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칼럼] 따뜻한 봄날은 오려나
[메디칼타임즈=한국병원정책연구원 박종훈 원장 ]갑작스레 의도치 않은 전문의 중심 병원이 됐다.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병원이 막상 되고 보니 준비 안 된 현장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나이 든 스텝(의료진)의 경우 모든 것이 첨단 전산화 된 현재의 병원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처방 하나 내기도 어렵고, 의무 기록 작성도 헤맨다.또 모든 분야가 세분화되서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만 익숙했지 같은 과라고 해도 다른 세부 전공의 경우는 막상 환자 처치에 들어가면 당황하게 되니 당직도 어렵다. 그러니 자연스레 당직은 주로 젊은 의대교수의 몫이 되는데 당직하고 쉬지 못하고 진료하다 보니 그들도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젊으나 늙으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런 상황이 어느덧 만 1년이 된다. 급하게 졸속으로라도 진료 보조 직군의 직원이 늘어났고 그들이 진료 영역에서 상당 부분 기여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서 문제가 없는가? 그럴 리가 없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진다 해도 제대로 작동될 수가 없다. 의료의 상당 부분이 의료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니 의사가 아닌 경우 한계가 있고, 감당이 안 되는 영역이 너무도 많다. 끝내 2025년에는 지금껏 버티던 젊은 의료진이 대거 사직하고, 신규로 유입될 전문의가 없다고 하니 상황은 최악으로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전공의에 의존하지 않는, 그래서 전공의는 교육과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병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지금처럼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의 전문의 중심 병원은 그야말로 불안하기 그지없다. 환자 안전? 당장 의료진이 쓰러지게 생겼으니 기대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진료량을 절반 정도로 줄여야 할 텐데, 그러자니 병원이 도산하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결국에는 진료 역량이 줄고 도산의 위험에 빠지겠지만 당장은 발버둥 치는 중이다.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의 문제에서 내가 최후에 쓰러지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전공의는 복직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도 복학하지 않을 것이다. 신입생은 증원 규모 그대로 입학할 것인데, 그 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수가 휴학의 대열에 참가할지 모르겠다. 수 많은 전공의가 2년째 수련이 중단되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의건 타의건 간에 영원히 전문의 과정을 포기할 것이다. 계획에도 없던 군 복무를 시작하는 전공의도 있을 것이고, 현 상태라면 군 복무가 예정된 상태로 수련 계획과 연결 고리 없이 모호한 신분으로 연기되는 사람도 있게 된다. 역시 내년에도 전공의가 없으니 2026년 전문의 배출도 없을 것이고, 연속 2년의 전문의 배출이 없게 되니, 의료 시스템의 상당한 왜곡이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단순 계산으로는 2025년 의대 1학년은 2024년 1학생인 3000+ 2026년 1학년 4500명인 7500이고 (사실 2024년 1학년 가운데 어느 정도 인원이 2025년 의대 신입생으로 옮겨갈지 모르지만) 여기에 2026년 의대 증원이 없던 일이 되면 2026년에는 7500+3000명인 1만500명이 될 것이고 만에 하나 증원 정책이 지속 된다면 1만2000명이 될 수 있다. 그야말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2026년은 의대 신입생을 일절 선발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글쎄, 그게 가능이나 할까? 수십만의 2026년 수능생은 무슨 죄로 아예 의대 진학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그것은 우리 알 바 아니고, 올바른 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어쨌거나 정부가 책임질 일이라고? 뭐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 끝이라면 왜 이 상황까지 오면서 했던 주장들은 먹히지 않았을까? 미군은 전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돌격 앞으로 가'를 외치는 지휘관은 문책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원 사망해도 용감한 군인정신으로 훈장 받을지 모른다. 동서양의 문화 차이라 할까? 의대 증원 논란의 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다분히 한국적 투쟁을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정의를 앞세운 의욕은 있었지만 플랜 B는 없었다. 외침은 있었으나 영민하게 생각하는 조직은 없었다. 늘 그렇듯이 국민적 지지는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고, 의료를 파국으로 모는 극단적 선택만 남았다. 누군가의 외침에 그저 묻어왔다. 그것이 생각하기 편했고, 그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정의가 없는 세상을 한탄하면서 우리는 끝까지 간다는 메아리만 있다. 이런 글이 마땅찮아서 내게, 그러면 어떻게 했었으면 좋았겠냐고 따져 묻는다면, 낸들 아나? 분명한 것은 2025년도 여전히 2024년, 아니 이전의 우리가 늘 하던 행태의 반복이 될 것이 뻔한데 무슨 답이 있겠는가? 새해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매우 궁금하고 불안하다. 대한민국 의료의 봄날은 어떤 모습으로 언제 올까? 오기는 올까? 2000년 의약 분업 이후 늘 의료 현장에 있었지만 한 번도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의료의 비전과 가능성을 정부나 의료계 양측으로부터 들어 본 적이 없다. 1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도 의료계는 정부안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할 뿐, 적정 의사 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해 뭐하랴. 새 의협 집행부가 들어서면 뭔가 달라질까? 실낱같은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