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서 겪는 업무 강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에서 정한 근무 시간 초과가 빈번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10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국회에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토론회를 열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요구를 전했다. 특히 이 자리엔 두 명의 사직 전공의가 참석해 수련 당시 겪었던 일들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경기도 소재 모 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은식 사직 전공의는, 자신이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로 있으면서 겪었던 부조리를 열거했다.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된 지 10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전공의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여러 부조리를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받았다는 비판이다.
그는 그 첫 사례로 자신이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으로 있으며 산부인과 전공의들에게 들은 사연을 전했다. 세브란스 산부인과에선, 임신한 전공의들도 다른 전공의와 마찬가지로 야간 당직 근무를 포함해 36시간 연속 근무가 강제됐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전공의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어떤 명시적인 절차조차 없었다는 것.
실제 산부인과 전공이었던 A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당시 산부인과 의국으로부터 "임산부에게 야간 당직 근무 및 시간의 근무를 할당하는 것이 법에는 저촉되지만, 의국 역사상 임신한 전공의가 당직 및 시간 외 근무를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며 "그래도 강제할 순 없으니 당직 여부는 본인이 선택하라"는 암묵적 강요를 받았다는 것.
다른 전공의 B씨 또한 임신 초기부터 당직 근무를 해왔으며 어느 날 퇴근 후 자택에서 산통을 느껴 응급실 경유해, 다음 날 새벽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두 번째 사례로는 전공의 평균 수련 시간제한이 상한선이 아닌 당연한 기준처럼 적용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연속 수련 시간에 위반되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7조 제1항에 따라 병원장은 전공의에게 4주 평균 주당 80시간을 초과해 수련하지 아니하도록 하고 있다. 제2항에서는 응급 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이상 36시간을 초과해 수련하지 아니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코로나19 양성으로 격리 조치 됐을 당시, 병원 측은 격리 기간 동안 근무하지 못한 시간을 나머지 파견 일정 동안 4주 평균 80시간에 맞게 근무하도록 벌충했다는 것. 그가 2022년 7월, 가정의학과 전공의로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에 파견 근무를 할 당시의 일이다.
당시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근무표도 공개했다. 낮 시간대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소청과로 입원한 모든 병동 환자와 응급실 내원 환자를 혼자서 봐야 하는 일정이었다. 밤 시간대에도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소청과로 입원한 모든 병동 환자와 응급실 내원 환자를 혼자서 봐야 했다.
근무표상으로 보면 김 사직 전공의는 병동에 입원한 소아 환자와 응급실에 내원한 소아 환자의 진료·처치·처방을 혼자서 도합 72시간 도맡아야 했던 것. 근무 시작 시 현장 파악 및 근무 종료 후 환자 인계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따지면, 약 75시간 이상으로 하루 평균 19시간 정도를 근무하는 꼴이다.
그는 "이 와중 휴게시간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이 기간 밤 새지 않은 날은 수요일 하루뿐이었다"며 "이후로도 주당 1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으며, 매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우며 40시간 가까이 연속으로 일해야 했다. 전공의 특별법 자체가 일반적인 법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 조항이 전무하거나 처벌이 경미한 탓에 전공의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인 병원은 법의 허점을 악용해 지속적으로 전공의를 착취하며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이제 전공의 특별법의 허점을 보완하고 현실에 맞게 개선하여 전공의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으며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을 지내며 내과를 수련했던 김준영 사직 전공의 역시 자신이 겪은 내과 전공의 1년 차 한 달 당직표를 공개했다. 평일에 매일 정규 근무하며 주 2~3회 정도를 추가로 당직 근무 서는 일정이었다.
당직 일엔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후 5시까지 33시간 연속 근무한 것. 주말에도 25시간 연속 근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확히 주 100시간을 근무하는 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이 기간 12시간의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하지만, 이마저 없었다.
그는 "환자가 가장 많을 때 50명 정도였고 매일 15명씩 입·퇴원이 이뤄졌다. 모든 병동을 돌며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혈액 검사 결과 확인에 환자 1명당 3분씩 쓰더라도 아침 회진 전 2시간 30분이 필요했다"며 "오전과 오후 회진에도 5시간이 소요됐고, 환자 경과 기록 및 처방 입력, 입·퇴원 기록 작성에 1명당 2분을 쓰더라도 하루 3시간이 추가로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하루 정규 시간에 걸려 오는 60통의 전화와 100여 개의 문자를 처리하면 매일 3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를 하게 된다. 실질적으로는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주 120시간을 근무하게 되는 것"이라며 "실제로 120시간 이상 근무한 적이 많았고, 80시간 이하로 근무한 적은 전체 수령 기간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사직 전공의는 이런 과중한 업무의 문제점으로, 전문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본인 역시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1·2·3년 차 내과 수련 교과 과정을 절반 이상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
또 그는 자신의 전공의 수련 기간 중 독립적으로 외래 진료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지도 전문의가 어떤 교수인지도 알지 못했으며, 전공의 교육을 간호사가 담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는 이런 문제에 전공의들이 침묵하는 것은 의국의 보복으로 인한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스스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수련 부족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솔직히 기록하면 전문의 취득에 불이익이 생겨 실제와 다르게 기록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는 것.
김 사직 전공의는 지금까지 전공의들이 이런 문제에 침묵해왔던 것은 의국이 줄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의 취득을 위해선 학술지 논문 게재가 필수인데, 전공의들은 교수 도움 없이 논문을 혼자서 작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공의들은 수련 과정 중 항상 의국의 목줄을 잡혀 있는 셈이라는 비판이다.
그는 "전문의 취득 후에도 외국에서 1년 추가 근무를 강요받고 대학원 등록을 강요받고 담배 및 음식 배달 심부름을 하고 전공 1년 차 365일 내내 당직하더라도 거부하지 못한다"며 "지금까지의 사례는 우리 의료원에서 과를 가리지 않고 있었던 모두 실제 사례다.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전공의들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수련받던 시절 동기들과 저연차 전공의가 힘들고 서러워 매주마다 한두 명씩 울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있지만, 병원장이나 교수 등 사용자 측 인사들로 대부분 구성돼 제재를 가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전공의법에도 과태료 외에 별다른 별칙 조항이 없어 난장판 수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박단 위원장은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 급여 인상 등 여건을 개선하고, 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공의들은 과도한 업무 시간 외에도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 ▲교육 부재 ▲법적 분쟁 위험 등 부당한 조건에서 수련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를 개선해야 할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전공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전공의 위원을 대폭 늘리고 전공의가 교수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다. 또 연속 수련 시간을 현행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하고, 휴게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하는 조항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유럽·일본 등 해외 사례와 국제노동기구 지침 등을 참고해 전공의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에서 6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근로기준법 특례 업종에서 의료인을 삭제해 주 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더욱이 실태조사에서 전공의 평균 급여는 397만 원이었고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1만1700원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해 가산해야 한다"며 "독립적 시술·수술 수행 기회를 받지 못하는 전공의를 위해 교수 평가 제도를 도입해 지도 전문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13명 중 2명에 불과한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전공의 위원 비율 역시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