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전국 지방의료원이 이전 수준의 환자 수요를 회복하지 못한 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병상 가동률은 60% 초반에 머무르고, 누적 적자는 수천억 원 규모에 달한다. 일부 의료원은 상여금 체불까지 현실화되며, 당장 연말 유동성 위기가 예고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했지만, 이번 3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에서 공공의료 예산 882억 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현장에선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서산의료원장이자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완 회장을 만나, 지역 공공의료원의 현실과 그 대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 추경 기대했지만 무산…의료원 위기 어쩌나
이재명 정부는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회복을 핵심 과제로 삼고,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공공의대 설립, 공공의료사관학교 신설, 공공병원 확충 등 의료 인력 양성과 인프라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필수의료 분야 수가 보상과 인건비 지원을 강화하고, 지역필수의료기금 신설 및 권역별 책임의료체계 구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공공의료 현장에선 관련 예산이 증액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지만, 정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무산되면서 불만이 나오는 상황이다.
김영완 회장은 "이번 정부 공약에 예산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끝내 예결위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예산 반영을 위해 여야 간사를 비롯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까지 찾아가 직접 설득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공공의료 예산이 추경에 담긴 건 처음 있는 일이라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감이 큰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번 공공의료 추경 무산이 의대 정원 관련 예산 삭감과는 다른 맥락이라고 짚었다. 대학병원의 경영난이 전공의 사직 등 의대 정원 정책의 여파라면, 지방의료원의 재정 위기는 코로나19 이후 외래·입원 환자 감소라는 후유증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팬데믹 당시 지방의료원에선 환자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환자를 내보내는 조치가 있었고, 이로 인해 환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환자들이 빠지면서 이전 환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서산의료원 입원 환자 회복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17~2019년 대비 68%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올해 상반기 회복률 역시 75% 수준에 불과한데, 서산의료원이 80% 병상 가동률로 의료원 중 여건이 나은 것을 고려하면 더 심각한 곳이 많다는 우려다.
■ 지금은 자전거 잡아줄 시점 "자생 가능해야"
이에 따라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올해 적자는 1900억 원에서 최대 2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두고 김 회장은 "추경으로 882억 원만 지원됐어도 의료원 30곳은 숨통이 트였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지 일부 지방의료원에선 이미 상여금 체불이 발생하고 있으며, 연말에는 최소 10곳 이상에서 임금 체불 사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속초, 청주, 부산, 강진 등에서는 상여금 지급이 미뤄졌고, 서귀포의료원은 약 6억 원 규모의 체불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현 상황을 '코로나19로 넘어진 아이가 막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만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면, 어느 시점에 아이는 더 이상 자전거를 잡아주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설명이다. 올해 무산된 추경은 이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었다는 것.
그는 "직원들이 상여금을 생활비로 계획했을 텐데, 지급이 어그러지면 일할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재정이 바닥나 위기 상황에 직면한 의료원이 있다"며 "이번 추경 무산으로 최소 10곳 이상에서 연말 임금 체불 사태가 예상된다. 현재 지방의료원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뒷바퀴를 잠깐만 잡아주면 될 시점"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이를 위해 1년에 수천억 원이 필요한 게 아니다. 회복세에 진입한 의료원들이 넘어지지 않게 도와줄 최소한의 뒷받침만 있으면 된다"며 "올해 1000억 원, 내년 750억 원, 내후년 500억 원 정도만 있으면 대부분 정상화가 가능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의료원은 코로나19 때 전담병원 역할을 했던 만큼, 최소한의 책임 있는 지원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총액예산·인건비 지원 촉구 "의료원은 기반"
이와 함께 김 회장은 지속 가능한 공공의료 운영을 위한 대책을 전했다. 진료 후 적자를 보전하는 '사후 보상제'와 예산 범위 내 진료를 보장하는 '총액예산제' 시행이 유의미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의료 인력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과 필수의료 분야별로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주 여건 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서산의료원은 과거 의사 인력 정원 27명 중 일부만 채울 정도였지만, 현재는 정원을 44명까지 늘려 모두 충원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의사에게 원룸·투룸 등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전세자금 1억 5000만 원을 무이자로 대출해줬다는 설명이다. 또 주 10세션 중 1세션을 휴식 시간으로 보장하는 주 9세션 근무제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공공의료는 수익 목적이 아니다. 최소한의 기반 유지를 위해 적절한 재정 지원이 필수다. 사후보상제처럼 진료로 발생한 적자를 보전해주거나, 총액예산제처럼 예산 범위 내에서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모든 인건비를 지원하라는 게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한정해 보전해주고, 나머지 경영은 의료원이 책임지는 방식이 실효성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인프라 개선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곧 의료 인력 확보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진료 확대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연봉도 중요하지만, 자녀 교육, 문화생활 등 가족의 삶 전반을 고려한 정주 환경이 결정적이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공공의료를 단순히 민간과 구분된 영역이 아니라, 감염병·재난 대응을 위한 '기반'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원은 감염병 위기라는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기 때문에, 흑자·적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유지해야 할 기반이라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그는 "지방의료원은 의료 취약계층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지역 필수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코로나19나 울진 산불처럼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나서는 곳도 지방의료원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이 바로 기반의 역할이다. 공공의료를 민간과 구분된 별도의 영역으로 볼 게 아니라, 재난 대응을 위한 국가 인프라로 봐야 한다"며 "수익이 목적이 아닌 만큼, 흑자냐 적자냐보다 유지해야 할 기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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