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장비를 활용해 부정맥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가 최근 의료 기술 및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대규모 관련 연구가 지속되면서 웨어러블 손목시계가 심방세동뿐 아니라 심실성 부정맥, 서맥, 빈맥까지 진단 가능하고 진단 정확도는 98%에 달한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비용 효과적이면서 간편하고 심지어 전문의보다 높은 정확도로 부정맥 유형을 감지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이제는 전문가가 필요없어지는 시대가 펼쳐질 수 있다는 이른바 '웨어러블, AI 만능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는 어떨까. 웨어러블 장비의 심전도 신호 특성으로 인해 부정맥 진단에 제한점이 발생하고 그런 까닭에 오히려 전문가의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다가 부정맥의 조기 진단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조기 개입이 실제 환자 예후 개선에 긍정적인지도 불분명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
최근 이같은 내용의 웨어러블 기기 측정값의 명과 암에 대해 발표한 권순일 보라매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웨어러블 기기 만능론 경계해야…한계도 명확
최근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심전도 진단이 늘고 있다. 환자가 웨어러블로 측정한 결과를 가져와 해석을 의뢰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보고된다. 웨어러블 장비가 대중화되면서 임상 영역에서의 활용도 보다 빈번해진 것.
이와 관련 권순일 교수는 "심전도 패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오랫동안 생체 신호를 모니터링하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정밀한 측정에 있어선 확실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웨어러블은 심전도 유도(lead)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12 유도 심전도 대비 측정 값에 한계가 존재하다"며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샘플링 레이트가 낮고 로우패스 필터 세팅이 낮아 정밀한 시그널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까닭에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환자들이 들고 온 심전도 패치나 스마트 워치 기반 측정값 그래프는 부드럽고 몽글몽글하게 바뀌어 있다"며 "로우패스 필터 간의 간격도 짧고 채널도 한개에 그쳐 홀터는 여러 채널을 함께 보며 P파의 이상신호를 감지할 수 있지만 웨어러블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웨어러블 기기의 높은 심방세동 위양성률은 태생적인 한계에 해당한다는 것. 같은 전문의가 동일한 시간 동안을 진단해도 심전도 패치 측정값 기반으로는 위양성률이 더 높게 나오는 현상이 발생한다.
권 교수는 "최근 여러 회사에서 이제 경쟁적으로 반지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출시하고 있다"며 "스마트링으로 측정한 심전도에서 P파도 잘 보이고 QRS도 잘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손가락에 끼는 형태 특성상 이물질 유입 때문에 깨끗한 시그널을 얻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땀이나 때가 끼면 심전도 자체를 거의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호 특성이 뭉개지는 경우가 있다"며 "알고리즘을 아무리 업데이트 해도 판독 불능 케이스가 너무 많아 이를 알고리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어 "웨어러블 장비로 얻은 심전도 신호 자체가 깨끗하지 않으면은 전문가가 봐도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라며 "웨어러블은 부정맥을 진단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지 심전도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웨어러블을 통한 조기 진단 후 개입, 예후 개선 효과 '미지수'
숙제는 또 있다. 웨어러블을 통한 조기 진단 후 개입이 실제 환자의 예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권 교수는 "웨어러블 장비를 사용해 부정맥을 더 많이, 일찍 진단한다는 개념은 좋지만 그것이 과연 환자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가 남겨진 숙제"라며 "2023년 나온 연구에 따르면 뇌졸중 생존자에게 AF 모니터링을 위한 스마트워치를 처방한 결과 실제 불안이나 건강 상태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는 웨어러블 기기가 별거 아닌 어떤 율동 이상에도 자꾸 경보를 내보내고 위양성도 많다보니 잘못된 알람이 많이 울릴 수 있다"며 "환자가 알람에 무뎌지다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피로해지면 나중엔 알람이 와도 무시하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문해력도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심방 세동은 고령 인구일수록 많지만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에 대한 이해도는 고령층으로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에 대상 환자군을 적절히 잘 교육 시킬 수 있느냐도 숙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웨어러블 장비의 심전도 신호 특성으로 인해 부정맥 진단에 제한점이 있어 웨어러블 심전도를 이용한 부정맥 진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조언. 장미빛 환상을 가지기 보다는 신뢰성과 편리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활용 방안을 찾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웨어러블의 진단 정확도 향상을 위해 인공지능과 접목하는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본인 역시 부정맥 연구 중에서도 이제 웨어러블이랑 인공지능을 접목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빅데이터, 웨어러블, 인공지능을 결합해 단순히 질환의 진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단과 개입을 통해 환자들의 예후를 개선시키는 방법론에도 관심이 뻗쳐있다"며 "웨어러블 기기 찬양론 대신 한발짝 물러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구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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