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과 3학년, 첫 임상실습으로 마주한 외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생생한 현장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그려지던 외과의사의 멋진 모습과 고된 삶에 대한 막연한 그림은 지난 한 달간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학교에 복귀하고 설렘과 긴장 속에 내디딘 외과 병동의 첫걸음은 매일 새로운 배움과 성찰의 연속이었다. 새벽에 시작되는 응급 수술, 부족한 잠을 이겨내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병동을 도는 교수님들의 지친 뒷모습, 그 헌신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과연 나는 저렇게 환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깊은 고민에 잠기곤 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수술실 밖에서 마주한 의사와 환자의 교감이었다. 성공적으로 암 수술을 마친 한 환자분은 교수님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아니었으면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교수님은 담담히 답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입니다. 환자분이 잘 이겨내신 덕분이지요."
수많은 환자가 오직 의사 한 사람을 등대 삼아 기나긴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외과의사는 매일 필사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경이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무게가 얼마나 거대한 짐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실습을 돌며 만난 수많은 암 환자분들은 '치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암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완결되는 질환이 아니었다. 재발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며, 환자 스스로 기나긴 회복의 과정을 견뎌내야만 했다.
특히 고령의 환자분들이 힘겨운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환자의 남은 삶의 질을 고려한 현명한 치료는 과연 어떤 것일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암의 완치를 목적으로 한 고통스러운 치료보다 환자의 고통을 줄여 평안한 마지막을 돕는 치료를 더 간절히 원하는 보호자들의 모습을 보며, 암 치료에 대한 관점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케이스 환자로 배정받은 한 분을 만나며 더욱 깊어졌다. 대장 질환 수술을 위해 입원하신 고령의 환자분은 서툰 문진을 이어가는 내내 온화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진심을 다해 "내일 수술이 꼭 잘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감사하게도 그 환자분의 수술에 보조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수술 내내 고령의 환자분께서 부디 이 큰 수술을 잘 이겨내고 회복하시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회진 시간, 병상에 누워계시던 환자분께서 회복하시고 환하게 웃으시는 순간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는 경험을 했다. 짧은 만남에도 이토록 깊은 유대감과 감정이 생겨나는데, 수많은 환자와 관계를 맺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이별을 겪어야 하는 교수님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지난 한 달간의 외과 실습은 의사의 길이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매일 자신의 감정을 다잡고 환자에게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숭고한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길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명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앞으로 더 치열하게 배우고 더 깊이 성찰해 나가려 한다.


-  최신순 
 
            -  추천순 
 
        
댓글운영규칙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