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한당뇨병학회 국제학술대회(ICDM 2025)는 의료계에서의 인공지능(AI)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학술대회로 손꼽힌다.
과거에는 '의학에 AI를 접목할 수 있나', '활용 가능성이 있나'와 같은 질문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실제 임상 적용과 더불어 그 한계와 부정적 영향 가능성까지 논의되는 흐름이 포착된 것.
특히 AI가 고도화될수록 처방을 통제하는 등 도구의 기능에서 벗어나 임상 현장에서 권력이 AI에 집중될 수 있어 '3권 분립'의 형태로 견제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AI 권력 독점 막기 위해 의료 3권 분립 필요"
ICDM 2025에서 접수된 초록은 600여편. 이 중 34편이 인공지능(AI)과 딥러닝을 다루며, 관련 연구가 단순한 현상이나 흥미거리가 아니라 학술대회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줬다.
발표 주제는 다양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군의 스타틴 처방 예측, 임신성 당뇨 산모의 거대아 발생 위험도 평가, 당뇨망막병증 자동 판독, 새로운 항섬유화 후보물질 발굴 등 진단과 치료, 약물 개발, 환자 교육 전반에서 AI가 활용됐다.
전당뇨병 환자에서 제2형 당뇨병 진행 예측 머신러닝 모델 검증 및 적용,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 예측을 위한 머신러닝 기반 인구집단 연구, 경피적 관상동맥중재술(PCI) 환자 사망률 예측을 위한 머신러닝: 지질 프로파일과 심대사 위험인자 통합, VISTA.ai: 인공지능 기반 당뇨병성 망막병증 평가용 시력 선별 도구 , 당뇨병 예측 및 진단을 위한 머신러닝 AUC, 민감도, 특이도 분석 등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을 기술적 도구로만 다루는 것을 넘어, 그 철학적 함의까지 조망하는 특별세션이 마련됐다는 것.
전우택 연세의대 의학교육학 교수는 '의학의 AI 시대: 주요 질문과 미래 역할' 강연을 통해 AI가 의료 현장 깊숙이 침투하면서 환자-의사 관계와 의사 직업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지적했다.
과거 MRI·CT와 같은 기술은 의사의 진단 능력과 권위를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했지만, AI는 오히려 환자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의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 교수는 "최근엔 환자들이 AI로 증상, 진단명, 치료율까지 사전에 확인한 뒤 병원을 찾는다"며 "진료실은 의사와 환자가 아니라 의사와 AI가 대화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는 감정과 책임을 갖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공감적인 표현을 흉내 내면서 환자의 신뢰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치부 공개를 꺼려하는 환자들이 의료진보다 AI를 통한 상담을 더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절대적 신뢰와 책임을 함께 지녔던 의사의 역할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
전 교수는 "문제는 이러한 AI의 영향력이 환자-의사 관계를 넘어 제도적 차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심평원의 간호사 출신들이 급여 적절성을 평가했던 것을 AI가 대체해 자체 기준에 어긋났다고 판단하는 치료와 약물 사용을 다 삭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보험사와 국가가 AI를 통해 진료 적절성을 실시간으로 평가하고 비용 지원 여부를 자동으로 결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제약사와의 결합으로 특정 고가 약물이 비합리적으로 우선 처방되는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것처럼 의료 현장의 모든 권력이 AI에 집중될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절대적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해법으로 그는 근세 정치철학의 '권력 분립' 개념을 의료 현장에서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치료 의사 ▲알고리즘을 개발·훈련하는 연구자 ▲이를 윤리적·법적으로 검증하는 평가자 의사가 각각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면서 서로 견제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제약회사와 AI 개발 연구자가 연결돼 있으면 최적의 약이 아닌 고가의 약을 1차 약제로 지정할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평가자 의사가 필요하고 이런 식으로 일종의 의료의 권력을 AI에 집중되지 않도록 분립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AI의 불완전성이나 왜곡된 데이터에 기반한 위험한 의사결정을 막고, 의료의 신뢰와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 이 세 영역이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균형 있게 견제·협력해야 AI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이러한 분립 구조가 없다면, 잘못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특정 고가 약물이나 특정 치료 방식을 강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이는 결국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본질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다.
발표자는 이를 위해 의학교육과 수련 과정에도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의대생과 전공의가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전기가 끊기는 순간 진료가 불가능해지는 탈숙련 현상이 올 수 있다"며 "AI 리터러시와 데이터 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진료 역량을 함께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철학과 이상욱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다시 생각한다'는 강연에서 AI의 발전이 단순한 효율성과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를 바꾸는 힘을 지녔음을 강조했다.
AI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술 도입의 효과는 언제나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이 교수는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의 단순한 양자택일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세탁기 보급이 단순히 가사노동을 줄이기보다 위생 관념의 변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속화시키는 등 예측하지 못한 변화를 불러온 것처럼 "기술의 파급력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 이런 문제는 더욱 첨예하다. AI가 고도로 발달할 시대에 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기술자로 축소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직관적 계산에 능하지만, 환자의 삶과 맥락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의사는 AI가 제공하는 방대한 분석을 활용하면서도, 그 결과를 환자의 개별적 상황과 가치관에 맞게 해석하고 조정하는 '해석자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ICDM 2025에서 발표된 'ChatGPT를 활용한 다낭성난소증후군(PCOS) 초음파 영상 판독 가능성을 평가한 개념 증명 연구'도 AI 만능론 대신 신중론을 택했다.
연구진은 공개 데이터셋인 PCOSGen의 PCOS 양성 사례와 건강 대조군의 초음파 영상을 대상으로 표준화된 프롬프트를 통해 ChatGPT에 이미지를 해석하도록 요청하고, 결과를 영상의학 전문의의 확진과 비교했다.
분석 결과, ChatGPT는 낭성 형태가 뚜렷한 전형적 PCOS 소견에서는 중등도 민감도를 보이며 보조적 활용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특이도는 낮아 PCOS가 아닌 대상을 오진하는 경우가 많았고, 낭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례에서는 성능이 크게 떨어졌다.
즉 ChatGPT는 전형적 특징을 탐지하는 보조 도구로는 가능성이 있지만 단독 진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
이 연구는 AI를 임상 전문성과 결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며, 향후 다중모달 AI 모델을 통한 임상·생화학·영상 데이터 통합 연구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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