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대가 최고가 될 수 없는 이유
[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대학병원은 말 그대로 대학입니다. 학문을 하는 곳이지요. 환자에게 어떠한 치료에 최적인가, 지금의 표준치료는 정답인가를 검증하는 곳입니다. 교수가 진료로 돈을 벌다니요?"유럽을 넘어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대학병원인 샤리테 의과대학 대학병원(Charité Universitätsmedizin Berlin) 도미니크 모데스트 종합암센터장의 말이다.실제로 샤리테는 독일에서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을 넘어 세계 탑 10 대학병원으로 꼽힌다.300년에 달하는 세계적 명문 대학병원으로 근무중인 교수와 의사, 의학자들만 6천명에 달하며 이미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만 11명을 배출했다.특이한 점은 이 대학병원 또한 저수가에 신음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독일은 진료군별 포괄수가(G-DRG)가 적용되기 때문이다.샤리테 대학병원에서 아무리 경험 많은 교수가 최첨단 장비를 활용해 진단하고 치료해도 지방에 위치한 병원에서 20년된 장비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수가와 차이가 없다. 질환이 같다면 수가도 같다. DRG다.그럼에도 샤리테는 90%가 넘는 환자에 대해 다학제 협진을 적용한다. 유방암 환자가 들어오면 종양내과부터 유방외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병상 가동률도 80%를 넘은 것이 지난해 81%를 기록한 것이 유일하다. 대부분 70%대를 유지하고 있고 이를 늘릴 계획은 전혀 없다. 중증환자를 위한 병상이 비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샤리테의 방침이다.당연하게도 진료 수익은 늘 적자다. 샤리테의 2024년 진료 수익을 보면 매출이 한화로 약 3조원이 넘지만 적자가 1500억원에 달한다. 그마저도 지난해 병상가동률이 81%까지 올라서 기록한 수치다. 2023년에는 적자가 2000억원에 달했다.하지만 샤리테는 물론 이를 지탱하는 교수들의 불만은 없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대학병원이 어떻게 진료로 돈을 버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그도 그럴 것이 샤리테의 지난해 연구비 수주액을 보면 무려 한화로 5천억원에 달한다. 진료에서 벌어진 적자를 메우고도 수천억원이 남는 수준이다.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안에 연구소가 150개가 넘는다. 단순히 임상시험 등을 넘어 새로운 후보 물질 들을 개발해 기술이전한 건수만 최근 5년간 270여건에 달한다.국민건강보험 단일 체제의 우리나라와 DRG로 묶여 있는 독일. 어쩌면 유사하기도, 어쩌면 더 열악하기도 한 독일에서 이러한 차이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일단 의학자, 의료진들의 '시간'에 차이가 있다. 샤리테는 실제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만약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입원했다면 응급실에서 조치를 마치고 바로 전원된다. 진료의뢰서를 들고 와도 샤리테의 게이트키퍼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의료전달체계가 굳건하다는 의미다.센터 모델이 조직 전반에 깊히 박혀있는 '문화'의 차이도 크다. 앞서 다학제협진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진료와 교육, 연구가 한 흐름으로 가기 위해서다. 실제로 샤리테는 암 환자의 초진시 다학제협진을 통해 신약 임상을 첫 진료부터 결정한다.그 비용은 공공에서 부담한다. 실제로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 자선재단에서 샤리테에 지원하는 기금은 1000억원에 달한다. 좋은 약이 나왔으니 저명한 교수들이 써보고 답을 달라는 취지다.그렇게 진료-연구 통합 인프라가 강하다보니 글로벌 제약사 등 기업들의 수요도 크다. 말 그대로 사이클이 짧기 때문이다.다른 국가에서 3년, 5년이 걸릴 임상이 샤리테에서는 더 빨리 진행된다. 글로벌 제약사와 헬스케어 기업에서 지원하는 연구비가 한해에 한화로 800억원에 달하는 이유다.그렇기에 샤리테에서 나오는 연구는 단순히 논문을 넘어선다. 유럽을 넘어 세계 의학계의 가이드라인을 바꾸고 신약의 랜딩을 지원한다. 이는 선순환 구조를 일으켜 또 다시 거액의 펀드를 유치하는 기반이 된다.우리나라도 이러한 기치를 걸고 연구중심병원 제도를 들고 나섰다. 벌써 10년이 넘은 사업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비하다.이유는 단순하다. 2026년 예산안 중 연구 중심병원 도약 지원 사업의 예산은 총 19억원이다. 전국 단위 사업인 만큼 10여곳의 의료기관에 분배된다. 한 곳에 많아야 2억원의 예산이다.환자들은 지금도 흔히 말하는 빅5병원에 진료의뢰서 하나만 들고 몰려간다. 하지만 병원은 아무리 경증환자라 해도 막을 수 없다. 당연지정제의 함정이다.그렇다보니 교수들은 밀려드는 진료에 '시간'을 쓸 수가 없다. 임상시험 하나 할라치면 준비해야할 서류가 수백장이다. 국산 헬스케어 기술이 나왔는데 쓸 수가 없다. 샤리테에서는 위원회가 승인하면 곧바로 환자에게 적용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규제 기관을 넘는데만 1년이다.독일 찬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차이를 보자는 의미다. "대학병원 교수가 진료로 돈을 벌면 어떻게 합니까?" 이 말에 누구라도 대답을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