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비밀번호 변경안내 주기적인 비밀번호 변경으로 개인정보를 지켜주세요.
안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3개월마다 비밀번호를 변경해주세요.
※ 비밀번호는 마이페이지에서도 변경 가능합니다.
30일간 보이지 않기
  • 기획 기사

기획

42년 한자리, 서울 강북 지역의료 터줏대감 동부제일병원

[메디칼타임즈=이지현 기자]서울 중랑구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동부제일병원에 도착했다. 본관과 별관이 연결된 이 병원은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올해로 개원 42주년을 맞은 지역의료의 터줏대감이다.1982년 개원, 의료 공백지역 유일한 종합병원동부제일병원은 1982년 홍정용 현 이사장이 개원했다. 당시 구리·남양주 일대는 의료 공백지역이었다. 구리시가 군사보호지구로 지정돼 2층 이상 건물 건립이 제한됐고, 의료시설은 전무했다.개원 초기 10여 년간은 춘천에서 경희대까지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역할했다. 경춘가도가 뚫려있어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이 이송됐고, 일요일에도 수술을 하며 밤 12시까지 진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1990년대 후반부터 한양대구리병원을 비롯해 대학병원들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특히 서울의료원 개원이 가장 큰 변화였다. 공공병원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홍 이사장은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동부제일병원 1층 로비 모습300명 직원과 25명 의료진…42년간 신뢰 비결동부제일병원은 총 3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의료진은 25명 정도다. 130여 병상을 운영 중이다. 병원은 '4마차 체제'로 진료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응급의료, 내과, 정형외과·신경외과(척추관절), 그리고 건강검진센터가 그 중심축이다.소화기내과 중심의 내과 진료는 병원의 핵심 분야다. 내과 의사 6명이 근무하며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중심으로 하루 평균 60여 건의 검사를 시행 중이다. 2층에 위치한 내시경센터는 최신 장비를 갖추고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다.척추관절 진료도 특화 분야다. 신경외과 2명, 정형외과 5명이 척추와 관절 치료를 담당한다. 수술뿐만 아니라 비수술적 치료도 병행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영상의학과는 3명의 전문의가 근무하며 MRI 2대(3.0T, 1.5T), 640채널 CT 등 최신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MRI실과 CT실은 대학병원 못지않은 시설을 갖췄다. "진단 쪽에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홍 이사장은 영상진단에 자신감을 보였다.동부제일병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 3명이 24시간 교대로 근무 중이다. 응급의학과는 전문의 3명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응급의료지정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증환자는 서울의료원 등 상급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가 많지만, 지역 주민들의 응급상황에 대비한 1차 안전망 역할을 한다.동부제일병원은 중소병원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AI 기술을 도입했다. 특히 흉부 X-ray 판독에 루닛(Lunit) AI를 활용하고 있다."영상의학과 의사가 3명이지만 혹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AI가 한 번 더 체크해주니 폐암 같은 경우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큰일이니까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어요."유방촬영에서도 AI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으며, 맘모톰 시술은 총 누적 건수 8000례를 돌파해 전국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홍정용 이사장은 동부제일병원의 역할을 '주치의'에 비유했다. "요즘은 병원이 많지만 막상 아플 때 믿고 갈 곳이 없다는 환자들이 많아요. 수익을 위한 과잉진료에 대한 우려 때문이죠."동부제일병원 홍정용 이사장은 '진단'에 있어 자신감을 드러냈다. 동부제일병원은 환자가 필요로 하는 치료에 집중하되, 자체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경우 신속하게 상급병원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대학병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심장 스텐트 시술이 필요한 응급환자 등을 빠르게 전원시키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고, 못하는 건 빠르게 다른 곳으로 연결해주는 것이 지역병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동부제일병원은 건강보험 급여 중심의 진료를 하고 있다. 건강검진은 주로 국가검진과 공단검진 위주로 이뤄지며, 기업체 대상 세일즈는 거의 하지 않는다."비급여나 특별한 마케팅보다는 정직한 진료로 승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온 환자가 다시 찾아오는 재내원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예요."지난 42년간 급변하는 의료환경에도 꿋꿋하게 버틴 비결도 결국 '이 병원은 믿을 만 하다'는 환자들의 신뢰에서 시작된 재내원율이다.또한 응급의료지정병원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3명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비록 서울의료원 등 대형병원에 밀려 중증환자는 많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의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의료법인'의 경영의 어려움 속 가치 추구동부제일병원은 1997년부터 의료법인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홍 이사장은 법인 운영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장점은 세무상 유리하고 승계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산권이 없어 잘될 때는 좋지만 어려울 때 퇴출구조가 없다는 게 단점이에요."특히 의료법인이 대기업으로 분류되어 중소기업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점을 지적했다. "개인병원은 중소기업 혜택을 받는데 법인은 대기업 취급을 받아 대출이자도 높고 각종 지원에서 배제됩니다."홍 이사장은 어려운 경영 속에서도 병원의 가치를 고수하고 있다. "인건비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경영이 쉽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이 믿고 찾는 병원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정직한 진료, 신뢰받는 의료서비스 제공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42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동부제일병원. 대형병원 틈바구니에서 '최전방에서 싸우는 전사'처럼 버텨온 이 병원이 앞으로도 지역의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동부제일병원 전경.
2025-09-09 05:30:00중소병원
기획

약물·시술 모두 새 판짜기…ESC가 선보인 미래 표준치료는?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절대적일 것 같은 표준 치료 전략들도 시간이 흐르며 바뀐다. 근거의 축적과 재검증의 칼날 앞에서 치료 패턴은 늘 변화했던 것.스텐트 삽입 직후 장기 DAPT가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연구가 거듭되며 단축 요법이 자리 잡았고, 스타틴 역시 모든 환자에게 무조건적 정답처럼 여겨지다 개인별 맞춤 치료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올해 유럽심장학회 연례회의(ESC 2025) 무대에 오른 임상시험들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서 있다.심부전 환자에서 입원 중 SGLT2 억제제 시작이 뚜렷한 예후 개선을 보여 치료 개시 시점의 기준을 다시 쓰게 할 가능성이 제기됐고, 국소마취·무진정을 내세운 TAVI 최소주의 전략은 대규모 연구에서 기존 표준에 뒤지지 않는 성과를 입증하며 시술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했다.또한 CABG 환자에서 아스피린 단독과 이중 항혈소판 요법의 차이가 부정되고, 단축된 DAPT 전략이 출혈 위험을 줄이면서 기존의 긴 요법 관행을 흔들 전망이다.오랫동안 심근경색 치료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베타차단제 효용에 의문을 던진 REBOOT 연구, PAD 치료의 상징처럼 쓰였던 약물코팅 기구의 한계를 드러낸 SWEDEPAD 연구 등 미래 표준 치료의 지형도를 살펴봤다.■심부전 약으로 재탄생 SGLT2 억제제, 입원 환자도 효용심부전 환자 관련 다파글리플로진의 효과를 살핀 DAPA ACT HF-TIMI 68 연구 임상 설계도.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유망한 심부전(HF) 약제가 된 SGLT2 억제제는 당뇨병이 없는 HF 환자에서도 장기 예후를 개선한다.ESC 2025에서 발표된 DAPA ACT HF-TIMI 68 연구는 입원 환자에서 조기 도입이 단기 및 장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했다(doi.org/10.1161/CIRCULATIONAHA.125.076575).연구는 미국, 캐나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210개 센터에서 2,401명의 입원 HF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환자들은 입원 후 안정화 직후 다파글리플로진 10mg 또는 위약을 1:1로 배정받았다.주요 평가점은 입원 후 2개월 동안의 심혈관 사망 또는 HF 악화 복합 발생률로 결과를 보면 다파글리플로진군에서 10.9%, 위약군에서 12.7%로 HR 0.86으로 통계적 유의성은 없었으나, 전체 사망률은 3.0% vs. 4.5%로 차이를 보였다.증상성 저혈압과 신기능 악화는 각각 3.6% vs. 2.2%, 5.9% vs. 4.7%였고 메타분석에서 다파글리플로진, 엠파글리플로진, 소타글리플로진을 포함한 3,527명 자료를 종합하면, SGLT2 억제제는 조기 심혈관 사망 또는 HF 악화 위험(HR 0.71)과 전체 사망(HR 0.57)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연구 책임자 데이비드 버그 박사는 "단독으로는 단기 심혈관 사망과 HF 악화 위험 감소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지만, 전체 데이터를 보면 입원 중 SGLT2 억제제 시작이 조기 사망과 HF 악화 예방에 유익하며, 이는 입원 환자 표준 HF 치료 전략을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심부전으로 인한 입원 환자에 SGLT2 억제제를 투약한 결과 전체 사망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여전히 새롭다" 아스피린 항혈소판 전략 변화는이번 ESC 2025에서는 아스피린을 비롯한 항혈소판제 치료법 고도화를 위한 새로운 근거들이 제시됐다.아스피린은 심혈관학의 '원조 표준 치료제'로서 수십 년간 치료 전략의 중심에 서 왔고, 지금도 거의 모든 항혈소판·항응고 요법의 기준점으로 작용한다.이 때문에 새로운 약제나 전략이 등장할 때마다 아스피린을 포함하거나 배제하는 비교 연구가 뒤따를 수밖에 없고 효과와 위험 역시 임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급성 관상동맥증후군, 스텐트 삽입, 관상동맥우회술, 만성 안정형 협심증, 항응고제 병용 등 환자군에 따라 혈전과 출혈의 균형점이 달라지면서 '이 상황에서 아스피린을 유지할 것인가, 제외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것.먼저 TACSI 연구는 관상동맥우회술(CABG) 환자에서 아스피린 단독요법과 이중항혈소판요법(DAPT)의 효과를 비교한 첫 대규모 무작위 임상으로 주목받았다.현재 가이드라인은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환자에서 CABG 후 DAPT를 권고하지만, 이는 대부분 비-CABG 환자 연구를 근거로 한 것이어서 실제 임상 근거는 부족했다.이를 확인하기 위해 북유럽 5개국 22개 센터에서 처음으로 단독 CABG를 받은 환자 2201명을 대상으로, 수술 후 3~14일 내 무작위 배정해 12개월간 티카그렐러+아스피린 병용군과 아스피린 단독군을 비교했다.1차 종료점인 주요 심혈관사건(MACE)은 두 군에서 큰 차이가 없었고(DAPT 4.8% vs 아스피린 4.6%), 반대로 주요 출혈은 DAPT군에서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고(4.9% vs 2.0%), 순임상유해사건 역시 DAPT군이 더 많았다.주 연구원인 스웨덴 잘그렌스카 대학병원 안데르스 젭슨 교수는 "이번 결과는 CABG 환자에서 DAPT의 우월성을 뒷받침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출혈 위험을 높인다"며 아스피린을 둘러싼 항혈소판 전략의 재정립 필요성을 제시했다.TOP-CABG 연구도 표준 치료 패턴의 변화를 예고하는 연구. CABG 환자에서 DAPT의 기간을 줄이는 전략이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검증에 나섰다.지금까지 사페노스정맥 이식편은 CABG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지만, 수술 직후부터 1년 내 높은 폐쇄율이 문제로 제기됐다.12개월간 DAPT가 이식편 폐쇄 위험을 낮춘다는 근거가 있었으나, 동시에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출혈 위험을 높이는 단점이 있었다.올해 ESC 2025에선 아스피린 항혈소판 관련 연구가 대거 발표되며 표준 치료의 변화를 예고했다.이에 연구진은 '첫 3개월만 DAPT, 이후 9개월은 아스피린 단독'이라는 단축 전략이 기존 12개월 DAPT와 비교해 비열등한지 평가했다.중국 13개 병원에서 CABG를 받은 환자 22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무작위, 이중눈가림 연구에서 1차 종료점인 정맥 이식편 100% 폐쇄율은 두 군 간 차이가 없었고(단축군 10.8% vs DAPT군 11.2%), 비열등성이 입증됐다.반면 주요 안전성 종료점인 임상적 출혈은 단축군에서 유의하게 적었고(8.3% vs 13.2%) 이외 이식편 협착, 주요 심뇌혈관 사건 등 보조 평가항목에서도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CABG 환자를 대상으로 한 최대 규모 임상을 통해 단축 DAPT 전략이 출혈 위험을 줄이면서도 이식편 개존율을 유지했다는 근거를 확보한만큼 기존 표준의 대체가 전망된다.한편 TARGET-FIRST 연구는 조기 아스피린 중단, 즉 1개월간 DAPT 후 P2Y12 억제제 단독요법으로 전환하는 전략의 유효성을 평가한 첫 무작위 대규모 임상이다.급성 심근경색(MI) 환자에서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 후 12개월간 아스피린과 P2Y12 억제제를 병용하는 DAPT가 표준치료로 자리잡아왔지만 현대의 약물방출스텐트와 조기 완전 재혈관화 기술의 발전으로 허혈 위험이 낮아진 환자군에서는 오히려 출혈 부담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유럽 40개 센터에서 ST분절상승·비ST분절상승 MI 환자 1942명을 대상으로 1개월간 무사히 DAPT를 마친 후, 11개월간 P2Y12 단독 혹은 DAPT 유지군으로 무작위 배정했다.1차 복합 종료점(사망, MI, 스텐트 혈전증, 뇌졸중, 중증 출혈) 발생률은 단독군 2.1%, DAPT군 2.2%로 비열등성이 입증됐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출혈은 단독군에서 유의하게 적고(2.65% vs 5.57%), 환자지향 복합 종료점도 단독군이 우수했다.즉 저위험 MI 환자에선 조기 아스피린 중단이 허혈 보호 효과를 유지하면서 출혈 위험을 낮추는 합리적 전략이라는 것.AQUATIC 연구는 장기 경구항응고제(OAC)가 필요한 고위험 만성 관상동맥증후군(CCS) 환자에서 아스피린 병용의 효과와 위험을 평가한 최초의 평가했다.이전 스텐트 삽입력이 있고 당뇨, 신부전, 다혈관질환 등 고위험 특징을 가진 환자 872명이 대상으로, OAC 단독 대비 아스피린 병용군은 심혈관 사건(16.9% vs 12.1%), 전체 사망(13.4% vs 8.4%), 주요 출혈(10.2% vs 3.4%) 모두 유의하게 증가, 아스피린은 이득보다 해로움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영역 넓히는 ARNI 신약…ACEi 1차 치료제 지위 흔들샤가스병으로 인한 HF 환자에 대한 기존 표준 치료는 주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ACEi)인 에날라프릴을 중심으로 한 약물 요법이었다.ESC 2025에선 이와 같은 표준 치료와 안지오텐신 수용체-네프릴리신 억제제(ARNI) 계열인 사쿠비트릴/발사르탄을 비교한 첫 전향적 무작위 연구 PARACHUTE-HF가 발표됐다.좌심실박출률 ≤40%, NYHA II~IV 증상, 최근 HF 입원 경험 또는 NT-proBNP 기준을 충족한 환자 922명을 사쿠비트릴/발사르탄 또는 에날라프릴로 무작위 배정, 12주 시점에서 NT-proBNP 변화와 심혈관 사망, HF 재입원을 포함한 계층적 복합 주요 평가변수를 분석했다.그 결과 사쿠비트릴/발사르탄군은 NT-proBNP가 12주에 30.6% 감소해 에날라프릴군(5.5% 감소)에 비해 유의하게 개선됐고(조정 기하평균 변화 비 0.68), 전체 주요 평가변수에서도 52%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win ratio 1.52).연구 책임자인 로페스 교수는 "샤가스병 HF 환자에서 사쿠비트릴/발사르탄이 주요 평가변수 개선에 있어 에날라프릴보다 우수하며, 이는 처음으로 이 고위험 집단에서 약리학적 치료 근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PARACHUTE-HF 임상 결과는 사쿠비트릴/발사르탄 신약 엔트레스토의 샤가스병 HF 환자에서 표준 치료제 가능성을 시사했다.■TAVI 더 간편해진다…국소마취만으로도 안전대동맥 협착증 치료를 위한 경동맥 대동맥 판막 삽입술(TAVI)의 사용이 널리 확산되면서 유럽에서는 개흉 수술보다 TAVI 시술이 더 많아진 상태다. 진정제 없이 국소 마취를 사용하는 등 TAVI에 대한 최소주의 치료 전략이 널리 채택되고 있는 상황.DOUBLE-CHOICE 연구는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서 TAVI 시 '최소주의 접근(minimalist approach)'의 안전성과 효과를 평가한 최초의 대규모 무작위 임상이다.연구는 독일 10개 센터에서 수행됐으며, TAVI 적응증이 있는 752명을 대상으로 국소마취만 시행하는 전략과 전신·부분 진정 등 표준 마취 전략을 비교했다.최소주의 접근에서는 중앙정맥 카테터, 추가 동맥 라인, 요로 카테터 등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30일 복합 종료점(사망, 혈관·출혈 합병증, 감염, 신경학적 사건) 발생률은 22.9%로 표준 접근 25.8%와 비교해 비열등성을 입증했다.약 19% 환자가 통증 등으로 표준군으로 전환했지만, per-protocol과 as-treated 분석에서는 최소 접근의 안전성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 약 80% 환자가 국소마취만으로 안전하게 시술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약물 코팅 풍선 스텐트, 환자 결과 개선 실패이어 말초동맥질환(PAD) 치료에서 약물코팅 스텐트·풍선이 실제 환자 중심 결과를 개선하지 못한다는 연구도 발표됐다.파클리탁셀은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제로 이를 코팅해 혈관 내막 과증식을 줄이고 재협착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파클리탁셀 코팅 풍선(DCB)과 스텐트(DES)가 빠르게 보급된 바 있다.파클리탁셀 코팅 스텐트·풍선은 PAD 치료에서 흔히 쓰이던 표준적인 약물코팅 기구로 안전성·유효성 논란으로 사용 감소하던 상황에서 SWEDEPAD 1·2 연구는 쐐기를 박았다.연구는 스웨덴 22개 센터에서 진행된 임상은 치명적 하지허혈 환자 2355명(SWEDEPAD 1)과 간헐적 파행 환자 1155명(SWEDEPAD 2)을 무작위 배정해 파클리탁셀 코팅 기구와 비코팅 기구를 비교했다.그 결과 5년 추적에서 하지 절단 위험은 차이가 없었고(HR 1.05), 삶의 질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재시술은 초기 1년간 줄었으나 장기 추적에서는 효과가 사라졌다.간헐적 파행 환자군에서도 12개월 삶의 질 점수 차이는 없었고, 장기 사망률은 오히려 약물코팅군에서 더 높았다(HR 1.47). 
2025-09-03 05:30:00학술대회
기획

스타틴·BB·ACEi 치료 한계 봉착…ESC가 찾은 돌파구는?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올해 현지시간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유럽심장학회 연례회의(ESC 2025)는 '신약의 진전'으로 요약된다.심혈관질환 1·2차 예방 및 치료 영역에서 스타틴·베타차단제·ACE 억제제 중심의 치료가 수십 년간 고착화됐지만 임상 현장에선 미충족 수요가 여전했기 때문.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단순히 기존 치료제의 연장선이 아닌, 다른 기전과 접근을 택한 신약들이 대거 등장해 임상 데이터를 쏟아냈다.올레자르센처럼 기존 약물로는 줄이기 어려웠던 잔여 위험 인자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약물, 백스드로스타트처럼 새로운 기전으로 저항성 고혈압 환자의 갈증을 해소할 후보들이 임상 성적표로 미래 변화를 예고했다.베리시구아트, 아피캄텐 등도 오랫동안 고착돼 있던 치료 전략의 틀을 흔들며, 심부전·고혈압·이상지질혈증 관련 난제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희망론에 불을 지폈다.진료실의 표준 접근, 처방 등 치료 지형을 바꿀 주요 신약들의 결과물을 정리했다.■저항성 고혈압의 새로운 돌파구, 백스드로스타트고혈압은 가장 흔한 만성질환 중 하나이지만, 치료 현장은 미충족 수요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두세 가지 이상 약물을 복용해도 목표 혈압에 도달하지 못하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가 전체 고혈압 환자의 약 10~15%를 차지, 뇌졸중·심부전·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사건 위험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약물로는 충분한 조절이 어려워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알도스테론이 고혈압의 병태생리에 깊게 관여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선택적으로 합성 효소를 차단하는 치료제는 개발에 번번이 실패했다.이런 맥락에서 ESC 2025 핫라인 세션에서 공개된 The BaxHTN 3상 연구 결과(DOI: 10.1056/NEJMoa2507109)는 큰 주목을 받았다. 백스드로스타트는 선택적 알도스테론 합성효소 억제제로, 기존 미네랄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MRA) 대비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알도스테론 과다분비를 직접적으로 차단하는 최초의 기전 약물 중 하나다.백스드로스타트 12주차  위약 대비 혈압 변화 그래프. 조절되지 않는 환자에서도 강력한 혈압 강하 효과를 나타냈다.연구는 조절되지 않거나 저항성이 있는 환자 79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환자들은 무작위로 백스드로스타트 1mg, 2mg, 위약군에 배정돼 12주간 치료를 받았다.주요 결과는 명확했다. 기준치 대비 좌위 수축기 혈압은 위약 보정 후 1mg에서 -8.7mmHg, 2mg에서 -9.8mmHg가 감소했고 2mg 용량에서는 외래 24시간 혈압 모니터링에서도 유의한 추가 감소(-16.9mmHg)가 확인됐다.목표 혈압(<130mmHg)에 도달한 환자 비율은 위약군 18.7%에 비해 1mg 39.4%, 2mg 40%로 두 배 이상 높았다. 장기 추적에서도 위약 전환군은 혈압이 다시 상승한 반면, 백스드로스타트 지속군은 추가 감소를 보이며 약효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입증했다.안전성 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 고칼륨혈증은 일부 환자에서 보고됐지만 발생률은 낮았고(최대 1.5%), 부신피질 기능 부전 같은 우려되던 합병증은 보고되지 않았다. 이는 스피로노락톤이나 에플레레논 등 기존 MRA 계열이 흔히 직면했던 고칼륨혈증 및 부작용 이슈와 비교했을 때 진일보한 결과다.오랫동안 '임상적 벽'으로 여겨졌던 저항성 고혈압 치료에 새로운 타깃으로 복잡한 다약제 요법에도 불구하고 혈압 조절에 실패했던 환자군에서 하루 한 번 복용만으로 유의한 혈압 강하를 보였다는 점은 실제 진료에서 순응도 개선 가능성까지 시사한다.알도스테론 억제를 선택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약리적 효과를 확보했다는 점은 향후 기전 기반 치료제 개발에도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브라이언 윌리엄스 교수(UCL)는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치료와 조절이 어려운 혈압의 원인에 대한 이해에 있어 중요한 진전"이라며 "이번 연구는 알도스테론이 고혈압을 매개하는 중심 축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고 평가했다.단순히 혈압을 낮추는 또 하나의 약이 아니라,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았던 저항성 고혈압의 병태생리에 정면으로 도전해 임상적 성과를 낸 것. 이번 결과가 장기 안전성과 심혈관 사건 감소 효과까지 이어진다면, 고혈압 치료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할 것으로 전망된다.■매일 복용하는 혈압약 시대 끝…주사 한번으로 수 개월 효과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은 다약제를 복용하는 특성상 순응도 저하와 약물 지속성 부족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기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질레베시란 역시 주목을 끈 약물.연 2회 주사 방식의 항고혈압 신약후보물질 질레베시란이 고위험군에서 일정 효과를 나타냈다. RNA 간섭(RNAi) 기전을 이용해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RAAS)의 가장 상위 단계인 안지오텐시노겐을 억제하는 신약 질레베시란은 피하 주사로 투여 후 수개월간 지속 효과를 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기존 경구제의 복약 순응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으로 주목받는다.이번에 공개된 KARDIA-3 임상 대상자는 2~4제의 항고혈압제를 복용하는 기심혈관질환자이거나 고위험군(10년 ASCVD 위험 15% 이상, 혹은 eGFR 30~59) 환자로 77%는 고위험군, 23%는 심혈관질환을 가졌고, 평균 기저 수축기 혈압은 144mmHg에 달했다.이들을 무작위 배정해 300mg, 600mg 질레베시란 단회 피하 주사 또는 위약을 투약해 3개월간 추적 관찰한 결과 3개월째 평균 좌위 수축기 혈압 감소는 300mg군에서 위약 대비 −5.0mmHg, 600mg군에서 −3.3mmHg였지만 통계적 유의성에는 도달하지 못했다.6개월 시점에서도 평균 혈압 강하 효과는 −3.9, −3.6mmHg에 불과했지만, 24시간 활동혈압 측정에서는 야간 혈압 포함해 위약 대비 5~8mmHg의 의미 있는 감소 경향이 확인됐다.이뇨제를 복용하면서 기저 SBP 140mmHg 이상이었던 하위 환자군에선 300mg 용량에서 −9.2mmHg의 뚜렷한 감소가 나타났다.일차 평가지표에서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RNAi 기반 항고혈압제의 임상적 적용 가능성을 고위험 환자군에서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특히 복약 순응도가 낮은 환자군에서 분기별 또는 반기별 투여만으로 혈압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드디어 등장한 '쓸만한' TG 신약…80% 정상 범주로중성지방(TG)도 그간 미해결 영역에 가까웠다. 피브레이트 계열은 TG를 20~50%까지 낮추지만 ASCVD 예방 효과는 불확실했고, 오메가-3 EPA도 일부 고위험 환자에서 TG 감소와 ASCVD 사건 감소를 입증했지만 효과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반면 최근 상용화된 올레자르센은 중등도 고중성지방혈증 환자서 강력한 TG 감소 효과로 차세대 신약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기존 지질강하요법에도 잔여 심혈관 위험이 남는 환자에게서 TG 감소를 위한 효과적 치료제는 여전히 부족했지만 아포지단백 C-III mRNA를 표적하는 신약이 돌파구로 떠오른 것.올레자르센 투약 12개월 후 TG 변화 그래프. 작년 12월 FDA는 최초의 가족성 킬로미크론혈증증후군 치료제로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의 올레자르센(상품명 트린골자)을 승인한 바 있다.ESSENCE-TIMI 73b 3상 임상시험(DOI: 10.1056/NEJMoa2507227)은 ASCVD 확진 또는 제2형 당뇨병·고령으로 심혈관 고위험에 해당하는 중등도 고중성지방혈증 환자(150–499mg/dL) 1,34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환자들은 최적화된 LDL-C 강하 치료를 유지한 상태에서 4주마다 피하주사로 올레자르센 50mg, 80mg 또는 위약을 12개월간 투여받았다.결과는 인상적이었다. 6개월 시점 TG 변화율은 위약 대비 올레자르센 50mg군 −58.4%, 80mg군 −60.6%로, 모두 유의한 차이를 보였고 정상 범주인 TG 수치 150mg/dL 미만 도달률은 6개월째 위약군 12.5%에 불과했으나, 올레자르센군은 85~89%에 달했고 12개월까지도 80% 이상이 정상 TG 범위를 유지했다.주연구자 브라이언 버그마크 박사(하버드대)는 "올레자르센은 기존 치료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강력한 TG 감소를 보였고, 대부분 환자가 정상 TG 수준을 달성했다"며 "잔여 심혈관 위험 관리의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인클리시란, 고위험 환자 LDL-C 목표 조기·지속 달성혈압 분야에 이어 이상지질혈증에서도 진전이 나타났다. 여전히 많은 고위험 환자들이 스타틴이나 에제티미브 같은 기존 이상지질혈증 치료에도 불구하고 LDL-C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해 PCSK9 억제제 인클리시란이 대안으로 떠오른다.VICTORION-Difference 임상시험은 고·초고위험 환자 1,770명을 대상으로 인클리시란(300mg 피하, 3~6개월마다)과 표준 치료를 비교했다. 모든 환자는 최대 내약 용량의 스타틴을 기본으로 사용했고, 목표치 미달 시 로수바스타틴을 추가·증량했다.분석 결과 90일 시점에서 개별 LDL-C 목표(55mg/dl 또는 70mg/dl 미만)를 달성한 환자 비율은 인클리시란군이 84.9%로, 표준 치료군(31.0%) 대비 압도적으로 높았다(OR 12.09). 360일까지 평균 LDL-C 감소율도 −59.5%로, 대조군(−24.3%)보다 유의하게 컸다.안전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차이가 관찰됐다. 근육 관련 이상반응은 인클리시란군이 11.9%로, 표준 치료군 19.2%보다 적었고, 전반적 이상반응 발생률은 두 군이 유사했다.연구 책임자 울프 란트메서 교수는 "이번 대규모 임상은 인클리시란이 단순히 LDL-C를 낮추는 수준을 넘어, 조기이자 지속적인 목표 달성과 더 나은 내약성을 제공한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반복 복용 부담이 큰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전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비후성 심근병증 1차 치료제 비켜" 새 기전 아피캄텐 전진마이오신을 직접 억제하는 '카디악 마이오신 억제제' 계열 신약후보물질 아피캄텐도 신약 대전에 이름을 올렸다.그간 증상성 폐쇄성 비후성 심근병증(HCM)의 1차 치료제는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였지만 근본적인 과수축 문제를 조절하지 못하고 근거가 제한적이었다.HCM 환자는 심근 세포가 과도하게 수축하면서 좌심실 유출로 압력이 증가하고 증상이 나타나는데, 아피캄텐은 심근 마이오신의 ATPase 활성을 직접 억제해 과수축을 감소시키고 심실 압력과 벽 스트레스를 낮춘다.즉 심박수나 혈압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근본적 병리인 과수축 자체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베타차단제나 칼슘채널차단제보다 HCM의 기전적 문제를 직접 겨냥한다.MAPLE-HCM 3상 연구는 이번 연구는 71개국 71개 센터에서 증상성 폐쇄성 HCM 성인 175명을 대상으로 아피캄텐(5~20mg)과 메토프로롤(50~200mg)을 24주간 비교한 무작위, 이중맹검, 더블더미 설계로 진행됐다.주요 평가지표인 최대 산소섭취량은 아피캄텐군에서 평균 1.1 mL/kg/min 증가한 반면 메토프로롤군은 1.2 mL/kg/min 감소해 두 군 간 차이는 2.3 mL/kg/min로 통계적 유의성을 보였다.또한 NYHA 기능급과 KCCQ-CSS 점수에서도 아피캄텐이 메토프로롤보다 우월했으며, 좌심실 유출로 압력, 좌심방 용적 지수, NT-proBNP 등 심혈관역학적 지표도 개선됐다.안전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이상반응 발생률은 두 군이 유사해 아피캄텐이 기존 베타차단제를 대체하거나 1차 요법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제시하며, 향후 HCM 환자의 치료 패러다임 변화와 신약 기반 맞춤형 치료 전략 도입에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전망이다.한편 최근 상용화된 심부전(HFrEF) 신약 베리시구앗도 VICTOR 임상 연구를 통해 좌심실 박출률이 저하된 안정적 환자에서 심혈관 사망 및 전체 사망률을 유의하게 낮췄다.대부분 NYHA II기 증상을 가진 6,10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국가 무작위 위약대조 연구에서 중간 추적 18.5개월 동안 베리시구앗은 HF 입원률은 크게 줄지 않았으나 심혈관 사망 HR 0.83, 전체 사망 HR 0.84를 기록하며 안정적 치료 환경에서도 사망 위험 감소 가능성을 입증했다.
2025-09-02 05:30:00학술대회
기획

"임팩트 팩터 정상화 파고…국내 저널의 생존 전략은"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그림자는 아직도 학술 출판계를 흔들고 있다. 전 세계 의학 저널들은 팬데믹 동안 쏟아진 연구 성과와 폭발적 인용 덕분에 불과 1년만에 두 배에 달할 정도의 '임팩트 팩터(IF) 호황기'를 맞았다.그러나 이제는 그 반작용으로 거품이 빠지며 일제히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국내 의학 저널들은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는 것.지난해 2월부터 이어진 의정갈등과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로 인해 임상시험과 주요 수술의 감소 현상에 이어 교수의 당직 증가에 따른 연구 및 논문 투고 감소 등의 연쇄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의학 연구 생산이 위축되면서 투고와 인용 모두 급감했고, 저널들은 생존을 위한 고심에 빠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 지금 국내 저널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IF 지수 흔들…운용의 묘 살리는 저널들임팩트 팩터는 한 저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 특정 연도에 발표된 논문이 직전 2년간 해당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얼마나 인용됐는지를 계산한다.즉 분자는 인용 수, 분모는 게재 논문 수로 연구 및 투고 논문 수의 감소는 IF 지수 산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국내 저널의 경우 전공의 사직과 수련 중단 여파로 임상시험이 지연·중단되고, 투고 논문 수가 줄면서 일부 저널의 경우 게재 논문 수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워졌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잇다.리뷰와 같은 방식으로 분모(게재 논문 수)를 억지로 유지하더라고 리뷰의 경우 그 특성상 인용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자(인용 수)가 줄어드는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런 상황에서 일부 저널은 가장 직접적인 해법으로 출판 모수를 줄이고 있다.암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코로나 관련 연구가 급증해서 연구자간 서로 인용하는 사례가 많아 전체 저널의 IF가 급증했다"며 "최근 다양한 저널들의 IF 감소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그렇지만 학회가 기대하던 IF 지수보다 더 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다"며 "특히 의정갈등 상황에서 연구 감소, 논문 투고 감소 등의 불리한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어 세계적으로 저명한 연구자들의 리뷰 논문을 유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암학회 저널 Cancer Research and Treatment(CRT)의 IF 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5.036을 기점으로 2022년 4.6, 2023년 4.1, 2024년 3.8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암학회 관계자는 "투고 수가 늘면 출간 적시성과 관련해 IF 지수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기도 한다"며 "특정 시기에는 굉장히 좋은 주제였지만 출간 순서를 지켜 발간하다 보면 이슈가 지나 인용이 덜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그는 "온라인 공개를 먼저해서 노출도를 높이고자 했던 노력도 있었지만 최근 IF 지수에선 온라인 공개 논문이 집계에서 빠진 것으로 안다"며 "출간 전에는 오히려 인용이 많이 되다가 출간 후에는 인용이 빠지는 부분도 있어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부분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이어 "10년 전쯤에도 논문이 많이 밀려서 한번에 출간을 한 적이 있었는데 논문 증가는 IF 지수 산출 공식의 분모의 증가로 이어져 결국 IF가 하락했다"며 "그런 딜레마가 있어 편집위원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IF 유지 내지 상승을 위한 방법론을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CRT 저널은 IF 상승을 위한 방법론으로 출간 논문 수를 25편까지 줄인 데 이어 논문 채택률까지 하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JKMS 유진홍 편집장은 "IF는 해당 연도에 특정 2개년도에 출판된 논문들이 받은 인용 수를, 그 2년간의 논문 수로 나눠 산출된다"며 "JKMS의 경우 2024년 IF 계산에 사용된 인용 수는 1,553건으로 전년도(1,861건)보다 약 16.5% 감소했고, 논문 수는 627편에서 662편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그는 "분모는 늘고 분자는 줄면서 논문당 인용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과를 초래했다"며 "2023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의정 갈등과 의료 인력 구조 재편 논의 등은 임상의들의 연구 활동과 투고 여건에 일정 수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그는 "실제로 일부 분야에서는 투고량이 다소 감소하거나 연구 활동이 위축됐다는 피드백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은 직접적인 IF 수치에 당장 반영되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인 투고 질과 피인용 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게재 논문 수를 과감히 줄이면 분모가 감소해 IF 방어에 유리하다. 실제로 최근 2~3년 사이 국내 저널 중 일부는 연간 발간 편수를 줄이거나, 호당 게재 논문 수를 줄여 IF 하락 폭을 완화하는 전략을 택한 바 있다.다만 이런 접근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게재 문턱을 높이면 국내 연구자들의 투고 창구가 좁아지고, 장기적으로 학문 생태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한 편의 논문 게재가 절실한 국내 연구자 입장에선 오히려 '자국 저널 외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정공법으로 승부…"질적 제고로 양질의 논문 늘려야"국내 연구 생산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해법은 해외 투고자의 비중을 늘려 국제 학술지로서 입지를 굳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주요 의학 저널들은 해외 연구자 투고 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다. 편집위원회 구성을 다국적으로 재편하거나, 아시아·유럽·미국 학회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고를 유도하는 식이다.이는 단순히 논문 수 확보 차원을 넘어, 해외 연구자가 투고하면 자연스럽게 해외 인용 가능성도 확대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한국 의학 저널들이 아시아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국제화 전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궁극적으로 저널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에디터의 수준'이다. 해외 유수 저널의 성공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뛰어난 편집장이 중심을 잡고 연구자 네트워크를 이끌어왔다. 우수한 에디터는 단순히 원고를 걸러내는 수준을 넘어, 저널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국제 학계와의 가교 역할을 한다.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간 글로벌 학문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놓는 에디터들이 늘고 있다. 해외 학술단체에서 활동하거나, 국제 심포지엄을 기획해 해외 연구자와의 접점을 만드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노력은 결국 해외 저자 투고와 인용으로 이어져 저널 위상 제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대한간학회의 저널 CMH는 2020년 과학인용색인(SCIE)에 등재된지 불과 5년 만에 IF 16.9로 지속 상승, 전 세계 소화기·간장학 분야 143개의 SCIE 학술지 중 6위를 달성했다.의정갈등 여파로 국내 연구진의 투고가 줄었다고해도 이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저널들도 존재한다.대한간학회의 저널(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 CMH)의 경우 2020년 과학인용색인(SCIE)에 등재된지 불과 5년 만에 JCR IF가 3.987에서 2024년 16.9으로 가파르게 상승해 전 세계 소화기·간장학 분야 143개의 SCIE 학술지 중 6위를 달성했다.CMH의 2024년 피인용지수는 국내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중 가장 높았으며 미국간학회 공식학회지인 'Hepatology'의 12.9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CMH는 전 세계 소화기학 분야 4% 이내 최상위 수준의 학술지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CMH는 지난 10여 년간 '양질의 논문 유치 → 인용지수 상승 → 국제 인지도 확대 → 우수 투고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며 학술지의 체질을 전면적으로 강화해왔다.CMH 김원 편집장은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저널의 영향력이 단기간에 급성장했다"며 "주요 원인은 투고된 논문에서 좋은 연구를 추려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좋은 논문이 계속 나오면 이는 다시 좋은 연구자들을 불러오게 하는 선순환 구조로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그는 "국내 편집위원을 제외하더라도 저널 컨설팅 편집위원으로는 미국, 일본, 대만, 캐나타, 태국 등에서 8명이, 국제 편집위원회 위원으로 23명이 포진해있다"며 "이들을 통해 미완의 연구가 투고됐을 때 보완점을 빠르게 확인해 조언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밝혔다.KJA 이상석 편집장CMH는 국제 저널로 홀로서기에 성공해 국내 연구진의 게재 논문 수는 1/4~1/5 수준에 그친다. 의정갈등에 따른 연구 감소 영향권에서 CMH는 일정 부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국내 유일의 2개 이상 Q1 공식 학술지를 보유한 학회다. 학회 공식 학술지인 KJA는 최근 마취통증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68개 중에서 세계 순위 5위를 기록한 바 있다.KJA 이상석 편집장은 "회원들에게 논문 인용을 유도할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다"며 "국제적으로 다양한 저널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신속 리뷰 시스템을 도입해 연구자들의 논문이 완성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자 했다"며 "리뷰 팀에 통계 전문가 등 전문 에디터들이 있어 연구 분석을 철저히 할 수 있게 한 부분도 저널의 신뢰도 상승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암학회 저널 CRT도 질적 상승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암학회 관계자는 "저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질적 수준을 담보하는 것"이라며 "공정한 리뷰를 위해 리뷰어의 인적 구성을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 글로벌에서 중요한 석학을 모시고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피어리뷰(동료심사)가 저널의 신뢰도를 높이고 결국 인용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저널을 알리는 데 플랫폼 논문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해외 주요 연구자들을 모시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5-08-28 05:30:00연구・저널
기획

의정갈등 장기화에 저널도 몸살…'임상→리뷰' 행태도 변화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국내 의학 저널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전환과 의정 갈등에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기 동안 전례 없는 투고와 인용 증가로 인용 횟수 기반 학술지를 평가하는 척도(임팩트 팩터, IF)가 급등하며 '황금기'를 누렸지만, 엔데믹 전환과 함께 특수가 사라진 것.특히 지난해 2월부터 의정 갈등에서 촉발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연구 활동과 임상 데이터 확보, 분석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저널들의 투고 건수와 질적 수준이 동시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문제는 논문 수 감소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임상 감소 → 연구 및 투고 감소 → 게재 편수 감소 → 인용 수 감소 → IF 하락이 맞물려 돌아가는만큼 IF 하락이 저널의 신뢰도 저하와 해외 연구자들의 투고 기피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전공의와 같은 연구 인력의 감소가 연구와 임상 감소로 이어지고 이같은 현상이 장기화되면 학술 생태계는 물론 저널의 국제 경쟁력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인용 지수 롤러코스터…"2021년 급증 이후 정상화 과정"팬데믹 시기 국내 주요 의학저널은 국제 학술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냈다. 코로나19 관련 임상·역학 연구, 백신·치료제 데이터가 쏟아지며 한국 연구진 논문이 글로벌 레퍼런스로 인용되는 일이 잦아졌고, 이를 기반으로 상당수 저널들이 IF의 급상승을 기록했다.대한의학회가 발간하는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JKMS)는 2021~2022년 사이 급격히 영향력을 확대하며 높아진 국내 저널의 위상을 상징했다.JKMS의 연도별 IF 지수 변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증했던 인용지수는 2022년을 기점으로 완만한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0년 SCI IF는 2.153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5.354으로 두 배 이상 상승했고 이를 기점으로 2022년 4.5, 2023년 3.0, 2024년 2.3으로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코로나 관련 연구가 급감하고 기존 만성질환·임상연구로 관심이 회귀하면서 반짝 특수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은 것. 이같은 현상은 비단 JKMS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심장학회, 대한소화기학회 등 다수의 저널들이 2023년부터 IF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고, 2024년에는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거나 더 낮아지는 경우도 나타났다.이와 관련 유진홍 JKMS 편집장은 "2024년 JKMS의 IF는 2.3으로 전년도에 비해 하락했지만 총 인용 수는 9,343건으로 전년(9,332건)과 유사하다"며 "저널의 학문적 기반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IF 산출에 사용된 인용 수는 1,553건으로 전년 1,861건 대비 감소했고, 논문 수는 627편에서 662편으로 증가해, 분모-분자 간 불균형이 하락의 주요인이었다"며 "2024년 IF 지표는 세계 주요 의학 저널들도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2023년과 2024년을 비교하면 NEJM 역시 96.3에서 78.5로, Lancet은 98.4에서 88.5로, JAMA는 63.5에서 55.0으로, BMJ는 93.7에서 42.7로 감소했다.유 편집장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 의학 학술지는 코로나19 관련 논문들의 집중 출판과 폭발적인 인용에 힘입어 비정상적인 수준의 IF 상승을 경험했다"며 "당시에는 짧은 기간 내에 다수의 논문이 국제적으로 즉각 인용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저널에서 일시적 거품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이어 "인용 피크가 점차 수명을 다하면서, 2023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저널에서 자연스러운 조정 기적 하향세가 나타났고 JKMS 역시 그 흐름에 놓여 있다"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고인용 논문 집중 효과가 해소되면서 나타난 정상화 과정으로 다수의 저널이 유사한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의정 갈등 이후 1년 반…임상 줄고 리뷰 논문 늘고문제는 단순한 인용지수 하락에 그치지 않는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연구·임상 가뭄이 본격화하면서 게재 논문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지난해부터 이어진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는 임상 현장의 공백으로 직결됐고, 대형 병원들의 수술 건수 감소나 연구 프로토콜 진행에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가 빠진 상태에서 환자 데이터 축적이 늦어지고 임상시험 모집에 공백이 생기는 등 연구 결과물 생산 감소는 불보듯 뻔한 결과라는 것.JKMS에 지난해 투고된 논문은 약 900편으로 전년 동기 1220편에 비해서 26%가 줄었고 게재된 논문도 408편에서 305편으로 25% 줄은 것으로 알려졌다.대한소아청소년 학회지의 경우도 국내 저자들의 논문이 감소해 국내 저자가 투고한 논문이 2023년 73건에서 24년 47건으로 35.6% 감소했고, 국내 저자 논문이 차지하는 비율도 역시 28.9%에서 16.2%로 줄었다.전 세계 의학, 간호, 약학, 치의학, 공중보건, 생명과학 등 분야의 학술지 논문 정보를 수록하는 Pubmed 게재 논문 수에서도 한국인 주도의 연구 감소가 확인된다.의정 갈등이 본격화된 2024년 3월을 기점으로 현재 시점까지 6개월 단위로 한국 연구자의 게재 논문을 검색한 결과 연구의 행태 변화 및 양적 변화가 관찰됐다.2024년 3월 1일부터 2024년 8월 31일까지 전체 의학 관련 논문 출판 건수는 1만 4,724건으로 이 중 신약, 의료기기, 치료법, 생활습관 개입 등 의학적 중재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 임상시험과 무작위 위약대조 임삼시험(RCT)은 377건(2.6%), 메타분석/리뷰/체계적리뷰는 1517건(10.3%)을 차지했다.2024년 9월 1일부터 2025년 2월 28일까지 전체 연구는 1만 6,803건으로 늘었지만 임상시험/RCT이 차지하는 비중은 2.4%(405건)으로 줄은 반면 메타분석/리뷰/체계적리뷰는 11.1%(1863건)으로 상승했다.2025년 3월 1일부터 2025년 8월 26일까지 전체 연구는 1만 3,650건, 이 중 임상시험/RCT 비중은 2.3%(314건)로 더 줄은 반면 메타분석/리뷰/체계적리뷰는 11.2%(1522건)으로 소폭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전공의의 빈자리…연구 행태·양적 변화 가시화전공의의 사직으로 교수들의 당직 시간이 증가하면서 임상시험 관련 연구는 줄어든 반면 기존 연구를 분석하거나 리뷰하는 방식으로 연구 재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와 관련 이상석 인제대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KJA 편집장)는 "증례를 빼고 임상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며 "본인이 직접 진료했던 환자 혹은 병원 전체 환자 의무 기록을 종합해서 후향적으로 관찰 연구하는 방향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향적으로 시험약을 투약해 기존 약이나 위약과 비교하는 RCT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그는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RCT 연구는 소멸하다시피 된 상황"이라며 "주요 원인은 RCT를 교수 혼자서 진행할 수 없는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전향적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연구자들이 환자들에게 임상시험의 배경, 안전성, 위험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임상 과정에서 각 환자별 자료의 수집, 취합, 등록 등의 행정 절차가 수반되는데 의정 갈등 전에는 전공의들이 이 절차를 상당 부분 담당했다.이상석 교수는 "현재 전공의들이 없어 행정적 절차를 원활히 진행할 수 없게 됐다"며 "기존에 진행하던 임상도 올스톱됐고, 새로 시작되는 임상도 아예 시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이같은 변화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 등록 현황에서도 감지된다.의정 갈등 발생 이전인 2023년 3월 1일부터 2024년 2년 29일까지의 전체 임상 시험은 1028건, 연구자 임상시험은 121건이었지만 갈등의 촉발 이후인 2024년 3월 1일부터 2025년 2월 28일까지 전체 임상 시험 895건, 연구자 임상시험 61건으로 각각 12.9%, 49.6%의 감소가 나타났다.한국연구재단이 운영하는 KCI(Korea Citation Index, 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 등재된 국내 발간 학술지의 논문·인용 정보도 영향권에 놓였다.2025년 3월부터 8월까지 의학 분야 게재 논문 건수는 352건으로 전년 동기 440건 대비 20%가 감소했다.
2025-08-27 05:30:00연구・저널
기획

로스쿨 교수가 본 의료사고 판례분석...형사처벌 남용 '심각'

[메디칼타임즈=임수민 기자]"최근 의료사고와 관련된 민형사 재판 모두 의료인의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의학적 행위기 때문에 법적 판단에서도 이러한 특수성과 불확실성을 충분히 반영해 판결해야 한다."대한의료법학회 정규원 회장은 최근 메디칼타임즈를 만나 최신 의료사고에 대한 법원 판단 경향을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법학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한 정규원 교수는 올해 2월 대한의료법학회 제1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의료법학회는 의료와 법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학문적으로 검토 및 연구하는 학술단체다.그는 "의료법 분야의 학문적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후학들이 연구 역량을 발휘하고 학문적 성취를 축적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단발적 행사에 그치지 않고,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학문 활동에 참여하는 연구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안정적 진료환경 및 환자 권익보장, 균형 찾아야"지난 2월 대한의료법학회장으로 취임한 한양대 로스쿨 정규원 교수는 "사법부가 의료행위의 불확실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최근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및 민사상 책임의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정규원 회장은 이러한 추세가 단순히 의료인만을 옥죄는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도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정규원 회장은 "의료사고와 관련해 형사책임을 묻는 시도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민사책임 또한 과도하게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이어 "법적 판단 과정에서 의료행위가 본질적으로 지니는 불확실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중심적 평가가 이뤄지면서 의학적 위험의 불가피성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그는 "소송이 장기화되고 배상책임이 과중하게 부과되면 의료인이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누적되고 이는 곧 방어적 진료를 유발한다"며 "결국 환자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신중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단순 책임의 경중을 다투는 차원을 넘어, 형사와 민사 전반에서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과제를 제기한다"며 "이는 환자의 권리 보장과 의료인의 안정적 진료라는 두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조율하기 위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형사책임의 과도한 확대는 '법치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꼬집었다.형사제재는 최소한의 수단으로만 행사돼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형사적 제재가 동반돼야 법적 규율로 인정된다는 왜곡된 인식이 퍼져 있다는 주장.정 회장은 "형사처벌은 엄격히 제한하고, 피해자 보호는 다른 제도적 장치로 보완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무과실 보상제 확대, 공적 기금 운영, 의료배상책임보험의 합리적 정비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어 "무엇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과 환자의 권익 보장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법 리스크 및 저수가…필수의료 붕괴 악순환"의료진 사법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전공 지원자가 급감하는 현상은 이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정규원 회장은 필수의료 의료진 유입을 위해 의료진 법적 부담 완화를 비롯한 수가 정상화 및 국민 인식 개선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정규원 회장은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 및 민사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그는 "단순한 법적 책임의 과중함만으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며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구조가 문제의 본질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이어 "진료수가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의료인은 그 기준에 맞춰 진료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며 "이러한 구조가 의료 현장의 긴장을 높이고, 소신 진료를 방해하며, 결국 의료사고와 분쟁을 촉발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전문가 집단에 대한 존중이 약화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또한 원인으로 꼽았다.정규원 회장은 "의료인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 전반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사라지고 하향평준화를 평등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문성이 무시당한 의료인들은 경제적 보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이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전문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회복하고, 필수의료 영역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과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그것이야말로 의료 현장의 안정과 국민 건강권 보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의료 신뢰 회복, 제도적 정비-사회적 인식 전환 해답"의료분쟁을 보다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운영과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정규원 회장은 "중재원은 의료사고로 인한 갈등을 보다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며 "법원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하면서도 전문적 감정 및 조정으로 당사자 간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환자는 보다 신속한 구제를 받을 수 있고, 의료인은 장기간의 소송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향후 운영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고,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끝으로 그는 의료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정 회장은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환자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특성과 상활적 맥락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의학적 행위"라며 "법적 판단에서도 이러한 특수성과 불확실성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이어 "의사에게 100% 결과를 요구하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의료인은 스스로 학문적·기술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사회는 의료의 본질과 한계를 인정하는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또한 일부 상업적 행태로 인해 의료계 전체의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의료계 내부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그는 "이른바 쇼닥터로 불리며 상업적 목적을 앞세우거나 언론과 매체를 통해 의료행위를 과도하게 과장하는 일부 의료인은 의료행위 본질을 왜곡하고 사회 전체의 신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이어 "의료행위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때, 그리고 사회가 의료의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의료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5-08-26 11:43:44제도・법률
기획

트럼프발 'MFN' 정책 시동…국내 약가 제도 개편 방아쇠 되나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행정부가 추진 중인  '최혜국 약가(Most-Favored-Nation Pricing, MFN)' 정책을 계기로 국내 약가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미국 보건당국이 약가인하 과정에서 한국을 참조국 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만큼 이를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번 MFN 정책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혁신신약의 약가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힘 받는 약가 제도 구조 개편 미국 MFN 정책에 따라 최근 국내 지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들의 국내 신약 출시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이 약가인하 추진 과정에서 한국을 참조국에 포함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대비해 다국적 제약사들이 실제 국내 신약 출시 혹은 급여등재 추진을 유보하는 지 여부에 주목하는 것.아직까지 표면적으로 국내 출시 혹은 급여 등재를 유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제약사는 없지만 제약업계에서는 내부적으로 미국 MFN 정책 추진을 일단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한 다국적 제약업계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MFN 정책 때문에 신약 출시 혹은 급여 등재를 유보했다고 밝히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일단 추진에 제동을 걸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한국을 참조국으로 볼 것인지 여부가 확정이 나야 향후 방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상대적으로 낮은 약제비 지출과 비용평가성 평가 기준으로 미국의 MFN 정책에 따른 참조국으로 한국이 포함될 수 있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그는 "만약 MFN 정책에 따라 참조국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 경우 신약 출시는 유보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다국적 제약업계에서 줄곧 주장해왔던 신약을 둘러싼 약가제도 개편 주장이 힘이 실리고 있다. 신약의 대한 약가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책정할 수 있는 구조를 이참에 뜯어 고쳐야한다는 논리다. 구조 개편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주요 정책 등을 꼽는다면 ▲임상가치, 질환 위중도(희귀·중증질환) 및 GDP 수준을 반영한 ICER 임계값 개선 및 최신화 ▲이중약가제 도입(급여·비급여 분리 또는 환자군 별 차등 약가허용) ▲적응증별 약가 제도 도입(적응증별 임상효과 차이에 따른 약가차등 적용) ▲혁신신약 신속 등재 제도 도입(선등재 후 평가+허가평가협상 병행사업 적극 시행 동반) 등이다. 이 중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이중약가제 도입이다.이중약가제도는 의약품의 공개 표시가격과 실제로 건강보험과 협상된 실거래가를 동시에 적용하는 제도다.미국이 MFN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국내 환자에게는 실질 약가로 공급, 표시가를 유지해 해외 참조를 피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여기에 고가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를 대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적용 중인 위험분담제(RSA) 대상을 만성질환 치료제까지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미온적이었던 정부, 이번에는 다를까미국의 MFN 정책 추진이 불러올 신약 출시 지연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대응방안 마련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는 약가구조 개편을 실제로 실행에 옮길지 주목하는 것이다.참고로 최근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 등을 거치며 미국 MFN 정책 추진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중약가제와 위험분담제 대상 확대를 두고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최근 10년간(2012~2021년) 미국, 유럽, 일본에 허가된 신약 460개 중 G20, OECD 국 가에 허가된 신약 (급여율) 분석 자료이다.추가적으로 복지부와 심평원 등은 다국적 제약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한국 참조국 포함 시에 따른 있을지 모를 미국 MFN 정책 후폭풍에 대응방안을 자체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제약업계에서는 정책 추진에 있어 온도차가 이전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미국 MFN 정책 추진이 현실이 된 시점에서 정부의 대응방안 마련 의지가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는 뜻이다.하지만 이중약가제와 위험분담제 대상 확대 등을 단 시간 내 현실화 할 수 있는 정책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시선이 여전하다.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복지부와 심평원이 결과적으로 미국 MFN 정책 추진을 계기로 국내 약가 제도를 개편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은 맞다"며 "현재 위험분담제가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에 국한돼 있는데 이를 확대하는 과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중약가제와 관련해서는 결과가 어떻든 간에 미국 MFN 정책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그는 "문제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정부 행정부담과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은 우려사항이다. 위험분담제 환급 대상이 많아질 경우 환자별 환급 대상도 늘어나기 때문"이라며 "적응증별 약가제도도 마찬가지다. 한 치료제를 적응증 별로 약가를 책정한다면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행정부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2025-08-26 05:30:00외자사
기획

의료사고 고액 배상 판결 급증…필수의료 기피 현상 가속화

[메디칼타임즈=임수민 기자]최근 의료사고 관련 민사 판결에서 의사에게 수억 원대의 고액 배상을 명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의료 현장에서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위험 부담이 큰 필수의료 분야의 전공의들이 점차 발길을 돌리면서, 응급·외상·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인프라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메디칼타임즈가 올해 의료사고 민사 및 형사소송의 주요 판결과 의료계의 흐름을 심층적으로 짚어봤다.■ 의료사고 소송, 고액 배상 판결 늘지만 기준은 '제각각'전국 법원에서 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일부 사건에서는 수억 원대의 고액 배상 책임을 의사에게 인정한 반면, 의료진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소송을 기각한 사례도 있었다.우선, 필수의료 관련 의료사고에서 고액 판결이 잇따랐다.의료사고 관련 민사 판결에서 의사에게 수억 원대의 고액 배상을 명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가장 큰 배상액이 인정된 사례는 대전지방법원 심장내과 사건이다. 갑상선기능항진증 환자가 혈전 발생으로 우측 다리를 절단한 사건에서 법원은 1억8200만원의 의료진 배상책임을 인정했다.또한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대동맥궁 전치환술 후 하지마비 및 후유증이 발생한 사건에서 의사에게 1억1400만원의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이외에도 혈액 투석치료 중 피부괴사 사건과 관련해 2200여만원, 유방암 수술 후 근력저하 및 감각저하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4000여만원의 의사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성형외과에서 의사 과실이 인정된 사례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쌍꺼풀 수술 후 토안 및 결막염이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의사에게 46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밝혔다.반면, 의료진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고 소송을 기각한 사건도 있었다.수원지방법원은 소아청소년과에서 심혈관 조영술 시행 후 폐출혈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유가족이 청구한 5억6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같은 법원은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처방 후 소아 심정지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6억2800만원의 소송을 기각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또한 소화기내과에서 슬관절 인공관절치환술 후 뇌손상으로 환자가 사망하자, 유가족이 1억3000여만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지만 의사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이외에도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피부 이식술 후 괴사 등이 발생한 사건(9300만원 청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했다.의료계에 정통한 변호사 A씨는 "최근 판결을 살펴보면 환자 측의 권리 보호에 무게가 실리면서 의사에게 고액 배상을 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반면 같은 유형의 사건임에도 결과가 달라지는 등 의료 판결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의료사고 당시 상황이나 환자 상태, 치료 경과 등 개별 사례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의료계와 법조계가 함께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마련해 불필요한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5년간 의료사고 재판 172건 분석…유죄 71%의료사고와 관련된 형사소송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사고 형사 재판 중 의사가 유죄판결을 받은 비율이 7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벌금형 선고가 가장 많았지만, 최장 3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적지 않아 의료계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연구진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의 의사 및 치과의사, 한의사가 피고인 경우에 발생한 의료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 총 172건을 분석했다.최근 5년간 의료사고 형사 재판 중 의사가 유죄판결을 받은 비율이 7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우선 연도별로 판결문의 개수를 살펴보면 ▲2019년 35건 ▲2020년 45건 ▲2021년 45건 ▲2022년 29건 ▲2023년 18건 등으로 집계됐다.이 중 유죄 판결 비율은 2019년 25건에서 2020년 31건, 2021년 29건 등으로 증가했으며, 이후 2022년 22건, 2023년 16건 등으로 다시 감소했다.1심 재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의료사고 사건의 유죄 비율은 71.5%에 달했다. 전체 192건 중 123건이 유죄, 48건만이 무죄로 판단돼 30%에도 미치지 못했다.총 192명의 1심 재판 결과를 분석한 결과, 벌금형은 67명(34.9%)이었고 금고형 집행유예형은 44명(22.9%)이었다. 벌금형의 평균 금액은 627만원이었으며, 가장 빈번한 벌금형은 '500만원'으로 17건(25.4%)이었다.형이 확정되면 교정시설에 직접 수감되는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금고형과 징역형은각 8명(4.2%)이었다. 금고형 및 징역형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6개월까지 존재했고, 가장 많은 빈도는 '12개월'로 6건(37.5%)이었다.뒤이어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 집행유예는 각각 4명(2.1%)과 1명(0.5%)이었으며, 공소기각은 1명(0.5%), 선고유예는 4명(2.1%), 무죄는 55명(28.6%)이었다.1심 재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의료사고 사건의 유죄 비율은 71.5%에 달했다. 연구진은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지 않고 처방 및 치료를 실시하거나, 의료행위로 인해 심각한 신체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 등이 유죄 판단의 주요 요소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이어 "피해자 및 유족의 반응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며 "법원은 피해자나 유족이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거나 적절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의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경우 등을 불리한 사정으로 작용해 판결했다"고 강조했다.유리한 요소로 작용하는 사례로는 ▲ 피고인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경우 ▲피해자 및 유족과 합의한 경우 ▲의료과실이 사건의 주요 원인이 아니거나 의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등이 있었다.■ 요원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료계 냉담한 시선의료계와 정부는 의료사고 법적 리스크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모으고 있다.특히, 의료사고 법적부담 완화는 이번에 복귀하는 사직 전공의들이 복귀를 위해 내세운 요구안에도 포함되며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정부 또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등을 추진해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의 사법 리스크를 개선하는 방향 등을 추진했다.의료진이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환자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경상해 및 필수의료는 중상해까지 공소 제기 자체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자가 사망한 경우 또한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4년 2월 의대증원 정책과 함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며, 의료진 사법 리스크 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착수했다.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4년 2월 의대증원 정책과 함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며 의료진 사법 리스크 완화를 추진했다.하지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환자단체의 강력한 반대와 '의료계 특혜'라는 부정적 여론에 가로막혀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여기에 법적 형평성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결국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본격적인 입법까지는 여전히 난항이 예상된다.복지부는 환자 단체와 지속적 합의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국회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하지만 의료계는 의료법 체계 재정비가 요원하다는 냉담한 시선이다.사직전공의 B씨는 "정부가 의대증원 추진하면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료사고특례법를 들고 왔는데 현재 진행상황이 굉장히 모호하다"며 "전혀 추진되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이렇게 진행되다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고 끝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대한의사협회 관계자 또한 "필수의료는 이미 붕괴 중인 상황으로 명확한 개선이 없는 동안 현장을 떠나는 인력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며 "모든 합의 끝에 법적 부담을 완화한다면 남아 있는 인력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5-08-25 05:30:00제도・법률
기획

트럼프발 약가 개편 후폭풍…신약 코리아 패싱 현실화되나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행정부가 제약 산업을 핵심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새판짜기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시장인 미국의 약가를 대폭 인하 하겠다는 목적인데, 최근 미국 보건당국이 발표한 '최혜국 약가(Most-Favored-Nation Pricing, MFN)' 정책이 국내 제약업계를 넘어 임상현장까지 긴장시키고 있다.자칫 미국의 MFN 정책을 계기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 신약 출시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상현장 입장에서도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향후 미국의 정책방향을 주시하고 있다.미국 약가 정책에 움직이는 글로벌 제약사들지난 5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MFN 정책 추진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여기서 MFN 정책은 미국 내 처방의약품 약가를 주요 선진국 중 최저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대상 약제로는 미국의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파트B 중 연간지출 상위 고가 치료제(항암제, 면역치료제 등)다.OECD 국가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GDP)이 미국의 60% 이상인 국가 중 가장 낮은 약가를 참조해 미국 가격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미국 내 약가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다른 국가들이 미국과 비교해 너무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31일 미국 내 약값을 해외 수준으로 낮추라며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60일 시한'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애브비,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베링거인겔하임, BMS, 일라이릴리, 독일 머크(EMD 세로노), 제넨텍, 길리어드, GSK, 존슨앤존슨, 머크(MSD), 노바티스, 노보노디스크, 화이자, 리제네론, 사노피 등 17개사 대표들에게 전달됐다.이 같은 압박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즉각 반응했다. 일라이릴리는 비만치료제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의 영국 내 가격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마운자로의 영국 내 가격을 최대 170% 인상한다. 마운자로 민간 가격은 기존 월 92~122파운드(약 17만 3000~22만 9000원)에서 133~330파운드(약 24만 9000~62만원)로 오른다. 동시에 미국 내 인슐린 가격을 70% 인하하고 환자 본인부담금을 월 35달러로 상한을 설정했다.  노보노디스크 역시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세마글루타이드)의 미국 내 약가를 인하하기로 했다. 한 달 약값을 기존 1000달러(약 139만원)에서 499달러(약 62만원)으로 내린 것이다. 뒤이어 추가적인 글로벌 제약사들의 미국 내 약가 인하 및 타국 가격을 인상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MFN 정책 파장은? 주시하는 제약업계미국의 약가인하 정책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제약업계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 출시 자체가 이와 연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한국이 참조국으로 포함되는지 여부다. 일단 'OECD 국가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GDP)이 미국의 60% 이상인 국가 중 가장 낮은약가를 참조해 미국 가격을 결정한다'고 방침이 나온 상황이기에 한국과 일본은 참조국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트럼프발 약가 제도 개편으로 국내 임상 현장도 들썩이고 있다.다만, PPP(구매력평가 기준 GDP)를 적용하면 한국이 MFN 대상국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국내 신약 출시를 검토 중인 다국적 제약업계 중심으로 긴장감이 돌고 있다.참조국 등 구체적인 적용 방식이 발표되지 않으면서 국내 제약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돌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향후 미국의 정책 발표를 주시하며 향후 대응방안을 고심하고 있다.KRPIA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MFN  약가정책의 참조국 등 구체적인 적용 방식이 공개되지 않아 현재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만약 한국이 국제 참조 가격 기준으로 활용될 경우 국내 약가정책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환자의 치료 기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실제로 표면적이지는 않지만 다국적 제약사들 내부적으로는 신약 출시를 두고서 눈치보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불확실한 MFN 정책을 원인으로 국내 신약 출시를 공개적으로 연기하겠다고 밝히기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특정 기업이 신약 허가 협상을 본사 차원에서 홀딩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표면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다"며 "다만, 글로벌에서 한국 제약시장이 혁신신약에 대한 약가를 상당히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데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고 밝혔다.이 때문에 국내 출시와 급여 적용에 도전하는 제약사들의 행사에서도 미국의 MFN 약가 정책이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급여에 도전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최근 10년간(2012~2021년) 미국, 유럽, 일본에 허가된 신약 460개 중 G20, OECD 국 가에 허가된 신약 (허가율) 분석 자료다. 미국 MFN 약가 정책에 한국에 참조국으로 포함될 경우 국내 혁신신약 도입이 더 오래걸릴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한국아스텔라스 김준일 대표는 "MFN 관련 이슈로 미국 시장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회사들이 한국 약가를 받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미국에서의 매출이 50% 가까이 차지하는 아스텔라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임상현장에서도 글로벌 제약사들의 MFN 약가 정책에 따른 신약 도입을 둘러싼 우려에 동감하는 분위기다. 이를 계기로 신약의 '코리아 패싱' 문제가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혁신신약의 국내 접근성 지연과 함께 환자 치료 선택권 축소, 환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던 한국 내 임상시험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보고 있다.대한장연구학회는 자체 의료정책포럼을 통해 "지나치게 낮은 약가 정책이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시장 철수를 초래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일라이릴리 옴보는 국내에서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약가협상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약가 제시로 인해 국내 출시가 무산됐다"며 "환자의 치료접근성을 보장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시장 패싱을 초래할 수 있는 과도한 약가인하 정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약 도입을 촉진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2025-08-25 05:30:00외자사
기획

MASH 신약 승부 돌입…효과·가격·편의성 삼박자 경쟁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2024년 2월 레스메티롬 MAESTRO-NASH 3상#2024년 6월 터제파타이드 2상#2024년 11월 VK2809 2b상#2025년 4월 세마글루타이드 3상#2025년 5월 에프럭시퍼민 2b상#2025년 8월 세마글루타이드 FDA 가속승인자고 일어나면 새 임상 결과가 발표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200여개의 신약후보물질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MASH(대사이상관련 지방간염) 적응증에 대한 이야기다.레스메티롬(상품명 Rezdiffra)이 '첫 신약'이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운지 1년이 지났지만 초고가와 제한적 효과라는 현실적 한계로 인해 임상 현장의 신뢰를 완전히 얻지 못했다. 이는 후속 약물들에게 더 높은 기대치를 설정하는 계기가 된 것.비만약으로 잘 알려진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간 수치 개선이 아니라, 비만 관리와 대사 개선이 동반된 실질적 효과를 보여주며 이달 FDA의 MASH 적응증 가속 승인을 받은 것도 '실질적으로 쓸만한' 후발주자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이외에도 21일부터 국내에서 처방되기 시작한 비만약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를 비롯해 에프럭시퍼민 등 다양한 기전의 성분들도 MASH 관련 임상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내놓고 있어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MASH 치료제 시장의 승자는 단순히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약물이 아니라, 환자와 임상가 모두가 인정하는 확실한 치료 효과와 합리적 접근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약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전문가들 본 MASH 신약의 성공 조건에 대해 들었다.■비싼 실패 레스메티롬…아직 풀지 못한 '비용-효과성' 문제세계 최초의 MASH 치료제 레스메티롬이 FDA 허가를 받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임상 현장에선 '혁신적 돌파구'는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효과는 제한적이고, 가격은 지나치게 높기 때문.레스메티롬은 섬유화 2~3단계 MASH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MAESTRO-NASH 연구에서 섬유화 개선과 MASH 해소율에서 위약 대비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며 승인을 받았지만 '최초 신약'이라는 타이틀을 빼면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보긴 어렵다.최원혁 건국대병원 간센터장(대한간학회 감사)은 "레스메티롬의 MASH 관해율은 25~30%지만 위약군 역시 10%에 달한다"며 "섬유화 개선률도 각각 27%, 14%로 차이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게다가 연간 25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고려하면 '절반 이상 환자에서 호전' 같은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어렵다"며 "가격 대비 임상적 가치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의사도 환자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고 지적했다.레스메티롬은 '효능과 비용 사이의 괴리'가 드러난 첫 사례라는 것이 그의 평가. 이로 인해 앞으로 출시될 약제들이 최소 레스메티롬를 넘어서는 '비용-효과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최 교수는 "환자 측면에서도 장기 복용을 감수할 만큼 확실한 개선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순응도에 대한 우려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레스메티롬은 스스로 시장을 지배하기보다는, 후발주자들에게 넘어야 할 허들로 기능하고 있고 이는 곧 후발주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레스메티롬 비켜" 비만약 계열 약제들 존재감 과시레스메티롬이 마련한 '최초'라는 무대 위에 다양한 후보군이 뛰어들고 있다. 현재 임상 최전선에서 거론되는 주요 기전은 ▲GLP-1 계열 ▲FGF21 계열 ▲PPAR 작용제 ▲차세대 THR-β 작용제다.다양한 후보물질들이 2~3상의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성공 신약의 조건들도 구체화되고 있다.최원혁 간센터장은 "레스메트롬의 경우 1년간 세, 네 명을 치료해야 한 명에서 관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선뜻 치료를 시작하자고 권유하기도 어렵다"며 "환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약물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두 명 중 한 명에선 관해를 달성할 수준은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그는 "최근 나오는 임상 결과를 보면 70% 이상 관해를 달성하는 약물이 있어 이런 지표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며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임상 현장에서 쓸만하고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실제로 2023년 공개된 에프럭시퍼민 2/2b상 연구에서 50 mg 투여군의 76%, 28 mg 투여군의 47%가 관해를 달성한 바 있다.항비만·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위고비나 마운자로는 체중감소와 대사개선 효과가 워낙 커서 MASH 적응증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임상 데이터를 보면 두 약물 모두 간지방 감소뿐 아니라 MASH 관해율 50%를 넘긴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GLP-1 수용체 작용제 위고비는 2025년 6월 NEJM에 발간된 3상 연구에서 2.4mg 72주간 투여로 MASH 관해율 62.9%(위약 34.3%), 섬유화개선 36.8%(위약 22.4%)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보였고, 또한 평균 체중감소효과는 -10%로 위약(-2%)대비 통계적으로 유의한 체중감소 효과를 보였다.GIP/GLP-1 이중작용제 마운자로는 지난해 발표된 SYNERGY-NASH 2b상에서 10mg, 15mg 투여군 모두 MASH 해소율 50% 이상을 보고했고 동시에 섬유화 개선률도 위약 대비 유의하게 높았다.최원혁 간센터장은 "비만과 지방간을 따로 떼서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체중이 늘면 지방간이 생기고, 지방이 쌓인 것을 넘어 염증과 섬유화가 진행되면 MASH 단계가 된다"며 "따라서 근원적인 병태생리학을 따진다면 아무래도 체중 감소 약물이 MASH에도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이승원 부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대한간학회 부총무이사)도 비만약의 MASH 적응증 확대 및 임상 활용에 기대감을 걸고 있다.이 교수는 "위고비가 FDA에서 적응증 확대 가속 승인을 얻으면서 임상의가 기대하는 수준의 약제로는 출시가 가장 앞섰다고 본다"며 "이중작용제 기전의 마운자로는 강력한 체중 감소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에 MASH 치료에서도 상응하는 효과가 나타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GLP-1/GCG(글루카곤) 이중 작용제 서보두타이드(survodutide) 역시 비만 치료제로 개발되다가 MASH 쪽으로 확장 연구 중인 후보물질이다.임상 2상에서 최대 19% 체중 감량을 보여서 위고비보다 강력한 수준을 나타냈고, 최근 발표된 임상 2a 연구에서 48주 투여 시 MASH 관해율은 최대 47%(위약군 12%)에 달해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이승원 교수는 "비만약은 이미 광범위하게 처방되고 있어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다"며 "최근 약제비용이 낮아지고 있어 한달 기준 저용량은 28만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접근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설명했다.그는 "비만 관련 지방간 환자가 80%는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체중을 방치하면서 지방간만 치료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긴 어렵다"며 "위고비와 같은 약제가 MASH 적응증을 획득한다면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많이 투약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MASH 환자의 상당수는 비만·당뇨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간 섬유화만 개선하는 약보다는 체중·대사 지표 개선, 심혈관 사건 감소까지 입증한 약물이 경쟁력을 갖출 수밖에 없다는 것.■미리 보는 후보군 경쟁력…효과에 편의성은 덤임상 전문의들이 본 최대 다크호스는 FGF21 아날로그로 에프럭시퍼민이 꼽힌다.간, 지방조직, 뇌에 모두 작용하면서 지방 대사·포도당 대사·에너지 균형을 조절하는 핵심 인자 대사 조절 호르몬인 FGF21의 작용을 강화하는 방식의 에프럭시퍼민은 강력한 관해 효과에 투약 편의성, 간 섬유화가 진행된 환자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간 조직 회복 효과까지 나타내고 있다.이승원 교수는 "임상의로서 에프럭시퍼민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크다"며 "각 약제마다 기전과 효과, 이상반응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에프럭시퍼민은 관해율을 포함해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2022년 발표된 2b상 HARMONY 연구에서 에프럭시퍼민 50mg(76%) 및 28mg(47%) 투약군에서 섬유화 악화 없이 NASH 해결을 보였으며, 이는 위약 비율(15%)의 3~5배에 달했다.지난 5월 발표된 연구(DOI: 10.1056/NEJMoa2502242)에선 MASH로 인한 보상성 간경변증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간 조직 회복을 유도할 수 있음을 시사해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보상성 간경변증은 간경변증이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아직 간이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어서 뚜렷한 증상이나 합병증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기존에는 간경변 이후에는 질병의 자연경과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이번 연구는 섬유화가 가역적일 수 있다는 근거를 추가로 제시한 것이다.이승원 교수는 "에프럭시퍼민은 간 내 지방 축적 억제를 해주고 새로운 지방 합성을 억제해 염증 유발을 줄인다"며 "항섬유화 효과와 대사 전반 개선 등의 다중 타깃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그는 "게다가 주 1회 투약이라는 편의성을 갖췄다"며 "여러 기전의 약들이 2상, 3상을 거치고 있어 특정 시점에서 MASH 신약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조직학적 개선보다는 비용-효과성부터 하드 사건 감소, 편의성 등이 약제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5-08-23 05:30:00연구・저널
기획

실망감만 안긴 첫 MASH 신약…200개 후보 물질 각축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첫 MASH(대사이상관련 지방간염)  신약의 탄생 후 1년. 임상 현장에서는 뜨거운 기대감이 차갑게 식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미국 FDA 승인 초기 레스메티롬(상품명 Rezdiffra)의 연간 치료비용은 4만 7400달러로 전망됐지만, 실제 시장 출시 후 연간 투약 비용은 약 1만 9000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보통 수십 년간 신약 개발이 실패한 영역에서 첫 신약이 등장할 경우 수요가 몰려 시장을 석권하기 마련이지만, 임상 현장에선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레스메티롬은 1년간 투약해야 세, 네 명에서 한 명꼴로 MASH 관해를 달성할 수 있다. MAFLD 활동 점수의 악화 없이 적어도 한 단계 이상 섬유증이 개선된 비율 역시 이와 비슷해 '기대하던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쪼그라든 몸값은 이러한 실망감을 반영하는 지표인 셈.게다가 레스메티롬은 현재 미국에서만 승인된 치료제로, 아직 유럽이나 아시아 등 다른 국가에서는 허가되지 않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임상 전문가들은 후속 약제들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레스메티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효능과 비용 효과성을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이에 최근 불붙고 있는 후속 MASH 치료제 개발 경쟁 현황 및 임상 전문가들이 진단한 각 약제별 임상 성적표를 비교했다.■레스메티롬 첫 승인 후 1년… 초고가·제한적 효과가 '발목'레스메티롬은 간 내 갑상선호르몬 수용체 베타(THR-β)를 표적하는 약물로, 간 지방 축적을 줄이고 염증과 섬유화를 완화하는 기전을 가진다.FDA는 2b상과 3상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승인했는데, 3상 MAESTRO-NASH 시험에서 52주 치료 후 환자의 약 26%가 섬유화 악화 없이 NASH 소실에 도달했으며, 위약군의 10% 대비 유의한 개선을 보였다.레스메티롬의 MASH 관해율 그래프. 100mg에서 최대 29.9%의 관해율 달성에 그치면서 1년간 치료해야 세 명 중 한 명꼴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또 섬유화 1단계 이상 개선은 레스메티롬군에서 24%, 위약군에서 14% 선으로 상대적인 차이가 크지 않고 여전히 환자의 절반 이상은 조직학적 개선을 경험하지 못해 섬유화 진행 억제 효과 역시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가장 큰 문제는 가격. 연간 약가가 초기 예상치 대비 낮아졌다고 해도 한화 약 2640만원에 달하는 비용은 대다수 환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A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치료 옵션이 새로 생겼다는 부분은 누구라도 긍정할 만한 하지만 조직학적 호전이 4명 중 1명 수준이라면, 고가의 약제를 장기간 복용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그는 "MASH 관해의 절대적인 수치는 25.9~29.9%로 적지 않치만 심지어 위약도 관해율이 9.7%에 달한다"며 "만일 급여화가 된다고 해도 신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렴하게 장기간 광범위한 처방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기대감을 식게한 요소"라고 설명했다.■위고비 가속 승인 포문…실망감 → 후발 주자 관심도로MASH는 침묵의 질환으로 불리며, 상당수 환자가 증상을 자각하지 못한 채 진행된다. 따라서 치료제라면 단순히 간 효소 수치나 조직학적 일부 개선에 머무르지 않고, 간경변 진행 억제, 간 이식 필요 감소, 사망률 개선 등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보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레스메티롬은 '첫 신약'이라는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임상가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만큼, 오히려 후속 약물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도 구체화되고 있다 '비싼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보다 뚜렷한 임상적 유의성과 비용 효율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것.최근 비만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FDA로부터 MASH 적응증 가속승인을 받자 개발사 노보노디스크의 주가가 덩달아 강세를 보인 것도 이러한 관심의 방증으로 해석된다.위고비는 GLP-1 수용체 작용제로, 이미 체중 감량과 심혈관질환 위험 감소 효과가 입증된 약물이다. 가속승인은 비만과 MASH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병태생리를 반영했다. 임상에서 위고비는 72주 투여 후 간 조직검사에서 NASH 소실을 경험한 환자가 위약 대비 유의하게 많았으며, 체중 감량에 따른 대사 개선이 간 조직학적 개선으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이미 비만 치료제라는 확실한 적응증과 장기간 안전성 데이터가 확보돼 있어 MASH 환자에게 바로 적용하기 용이한 부분도 강점이다. 특히 MASH 환자 다수가 비만을 동반하는 만큼, 체중 감량 효과가 질환 개선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임상 전문가들의 평.A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약은 월 투약 비용이 50만원 안팎이라 그나마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인다"며 "MASH 치료에서 가장 확실한 효과를 입증한 방법은 생활습관 개선, 특히 체중 감소"라고 강조했다.그는 "체중 5% 이상 감량하면 간 내 지방이 감소하고 체중 감량 폭에 따라 간 조직학적인 염증 개선은 물론 섬유화까지 유의하게 개선될 수 있다"며 "실제로 2015년 발표된 연구에서 체중을 10% 이상 줄인 환자의 90%에서 MASH가 소실되고, 45%에서 섬유화 개선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자고 나면 새 임상 성적표…전 세계 200개 후발주자 '각축'전 세계적으로 약 200개 이상의 후보물질이 NASH/MASH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비만약 영역에서 경쟁을 벌인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각각 GLP-1/GIP 이중작용제 기반의 MASH 신약후보물질 서보두타이드와 터제파타이드 임상 2상 결과를 공개하며 전장 확대를 예고한 상태다.비만 적응증에서 이미 압도적인 체중 감소 효과가 입증한 터제파타이드는 MASH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도 간 지방량이 크게 줄고 조직학적 개선 신호를 보여주어 기대감을 키운다.서보두타이드 역시 대사 개선과 간 조직 개선 효과를 동시에 입증해, 단순한 지방간 치료를 넘어 포괄적 대사질환 치료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터제파타이드의 MASH 관해율 그래프. 15mg에서 최대 62%의 관해율을 달성했다.이어 FGF21 유사체 에프럭시퍼민(efruxifermin)은 최근 발표된 2b상 BALANCED 시험에서 16주 투여 후 환자의 약 39%에서 NASH 소실 및 섬유화 1단계 이상 개선을 입증, 레스메티롬 대비 더 높은 반응률을 보얐다. 또한 혈중 지질 수치와 인슐린 저항성 지표 개선 효과도 확인돼 대사질환 동반 환자에서 활용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라니피브라노(elenifibranor)는 PPAR α/δ 이중작용제로, 간 지방 축적 억제와 대사 개선에 특화돼 있다. 2상에서 간 조직학적 개선 신호를 보였으며, 현재 3상 임상이 진행 중이다.세마글루타이드 역시 GLP-1 기반 약물로서 MASH 환자에서 체중 감소 및 조직학적 개선 효과를 동시에 입증한 바 있으며, 위고비와 함께 가장 현실적인 치료 옵션으로 꼽히고 있다.이처럼 GLP-1/GIP 계열, FGF21 유사체, PPAR 작용제 등 다양한 기전의 약물들은 단순히 간 내 지방 축적 억제를 넘어 체중, 대사, 염증을 포괄적으로 조절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레스메티롬과 달리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가진다.섬유화 개선률, 장기 복용 안전성, 체중 관리 효과, 대사질환 동반 개선 여부 등이 주요 비교 지점으로 이러한 간접 비교는 향후 보험 급여 여부와 시장 점유율을 가르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간 관련 주요 학회들도 쏟아지는 '임상 성적표'를 주요 세션으로 다루며 미래 경쟁력을 가늠하고 있다.
2025-08-21 05:30:00연구・저널
기획

"환자불편 해소하다보니 의사 12명→130명 거점병원 성장"

[메디칼타임즈=이지현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에 자리한 세명기독병원을 찾았다. 병원 본관을 중심으로 뇌병원, 암병원, 정형성형병원, 웰빙센터 등 5개 건물이 연결된 건물들은 대학병원 부럽지 않은 규모였다. 실제로 734병상 규모에 130명의 전문의가 근무하는 이곳은 포항 지역 최대 규모의 종합병원이다.올해로 75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명기독병원은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지역 내에서 대학병원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명실상부한 거점병원 역할을 해내고 있다. 병원 곳곳을 둘러보며 만난 직원들과 의료진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한국전쟁 속 천막진료소에서 시작한 75년 역사세명기독병원의 시작은 75년 전 한국전쟁의 혼란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대 설립자인 한영빈 박사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의학을 공부한 그는 해방 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우리 부친은 원래 부산으로 가려고 배를 탔는데, 배에 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포항에 내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한동선 병원장이 들려주는 창립 스토리는 한편의 드라마다. 한 박사는 포항에 정착하면서 천막을 치고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지역민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지속하면서 병원으로 성장해갔다.당시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전무했던 포항에서 한 박사의 천막진료소는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작은 천막에서 시작된 의료봉사 정신이 오늘날 700여 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발전한 원동력이 됐다.96년 한개 동으로 시작한 포항 세명기독병원은 2만여평 규모의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1996년 전문의 12명에서 현재 130명으로, 30년간의 놀라운 성장현재 병원을 이끌고 있는 한동선 병원장이 1996년 병원에 합류할 당시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의사(전문의)는 12명, 건물도 지금의 본관 하나뿐이었다. 당시 병원 규모도 1500평 정도에 그쳤다.하지만 그로부터 30년, 병원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현재는 2만여 평 규모에 130명의 전문의가 근무한다. 10배가 넘는 성장이다. 하지만 한 병원장은 "키우려고 키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단언했다."저는 그냥 불편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진료가 늦어진다고 하면 의사를 늘리고, 대기실이 좁다고 하면 공간을 확장하고, CS(전산화단층촬영)가 늦어진다고 하면 장비를 추가로 도입하고... 그렇게 하나씩 불편사항을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모습이 됐죠."이런 철학은 병원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센터마다 설치된 '애니큐 센터'가 대표적이다. 수술 전 환자와 보호자가 충분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쾌적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병원들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상담실을 줄이는 추세와는 정반대의 행보다.비뇨의학센터에서 로봇수술에 주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센터가 활성화 돼 있다. 대학병원급 전문센터로 지역의료 '선도'세명기독병원을 둘러보면서 인상적인 것은 전문센터별 특화 운영이다. 각 센터가 대학병원 수준의 의료진과 장비를 갖추고 있어 환자들이 서울이나 대구까지 나가지 않아도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심장센터의 위상은 최근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 지정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올해 6월 26일 개소식을 마친 직후 주말 사이에 급성 심근경색 환자 7명이 몰려온 일화는 이 센터의 위상을 보여준다."개소식을 축하한다는 듯이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주말 사이에 7명이나 왔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만큼 지역에서 우리를 믿고 찾아주신다는 뜻이죠."한 병원장의 설명처럼 이곳 심장내과는 9명의 전문의가 24시간 교대로 응급심장질환에 대응하고 있다.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인력 규모다. 특히 PET-CT 장비는 대게 대학병원의 경우 대기 시간이 긴 반면 바로 검사할 수 있다는 부분이 강점이다.정형외과는 더욱 세분화돼 있다. 상지관절센터, 하지관절센터, 척추센터로 나뉘어 각각 전문의들이 특화 진료를 담당한다. 18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규모도 놀랍지만, 특히 상지관절 분야의 명성은 전국적이다."상지관절 쪽은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해서 경기도에서도 환자가 찾아옵니다. 제3차 병원에서도 의뢰해서 보내주고요."상지관절센터는 학술 논문 발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논문 발표로 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뇌병원은 아예 별도 건물로 운영 중이다. 1층은 신경외과, 2층은 신경과로 구성돼 있으며, 신경외과 전문의 5명과 신경과 전문의 4명이 24시간 뇌혈관 응급질환에 대응한다. 혈전제거술, 코일색전술 등 최첨단 뇌혈관 시술도 언제든 가능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밤에도 중풍 환자가 오면 바로바로 혈전제거술을 시행합니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사실 적자예요. 하지만 지역 의료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하고 있습니다."2017년 개원한 암병원은 지역 의료에 대한 사명감으로 오픈했다. 한 병원장은 "지역 환자분들이 서울이나 대구까지 가서 경제적, 신체적 부담을 겪는 것이 안타까워서 만들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암병원은 진단부터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재활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최첨단 방사선치료기 2대를 보유한 것은 이 규모 병원으로는 드문 일."일부 대학병원들도 방사선치료기를 한 대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두 대를 운영하고 있어요. 환자들이 치료 대기시간 없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웰빙센터 건물에서 통합면역센터까지 갖추면서 암 환자들은 원스톱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지역 암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뇌병원 입구. 세명기독병원은 뇌혈관 질환을 특화하고자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로봇수술과 AI로 '미래 의료' 준비최근 세명기독병원은 로봇수술센터를 개설해 미래 의료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의정갈등 시점에 경북대에서 이직한 비뇨기과 전문의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로봇수술을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비뇨기과와 일반외과에서 200여 건의 로봇수술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처음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입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한 병원장은 로봇수술 확대 계획도 밝혔다.세명기독병원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AI(인공지능)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병원을 목표로 AI를 활용한 진료시스템 혁신, 영상의학과 판독 보조, 진료 보조 시스템 등 도입을 검토 중이다.한 병원장은 "직원들에게도 ChatGPT 같은 AI 도구를 적극 활용하라고 권하고 있다"며 미래 의료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서비스 로봇 도입도 검토 중이다. 병원 내 약물이나 물품 배송을 로봇이 담당하게 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애니큐 센터는 수술 전 환자를 대상으로 집중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세명기독병원은 사립병원이지만 공공의료기관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응급의료센터 운영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18명을 두고 있어 대학병원급 응급의료체계를 자랑한다."다른 대학병원들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8명 없는 곳이 많아요. 저희는 지역 응급의료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운영하고 있습니다."수익성이 낮아 다른 병원들이 축소하거나 없애는 진료과목도 꿋꿋이 유지하고 있다. 수부외과가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수부외과 전문의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줄어들고 있어요. 하지만 수부 환자가 계속 있으니가 우리가 해야죠. 환자들이 어디로 가겠어요?"한 병원장은 "가장 큰 공공의료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것"이라며 "응급의료센터 운영하고 모든 필수 진료과목을 유지, 24시간 응급환자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공의료"라고 강조했다.직원 만족도 높은 조직문화…의료진도 장기근속 세명기독병원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의료진의 장기근속이다. 10년 이상 근무한 전문의만 30~40명에 이른다. 이는 지역 중소병원 장기근속 의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일."수익성을 너무 강조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에게 비급여나 실손보험 연계를 강요하지 않아요. 자꾸 그런 압력을 넣으면 결국 오래 근무하기 어렵고 병원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죠."한 병원장의 인사관리 철학이다. 실제로 이 병원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이나 가족이 아플 때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다고 자부했다.세명기독병원 한동선 병원장은 설립자인 한영빈 박사에 이어 2세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병원 내에는 직원 소리함, 마일리지 제도, 직원 가족이 운영하는 온라인 장터 등 직원 복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주택 제공, 적정 수준의 급여 등 복리후생도 충실하다.그래서일까. 이 병원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노조가 없는 병원 중에서는 저희가 제일 큰 곳 중 하나일 겁니다. 직원들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세명기독병원은 규모, 시설을 넘어 지역의료에 대한 진정한 사명감과 환자 중심의 의료철학이 녹아있었다.한영빈 박사가 75년 전 천막진료소에서 시작한 '환자를 위한 의료'라는 초심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면서, 포항 지역 의료의 중심축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의료라는 게 본질적으로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니까 정말 잘해야 합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신뢰받는 의료를 해야 한다는 게 저희의 철학입니다."이는 세명기독병원이 75년간 지켜온 의료철학이다. 지역 거점병원으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세명기독병원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2025-07-28 05:30:00중소병원
기획

신약 쏟아지는 다발골수종, 급여로 급성장 'VRd' 요법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대표적인 혈액암 중 하나인 다발골수종은 형질세포가 혈액암으로 변해 골수에서 증식하는 질환으로, 재발 위험이 높고 완치가 어렵다. 기존 치료제에 대한 내성과 불응성을 보이며 관해유지기간이 점점 짧아져 초기 치료에서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내고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다발골수종은 주로 고령 환자에 호발한다. 인구 고령화가 본격화 되고 있는 국내 임상현장에서 주목해야 할 이유다.실제로 국내 상황을 본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 기준, 2024년 다발골수종으로 요양급여 의료비를 청구한 환자만 1만 1661명(C90)에 이른다. 병용치료 대세 속 표준옵션 변화다발골수종은 임상현장에서 내성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 초기에 다양한 약제를 병용해 치료, 효과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 일반적이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유럽종양학회(ESMO) 등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도 다발골수종 초기 치료일수록 3제 이상의 병용요법을 주로 권장하고 있다.기존 VTD 1차 Regimen 사용에서 VRd 급여 처방이 가능해 짐에 따라 VRd 요법 또는 단클론항체 + VRd 요법으로 표준치료가 변경됐다.이 중 NCCN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차 치료 '선호요법(preferred regimen, category 1)' 1차 치료로 'VRd(보르테조밉+레날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 병용요법'과 4제 요법인 'DVTd 요법(다라투무맙+보르테조밉+탈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을 권고하고 있다.다만, 국내 임상현장에서는 이 같은 글로벌 가이드라인과 함께 건강보험 등재 여부가 치료제 처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선호요법들이 건강보험으로 적용되기 이전까지는 VTD 요법(보르테조밉+탈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이 1차 치료로 주로 국내 임상현장에서 활용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2022년 VRd 요법과 올해 2월 DVTd 요법까지 차례대로 급여가 적용되면서 임상현장 치료 전략이 뒤늦게나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글로벌 제약사들이 다발골수종 신약을 출시,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으며 치료 패러다임은 급속도로 개편되고 있다.기존 면역조절제, 프로테아좀 억제제, 항CD-38항체 약물에 더해 최근 이중특이항체와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신약들이 입지를 넓혀 나가고 있다.기존 다발골수종 치료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고 현재 임상현장에서 초치료로 활용되는 약물이 면역조절제, 프로테아좀 억제제, 항CD-38항체 치료제였다면 여기에 이중특이항체와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신약들이 최근 입지를 넓혀 나가고 있다.이들 치료제들은 대부분 초치료보다는 기존 병용요법에 내성이 생긴 환자 대상으로 치료 차수 면에서는 뒷단에서 불응성/재발성 다발골수종 치료옵션으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중특이항체 신약을 꼽는다면 ▲테클리스타맙 ▲탈쿠에타맙 ▲엘라나타맙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현재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를 적용받지 못해 국내 임상현장에서 활용이 제한적이다. 이들 모두 경쟁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를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첫 관문으로 여겨지는  암질환심의위원회 문턱을 못하고 있다.   CAR-T 신약의 경우 ▲실타캅타진 오토류셀 ▲이데캅타진 비클류셀 등이 꼽히지만 두 품목은 모두 아직까지 국내 임상현장에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자의 경우 국내 승인은 받았지만 고가 치료제로 급여가 제한되면서 아직까지 출시되지 않고 있다.급여 적용 기점 'VRd 요법' 급증아이큐비아가 국내 의료진을 통해 수집하고 있는 Oncology Dynamics data에 따르면, 항암제 약물치료 환자 중에서 다발골수종 환자는 1.5%였다.해당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환자의 79%가 연령이 60대 초과 환자들로 나타났다. 즉 60대 이상 고령 환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암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인 54%가 1차 치료 환자였고 뒤 이어 34%가 2차 치료 환자로 나타났다. 나머지 12%는 3차와 4차 이상 환자들로 이중특이항체나 CAR-T 신약 적응증 환자들이다.국내 임상현장 다발골수종 1차 치료 Regimen이 2021년을 기점으로 Quadruplet Regimen 및 VRd의 처방비율이 증가하는 양상이다.이러한 치료제 시장을 바탕으로 국내 임상현장에서는 다발골수종 1차 치료 선호옵션으로 2021년을 기점으로 VRd 요법의 처방비율이 급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한 급여 적용이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구체적으로 2021년 1%에 불과했던 국내 처방 비율이 급증, 2024년에는 절반 이상인 58%로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VRd 요법 이전 대세로 여겨졌던 VMP(보르테조밉+멜파란+프레드니솔론) 요법 등 다른 3제 요법은 그 입지가 급격히 축소, 2021년 61%에서 5%로 크게 줄어들었다.하지만 이 같은 VRd 요법의 급성장도 향후 변화의 여지는 충분하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의 또 다른 선호옵션인 DVTd 요법이 올해부터 본격 급여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DVTd 요법을 포함한 4제 요법의 국내 처방 비율 역시 점진적으로 늘어나 지난해 1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5-07-22 05:30:00외자사
기획

"증원 백지화 종료 아냐…진짜 위기 시작" 사직 교수의 경고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의대 증원 정책이 철회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의대생들의 복귀 선언에도 불구하고 사직 전공의와 교수진의 복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교수직을 내려놓은 배장환 전 충북대병원 교수도 마찬가지.그는 이 상황을 단순한 '정책 종료'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지금이야말로 의료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진짜 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것. 갈등을 빚어낸 정책은 사라졌지만 그 정책을 만들어낸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정책 백지화로 갈등은 멈췄지만, 뿌리는 그대로라는 판단이다.정책에 근거를 끼워맞추는 하달식 결정 구조, 추계와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구호로 채워진 수급 논리. 이런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아젠다만 바뀔 뿐 의료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재점화될 수밖에 없다. 배 전 교수에게 의정 갈등 사태의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정책 사라졌지만, 구조는 남아…"언제든 갈등 재점화"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지난해부터 격화돼 온 의정 갈등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문제는 그 갈등의 핵심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의료 정책 결정 구조, 전문가 참여 없이 반복되는 '하달식 정책'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를테면 '공공의대'와 같은 의대 증원의 또 다른 버전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배 전 교수도 이번 사태가 남긴 핵심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그는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첫걸음은 정부의 명확한 사과와 정책 전환 의지"라며 "본질적인 측면에서 단순한 수습 차원의 대책이 아닌,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 구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배장환 전 교수는 하달식 정책 구조가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며 의정 갈등 봉합에 대한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그는 "지금까지 정부가 위원회를 통해 형식적으로 전문가 의견을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정부와 시민단체, 환자단체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전문가 의견이 주도권을 잃는 기형적 구조"라며 "이익단체는 의료의 지속 가능성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기 쉬우며, 이는 정책의 방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했다.표면적으로는 의견 수렴과 중지를 모으는 '거버넌스'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와 시민, 환자단체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정책협의체나 논의체 등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것.보건복지부 역시 '보건의료인력 수급 추계 연구'라는 용역을 주기적으로 발주하고 있지만, 이는 정책 결정 이후 사후적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돼 왔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부가 먼저 수를 정하고, 추계는 나중에 붙이는 구조라는 비판이다.배 전 교수는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정교한 수급 모델과 전문가 중심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이들의 공통점은 의료 인력 수급이 정권의 의지나 사회 여론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전문가 중심의 시스템 안에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논의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일본 후생성 산하의 의사 수급 연구회는 자문기구이지만 영향력이 높고,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는 참여하되 투표권은 부여되지 않는다"며 "반면 한국은 시민단체나 환자단체가 실질적 보팅 파워를 갖고 있어, 전문성보다 정치적 여론에 좌우되는 결정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이어 "법조계 정원 논의는 전·현직 판사, 검사, 변호사, 로스쿨 교수들이 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한다"며 "본인은 환자를 굉장히 위하는 사람이고, 보건의료는 환자를 향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갈등 봉합? "한국 의료 데드라인 직면"그는 특히 의료 인력의 연쇄적인 공백 사태를 예고했다. 지난해 신규 전임의와 펠로우의 충원이 사실상 중단됐고, 올해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내년 이후부터는 신규 분과 전문의 배출이 급감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전반의 인력 구조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배 전 교수는 "작년부터 신규 펠로우와 전임의 충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남아있는 의료 인력이 업무 과중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다"며 이같은 인력 붕괴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그는 "특히 종합병원은 이미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부담을 일부 떠안고 있는데, 전문의 이직과 인력 부족이 겹치면 간신히 유지되던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겉보기엔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에도 병원이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의료 현장은 인력 부족을 'PA 간호사'로 메우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는 이 방식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당장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의사가 하지 못하는 구조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판단이다.그는 "이같은 의료 질 저하는 갑작스럽지 않게 서서히 드러난다"며 "중증 질환을 가진 고령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조용히 사망하는 초과 사망이 이미 시작됐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증원 정책이 백지화됐어도 정책에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는 논의 구조에선 교수직 복귀가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냈다.그는 "의료 시스템이 겉보기에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며 "지금은 유리창이 깨질 때마다 막는 수준이지만, 의료 인력의 연쇄 공백은 기둥이 뽑히는 것과 같아 건물의 구조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사직 교수가 본 전공의 미복귀의 이유사직의 주요 이유는 증원 정책 반대였다. 정책이 백지화 된 지금 교수직 복귀 가능성을 묻자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교육과 진료 양쪽에서 훈련받은 전문가로서 대학병원에 있는 것이 사회적 편익 측면에서도 효용이 높다고 보지만, 정부 정책에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는 구조라면 복귀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배장환 전 교수는 "정부의 정책을 줄줄이 읊어대는 리더십, 의사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결정 시스템이 그대로라면, 본인 역시 전공의들과 같은 이유로 학교에 돌아갈 수 없다"며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철회됐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그는 이 상황을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초기라는 점에서 새 정부가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 언제든 다른 방식의 의료인력 확대 방안이 재추진될 수 있다는 것. 특히 이재명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 의지를 피력해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공공의대 자체가 나쁜 정책은 아니지만 의대 증원처럼 이 또한 '하달식'으로 결정된다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논의 구조가 바뀌지 않은만큼 언제든 공공의대와 같은 정책 하달이 재현될 수 있어 복귀는 이른감이 있다는 것.배 전 교수는 지금이 마지막 데드라인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 환자, 정부, 의료계도 이와 같은 한계 상황이 지속되면 승자없이 모두가 패배자가 될 것"이라며 새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진정성 있는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2025-07-16 05:30:00대학병원
기획

"전체주의의 광풍"…사직 1년 배장환 교수가 본 증원 정책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사직 당시 눈물을 보였던 배장환 교수. 당시엔 그도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20년 넘게 몸담았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직을 내려놓은지 벌써 1년. 지금,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르다.무엇보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원점 재검토를 선언한 것. 지지부진했던 논의도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최근 의대생들이 17개월 만에 전격 복귀를 선언하면서 해묵은 의정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다만 전공의의 미복귀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둘러싼 이견들은 불씨로 남아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게 만든다. 무리한 정책 추진과 철회에 따른 신뢰 훼손도 풀어야할 숙제. 대학을 떠나 부산 좋은삼선병원에 둥지를 튼 배 전 교수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그가 기억하는 1년…"전체주의의 광풍, 피해자는 국민"배 전 교수는 "7월 14일로 사직한지 1년을 맞았다"며, 현재는 종합병원에서 진료와 시술 중심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고, 교육도 제한적인 상황. "진료는 대학보다 양이 많지만 몸은 고달프지 않고 재미있다"며 "시술도 대학병원에 있을 때만큼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부산이라는 지역 특성상 종합병원에 환자 의뢰가 꾸준하고, 응급시술도 자주 발생한다고 덧붙였다.정책에 대한 평가로 넘어가자 어조는 단호해졌다. 증원에 반대해 교수직을 내려놓은만큼 어찌보면 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그는 "의대 증원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와 국민이며, 그다음은 전공의와 의대생"이라며 "본인은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감내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철썩같이 믿었던 국립대학마저 일사불란하게 '상명하복'식으로 움직인 현실에는 큰 좌절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국립기관이라는 믿을 만한 논의 구조에 있고, 규정과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근거가 부실한 증원 정책에 대학도 목소리를 내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 증원 정책의 수립, 수렴에 있어 민주적인 논의 과정이 작동되지 않은 건 정부나 대학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사직 1년을 맞은 배장환 전 교수는 의대 증원 정책을 전체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로 기억했다.배 전 교수는 "의대 증원은 입안부터 진행까지 전 단계가 탈법적이었다"며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 민주적인 장치들이 작동을 안 했다고 해도, 대학이라면 이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하는데 기관장부터 하달받고 움직이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는 게 아직도 납득이 안 간다"고 했다.민주적 논의 구조 없이 이뤄진 정책 추진을 '전체주의 광풍'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위원회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고, 교육부 장관조차 위원회를 단순한 조언 기구로 치부했다고 비판했다. 처음부터 명확한 데이터 없이 증원이라는 답을 내려놓고 근거를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숙의와 합의는 배제됐다.그는 "의대 증원 2천 명의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문제를 제기해도 의료계가 지속적인 반대를 하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필요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며 "정부, 정치인이 해야 될 역할 중의 하나가 이해관계자들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런 고통스러운 논의 과정이 결국 민주주의의 피이고 민주주의의 꽃인데 그런 숙의 과정 자체를 다 부정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원점 재검토라는 당연한 귀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견고한 위원회 정치 시스템…"일방적 정책 언제든 가능"정부가 정책을 철회하는 과정 또한 문제였다. 그는 "정권 지지도가 하락하고 계엄 논란이 겹치자 유야무야된 것일 뿐"이라며 "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는커녕, 잘못됐다는 인정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무엇보다 중요한 보건의료 정책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은 구조적 문제 의식을 드러낸다.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의 단계를 제어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이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호에 그치는 '원점 재검토'로는 불씨를 완전히 꺼트릴 수 없다는 경고인 셈.그는 "정부는 원하는 정책이 있으면 위원회를 만들어 소수의 전문가와 다수의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투표로 밀어붙이고 이를 의견 수렴으로 포장한다"며 "이같은 전형적인 위원회 정치 시스템이 여전히 견고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했다.그는 "결국 의회, 행정부가 작동하지 않은채 정권 지지도가 떨어지고 계엄이 겹치면서 유야무야됐을 뿐"이라며 "민심이 기울고 정치적인 압박이 있어 철회한다는 그런 정책이라면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지적했다.■"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 원인은 정부 불신"의대 증원 정책이 원점 재검토 국면에 들어섰지만, 전공의 복귀는 여전히 요원하다. 정책이 철회됐지만 정작 현장에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배 전 교수 역시 같은 진단이다. 그는 "정책이 철회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그는 전공의들이 여전히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배경에 대해 "언제든 다시 불꽃이 켜질 수 있다는 불신과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원 문제를 떠나 필수의료 패키지만 보더라도 문장 하나하나가 직역 단체와 몇 년은 논의해야 할 내용인데, 지금까지도 정부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며 "결국 나갈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복귀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배장환 전 교수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두고 정책의 철회가 아닌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의견이 수렴, 상향식으로 정책이 수립되는 구조적 절차 없이는 일방통행식 정책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정부의 태도 변화나 공식적인 사과 없이 상황이 개선되길 바라는 건 무리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정책의 입안자, 특히 (전)대통령이 나서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000년 의약분업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사과하고 나서야 의정 협상이 진전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도 그와 같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 하나 책임을 지거나 사과한 이가 없다는 데 더 큰 좌절감을 드러냈다.의료 공백에 대한 불안감이 미복귀 전공의를 향한 비난 여론으로 변질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사는 대목. 그는 정부가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방조하거나 유도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정부는 국민들끼리 갈라치기를 하며, 정작 정책 실패의 책임자들은 멀찍이 떨어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의대생과 전공의는 분명한 피해자이고, 그들을 비난하는 시민들조차 정부의 프레임에 갇힌 또 다른 피해자"라고 했다. 사과 요구를 받아야 하고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라는 것.정책 소통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는 "현장의 우려를 수렴하겠다는 정부 입장 변화는 체감조차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여당이던 시절 청문회나 위원회에서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던 정치인들이,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의회도, 행정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충북의대를 떠난 이후, 그가 들은 동료 교수들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그는 "진료 정상화를 위해 병원 측이 간호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교수 충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내과 일부 분과에서는 교수 전원이 사직해 과 자체가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교수당 업무량이 과도하게 증가한 상황에서, 국립대병원 특유의 노사 협의 구조로 인해 업무 재조정도 쉽지 않아 진료 정상화가 더딘 상황이라고 했다.결국 그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전공의 미복귀 사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정책 방향을 바꿨다지만, 실제 구조나 행정 체계, 정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의료 정책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2025-07-15 05:20:00대학병원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메디칼타임즈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