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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의 삶과 사명을 마주하다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3학년 안하은 ]본과 3학년, 첫 임상실습으로 마주한 외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생생한 현장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그려지던 외과의사의 멋진 모습과 고된 삶에 대한 막연한 그림은 지난 한 달간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학교에 복귀하고 설렘과 긴장 속에 내디딘 외과 병동의 첫걸음은 매일 새로운 배움과 성찰의 연속이었다. 새벽에 시작되는 응급 수술, 부족한 잠을 이겨내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병동을 도는 교수님들의 지친 뒷모습, 그 헌신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과연 나는 저렇게 환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깊은 고민에 잠기곤 했다.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수술실 밖에서 마주한 의사와 환자의 교감이었다. 성공적으로 암 수술을 마친 한 환자분은 교수님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아니었으면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교수님은 담담히 답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입니다. 환자분이 잘 이겨내신 덕분이지요."수많은 환자가 오직 의사 한 사람을 등대 삼아 기나긴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외과의사는 매일 필사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경이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무게가 얼마나 거대한 짐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실습을 돌며 만난 수많은 암 환자분들은 '치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암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완결되는 질환이 아니었다. 재발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며, 환자 스스로 기나긴 회복의 과정을 견뎌내야만 했다.특히 고령의 환자분들이 힘겨운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환자의 남은 삶의 질을 고려한 현명한 치료는 과연 어떤 것일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암의 완치를 목적으로 한 고통스러운 치료보다 환자의 고통을 줄여 평안한 마지막을 돕는 치료를 더 간절히 원하는 보호자들의 모습을 보며, 암 치료에 대한 관점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다.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케이스 환자로 배정받은 한 분을 만나며 더욱 깊어졌다. 대장 질환 수술을 위해 입원하신 고령의 환자분은 서툰 문진을 이어가는 내내 온화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진심을 다해 "내일 수술이 꼭 잘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감사하게도 그 환자분의 수술에 보조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수술 내내 고령의 환자분께서 부디 이 큰 수술을 잘 이겨내고 회복하시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회진 시간, 병상에 누워계시던 환자분께서 회복하시고 환하게 웃으시는 순간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는 경험을 했다. 짧은 만남에도 이토록 깊은 유대감과 감정이 생겨나는데, 수많은 환자와 관계를 맺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이별을 겪어야 하는 교수님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지난 한 달간의 외과 실습은 의사의 길이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매일 자신의 감정을 다잡고 환자에게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숭고한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길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명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더 치열하게 배우고 더 깊이 성찰해 나가려 한다.
2025-11-03 05:30:00젊은의사칼럼

나의 첫사랑, 글에게

[메디칼타임즈=단국대 본과 3학년 박정은 ]필자는 사랑이란 감정에 박하다. 웬만한 농도의 감정은 사랑이라 명명하지 않는다. 이런 까칠함을 뚫고 필자의 곁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들이 몇 있다. 그 가운데 유독 선명한 것이 '글'이다.필자의 삶에서 글은, 사랑하지 않았다면 용서할 수 없는 사건들의 주요한 원인 제공자였다. 어릴 적 등하교길의 짧은 시간도 활자 금단을 참지 못했던 필자는, 걸음마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글을 담으려다 결국 안경을 맞추게 되었고, 하루는 야단을 맞고 속상한 마음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다가 어머니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글과 관련된 것은 뭐든 좋았다. 활자 사이로 시선을 미끄러트리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고, 노트에 한땀한땀 글자를 새기는 것도 즐거웠다. 피아노 건반을 어루만지듯 키보드 위에서 문장을 빚어내는 시간 또한 사랑했다. 브라우저 북마크의 첫 자리는 언제나 국어사전이 차지했고, 생각과 감정을 담을 '적확한 단어'를 찾는 일은 그 자체로 유희였다. 그러니 글을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 건 어쩌면 필자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나이에서 n을 뺀 시간만큼 글을 오래 사랑하다 보니 관계에 균열을 만들 사건이 찾아왔다. 의대생 단체에서 편집장을 맡게 된 것이다. 글을 매개로 세상과 공적으로 관계 맺은 이 첫 경험은, 모순적으로 글과의 거리감을 낳았다. 개인의 회고와 서술을 넘어 기획과 편집이라는 층위에서 맞닥뜨린 새로운 고민들이 치열하게 타올랐고, 그 열기가 필자를 고요한 활자의 세계에서 끌어냈다.1. 읽히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매거진 편집장 시절, 필자 앞에는 저조한 구독률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해 필자는, 그간 산발적인 주제로 진행되던 인터뷰들에 하나의 주제 의식을 부여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부터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어떤 메시지 하에 개별 스토리를 응축시켜야 할까. 독자는 어떤 주제에 흥미를 느낄까." 평범한 대안에서 출발한 질문은 점차 혁신성을 띄었다. "우리는 왜 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와 롱폼을 고수하고 있을까? 관습의 유지인가 독자의 요구인가?" 생존을 위한 변화 앞에서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글은 타인에게 닿아 의미의 재생산을 거칠 때, 비로소 창조의 목적을 달성한다. 따라서 쓰는 행위를 넘어, '읽힐 글'에 대한 인식을 기획 단계부터 가져야 한다. 글감, 매체와 형식, 나아가 홍보에 대한 고민까지. 어미의 역할이 출산으로 끝나지 않듯, 창작자 역시 글이 사회와 관계 맺도록 이끌어야 한다.이후 발길을 옮긴 필자는 서비스 분야에서 운명처럼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단순히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서비스는 무엇인지. 그리고 창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고객에 닿게 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필자는 지금 전혀 다른 분야에서 동일한 질문을 붙잡고 있다.2. 글은 최종 종착지가 아니다.의정사태가 시작되고, 그와 관련한 책을 낸 뒤에도 필자는 같은 주제를 더듬었다. 그러나 문장을 쓸수록 이상할 만큼 답답했다. 필자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문장이 그랬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필자는 포괄적인, 그래서 무엇도 움켜쥐지 못한 문장들로 흰 바탕을 낭비하고 있었다. "자정해야 한다." "뿌리부터 고쳐야 한다." - 이 당연한 말들이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고 느꼈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변하지 않는 걸까.얼마나 많은 문장을 낙수시켜야 바위가 쪼개질 수 있을까.그때 처음으로, 글이 정말 세상을 바꾸는 '효과적인' 방식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현실의 복잡성은 활자가 담기엔 너무 입체적이다.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글일수록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만, 사회는 정답이 아니라 균형을 향해 나아간다. 설령 그 균형이 어긋남과 타협 위에 세워진 모순이라 해도, 사회는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그 평형을 좇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돈된 문장이라도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 문장을 겹겹이 쌓아도, 서술할 수 없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코드블루'가 전국으로 퍼지고 많은 이들이 잘 읽었다는 감상평을 전했지만, 상황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 변하지 않았다. 개인적 효능감은 높았으나 사회적 변화는 없었다. 무력했다. 그때 필자는 글이 닿지 못하는 그 바깥을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 후 필자는 행동을 기획하고 몸을 직접 움직였다. 대표자와 학생 사이의 단절을 메우고, 서로의 신념이 겨눠지는 장면을 막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성과는 미미했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나는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보다, 직접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글은 문제의 실마리를 더듬는 도구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해답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멈춰 서 글을 쓰는 대신 글이 가리키는 현실에 직접 부딪혀보기로 했다. 글은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첫 언어였지만, 더 이상 내가 머물러야 할 종착지는 아니었다.글은 내가 사랑한 첫 추상이다. 글을 통해 나는 이제까지 목격한 세상과 아직 목격하지 못한 세상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활자의 세계는 평온했고, 완벽했다. 그러나 헤세가 말했듯,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에게 그 껍질은 글이었다. 글은 한동안 나를 감싸 안아 세상을 안전하게 배우게 했지만, 결국 나는 그 다정한 포옹을 뿌리쳐야 했다.글은 더 이상 나의 전부가 아니다.세상으로 나아갈수록 내 안에서 글의 자리는 조금씩 좁아지고, 그 자리를 다른 세계의 일들이 채워간다. 그러나 글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선명하다. 사유의 습관, 언어의 온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감각. 그 뼈대를 가지고 나는 새로운 사회에 부딪힌다.돌아보면, 글을 떠나는 일은 애초에 글이 내게 남기려던 마지막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밟고 나아가도록 내어주는 일, 종국에는 자신을 찢고 나가는 것조차 응원하는 일. 어쩌면 그것은 글의 한계가 아니라, 글이 품은 가장 넓은 사랑의 형태일지 모른다.이제 나는 그 안온한 품을 떠나 독립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사랑의 방식을 품은 채 세상과 관계 맺는다. 그런 의미에서 글, 그는 나의 완벽한 첫사랑이다. 
2025-10-27 05:00:00젊은의사칼럼

아직은 학생이지만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그래, 지민이는 그래서 언제 의사가 되니?"반수를 포함해 의대생이 된 지 벌써 햇수로 6년째, 명절마다 듣는 단골 질문 1위다."아유, 아빠! 아직 한참 남았지~"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한마디는 덤이다. 그렇다. 앞으로 실습도 돌아야 하고 국가고시도 봐야 하니, 아무리 못해도 최소 2년 반가량은 남았다.양가를 통틀어 어쩌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의대에 진학한 사람이 되었다. 엄청난 꿈을 가지고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은 언제나 어른들의 큰 관심사이며, 의사라는 직업은 그 자체로 사회적 선망을 얻기 쉽기에 매번 친척들을 뵐 때마다 많은 질문을 받곤 했다. 요새는 어떤 과가 좋다더라, 어떤 과가 유행한다더라, 학교생활은 어떠냐 등등 말이다.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말들로 이렇다 저렇다 대답한 지 벌써 수년째다.조금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는 이따금씩 '의학적인' 질문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아는 게 없어 당황하기 일쑤였다. 정말로 놀기 바빠 아는 게 없던 예과 시절은 물론이고, 학교 편제상 본1 때는 기초의학만 배웠기에 어른들이 갑상선암을 물어오셔도 thyroid gland의 발생학적 기원만 알았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휴학 기간을 거치며 상당수는 까먹었지만 말이다.그래도 올해 추석은 조금 달랐다.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협심증을 앓고 있으셔서 꾸준히 다니시던 외래 이야기를 꺼내셨다. 매일 혈압을 재고 체중을 기록하라느니, 운동을 하라느니 하는 말씀이 참 귀찮다고 투덜거리셨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할아버지, 그래도 그냥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으셔야죠" 하고 웃으며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학교에서 배운 걸 떠올리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혈압과 체중 변화가 심장 부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드렸다. 또 친구분들이 "짜게 먹는 게 힘이 난다더라, 소금이 만병통치약이더라" 하신다기에, 나트륨이 몸속 수분을 붙잡아두어 심장이 더 힘들어진다는 걸 natriuresis 개념을 빌려 조심스레 말씀드렸다.엄마가 거들어 약 봉투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어떤 약인지 설명도 해드렸고, 이모들의 여러 건강 상담도 머릿속 지식을 박박 긁어내서 이것저것 말씀드렸다. 별것 아닌, 알량한 지식이었지만 어른들이 옆에서 "이래서 집안에 의사가 한 명 있어야 한다"며 반쯤은 너스레 섞인 칭찬을 해주셔서, 처음으로 '의대생으로써' 도움을 드린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필자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다.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칼같이 취업한 친구들도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고 곧장 사회로 나가 벌써 어엿한 사회인이 된 친구들도 여럿 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과연 나는 언제쯤 직업을 가질까, 돈을 벌까' 하는 생각이 든다.분명 대학을 오래 다녔는데, 나와 같이 놀던 다른 과 친구들은 다 졸업했는데도 나는 아직도 꽉 채운 2년 반이 기다리고 있다니 말이다. 사촌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해서 이제 언니, 오빠들은 다 직장에 다니고 거의 나만 대학생이다.올해도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험이 있어서, 아이패드에 공부할 내용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내려와 할머니 댁 한 켠에서 밀린 내분비학 공부를 했다. 어른들은 만나뵐 때마다 다들 어려운 공부, 힘든 공부한다고 나를 치켜세워 주신다.내가 하는 공부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데, 이번에도 미리 했으면 될 일을 연휴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지금까지 온 건데… 볼 때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민망하기도 하다.지금껏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딱히 없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적인 시선 반쯤 그리고 전공에 대한 학문적 흥미 반이 나를 의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의대에 진학한 지 6년째가 되는 요즘에서야 처음으로 부모님, 친척들, 아끼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점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한두 군데씩 아픈 곳이 생기고, 내가 학교에서 당연하게 배운, 너무나 간단한 지식이 꽤나 전문적인 지식임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릴 때도 안 했던 멋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앞으로 짧게는 2년 반, 길게는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얼른 '우리 집 의사'로서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다. 어디 가서 자랑하듯 우리 딸이, 우리 조카가, 우리 손녀가 괜찮은 의사다, 말씀하실 수 있게끔 제 역할을 다하는 한 명의 의사로 성장하고 싶다. 
2025-10-20 05:30:00젊은의사칼럼

부끄러움 많은 실습을 돌았습니다

[메디칼타임즈=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2년 반의 휴학을 마치고 드디어 학교로 돌아왔다. 첫 실습은 심장내과였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빳빳한 나의 가운처럼, 나의 뇌도 새것이 된 것 같았다. 그런 내 상황을 모르는 교수님께서 첫날 첫 회진에서 바로 질문을 던지셨다."몸이 엄청 붓고, 단백뇨가 이렇게 심하네. 뭘 생각해야 하지?" 주말에 벼락치기로 질문 족보를 암기했는데 신장 질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해서 눈알만 굴리던 나를 보는 교수님의 표정이 생생하다. 마치 고등학생이 인수분해를 못 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한참 정적이 흐르다 교수님은 공부 한번 해보라 흘리시고 빠르게 사라지셨다.회진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검색했다. 곧 내가 신증후군을 대답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느낀 감정은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주 강렬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래 단백뇨가 심하고 부종이 있어, 신증후군을 생각했어야 하고…' 그러나 그 다음은 또 백지가 펼쳐졌다. 어떤 질환이 신증후군을 일으키는지, 치료는 뭐였는지…그 모든 것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요하게 공부했으며, 적어도 기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교수님의 반응이 이해가 가면서 하루 종일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2년 반은 나의 모든 의학적 지식을 휘발시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그다음 날 심초음파실에서 교수님을 마주쳤을 때 공부해 오라는 말씀이 진심이었을까 말버릇이었을까 몇 번이고 고민하다,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어제 공부해 오라고 하신 환자, 신증후군 같습니다" 교수님의 반응을 보았을 때 말버릇으로 하신 질문이었음이 판정이 났지만, 왠지 기뻐 보이셨다."맞아 신증후군 환자지… 그래 이 환자가 너 케이스 환자로 하자. 조금 어려워 보여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부하는 셈 치지 뭐. 그 환자 너 케이스로 해라!" 나는 어제의 멍청함을 약간이나마 갚은 것 같아 기뻐하면서 환자 번호를 받았다. '조금 어려워 보여서 고민하고 있었는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처음으로 EMR에 로그인하고 환자의 혈액 검사 결과 창을 열었을 때, 검사 항목의 절반 정도가 빨갛게 되어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동기들은 급성 심근경색, 판막 질환과 같은 전형적인 심장내과 케이스를 받은 반면, 내 환자는 신장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심부전이 온 케이스로 전신에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내 친구들의 환자는 모두 수술 후에 퇴원한 후에도, 나의 환자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 주 내내 입원 중이었다. 나는 매일 환자를 보러 갔다. 오늘 나아지는 듯하다 내일 다시 몸이 붓고 다시 빠지고를 반복하고, 그에 따라 온갖 수치도 함께 오르내렸다.전날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아 굳이 교수님 회진을 따라 돌고, 밤에는 들여다봐도 이해가 안 가는 EMR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약은 왜 썼을까, 저 약은 왜 안 썼을까. 고민하다 보면 답 없이 새벽이 그냥 지나갔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를 조금 말려주고 싶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모자람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발표 전날까지도 자신이 없어 밤새 자료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50페이지가 넘는 케이스 발표 자료는, 부족함을 감추려는 안간힘의 결과였다. 그러나 발표가 끝난 뒤 돌아온 지적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주 기본적인 약물을 틀린 것이었다.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며칠 밤을 새운 노력은 부끄러움 속에 묻혀버렸다. 이 부끄러움을 또 어느 세월에 치워야 하는지 걱정하면서 첫 실습을 마쳤다. 한 학기 실습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나는 무수히 많은 순간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면서 "공부해 오겠습니다"를 외쳤다. 그때는 괴로웠지만, 돌이켜보면 그 감정이야말로 나를 책상 앞으로 불러낸 가장 강한 원동력이었다.적성이란 뭘까. 재능과 비슷한 말일까. 학년은 본과 3학년이지만 머리는 예과로 돌아간 듯한 첫 임상 실습을 지나면서, 나는 못했을 때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분야야말로 진짜 적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휴학 중 여러 길을 탐험했지만, 한밤중에 좌절하며 만회의 밤을 지새운 일은 결국 의학 공부뿐이었다. 내가 가장 잘한다고 믿는 일이 부정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 바로 그 부끄러움 때문이다. 오늘도 그 감정을 원동력 삼아 한 장 더 공부한다. 언젠가는 조금 덜 부끄러운 의사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2025-10-13 05:00:00젊은의사칼럼

어느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왈츠를 추자

[메디칼타임즈=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살아오면서 나를 환기시켜주는 많은 대화들이 있는데, 학교 독서 모임에서 좋아하는 두 학번 위 언니와의 대화는 특히나 여러 면에서 그랬다. 그때 아마 우리는 왜 의대에 왔는가,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왜 꿈을 가졌는지,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했는지.대강의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나를 비롯한 동기 두 명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으면서 나의 삶을 잘 영위할 수 있으니까'라고 복사한 듯 똑같은 대답을 했다. 대답한 나도 그렇게 느낀 만큼 언니도 그렇게 읽은 듯싶었다. 각자의 대답을 다 들은 언니는 덤덤하게 되물었다."학문적인 이유로 이 과를 선택한 사람은 많지 않은가 보네?"우리 사회가-그리고 나도-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한 가지는 대학이 '학교'라는 것이다. 학문을 배우는 곳.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과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언니의 질문은 그래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그때 표는 안 냈지만 살짝 당황했다. 너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나는 학문이 아니라 오로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이 과를 선택했기 때문에, 언니의 질문이 유독 맨살에 얼음 닿듯 날카롭게 와닿았다. 당시에는 괴롭기도 했다. 한참 의료대란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내가 믿고 선택한 의사의 ‘소명 의식’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반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언니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싶어서, 그리고 마음속의 반문에 응답하고 싶어서 휴학 1년을 오로지 다 썼다. 청년의사 인터뷰를 가서 언론의 맛을 보고, 불로소득에 대한 묘수를 찾고자 주식 시장을 탐색했으며, 생판 처음 들어보는 신소재의 균열 체계를 시험하는 연구실의 논문과 씨름했다.전공과 한 발자국 멀어져 맛본 세상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고, 가슴이 뛰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공부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안 그래도 사랑하던 세상이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마냥 지구에 뽀뽀나 하고 싶다는 말이 적확했다... 좀 남사스러운 표현이지만.그렇지만 불현듯 깨달은 점은, 내가 더 배우고 싶다 느끼는 것들은 분야에 상관없이 결국은 ‘의업’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배우고 싶어도 레지던트 과정을 다 밟아 병원 생리를 안 후에 배우고 싶었고, 생분해되는 Strain sensor에 대한 논문을 봐도 전에 들었던 메디픽셀 심혈관 조영술에 이미 쓰이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모로 가도 사람 보는 의사가 하고 싶었다. 다른 걸 해도 의술에 도움 되는 것을 하고 싶었다.거기까지 생각이 가닿자, 비로소 언니가 한 질문에 느지막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한 마음이 생겼으니까.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모든 학문에 대한 나의 탐독은 결국 의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이 학문이 아주 많이 궁금해졌다.이 골격 덕에 본과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한 달이 다 된 지금도 나는 어마어마한 공부들과 과제들을 꽤 즐기고 있다. 매일 100장이 넘는 강의록이 쏟아지고, 당장 월요일에 수업한 내용을 달달 외워 목요일 아침에 시험을 봐야 한다. 그런 과목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씩 쏟아지고, 시험은 또 어찌나 자주 보는지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시험을 보는 날로 고정되어 있다.특히 우리 학교의 경우는 본과 1학년 때에 역학 조사 실습이 있어서 조별 과제 발표 준비도 틈틈이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진심으로 흥미롭다. 각종 세균에 대해서 배우거나 이 병변은 어떤 기전으로 생기게 되는지, 자료들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있으면 정말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수업을 듣는다.단순히 의학이 좋다는 이유를 넘어, 의학에 몰입하게 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나의 Professionalism 때문이다.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은 나름의 정의가 있지만, 나는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어떤 한 -특히나 직업적 분야에만-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모든 일을 함에 있어, 심지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빈틈없이, 최선을 다해서,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좋다. 흠 잡히고 싶지 않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과 그 과정을 누군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싫다(이건 피드백과는 다른 영역의 문제임을 분명히 밝힌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그런 태도를 지향했고, 내가 그렇게 해내지 못했을 때 무척이나 자책했던 것 같다.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은 곧바로 내 행복과 직결되어 내 삶을 왈츠로 지휘할 것인지, 진혼곡으로 지휘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공부에 정성껏 임한다. 환자를 볼 때의 마음으로, 이 한 문제가 나중에 누군가를 사(死)의 구덩이에서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 마음가짐으로 살아내는 하루하루는 아름다운 선율의 '왈츠'가 되어준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든 간에, 프로페셔널하게.브랜드 르메르의 뮤즈이자 디자이너인 사라 린 트란은 한 인터뷰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일. 나에게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믿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와 독립성은 일에서부터 온다.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함으로써 나는 성장하고 또 발전한다. ...(중략)... 구성원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일, 새로운 디자인을 완성하는 일, 패션쇼를 준비하는 일 등 모든 과정에 배움이 있다. 일을 통해 겪는 모든 경험을 정말 사랑한다"장인의 쾌감이 느껴지는 답변.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부심과 정성을 가지고 나의 본업에 임하고, 그로 인해 인생을 왈츠처럼 흥겹게 사는 여자가 되고 싶다.그러려면 일단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매일을 꽉꽉 채워서, 마구 헤매면서, 배움을 향해서. 이제는 나의 온전한 열정을 차지하게 된 의학이 멋진 무도를 개최해주어, 더욱 열심히 살 자신이 생기는 요즈음이다.10년 뒤면 서른넷이다. 나는 그때 어디에 있을까? 무얼 더 알고 있을까? 왈츠 같은 여자가 되어있을까?
2025-09-29 05:00:00젊은의사칼럼

다시 시작하는 자리에서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1학년 정지은 ]복학한 지 이제 2주가 지났다. 강의실에 앉아 심장 순환 단원의 슬라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아직 몸이 학교의 리듬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음을 실감한다. 휴학 동안 느긋하게 흘러가던 시간과 달리, 다시 시작된 본과 생활은 빽빽한 강의와 수많은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지금 배우는 것은 심장의 순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임상적 주제들이다. 교과서 속 문장 하나하나는 명확하다. 심부전은 어떤 기전으로 발생하는지, 허혈성 심질환 환자에서 어떤 약물이 쓰이는지, 부정맥의 종류는 어떻게 나뉘는지.정리된 표와 알고리즘은 마치 정답을 보장해 주는 지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지도를 바라보면서도 자꾸 의문이 생긴다. 실제 환자 앞에서는 저 복잡한 알고리즘이 정말 그대로 작동할까? 그리고 그 순간, 좋은 의사라면 어디까지 이 이론을 끌어내어 쓸 수 있어야 할까?복학 전, 나는 이런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다.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잠시 멈췄다가 돌아와 보니, 강의실 내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단순히 '외워야 할 지식'이 아니라 '앞으로 써야 할 도구'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요즘은 강의 노트에 적힌 기전 하나를 보면서도 곧장 연결해 묻곤 한다. "만약 내가 의사가 된다면, 이 지식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쓰일까?"심장내과 교수님들께서는 심장은 단순한 펌프가 아니라 전신과 연결된 복합적 기관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심장 기능 하나가 흔들리면 폐, 신장, 간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진다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좋은 의사란 특정 기술 하나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 동료와 협력하는 자세가 서로 맞물릴 때 비로소 역할이 완성된다. 어쩌면 의사의 길도 하나의 '순환'일지 모른다.강의 중 다루는 증례 문제들은 이런 고민을 더 자극한다. 예를 들어,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어떤 순서로 진단하고, 어떤 치료를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들의 답은 정해져 있고, 교과서에는 그 근거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문제를 풀면서 늘 망설이게 된다.좋은 의사라면 단순히 정답을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상황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판단은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경제적 여건과 같은 교과서 바깥의 요소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아직 본과 1학년인 나에게 이런 고민은 어쩌면 이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휴학 이후 돌아온 지금, 나는 이런 질문을 품는 것이 오히려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다가오면 성적이 우선순위가 되고, 점점 더 문제 풀이에 매몰되기 쉽다. 그럴수록 '좋은 의사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2주 동안 배운 심장 수업 속에서, 의사로서 살아갈 긴 여정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다.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아마 한 가지 정의로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빠른 판단과 정확한 처치가 전부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환자와의 신뢰와 대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식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장이 혈액을 보내고 받으며 순환을 완성하듯, 의사 또한 지식과 태도를 오가며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복학 2주 차, 나는 여전히 학교의 속도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런 질문을 붙잡고 싶다. 지금 배우는 병리 기전과 약물의 작용 기전이 언젠가 환자를 살리는 순간에 어떻게 이어질지, 그리고 그때 나는 어떤 의사로 서 있을지를. 아마 그 답을 찾는 일은 시험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 정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잃지 않는 것, 그 질문을 품은 채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이다.
2025-09-22 05:00:00젊은의사칼럼

쉼표의 필요성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1학년 노정연 ]국경에 실존하는 장벽이 세워진 듯하던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동안의 단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그동안 빼앗겼던 자유를 다시 찾으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전국적인 여행 열풍이 불던 시절, 홀로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여행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고, 막상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행복한 기억을 찾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평균적인 또래들의 삶과 발걸음을 맞추고자 떠났던 몇 번의 여행들은 그다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앨범 속 사진처럼 형식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낯섦을 그다지 동경하지 않는 성격 탓일까, 혹은 사랑에 빠질 만한 여행지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일까. 몇몇 지인들은 여행을 가기 위해 고된 일상을 버틸 정도로 여행지 곳곳에서 행복을 잔뜩 찾아오는 것만 같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여행지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골몰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여행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사실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존경하는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자 했고, 간 김에 관광을 조금이라도 곁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고속버스 안에서 가고 싶은 몇몇 장소를 겨우 추렸고, 그마저도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충동적으로 바뀌었다. 유명세를 믿고 찾아간 몇몇 가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되는 일 하나 없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여행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일상과의 단절'이다.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한 이후, 우리의 뇌는 매순간 위기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롭고 낯선 장소에서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지도에 의지해서 처음 가 보는 경로를 찾아 헤매고, 새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처리하여 기억으로 저장한다. 여행은 휴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뇌에게는 강행군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렇게 뇌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자연스레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일상 속에서 끌어안고 있던 걱정과 고민들이다. 뇌의 빈 공간을 귀신같이 침범하던 불청객들은, 새로운 경험을 처리하느라 바쁜 동안에는 언제 있었냐는 듯 잊힌다.그동안 나는 여행 중에는 무조건 행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적어도 나에게 있어 여행은, 일상 속 불행과 근심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몸은 일상에서 멀어지더라도, 여행지에서는 행복해야만 한다는 새로운 고민에 사로잡혀 정작 새로운 것들을 감각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은 하루를 어떻게든 가득 채우고자 갖은 애를 쓰던 기존의 여행과는 시작부터 달랐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은, 잠시라도 걱정을 뒤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표'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여행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독서가, 공연 관람이, 맛집 탐방이나 스포츠 경기 직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과거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지만 당신만의 '쉼표'를 꼭 찾길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마침표까지 가는 길이 너무 버거울 때, 당신만의 아늑한 쉼표에 숨어 휴식을 취할 수 있길 바란다고. 그 쉼표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2025-09-15 05:00:00젊은의사칼럼

감정이 만드는 의료인의 길

[메디칼타임즈=가톨릭 관동의대 1학년 배지섭 ]서툴고 투박했던 나날들을 거쳐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기까지 감정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물론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게 둘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흔히 감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과 달리 결국 감정도 이성만큼이나 나를 성장시켰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한 인간의 인성과 정체성이 유아기에서 청소년기에 걸쳐 완성되듯, 의료인으로서의 인성과 정체성은 의대생과 젊은 의사 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는 환자를 마주하는 실제 경험과 의료 현장의 가치관이 몸에 스며드는 시기이며, 전문직으로서의 사명감과 윤리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의과대학에서는 자라나는 의대생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최소한 지금까지 필자가 느껴온 의과대학의 생활은 끊임없이 이성을 훈련시키는 과정이다.증상과 징후를 분석하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며, 여러 개의 질환 후보군 속에서 최종 진단을 위해 가능성을 좁혀 가는 훈련 속에서 감정은 종종 방해 요소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환자의 눈물이 우리를 흔들고, 복도에서 가족의 흐느낌과 걱정이 귀에 메아리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어느 선배에게 들어왔던 ‘의사는 냉정해야 한다’는 조언이 실질적으로 가능한지에 관해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감정은 적절한 진료의 적일까?병원에서 마주한 수많은 순간은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속삭였다. 나는 국제성모병원 응급실 조기 임상실습, 연세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외과 실습, 국립중앙의료원 서울권역외상센터 견학을 다녀온 바 있다. 첫 심정지 환자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응급실 바닥에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외상 환자와 마주친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의대생과 젊은 의사 시절은 기억의 절편이 감정의 형태로 직격탄처럼 가슴에 꽂히는 시기다. 의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디는 경험들은 단순히 한 줄의 의료 기록과 새로운 임상 지식으로 축적되는 게 아닌, 감정이라는 매개체로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의 윤곽을 그리게 된다.감정이 단순한 흔적을 넘어 기억을 살아 숨 쉬게 하고, 그 기억이 다시 의료인으로서의 토대를 단단히 다지기에 감정을 외면한 채로는 환자와의 관계도, 의료인이라는 신분으로서 나 자신도 온전히 설 수 없다.그럼에도 의사는 현대 의학의 정점에 서 있는 직업이기에,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슬기롭게 ‘다루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의미를 해석하는 힘. 이렇게 하면 감정은 판단을 해치는 변수가 아닌, 환자를 향한 설득력과 신뢰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또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의료 행위는 자칫하면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사로잡히기 쉬운 구조이다.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마냥 희망적이고 긍정적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환자들을 위해 적재적소에 올바른 감성을 끄집어내 쓰기 위해 의료인은 반드시 본인이 지켜야 하는 감정의 선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위해 때로는 긍정적인 감정을 보충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마치 내가 실습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따스한 의지를 담은 감정을 글로 눌러 담아 가끔 읽어 보며 다시금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이렇게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나니 감정은 결코 억누르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은 환자와 더 깊이 연결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 연결이야말로 의사가 지닌 기술과 과학이라는 가치에 사람다움이라는 따스함을 더해준다.이쯤에서 내가 읽었던 한 구절을 공유해 볼까 한다.젊음은 서툴고 투박해야 하며,사랑은 해맑고 촌스러워야 한다.젊은 의사로서의 삶은 이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술실의 긴장 속에서, 응급실의 소란 속에서, 병실의 고요 속에서 우리 의료인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감정을 잃지 않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 감정이 때로는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때로는 해맑고 촌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온전한 의료인이 되게끔 만드는 힘이다.중요한 것은 이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환자를 향한 진심으로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쌓인 마음들은 언젠가 차분히 빛을 발하며, 환자의 곁에서 한 사람의 인격과 전문성을 함께 품은 의사로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 결국 온전한 의료인이란 지식과 기술에 더해 따뜻한 감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일 테니까.그래서 내가 걷는 이 길은 서툴고 투박한 감정을 지켜내어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사람다운 의사가 되기 위한 여정일 것이다.
2025-09-08 05:00:00젊은의사칼럼

경계선에서의 이해

[메디칼타임즈=고신의대 2학년 김민지 ]나는 모든 깨달음에는 그 시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교육과정으로 예를 들자면, 인수분해는 선행 학습으로는 잘 와닿지 않지만 14살쯤 정규 수업을 통해 접할 때 이해가 잘 된다. 인간관계에서도, 불가피한 갈등의 순간이 찾아올 때 혼자 판단하기보다 대화를 해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은 부딪힘을 감수하고 대화해 본 이후에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깨달음은 텍스트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이 있어야만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일이 하나 있었다.대학교 합격증서를 받은 날, 나는 이제야말로 '어른'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더 이상 어른들의 잔소리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동경해 왔던 순간이 내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고 해방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진 않았다. 패기와 무모함, 근거 없는 용기를 지닌 고등학생의 내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학생과 선생 사이, 그 오묘한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과외를 하면서부터 실감하게 되었다.잘 푼 문제라면 잘 가르치리라 믿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설명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지식의 온전한 전달은 요원한 일이었고, 수업할 때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안 했는데'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내가, 어느새 '이래서 요즘 애들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개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말과 생각을 조심하게 되었다. 나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학생의 눈보다 선생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그 무렵, 이런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 준 책을 읽었다. 육상부 학생과 체육 선생님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은 금방 포기하고, 힘든 훈련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며 질려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성적만 강요해 자신들의 힘듦에는 관심도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삐걱대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런데, 나는 그 선생님에게서도, 그리고 학생에게서도 모두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이전까지는 학생이었기에, 이런 부류의 글을 보면 어른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꼰대라며 이름 붙이고 반발하는 학생들에게만 몰입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과외를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해보자'라며 채근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속상해 한마디 하던 나의 모습이 이야기 속의 체육 선생님과 겹쳐 보였다. 이중적인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결국, 모두 겪어 보고서야 두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압박감도, 어른들의 답답함도 모두 진짜였다.우리는 종종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옳다며 대화 자체를 차단하곤 한다. 학생들은 '꼰대'라며 귀를 막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라며 벽을 세운다. 그렇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 몰두하다 대화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두 입장 모두 옳다. 어쩌면 뻔한 결론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 뻔한 대답이 정답임을 이제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말하느라 바빴던 시간 속에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맞다고 믿는 순간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렸던 것 같다.결국 중요한 건 함께 대화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미묘한 경계선 위에서 두 입장을 모두 겪어 보고서야,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대학생이라는 경계선에 서 있다는 건, 한쪽의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며 균형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학생일 때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기 일쑤였고, 어른들의 시선에선 아이들의 투정이 철없어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서 본 나는, 두 목소리 모두 진실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지금의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싶다. 서둘러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그 경계선 위에서 양쪽을 바라보려 한다. 이해는 그곳에서 시작되니까.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라는 이 경계선, 지금의 나를 천천히 음미하려 한다.
2025-09-01 05:00:00젊은의사칼럼

발걸음을 떼면 길은 자연히

[메디칼타임즈=단국대 본과 3학년 박정은 ]지난 칼럼에서 IT 창업 동아리에 발을 들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로부터 고작 두 달. 달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또다시 실제 서비스 개발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활동을 선택해 빈 페이지를 펼쳤다.이번 이야기는 보험이라는 낯선 소재로 시작된다. 내가 기획한 프로덕트가 보험 추천 및 커뮤니티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단순히 있으면 좋은 서비스가 아닌,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했던 나의 강력한 욕구에서 시작된다.문제다운 문제를 찾던 중, 보험 시장에서 벌어지는 모순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정보 격차에서 기인하는 불균형이었다. 보험 시장에서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입장인데도 100퍼센트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거나 상품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은행 업무, 투자 등 금융의 다른 영역들은 앞다투어 천지개벽한 변화를 맞이하는 와중에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그 문제의식이 이번에 기획한 서비스의 출발점이 됐다. 홀로 도메인 공부와 문제 정의, 가설 설정과 검증 단계를 거쳐, 전반적인 서비스를 기획한 준비 단계. 200명의 메이커(디자이너와 개발자)들 앞에서 서비스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기획 경선. 각기 다른 전공과 경험을 가진 메이커 13명으로 구성된 팀 빌딩. 이후 2주간의 합숙을 포함해 총 5주간 서비스 개발 단계. 그리고 그 여정의 일차 종착역인 데모데이에서 우리가 만든 서비스는 최우수상이라는 보람찬 수확을 맺었다.그리고 앞서 나열한 모든 과정은 두 달 반 만에 이뤄냈다.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수식어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경험이었다. 이 밀도 높은 경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바로 말과 행동이 길을 만든다는 것이다.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고 쩔쩔맸던 일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Q&A였다. 맞다, 그 Q&A, 내 서비스에 대한 질문 공세에 답하는 일. 서비스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기획자 본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려울 것이 없어야 맞다. 하지만 혼자서 서비스를 구상할 때는 예측하지 못한, 한 번도 접근해 본 적 없는 관점에서 질문이 날아오기도 했다. '이 서비스를 기획한 주체인 내가 사전에 이 질문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 그런 질문들은 피할 수 없이 스스로의 빈틈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얕은 곳에 내가 서 있다는 깨달음은 내게 좌절을 안겼다.뻔한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 질문들은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예측하지 못한 질문들에 답변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는 내 서비스에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갔다. 복잡한 도메인의 특성상 질문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메인 지식 - 우리 서비스에 제기된 문제 - 현실적 방안 - 장기적 방향성'의 구조로 답변을 짜는 과정에서 오히려 뭉뚱그려 생각했던 내용들이 선명해지기도 했다.물론 완벽한 답을 준비할 수 없는 질문들도 존재했다. 규제나 시장 상황처럼 현재로서는 불확실한 영역에 대한 질문들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질문들 앞에서는 논리적 근거를 최대한 제시한 후, 나머지는 실행 의지와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채운 답을 내놓아야 했다. '다음과 같은 현실적 제약이 있지만, 방법을 반드시 찾을 겁니다.'라는 다짐으로 답변을 마무리하면서 이게 답변인지 호소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던 순간이 있었다는 고백을 이제서야 한다.신기한 건 이렇게 일단 답을 하고 나니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문제를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제의 영역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조건 해법을 찾는 쪽으로 사고가 전환되었다. 마치 입에서 나온 말이 나를 이끌어나가는 것 같았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 역시 나를 이끌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이 서비스가 잘 될지 안 될지부터(지금도 모른다), 내 거취가 어떻게 될지, 졸업 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냥 '이건 진짜 문제다'라는 확신과 이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덤벼들었는데, 일단 시작하니 길이 이어졌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네트워크, 새로운 정보들이 연극에서 막이 하나씩 진행되듯 차례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야기가 펼쳐졌다.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보니, 가장 중요했던 것은 완벽한 계획이나 철저한 준비가 아니었다. 시작하는 용기였다. 보험이라는 복잡한 영역에 뛰어드는 용기, Q&A에서 불완전한 답변을 내놓는 용기, 13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용기. 그 모든 용기의 시작점은 입 밖으로 내뱉은 한마디였다.말을 뱉으면 어떻게든 하게 되고, 시작하면 길이 이어진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확신을 기다리지만 그 확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은 답변이라도 일단 내놓으면 더 나은 답을 찾게 되고, 불확실한 프로젝트라도 일단 선택하면 필요한 자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막이 올라가는 순간 배우들이 등장하듯이.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지 말라. 대신 지금 가진 작은 확신으로 첫 발을 내딛어라. 말하라, 선택하라, 시작하라. 그러면 길은 자연히 이어질 것이다.두 달 반 전의 나는 보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서비스 기획도, 팀 프로젝트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발걸음을 떼면 길은 자연히 이어진다. 이것이 두 달 반의 여정이 남긴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2025-08-25 05:00:00젊은의사칼럼

의사가 연구할 때 생기는 일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얼마 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이었고, 그 반향만큼이나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을 떠나, 이 프로그램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의대 진학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미 수많은 인재가 의대로 쏠렸고, 그 경향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경향을 되돌리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어쩌면 답은 가까이에 있다. 바로 의사가 연구하는 것이다.특별한 일은 아니다. 연구에 왕도는 없고, 의사도 그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다만, 연구를 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홀로 걷는 것과 같다. 제아무리 단단히 준비하고 입구에 들어서도 터널 반대편은 아득히 멀다.일단 들어섰다면 뛰어가든 기어가든, 주저앉아 울다 다시 일어서든 계속 가야 한다. 내가 기대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도 여전히 가야 한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으니까.물론, 의사가 연구를 할 때 갖는 이점도 있다. 길고 긴 터널 끝에 활짝 웃고 있을 환자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진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학자는 기술을 보지만, 의사는 환자를 보고, 공학을 하는 의사는 둘 다 본다.불편해하는 환자들의 어두운 밑그림에 약이나 수술 대신 연구라는 붓으로 희망을 덧칠할 수 있다. 환하게 빛나고 있을 터널 끝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환자를 위해, 사회를 위해, 그리고 흔들리며 걷는 나를 위해.연구하는 의사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터널 입구로 들어서기도 전부터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 그리고 의사면허 취득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겨우 환자를 마주할 자격을 부여받는다.그때부터 쌓아가는 환자와 함께한 이야기들이 임상경험이라는 이름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터널 반대편 끝에서 마주할 그들의 밝은 얼굴을 그려볼 수 있다. 아직 연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그래서 의사과학자 선배들이 존경스럽다. 여럿이 걷는 길은 가볍지만, 홀로 걷는 길은 무겁다. 고된 시간을 지나 충분한 임상경험을 쌓아왔음에도 어두운 터널 앞에서 다시 시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길을, 그것도 남들은 선택하지 않는 그 외로운 길로 들어선 그들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언제쯤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호기롭게 시작한 길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부모님의 걱정, 선배들의 충고, 친구들의 시선.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조언들이 내면을 파도처럼 뒤흔들었지만, 연약한 나는 갈등 속에서도 발걸음을 옮겼다.역설적으로, 비틀거렸기에 마음은 단단해졌고 결국 출발선에 다시 섰다. 터널 저편에서 웃고 있을 환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그러나 다짐만으로는 부족했다. 동기들과 다른 속도로 걷는다는 사실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길이라는 현실이 어깨를 무겁게 했다. 생활과 미래를 저울질하는 계산기 속 숫자는 끊임없이 바뀌었고, 불안은 틈새마다 스며들었다. 그런데, 터널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이 길이 나 혼자 선택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등 뒤에서 희망이 반짝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좇는 내가 있듯, 미숙한 나를 쫓는 후배들이 있었다. 그들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 더 다짐을 되새긴다. 그리고 외로운 발걸음 위에도 다시 빛이 내려앉는다. 한 걸음 더 내디딜 힘이 생긴다.그리고 또 다른 희망이 눈앞에 다가왔다. 바로, 수년 전부터 시작된 '융합형 의사과학자 육성사업'이다. 임상이 아닌 다른 자연 과학 및 공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자 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의대생 시절부터 전공의, 박사과정, 박사 후 연구원 과정까지 단계별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넉넉한 연구비뿐만 아니라 인건비까지 지원된다. 길고 험한 터널을 지나는 동안 배고프지 말라고, 목마르지 말라고 빵과 물을 건네는 사회의 손길이다.그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결국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길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나아가야 할 길이 막힌 것 같다면, 아예 다른 길을 찾거나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답이 있을 수 있다. 의대 편중이라는 사회 문제의 해답이 바로 의사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에 있을 수 있다.터널은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길다. 하지만 이제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는 동료들이 있고, 우리를 응원하는 사회가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은 환자를 위한 길이자, 우리 사회가 균형을 찾아가는 길이다.그래서 말하고 싶다.'너, 내 동료가 돼라!'
2025-08-18 05:00:00젊은의사칼럼

大 Chat-GPT 시대의 글쓰기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요즘 들어, 글을 쓸 때면 자주 멈칫하게 된다. 예전처럼 첫 문장을 찍어 내는 데에도 망설임이 많아졌다. '이 글을 굳이 내가 써야 할까?', '이미 누군가가, 아니 어쩌면 이미 AI가 더 잘 쓰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이른바 생성형 인공지능이니, LLM이니 하는 기술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놓였다.예전에는 글쓰기가, 적어도 한 사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반영된 행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믿음마저도 흔들리는 순간들이 잦다. 누군가는 말한다. 'AI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이라면, 굳이 사람이 쓸 필요가 없다'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왜, 여전히 이렇게 종이 위에, 혹은 화면 앞에 앉아 단어를 하나하나 옮기고 있는 걸까.이번 칼럼은 조금 독특하지만, 제목에 걸맞은 시작을 해보았다. 본 글의 서론은, 그간 필자가 메디컬타임즈에 기고한 글 몇 건을 학습한 Chat GPT(무료버전)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성해 주었으며, 이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워드에 옮겨 담았다. 뻔히 자기가 글을 생성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앞에 앉아 단어를 하나하나 옮기고 있는 걸까'라는 문장을 쓰는 게 약간 괘씸하게 느껴진다. 이 와중에 또 내가 쓰던 글의 특성이 그대로 묻어나 있어 반쯤은 놀랍고 반쯤은 무섭기도 하다.초등학교 시절 매일 밤 연필을 잡고 꾹꾹 눌러 쓰던 일기로 시작해, 이따금 칼럼을 싣는 기회를 얻기까지, 나는 십수 년간 꾸준히 글을 써왔다. 당연히 내 나름의 문체, 약간은 정형화된 글쓰기 스타일이 있다. 그런 나의 글을 똑똑한 GPT는 이렇게 분석했다."네 글에는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어:개인적인 경험과 질문에서 출발: 구체적이고 일상적 장면이나 고민에서 시작해서, 경험의 끝에 가서는 반드시 사회적, 구조적 문제 혹은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해.'나'라는 1인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억누르거나 객관화하려 하지 않고, 너 자신에게 솔직해.긴 문장과 문단: 한 호흡이 길고, 쉼표가 여러 번 들어가며 생각이 이어짐. 독백 같고, 일기 같은 느낌을 줘"그냥 요청한 대로 서론만 써줄 것이지, 항상 내가 부탁한 결과물을 내어 주기 전에 이렇게 본인만의 분석을 곁들인다. 꼭 스스로의 버릇을 들킨 듯한 기분이라,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너무 길진 않은지 고민하게 되고, 글의 구성도 또 지나치게 확장적이지 않은지 의식하게 된다. 안 그래도 어려운 글쓰기를 더더욱 어렵게 만들다니, 정말 고약하다.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펼쳤던 세기의 대국 후 강산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그사이 이름도 생소했던 AI는 어느덧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왔다. 이쯤에서 기계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나마 되짚어 보자. 태초의 기계는 인간의 수고를 조금 덜어주는 데에서 출발해, '기계적이다'라는 형용사가 만들어질 만큼 지치지 않고 반복적인 일을 해내었다. 이것이 곧 자동화의 물결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육체적인 노동이 아닌 '생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할이었다. 하다못해 컴퓨터도 인간의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어떤 연산을 수행할 뿐, 독자적으로 무언가 구상하고, 고안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자 그간 인류 문명의 번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물론 AI 기술이 기계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계라는 선례가 있고, 그 초기 기능은 기껏해야 검색 엔진에서 조금 발전한 수준이었기에, 사람들은 AI가 단순한 연산이나 사무 작업 정도나 대체할 것이지, 창작자들은 AI로부터 자유로이, 본인만의 굳건한 영역을 점유할 것이라 예상했다.그런데 웬걸, AI는 너무도 손쉽게 우리가 그간 인간만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창작'을 시작했다. '학습'과 '모방'은 단순 지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AI는 글의 구조를 학습하고, 그림을 픽셀 단위로 나누어 분석했으며, 음악의 구성 요소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널려 있는 AI 작곡, 몇 달 전 전 국민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어 놓았던 지브리풍 사진까지. 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에는 한 기자가 AI가 써준 기사를 프롬프트까지 그대로 복사한 게 들통나 논란이 되기도 하지 않았나.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이 다 엄청난 창의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글의 종류에 따라, 이따금씩은 GPT가 사람보다 유려한 글을 써내기도 한다. 올해 초, 우연찮게도 한 해외 대학의 연구실에 인턴 지원서를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너무나 좋은 기회였지만, 단기간에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CV를,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예과 1학년 때 배웠던 cover letter나 resume 쓰는 법, 교수님께 메일 드리는 법 등이 아련히 떠올랐지만, 그저 내가 그 내용을 배웠다는 사실만 기억났을 뿐이었다. 당시 학적도 애매했고, 시기도 조금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었기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고자 열심히 구글링을 했지만, 선례도 부족했고, 제출 기한이 굉장히 촉박했던 탓에 물어볼 사람도 별달리 없었다.그래서, GPT를 결제했다. 30달러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GPT는 나의 거친 문장을 academic하고 polished한 것으로 바꿔주는 가장 큰 조력자였고, 고쳐도 고쳐도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는 듯해 교수님께 메일 드리기 전 발을 동동거리던 나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상담가였으며, 무엇보다 나와 함께 밤을 새우는 좋은 친구였다. 조금 과장해서 나의 CV는 8할을 GPT가 썼다 해도 무방하다. 고마울 따름이다.지금의 나는 워드 프로세서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글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어릴 때의 교육으로 원고지 쓰는 법을 대강 알고는 있으나, 수정이 간편하고 각종 표시를 할 수도 있는 워드 프로세서가 좋다. 하지만 설령 누군가가 손으로만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게 옳고 그르다는 가치 판단을 할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본인의 스타일일 뿐이다.GPT 활용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본인의 생각을 담는 글이 아닌 정형화된 글쓰기에서 GPT는 정말 훌륭한 도구이다. 일전의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어야 하는 이론, 혹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애매한 뉘앙스의 차이를, GPT는 파악하고 '내 글에' 이를 곧장 적용해 준다. 기존의 학습이 이론-예제-유제-실전의 네 단계를 통해 이뤄진다면, GPT는 이 과정들을 뛰어넘어 이론에서 곧장 결과로, 혹은 설령 필자가 이론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다 하더라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어준다.내 글은 어디까지가 나의 글일까? 가령, GPT를 일부 활용해 글을 작성한다고 치자. 기존에 내가 작성해 둔 글을 학습시킨 GPT에게 내가 구상한 글의 방향성과 상세 내용을 제공하고 '내 문체에 맞게 써줘'라고 요구하는 거다. 그리고 도출된 결과물을 내 말맛에 맞게 퇴고한다면, 과연 이건 나의 글일까, 아니면 GPT의 글일까? 뼈대가 되는 아이디어는 나의 것인데, 살만 다른 존재가 붙여 주었다고 해서 과연 그 글이 내 생각이 담기지 않은 글이 되는가? 그렇다면 글의 본질은 무엇인가. 껍데기인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생각인가?시대는 변한다. 하지만 앉아 있는 내 앞에 놓인 빈 종이, 혹은 화면이 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GPT는 마법상자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더욱 명확하게 적어 프롬프트에 입력할수록 보다 짜임새 있는 결과물이 나오고, 때로는 GPT가 작성해 준 문장을 통해 내 글의 방향성이 더 명확해질 때도 있다. GPT와의 글쓰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글을 통해 진정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된다.달라지는 시대 속, 우리는 제 자리를 찾아오는 연어마냥 같은 질문으로 회귀한다. 바야흐로 大-GPT의 시대,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도 모르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인간인 나의 글쓰기는 역설적이게도 그 본질을 이루는 질문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2025-08-11 05:00:00젊은의사칼럼

병원은 공정한가요

[메디칼타임즈=가톨릭관동의대 3학년 안하은 ]"한 명만 수술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지진 현장에서 마주한 의료인의 딜레마를 다룬 장면이 나온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발견된 두 명의 환자 중 한 명은 젊은 남성, 다른 한 명은 고령 남성이다. 두 명 모두 위중한 상태이며, 서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구조물이 연결되어 있어 한 명을 살리기로 선택하면 다른 한 명은 죽게 된다.드라마에서는 결국 고령 환자의 양보로 젊은 환자가 수술을 받는다. 의료인으로서, 이처럼 한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 곧 다른 한 삶의 죽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극단적인 드라마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의료인이 마주하는 공정성의 딜레마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환자는 네 번째 병원으로 이송 중 심정지를 일으켰습니다."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병원 뺑뺑이 사건은 더 이상 예외적인 비극이 아니다.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지만, 병상은 없고 인력도 없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결국 기회를 놓치고, 생명까지도 잃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왜 그 사람은 치료받지 못했을까?"문제는 단지 병상이 부족하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의료 현장은 자원이 유한한 공간이며, 모든 환자를 동시에 살릴 수는 없다. 결국 누군가는 먼저 치료를 받고, 누군가는 다음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 선택은 단순히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윤리적, 현실적인 판단의 총체이다. 의료진은 응급도, 회복 가능성, 생존율, 병력 등을 고려해 환자의 우선순위를 판단한다.이 기준은 의학적으로 정해 놓은,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살리기 위한 시스템의 일부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려진 ‘합리적인 선택’은 때때로 감정적으로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한 환자는 살아남고, 다른 환자는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이해가 아니라 의문을 안게 된다.공정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모두에게 똑같은 대우를 하는 것일까? 병원에서는 그 정의가 훨씬 더 복잡하다. 공정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가능성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의료 현장의 공정은 종종 형식적으로는 타당해도, 정서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를 낳는다.나는 의대생이므로 아직 직접 그런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병원에서, 뉴스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는 동안 공정한 선택이란 말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는지를 점점 실감하고 있다. 누군가의 생명을 먼저 살리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 판단의 무게는 의학적 지식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공정성은 정답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태도이다.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공정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고민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만으로는 남겨진 이들의 슬픔과 의문을 모두 덜어줄 수 없다. 의료인은 생명을 살리는 사람인 동시에, 살리지 못한 생명과 그 가족에게도 마주 서야 하는 사람이다.그 순간 의료인은 선택의 과정을 솔직히 밝히고, 왜 그런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숨김없이 설명해야 한다. 그저 규칙이 그렇다고 말하는 대신, 환자의 상태와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 판단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어느 누구도 설명 없이 배제되지 않도록, 누구도 이유 없이 소외되지 않도록 공정한 기준과 투명한 설명이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서 의료인은 결국 선택의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 판단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겠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해 판단했고, 그 누구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공정한 선택이었다는 회피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진심을 다한 충분한 설명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의료인이 되고 싶다.
2025-08-04 05:00:00젊은의사칼럼

초심자의 행운

[메디칼타임즈=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흔히들 초심자에게는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지난 1년간 세상은 의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건 뭐든 해보라"고 문을 억지로 열어주는 듯했다. 학업을 핑계 삼아 평생 미뤄두던 일들에 의대생들이 '초심자'로서 뛰어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행운이 따르던가?작년 이맘때쯤 나는 대학생 창업 동아리 '메디럭스'에 가벼운 호기심으로 가입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의대생들 사이에서 스타트업은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고, 마침 헬스케어에 특화된 동아리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동아리 구조는 단순했다. 약 70명의 팀원이 각자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10명이 팀장이 되어 반 년간 팀을 이끌었다.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의 장점이자 단점은, 사람들은 학력 하나로 뭐든지 잘할 것이라 착각한다는 것이다. 암기와 시험에만 익숙해 제대로 된 팀 프로젝트 하나 경험해 본 적 없는 내가 팀장으로 뽑힌 것도, 그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얼떨떨한 창업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내 아이디어는 '웰다잉(Well-dying)'과 '호스피스'였다. 기대수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말기 판정 이후의 삶에 관심이 높아졌고,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돈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창업을 해본 사람은 안다. 모든 '야심찬 아이디어'는 이미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대부분은 진작에 실패했다는 것을. 나 역시 첫 리서치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피보팅(사업 방향 전환)을 반복하다가 결국 시작점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창업에서는 '페인 포인트', 즉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불편함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내놓은 문제는 뉴스 기사나 나의 직관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리 팀은 곧바로 인맥을 총동원해 호스피스 환자의 가족, 전담 의사, 간호사 분들을 인터뷰하고 말기 암 환자 카페의 글들을 밤새 읽으며 진짜 '페인 포인트'를 찾았다.우리는 환자와 가족이 말기에는 '집'에서 머무르길 원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응급상황에서의 부담과 죄책감 때문에 많은 이들이 '병원'을 선택했다. 오히려 우리의 아이디어가 진짜로 필요한 사람들은 그 중간, 예를 들어 신체 활동은 가능하지만, 전신 상태가 약화된 암 환자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홈케어는 어떤 형태일지 고민했다. 재택의료 학회에 직접 참석해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실제로 재택의료를 전문으로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해 현장을 견학했다.하지만 '필요하다'는 것과 '팔린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언젠가는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홈케어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지만,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방향은 유지하되, 미래의 고객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작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자고 다시 아이디어 회의를 시작했다. 그 결과, '암 환자의 통증 관리'에 초점을 맞춘 어플 개발로 방향을 바꿨다. 삶의 질과 직결되지만, 상대적으로 간과되던 문제였다.이 모든 과정과 병행해 우리 팀은 창업 대회에 참가했고, 1차, 2차 심사를 통과해 어느새 최종 데모데이 무대에 서게 되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했고, 솔직히 말하면 결과물은 아직 미완성에 가까웠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눈앞에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웰다잉, 홈케어의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당장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암 환자를 위한 통증 관리 앱'을 보여주었다. 나의 발표는 누군가에겐 애들 장난처럼 보였을 것이다. 데모데이 무대에서 발표를 마친 그 순간까지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러나 발표가 끝난 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간 헤매고 고민했던 반 년간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고객이 누구인지,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적어도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비록 완성된 서비스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나는 사람을 모았고, 문제를 좁혔으며, 고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창업 용어 하나 모르던 내가 피칭 자료를 만들고, 인터뷰 질문을 고민하며 고치고,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MVP를 구현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부딪치며 만든 첫 번째 결과물로, 우리는 결국 창업대회 최종 수상까지 할 수 있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커다란 상금 패널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는 그 순간, 수없이 헤맨 시간이 하나의 답처럼 돌아온 듯했다.초심자는 어설프고 서툴 수밖에 없다. 어설프고, 더디고, 열 번 시도하면 아홉 번은 실패한다. 그러나 그 아홉 번의 실패가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엮여 당신이 내딛어야 할 다음 걸음을 지지한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새로운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실패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2025-07-28 05:00:00젊은의사칼럼

이해되지 않는 기묘한 마음이 있다

[메디칼타임즈=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며칠 전 내가 편집팀으로 있는 의대생 단체 '투비닥터' 인터뷰 촬영 현장에 나갔다가 정점을 찍은 생각이다. 7월에 발간될 투비닥터 매거진에 들어갈 중요한 인터뷰였고, 인터뷰이께서 영상 촬영을 허락해 주셔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편집팀과 온갖 카메라 장비를 진 카메라팀까지 선릉역에 모였다.결코 쉽지 않은 하루였다. 영상 촬영 장비는 이동용 캐리어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많았고, 인터뷰 현장 세팅에만 두 시간이 걸렸다. 하필이면 날씨도 엉망이었다. 인터뷰 시작쯤에는 찌는 듯이 덥다가, 끝나고 철수할 때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인터뷰에 대답해야 하는 나도 긴장과 낯섦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감히 힘들다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카메라 팀장 선배(영상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같은 의대 휴학생 신분인) 때문이었다. 까만 티가 땀인지 비인지 모를 것에 흠뻑 젖은 채로 그는 분주하게 장비를 세팅하고 짐을 옮기며 돌아다녔다.선배는 인터뷰 이틀 전부터 외부 촬영 전문가를 섭외하고, 장비를 대여하느라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실제로 촬영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서도 진이 다 빠져 평소와 다르게 말수도 없어진 그를 보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요한 콘텐츠라고는 하나, 실은 독자도 많지 않은 우리 매거진과 유튜브 채널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그가 신기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과했나 싶었는지, 밥을 먹다가 그가 중얼거렸다."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별로 보태 줄 말이 없어서, 나는 그냥 늘 하는 말만 되풀이했다."뭐… 좋아하니까 하는 거죠"더 우스운 것은, 그 말에 그가 그저 푸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굳이, 이렇게까지, 대체 왜? - 좋아하니까.그래, 나는 이 '좋아하는' 마음의 족적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참 알 수 없다 생각하며 족적을 오래 지켜보았다. 가령 좋은 공대에 갈 수 있는 내신 등급을 충분히 잘 쌓아 놓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옷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갑자기 의상학과로 진로를 튼 소꿉친구. 혹은 이미 학사까지 따 놓고 취업을 코앞에 두었는데 새롭게 배우의 길을 시작한 옛 지인. 아주 가깝게는 본업과는 영 동떨어진 일인 회화 전시를 주관하느라 몇 달을 고생하는 엄마. 힘들지 않냐고 묻는 내 질문에 그들은 늘 똑같이 말했다. "이게 너무 좋아“좋다 - 라. 그 마음이 그렇게나 유의미한가? 나는 이에 대해 꽤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생산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마음을 눌러 둔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큰 지장이 생기는가? 역시나 그렇지 않다. 외려,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자주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그 거래의 합리성을 가장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었다.글 쓰는 것은 언제나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쓸 때도, 중고등학교 때 백일장에 나갈 때도, 아니면 그냥 공부하기 싫으면 낙서나 메모를 아무렇게 끄적일 때마저도 항상 즐겁게 펜을 휘갈겼다.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 때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쓰거나 필사를 했다. 어쩌면 평생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겠어. 자주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글을 쓰는 진로에 몰두했던 적도 있었다.그러나 조금 더 세상을 많이 관찰하고 난 후에 나는 펜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미련 없이 내려놓은 '좋아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막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가치롭다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냉정하게 스스로를 진단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절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닌 나. 더군다나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에 쓰일 리 없는 내 어쭙잖은 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과 고작 좋아할 뿐인 글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세상을 바꾸는 일과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은 등가교환이 불가함을 확신했다. 그렇게 딱 나누어 떨어지는 계산을 끝내고는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건 그저 좋아하고 끝인 거지. 거기 뭘 내걸고 좇는 건 기묘해.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기묘하다 치부한 내 오만은 한순간에 나를 벼락처럼 뒤흔들었다.입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펜을 다시 슬쩍 들었을 때부터 진동은 시작되었다. 힘주어 쥐었던 전과는 달리 아주 가볍게 든 펜이었다. 혼자 독후감을 쓰거나, 종종은 격한 감정을 담은 일기를 쓰거나, 자문자답하며 논설문을 쓰거나. 처음에는 그것만으로도 전처럼 즐거웠다. 그러나 이내 다른 사람들도 내 글 읽어봤으면 좋겠는데,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생겼다. 그 단순한 욕망에 이끌려 투비닥터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마음'의 본격적인 반격은 그때부터였다.지난 1년 반 동안 몇십만 자를 써 내려갔다. 매 글이 쉽지 않았다. 세상에 보이는 글을 쓰는 일은 만만치 않으니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소모가 많은 일이었다. 다만, 내내 즐겁기 그지없었다. 책 <코드블루>에 의료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칼럼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의 얼떨떨함은 매큼하게 나를 자극했다.투비닥터 매거진에 수록된 내 에세이를 형편없다고 생각했는데, 참 아름다운 글이라고 익명의 독자에게 DM을 받은 날은 하루 종일 그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메디컬 타임즈에 기고하는 글의 퀄리티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며칠 밤 머리를 싸매고 글을 뜯어고친 날들도 다크서클은 한 바가지였으나 완성된 글에 행복했다.그리고 이번 상반기 내내 투비닥터 매거진 10호를 만드는 데에 유례없는 몰입을 하면서 나는 온전히 글을 쓰는 일에 빠졌다. 기사 퀄리티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레퍼런스가 될 시중 매거진을 사고, 며칠씩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편집 회의를 거듭하며 더 좋은 기획 기사를 위해 노력하고, 도서관에 주저앉아 방대한 자료를 뒤졌다.모든 일은 굳이 싶을 정도로 열과 성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이 매거진을 사람들에게 읽게 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리라는 어설픈 사명감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꼭 세상을 좋게 만들지는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후에 그 사명감이 무색하게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더라도 지금의 에너지 소모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렇다면 굳이 밤을 새우면서, 이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면서, 대체 왜 나는 이러고 있나. 힘에 부치면서도 노트북을 부여잡을 때, 매번 불퉁스럽게 자문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질문 끝에 비로소 완성된 답은 나를 완전히 함락시켰다.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그저 지금 즐거우니까. 쓰는 것이 좋고 쓰인 것을 편집하는 것이 좋고 쓰기 위해 구성을 만드는 것이 좋다. 좋으니 끝이다.내가 스스로 던진 질문들이, 등가교환이 아님을 알면서도 기꺼이 글을 좇은 나의 감각들이, 전에는 알 수 없다 생각했던 타인들의 기묘한 족적과 같은 궤를 하고 나를 휘감았다. 체념한 척 기쁘게 패배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도 그 기묘한 세계에 던져졌구나.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기묘한 마음이 있다. 얼마나 기묘하냐면,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할 수 없는 일들에 굳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게 만드는 마음이다. 너무 기묘해서, 시답잖은 경험에도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부여해 합리적 계산을 불가하게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를 끌고 가,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 것만 같은 즐겁고 멋진 세계를 보여주는 마음이다.올여름 나는 파도 타듯 그 마음을 타고 있다. 휴학과 복학이 맞물리는 그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는 7월,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분주히 손을 놀려야 한다. 쌓인 일감들은 꼭 인터뷰 날 카메라 팀장 선배의 수많은 장비처럼 덩치도, 갯수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들을 들쳐 업고 이 여름의 파도를 즐겁게 타보려 한다. 비가 오든, 더위에 녹을 것 같든, 얼마든지 즐거울 자신이 있다. 좋아하니까!펜을 들자, 기묘하고 반짝이는 마음을 위해!
2025-07-21 05:00:00젊은의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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