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뇌는 애초부터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거대하고 캄캄한 두개골 속에 갇힌 연두부 같은 뇌는 위험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도망갈 궁리를 한다.
외부세계에서 입력된 위험 신호에 즉각적으로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튼튼한 두 다리와 두 팔은 어쩌면 뇌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충신과도 같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지켜왔고 살아냈다.
슬프게도,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가 손상되어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지 못하거나, 신경 회로가 꼬이거나 끊어지는 등 다양한 원인 때문이다. 근육까지 신경이 전달되지 못하면, 작동하지 않는 근육은 서서히 기능을 잃는다.
근섬유다발의 수가 줄어들고 근력은 점점 약해진다. 스스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심하게 위축되면 체중을 지탱하는 뼈가 골절에 취약해질 뿐 아니라, 전신의 대사 기능이 극심하게 저하된다. 그렇게 한 인생의 해가 저물어간다.
교통사고나 추락으로 발생한 외상성 뇌손상 환자들, 도파민 분비 저하로 움직임이 느려지고 지속적인 떨림을 겪는 파킨슨병 환자들, 유전자 결함으로 3~5세경부터 근육이 점차 약화되어 운동 능력을 상실하는 듀센 근이영양증 환자들, 운동신경세포의 점진적인 파괴로 인해 근육이 약해지고 결국 호흡 기능까지 상실하는 루게릭병 환자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리 멀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포기할 수 없다. 의사는 몸 안의 병과 싸우지만, 공학자는 몸과 기계를 연결한다. 이 움직임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의학의 영역을 넘어 공학으로 확장되었다. 뇌와 기계를, 근육과 신호를 잇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시도는 이미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 뇌 깊숙한 곳에 전극을 삽입하는 뇌심부자극술은 수많은 파킨슨병 환자의 떨림을 멈춰주었고, 두개골 밖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하는 기술은 이미 임상에서 일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더욱 정교해졌다. 빛, 소리, 초음파로 뇌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광유전학과 음향유전학이 등장했고, 스위스 연구진은 척수신경 자극으로 하반신 마비 환자를 다시 걷게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뇌 이식 칩으로 원숭이를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LG전자는 뇌파를 조율해 수면을 유도하는 이어폰을 내놓았고, 파낙토스는 뇌파로 정신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서울대 연구진은 생체적합성 소재로 뇌와 근육 손상을 최소화하며 신호를 주고받는 인공피부와 인공근육을 개발 중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들은 왜 중요할까? 기존 치료법을 돌아보면 답이 보인다.
모든 의사의 허리춤에는 두 개의 무기가 있다. 하나는 약물, 다른 하나는 수술이다. 약물은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살려냈고, 수술은 암으로부터 우리의 수명을 늘렸다. 인류 의학사를 지탱한 두 기둥이다.
하지만 두 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약물은 전신을 순환하며 부작용을 낳고, 수술은 절개와 마취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에 감염을 치료할 수 없는 사람, 고령으로 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
더 큰 문제는 신경계 질환이다. 파킨슨병의 도파민 부족을 약으로 보충할 수는 있어도, 손상된 신경 회로 자체를 복구할 수는 없다. 루게릭병의 운동신경세포 파괴를 수술로 막을 방법은 없다. 약물은 너무 광범위하고, 수술은 너무 침습적이다. 신경계는 그 사이 어딘가의 정밀함을 요구한다.
그때, 세 번째 무기가 등장한다. 바로 전자약이다.
전자약은 약물처럼 전신을 떠돌지 않는다. 수술처럼 조직을 크게 절개하지도 않는다. 대신 전기, 빛, 자기, 초음파라는 에너지를 병변 부위에만 정확히 전달한다. 약물과 수술 사이의 빈틈, 바로 그 정밀한 공간을 파고든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약물은 일방적으로 투여되고, 수술은 한 번의 결단이다. 하지만 전자약은 실시간으로 신경 신호를 읽고, 필요한 만큼만 자극을 조절하며, 환자의 상태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마치 신경계와 대화하듯이.
뇌심부자극술부터 뉴럴링크, 그리고 우리 곁의 이어폰과 인공근육까지, 이 모든 기술이 전자약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은 약물과 수술을 대체하는 무기가 아니다. 세 무기가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경계라는 미지의 영역에 온전히 다가갈 수 있다.
평생 앉아 지내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다. 약물도, 수술도 포기한 환자가 움직임을 되찾는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의사 면허증의 잉크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지만, 논문을 읽을 때마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다.
"나야, 전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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