러 갔다. 오늘 나아지는 듯하다 내일 다시 몸이 붓고 다시 빠지고를 반복하고, 그에 따라 온갖 수치도 함께 오르내렸다.전날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아 굳이 교수님 회진을 따라 돌고, 밤에는 들여다봐도 이해가 안 가는 EMR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약은 왜 썼을까, 저 약은 왜 안 썼을까. 고민하다 보면 답 없이 새벽이 그냥 지나갔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를 조금 말려주고 싶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모자람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발표 전날까지도 자신이 없어 밤새 자료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50페이지가 넘는 케이스 발표 자료는, 부족함을 감추려는 안간힘의 결과였다. 그러나 발표가 끝난 뒤 돌아온 지적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주 기본적인 약물을 틀린 것이었다.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며칠 밤을 새운 노력은 부끄러움 속에 묻혀버렸다. 이 부끄러움을 또 어느 세월에 치워야 하는지 걱정하면서 첫 실습을 마쳤다. 한 학기 실습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나는 무수히 많은 순간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면서 "공부해 오겠습니다"를 외쳤다. 그때는 괴로웠지만, 돌이켜보면 그 감정이야말로 나를 책상 앞으로 불러낸 가장 강한 원동력이었다.적성이란 뭘까. 재능과 비슷한 말일까. 학년은 본과 3학년이지만 머리는 예과로 돌아간 듯한 첫 임상 실습을 지나면서, 나는 못했을 때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분야야말로 진짜 적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휴학 중 여러 길을 탐험했지만, 한밤중에 좌절하며 만회의 밤을 지새운 일은 결국 의학 공부뿐이었다. 내가 가장 잘한다고 믿는 일이 부정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 바로 그 부끄러움 때문이다. 오늘도 그 감정을 원동력 삼아 한 장 더 공부한다. 언젠가는 조금 덜 부끄러운 의사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2025-10-13 05:00:00젊은의사칼럼

어느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왈츠를 추자

[메디칼타임즈=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살아오면서 나를 환기시켜주는 많은 대화들이 있는데, 학교 독서 모임에서 좋아하는 두 학번 위 언니와의 대화는 특히나 여러 면에서 그랬다. 그때 아마 우리는 왜 의대에 왔는가,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왜 꿈을 가졌는지,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했는지.대강의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나를 비롯한 동기 두 명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으면서 나의 삶을 잘 영위할 수 있으니까'라고 복사한 듯 똑같은 대답을 했다. 대답한 나도 그렇게 느낀 만큼 언니도 그렇게 읽은 듯싶었다. 각자의 대답을 다 들은 언니는 덤덤하게 되물었다."학문적인 이유로 이 과를 선택한 사람은 많지 않은가 보네?"우리 사회가-그리고 나도-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한 가지는 대학이 '학교'라는 것이다. 학문을 배우는 곳.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과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언니의 질문은 그래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그때 표는 안 냈지만 살짝 당황했다. 너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나는 학문이 아니라 오로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이 과를 선택했기 때문에, 언니의 질문이 유독 맨살에 얼음 닿듯 날카롭게 와닿았다. 당시에는 괴롭기도 했다. 한참 의료대란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내가 믿고 선택한 의사의 ‘소명 의식’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반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언니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싶어서, 그리고 마음속의 반문에 응답하고 싶어서 휴학 1년을 오로지 다 썼다. 청년의사 인터뷰를 가서 언론의 맛을 보고, 불로소득에 대한 묘수를 찾고자 주식 시장을 탐색했으며, 생판 처음 들어보는 신소재의 균열 체계를 시험하는 연구실의 논문과 씨름했다.전공과 한 발자국 멀어져 맛본 세상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고, 가슴이 뛰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공부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안 그래도 사랑하던 세상이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마냥 지구에 뽀뽀나 하고 싶다는 말이 적확했다... 좀 남사스러운 표현이지만.그렇지만 불현듯 깨달은 점은, 내가 더 배우고 싶다 느끼는 것들은 분야에 상관없이 결국은 ‘의업’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배우고 싶어도 레지던트 과정을 다 밟아 병원 생리를 안 후에 배우고 싶었고, 생분해되는 Strain sensor에 대한 논문을 봐도 전에 들었던 메디픽셀 심혈관 조영술에 이미 쓰이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모로 가도 사람 보는 의사가 하고 싶었다. 다른 걸 해도 의술에 도움 되는 것을 하고 싶었다.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자, 비로소 언니가 한 질문에 느지막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한 마음이 생겼으니까.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모든 학문에 대한 나의 탐독은 결국 의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이 학문이 아주 많이 궁금해졌다.이 골격 덕에 본과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한 달이 다 된 지금도 나는 어마어마한 공부들과 과제들을 꽤 즐기고 있다. 매일 100장이 넘는 강의록이 쏟아지고, 당장 월요일에 수업한 내용을 달달 외워 목요일 아침에 시험을 봐야 한다. 그런 과목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씩 쏟아지고, 시험은 또 어찌나 자주 보는지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시험을 보는 날로 고정되어 있다.특히 우리 학교의 경우는 본과 1학년 때에 역학 조사 실습이 있어서 조별 과제 발표 준비도 틈틈이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진심으로 흥미롭다. 각종 세균에 대해서 배우거나 이 병변은 어떤 기전으로 생기게 되는지, 자료들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있으면 정말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수업을 듣는다.단순히 의학이 좋다는 이유를 넘어, 의학에 몰입하게 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나의 Professionalism 때문이다.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은 나름의 정의가 있지만, 나는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어떤 한 -특히나 직업적 분야에만-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모든 일을 함에 있어, 심지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빈틈없이, 최선을 다해서,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좋다. 흠 잡히고 싶지 않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과 그 과정을 누군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싫다(이건 피드백과는 다른 영역의 문제임을 분명히 밝힌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그런 태도를 지향했고, 내가 그렇게 해내지 못했을 때 무척이나 자책했던 것 같다.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은 곧바로 내 행복과 직결되어 내 삶을 왈츠로 지휘할 것인지, 진혼곡으로 지휘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공부에 정성껏 임한다. 환자를 볼 때의 마음으로, 이 한 문제가 나중에 누군가를 사(死)의 구덩이에서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 마음가짐으로 살아내는 하루하루는 아름다운 선율의 '왈츠'가 되어준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든 간에, 프로페셔널하게.브랜드 르메르의 뮤즈이자 디자이너인 사라 린 트란은 한 인터뷰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일. 나에게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믿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와 독립성은 일에서부터 온다.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함으로써 나는 성장하고 또 발전한다. ...(중략)... 구성원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일, 새로운 디자인을 완성하는 일, 패션쇼를 준비하는 일 등 모든 과정에 배움이 있다. 일을 통해 겪는 모든 경험을 정말 사랑한다"장인의 쾌감이 느껴지는 답변.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부심과 정성을 가지고 나의 본업에 임하고, 그로 인해 인생을 왈츠처럼 흥겹게 사는 여자가 되고 싶다.그러려면 일단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매일을 꽉꽉 채워서, 마구 헤매면서, 배움을 향해서. 이제는 나의 온전한 열정을 차지하게 된 의학이 멋진 무도를 개최해주어, 더욱 열심히 살 자신이 생기는 요즈음이다.10년 뒤면 서른넷이다. 나는 그때 어디에 있을까? 무얼 더 알고 있을까? 왈츠 같은 여자가 되어있을까?
2025-09-29 05:00:00젊은의사칼럼

다시 시작하는 자리에서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1학년 정지은 ]복학한 지 이제 2주가 지났다. 강의실에 앉아 심장 순환 단원의 슬라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아직 몸이 학교의 리듬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음을 실감한다. 휴학 동안 느긋하게 흘러가던 시간과 달리, 다시 시작된 본과 생활은 빽빽한 강의와 수많은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지금 배우는 것은 심장의 순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임상적 주제들이다. 교과서 속 문장 하나하나는 명확하다. 심부전은 어떤 기전으로 발생하는지, 허혈성 심질환 환자에서 어떤 약물이 쓰이는지, 부정맥의 종류는 어떻게 나뉘는지.정리된 표와 알고리즘은 마치 정답을 보장해 주는 지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지도를 바라보면서도 자꾸 의문이 생긴다. 실제 환자 앞에서는 저 복잡한 알고리즘이 정말 그대로 작동할까? 그리고 그 순간, 좋은 의사라면 어디까지 이 이론을 끌어내어 쓸 수 있어야 할까?복학 전, 나는 이런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다.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잠시 멈췄다가 돌아와 보니, 강의실 내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단순히 '외워야 할 지식'이 아니라 '앞으로 써야 할 도구'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요즘은 강의 노트에 적힌 기전 하나를 보면서도 곧장 연결해 묻곤 한다. "만약 내가 의사가 된다면, 이 지식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쓰일까?"심장내과 교수님들께서는 심장은 단순한 펌프가 아니라 전신과 연결된 복합적 기관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심장 기능 하나가 흔들리면 폐, 신장, 간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진다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좋은 의사란 특정 기술 하나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 동료와 협력하는 자세가 서로 맞물릴 때 비로소 역할이 완성된다. 어쩌면 의사의 길도 하나의 '순환'일지 모른다.강의 중 다루는 증례 문제들은 이런 고민을 더 자극한다. 예를 들어,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어떤 순서로 진단하고, 어떤 치료를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들의 답은 정해져 있고, 교과서에는 그 근거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문제를 풀면서 늘 망설이게 된다.좋은 의사라면 단순히 정답을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상황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판단은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경제적 여건과 같은 교과서 바깥의 요소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아직 본과 1학년인 나에게 이런 고민은 어쩌면 이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휴학 이후 돌아온 지금, 나는 이런 질문을 품는 것이 오히려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성적이 우선순위가 되고, 점점 더 문제 풀이에 매몰되기 쉽다. 그럴수록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2주 동안 배운 심장 수업 속에서, 의사로서 살아갈 긴 여정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다.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아마 한 가지 정의로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빠른 판단과 정확한 처치가 전부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환자와의 신뢰와 대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식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장이 혈액을 보내고 받으며 순환을 완성하듯, 의사 또한 지식과 태도를 오가며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복학 2주 차, 나는 여전히 학교의 속도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런 질문을 붙잡고 싶다. 지금 배우는 병리 기전과 약물의 작용 기전이 언젠가 환자를 살리는 순간에 어떻게 이어질지, 그리고 그때 나는 어떤 의사로 서 있을지를. 아마 그 답을 찾는 일은 시험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 정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잃지 않는 것, 그 질문을 품은 채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이다.
2025-09-22 05:00:00젊은의사칼럼

쉼표의 필요성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1학년 노정연 ]국경에 실존하는 장벽이 세워진 듯하던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동안의 단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그동안 빼앗겼던 자유를 다시 찾으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전국적인 여행 열풍이 불던 시절, 홀로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여행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고, 막상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행복한 기억을 찾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평균적인 또래들의 삶과 발걸음을 맞추고자 떠났던 몇 번의 여행들은 그다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앨범 속 사진처럼 형식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낯섦을 그다지 동경하지 않는 성격 탓일까, 혹은 사랑에 빠질 만한 여행지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일까. 몇몇 지인들은 여행을 가기 위해 고된 일상을 버틸 정도로 여행지 곳곳에서 행복을 잔뜩 찾아오는 것만 같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여행지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골몰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여행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사실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존경하는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자 했고, 간 김에 관광을 조금이라도 곁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고속버스 안에서 가고 싶은 몇몇 장소를 겨우 추렸고, 그마저도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충동적으로 바뀌었다. 유명세를 믿고 찾아간 몇몇 가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되는 일 하나 없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여행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일상과의 단절'이다.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한 이후, 우리의 뇌는 매순간 위기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롭고 낯선 장소에서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지도에 의지해서 처음 가 보는 경로를 찾아 헤매고, 새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처리하여 기억으로 저장한다. 여행은 휴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뇌에게는 강행군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렇게 뇌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자연스레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일상 속에서 끌어안고 있던 걱정과 고민들이다. 뇌의 빈 공간을 귀신같이 침범하던 불청객들은, 새로운 경험을 처리하느라 바쁜 동안에는 언제 있었냐는 듯 잊힌다.그동안 나는 여행 중에는 무조건 행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적어도 나에게 있어 여행은, 일상 속 불행과 근심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몸은 일상에서 멀어지더라도, 여행지에서는 행복해야만 한다는 새로운 고민에 사로잡혀 정작 새로운 것들을 감각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은 하루를 어떻게든 가득 채우고자 갖은 애를 쓰던 기존의 여행과는 시작부터 달랐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은, 잠시라도 걱정을 뒤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표'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여행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독서가, 공연 관람이, 맛집 탐방이나 스포츠 경기 직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과거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지만 당신만의 '쉼표'를 꼭 찾길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마침표까지 가는 길이 너무 버거울 때, 당신만의 아늑한 쉼표에 숨어 휴식을 취할 수 있길 바란다고. 그 쉼표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2025-09-15 05:00:00젊은의사칼럼

감정이 만드는 의료인의 길

[메디칼타임즈=가톨릭 관동의대 1학년 배지섭 ]서툴고 투박했던 나날들을 거쳐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기까지 감정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물론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게 둘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흔히 감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과 달리 결국 감정도 이성만큼이나 나를 성장시켰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한 인간의 인성과 정체성이 유아기에서 청소년기에 걸쳐 완성되듯, 의료인으로서의 인성과 정체성은 의대생과 젊은 의사 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는 환자를 마주하는 실제 경험과 의료 현장의 가치관이 몸에 스며드는 시기이며, 전문직으로서의 사명감과 윤리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의과대학에서는 자라나는 의대생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최소한 지금까지 필자가 느껴온 의과대학의 생활은 끊임없이 이성을 훈련시키는 과정이다.증상과 징후를 분석하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며, 여러 개의 질환 후보군 속에서 최종 진단을 위해 가능성을 좁혀 가는 훈련 속에서 감정은 종종 방해 요소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환자의 눈물이 우리를 흔들고, 복도에서 가족의 흐느낌과 걱정이 귀에 메아리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어느 선배에게 들어왔던 ‘의사는 냉정해야 한다’는 조언이 실질적으로 가능한지에 관해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감정은 적절한 진료의 적일까?병원에서 마주한 수많은 순간은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속삭였다. 나는 국제성모병원 응급실 조기 임상실습, 연세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외과 실습,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견학을 다녀온 바 있다. 첫 심정지 환자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응급실 바닥에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외상 환자와 마주친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의대생과 젊은 의사 시절은 기억의 절편이 감정의 형태로 직격탄처럼 가슴에 꽂히는 시기다. 의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디는 경험들은 단순히 한 줄의 의료 기록과 새로운 임상 지식으로 축적되는 게 아닌, 감정이라는 매개체로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의 윤곽을 그리게 된다.감정이 단순한 흔적을 넘어 기억을 살아 숨 쉬게 하고, 그 기억이 다시 의료인으로서의 토대를 단단히 다지기에 감정을 외면한 채로는 환자와의 관계도, 의료인이라는 신분으로서 나 자신도 온전히 설 수 없다.그럼에도 의사는 현대 의학의 정점에 서 있는 직업이기에,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슬기롭게 ‘다루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의미를 해석하는 힘. 이렇게 하면 감정은 판단을 해치는 변수가 아닌, 환자를 향한 설득력과 신뢰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또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의료 행위는 자칫하면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사로잡히기 쉬운 구조이다.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마냥 희망적이고 긍정적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환자들을 위해 적재적소에 올바른 감성을 끄집어내 쓰기 위해 의료인은 반드시 본인이 지켜야 하는 감정의 선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위해 때로는 긍정적인 감정을 보충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마치 내가 실습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따스한 의지를 담은 감정을 글로 눌러 담아 가끔 읽어 보며 다시금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이렇게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나니 감정은 결코 억누르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은 환자와 더 깊이 연결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 연결이야말로 의사가 지닌 기술과 과학이라는 가치에 사람다움이라는 따스함을 더해준다.이쯤에서 내가 읽었던 한 구절을 공유해 볼까 한다.젊음은 서툴고 투박해야 하며,사랑은 해맑고 촌스러워야 한다.젊은 의사로서의 삶은 이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술실의 긴장 속에서, 응급실의 소란 속에서, 병실의 고요 속에서 우리 의료인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감정을 잃지 않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 감정이 때로는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때로는 해맑고 촌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온전한 의료인이 되게끔 만드는 힘이다.중요한 것은 이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환자를 향한 진심으로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쌓인 마음들은 언젠가 차분히 빛을 발하며, 환자의 곁에서 한 사람의 인격과 전문성을 함께 품은 의사로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 결국 온전한 의료인이란 지식과 기술에 더해 따뜻한 감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일 테니까.그래서 내가 걷는 이 길은 서툴고 투박한 감정을 지켜내어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사람다운 의사가 되기 위한 여정일 것이다.
2025-09-08 05:00:00젊은의사칼럼

경계선에서의 이해

[메디칼타임즈=고신의대 2학년 김민지 ]나는 모든 깨달음에는 그 시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교육과정으로 예를 들자면, 인수분해는 선행 학습으로는 잘 와닿지 않지만 14살쯤 정규 수업을 통해 접할 때 이해가 잘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불가피한 갈등의 순간이 찾아올 때 혼자 판단하기보다 대화를 해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은 부딪힘을 감수하고 대화해 본 이후에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깨달음은 텍스트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이 있어야만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일이 하나 있었다.대학교 합격증서를 받은 날, 나는 이제야말로 '어른'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더 이상 어른들의 잔소리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동경해 왔던 순간이 내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고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진 않았다. 패기와 무모함, 근거 없는 용기를 지닌 고등학생의 내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학생과 선생 사이, 그 오묘한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과외를 하면서부터 실감하게 되었다.잘 푼 문제라면 잘 가르치리라 믿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설명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지식의 온전한 전달은 요원한 일이었고, 수업할 때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안 했는데'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내가, 어느새 '이래서 요즘 애들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개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말과 생각을 조심하게 되었다. 나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학생의 눈보다 선생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그 무렵, 이런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 준 책을 읽었다. 육상부 학생과 체육 선생님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은 금방 포기하고, 힘든 훈련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며 질려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성적만 강요해 자신들의 힘듦에는 관심도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삐걱대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런데, 나는 그 선생님에게서도, 그리고 학생에게서도 모두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이전까지는 학생이었기에, 이런 부류의 글을 보면 어른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꼰대라며 이름 붙이고 반발하는 학생들에게만 몰입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과외를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해보자'라며 채근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속상해 한마디 하던 나의 모습이 이야기 속의 체육 선생님과 겹쳐 보였다. 이중적인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결국, 모두 겪어 보고서야 두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압박감도, 어른들의 답답함도 모두 진짜였다.우리는 종종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옳다며 대화 자체를 차단하곤 한다. 학생들은 '꼰대'라며 귀를 막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라며 벽을 세운다. 그렇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 몰두하다 대화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두 입장 모두 옳다. 어쩌면 뻔한 결론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 뻔한 대답이 정답임을 이제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말하느라 바빴던 시간 속에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맞다고 믿는 순간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렸던 것 같다.결국 중요한 건 함께 대화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미묘한 경계선 위에서 두 입장을 모두 겪어 보고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대학생이라는 경계선에 서 있다는 건, 한쪽의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며 균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학생일 때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기 일쑤였고, 어른들의 시선에선 아이들의 투정이 철없어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서 본 나는, 두 목소리 모두 진실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지금의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싶다. 서둘러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그 경계선 위에서 양쪽을 바라보려 한다. 이해는 그곳에서 시작되니까.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라는 이 경계선, 지금의 나를 천천히 음미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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