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의료계 현장에서는 시범사업 곳곳에 미흡한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재설계하는 만큼 중심 과제가 다양하고 굵직한 반면, 세부내용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해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병원들은 수가 지원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불안감이 크다고 우려했다.
■ 교수-전공의 등 '팀제 운영'…"구성원 따른 개별가산수가제 도입 필요"
정부는 의대증원과 함께 의료개혁 일환으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가장 집중해서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로, 정부는 이를 통해 그동안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환자 쏠림현상', '3분 진료'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고자 한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의료개혁 1차 과제로 상종 구조전환을 발표하며 공식석상에서 수차례 "속도감있게 추진해 연내 성과를 보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업의 핵심은 상급종합병원이 병상수를 감축하고,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 집중할 수 있도록 입원환자 분류체계 및 수가체계를 전면개편하는 것.
정부는 이를 위해 각 의료기관에 제한된 인력으로 효율적 의료 제공을 위한 협력·공유형 인력 운영체계 확립할 것을 요구했다.
교수와 전임의, 전공의, 진료지원인력 등이 한 팀을 이뤄 서로 협력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전공의 복귀가 불확실한 상황 속 이들의 빈자리를 PA간호사 등으로 메우려는 정부의 의도가 담겼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는 미래 전문의가 될 인력이기 때문에 PA로 대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며 "팀제 인력 운영은 그동안 칸막이, 경직적으로 운영되던 한계를 탈피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으로 전공의를 대체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의료계에서는 팀제 인력운영에 별도의 수가가 없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정윤빈 외과 교수는 "팀 운영체계는 지금으로서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며 "우선 수가가 명확해야 병원이 움직일 텐데 아직 수가 보상 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도입된다 해도 병동별, 진료과별 등 어떠한 형태로 도입될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시범사업이 시작했지만 수가가 지원되지 않아 사실상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
정윤빈 교수는 교수와 전임의, 전공의, 진료지원인력이 한 팀을 이뤄 협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에 따른 개별 가산수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팀 멤버에 따른 가산 체계를 가져가야 한다"며 "대형병원들은 전문간호사제를 활용하려 할 것이고, 그 밑에 규모의 병원들은 기존 PA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가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가가 산정되지 않으면 팀 체계는 의미 없게 될 것"이라며 "현재 복지부와 병원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의료기관, 향후 수가 배제·상종 탈락 등 불이익 우려 미온적 참여
병원들이 향후 수가 배제 등 불이익이 두려워 시범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실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참여한 병원들의 이행계획서 등을 살펴보면, 대다수는 병상 감축 외 특수병상 확대, 중환자·중증환자 전담 인력 확충, 진료협력병원 시스템 구축 등 대다수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병원이 적어낸 계획서의 내용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 향후 수가나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우려하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
예를 들면 진료지원인력을 n명 충원하겠다고 작성했는데, 실제 그만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복지부가 문제 삼고 향후 상급종합병원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윤빈 교수는 "보건복지부는 각 개별병원 단위로 일일이 계획 수행 여부를 확인할 계획은 없고 병원별 계획서를 보고 교집합을 찾아 지표를 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정 부분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해당 지표가 향후 상급종합병원을 선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11월 내에 2025년도 상급종합병원 시범사업 운영 평가 지표를 확정해 병원에 공지할 예정이다.
또한 그는 "이번 시범사업 목표는 상급종병 적합 질환군을 70% 이상 높이겠다는 것인데 현재는 평균 50% 선을 유지하고 있다"며 "질환군 기준을 확대하면 병원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까지 높일 수 있다. 서로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산부인과 교수 또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은 말로만 들었을 때는 대대적인 개편작업에 착수하는 듯 보이지만 이런 상태로 진행하면 얼마나 큰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시범사업에 들어갔음에도 느껴지는 차이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상급종합병원별 운영상황을 하나하나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힘드니 이행계획은 병원 측이 제출하는 것이 맞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구체화된 기준이나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급하게 추진해 부족한 내용이 많다. 사업 초반에는 의료계와 수시로 소통해 피드백이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3년간 10조원 소요…정권 교체 등 외부 요인 불안 요소"
끝으로 의료계에서는 1년에 3조 이상 3년 동안 총 10조원이라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시범사업인 만큼,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다고 입을 모았다.
병원들은 3년 동안 수가보상 지원을 믿고 병상 감축 등에 나서는데, 도중에 시범사업 운영 방향이 변경되면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교수 A씨는 "이번 시범사업이니까 정책적으로 50%가 가산된 수가로 건정심을 통해 인정된 정식 수가가 아니다"라며 "복지부는 당연히 3년 동안 진행할 것이라 얘기하지만 정권 교체 등에 따라 예기치못한 변화가 생기면 병원은 병상을 다시 확충하기도 어렵고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상급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B씨 또한 "3년 동안 진행하면서 예산만 10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아는데 워낙 고액이라 안정적으로 잘 이어질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라며 "이번 시범사업은 상급종병의 구조 자체를 뒤엎기 때문에 도중에 정부가 정책을 수정하면 병원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B씨는 "지방의 사정이 좋지 않은 일부 병원들은 시범사업 기간 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병원들을 배제할 것인지, 한 번 승인됐으면 끝까지 참여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 기간 논의하며 계획을 세우고 신중히 추진돼야 할 사업을 비상진료체계로 인해 서둘러 진행하다 보니 모든 방면에서 디테일이 부족하다"며 "향후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