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터져나온다.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공언만 수십번째.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활개를 치고 의료기기 기업들의 신음은 깊어만 간다.
의료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히는 간납사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도 여전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간납사와 의료기기 기업이 맺은 계약서까지 공개됐다. 엄연히 정부가 마련한 표준계약서 양식이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재고 관리 책임을 교묘하게 기업에게 떠넘기고 손해배상에 있어서도 불공정한 내용이 가득하다. 판매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도 모호하다. 말 그대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갑질이다.
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 년째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오르는 간납사는 여전히 판매 대금을 수년째 미납하고 있다.
다른 간납사도 마찬가지. 병원의 특수 관계인이 지분을 대량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 문제가 됐지만 여전히 그 지분은 유지되고 있다.
잠시나마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수년째 국정감사에서 간납사 문제가 난타당하자 마침내 보건복지부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전국 단위 조사를 진행하며 마침내 간납사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도 전국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과도한 할인 요구나 담보 미제공 실태, 대금 결제 지연 사안 등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 조사에 대한 후속 조치는 전무한 상황이다. 국정감사에서 또 다시 간납사 문제가 불거지자 복지부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방안은 나오지 않은 채 공무원 책상에서 잠자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의료대란이라는 초대형 태풍까지 맞은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도산 위기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대학병원 매출이 반의 반토막이 난 가운데 그마저도 간납사의 갑질로 인해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간납사도 부족한 현금을 돌리기 위해 1년 넘게 대금을 주지 않고 있다는 후문도 나오고 있다. 반의 반토막 난 매출조차 어음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협회를 중심으로 간납사와 전면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어짜피 죽을꺼라면 같이 죽겠다는 마지막 단발마다.
정부는 지금도 쉼없이 4차 산업 혁명을 강조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에 의료산업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예산 지원 계획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이들 기업들은 고질적인 병폐에 신음하고 있다. 선수는 뛸 기력이 없는데 감독만 신이 난 셈이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복지부 어느 공무원의 책상이건 잠들어 있는 간납사 대책을 세상에 내놔야 한다. 선수들이 아프다고 소리치는데 온갖 산해진미가 무슨 소용이 있나. 지금 필요한건 병폐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치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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