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몰라준다"는 K-의료기기의 하소연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다양한 출입처를 경험하며 산업의 부침을 지켜봤다. 10년 전 한미약품이 수 조원대 기술수출 잭팟을 터뜨린 이래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지속적인 (기술)수출로 글로벌 의약품 생산공장으로 성장해 왔다. 그 바통을 이어받을 분야는 무엇이 될까.최근 새 출입처인 의료기기 업계의 데이터를 훑어보며 느낀 것은 경이로움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산업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의료기기 생산액은 10조 5,000억 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최근 5년간 연평균 8.8%라는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특히 디지털 의료기기 분야의 수출액은 전년 대비 45.4%나 급증했다. 객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제약·바이오 업체들의 성장세가 의료기기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한 것. 문제는 마주한 현장의 온도가 이런 지표들과는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출입처 등록을 위해 연락한 업체 중 상당수는 제대로 된 홍보(PR) 담당자조차 없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보도자료가 무엇이냐"고 되묻거나, "물건만 잘 만들면 됐지, 홍보가 왜 필요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심지어 상장된 중견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소통 창구가 전무했다는 점은 이 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AI 진단 소프트웨어부터 정밀 수술 로봇까지, 기술력만큼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실제 의료기기 업계의 문을 두드린 지난 한 달간 느낀 감정은 기대보다는 막막함에 가까웠다는 뜻이다.의료기기 산업에서 홍보는 단순히 자랑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기를 개발했더라도, 그것이 의료 현장에 왜 필요한지, 기존 치료법보다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시장 형성은 불가능하다.실제로 이미 궤도에 오른 소수의 상위 의료기기 업체들은 홍보의 힘을 안다. 그들은 전문 인력을 배치해 임상 결과의 가치를 알리고, 규제 개선의 당위성을 설득하며 마켓 리더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국내 의료 AI의 선두 주자인 루닛(Lunit)과 뷰노(Vuno)는 단순히 기술력만 과시하지 않고 해외 유명 학술지에 임상 결과를 게재할 때마다 이를 대중과 투자자가 이해하기 쉬운 '시장용 언어'로 가공해 끊임없이 소통했다.특히 루닛은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90%에 달하는데,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속적인 브랜딩과 PR 전략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들은 보도자료를 광고지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투자 유치 제안서'로 활용했다.의료기기 업체 수는 7,400개를 넘어섰고 종사자도 15만 명에 육박한다. 산업의 덩치는 커졌지만, 기술력 하나만 믿고 소통을 외면하는 업체들은 "국내 시장은 인색하다"는 하소연만 반복하고 있다.의료기기 산업은 얼마나 잘 만드냐는 단계를 지나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좋은 제품이 지속 출시되곤 있지만 그와 더불어 시장이 우리를 몰라준다는 하소연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산업이 진정한 국가대표 산업으로 거듭나려면, 이제는 '연구실의 언어'를 어떻게 '시장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마케팅과 홍보는 비용이 아니라, 제품 경쟁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즉 제품의 마지막 공정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제품은 정말 좋은데 사람들이 몰라준다"는 말은 훈장이 아니다. 그것은 미완성품을 내놓았다는 고백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