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재판장 양창수)는 의사에게 조직 검체가 뒤바뀔 가능성 등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대비해 조직을 재검사할 주의의무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14일 유방암 수술을 한 서울대병원과 집도의 N교수, 다른 사람의 조직 검체를 넘겨준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환자 K씨가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결 선고했다.
세브란스병원 외과 K교수는 2005년 K씨에 대한 유방초음파검사를 시행한 결과 오른쪽과 왼쪽 유방에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미세침을 종양에 삽입해 조직을 채취한 후 병리과에 조직검사를 의뢰했다.
K교수는 오른쪽 유방의 종양이 '침윤성 유방암'으로, 왼쪽 유방의 종양이 '유방 양성종괴'로 진단되자 유방절제술을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K씨는 진단 결과를 믿지 못하고 오른쪽 유방의 종양이 암인지 여부를 다시 정확하게 진단받기 위해 조직검사 결과지, 의무기록 사본, 초음파 사진을 복사한 CD 등을 교부받아 서울대병원에 내원했다.
서울대병원 외과 N교수는 간단한 촉진 등의 검사를 한 후 세브란스병원의 조직검사 결과지와 진단서를 신뢰해 오른쪽 유방에 대한 절제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또 N교수는 병변의 정확한 위치 및 범위를 알고, 유방 내 다른 악성 병변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유방 초음파검사, 유방 MRI 검사 등을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유방절제술을 통해 떼어낸 오른쪽 유방의 종양조직을 조직검사한 결과 암세포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N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조직검사 슬라이드, 파라핀 블록을 대출받아 암세포 검출 여부를 재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세브란스병원 병리과 의료진이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만들면서 다른 환자의 조직검체에 원고의 라벨을 부착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자 환자 K씨는 세브란스병원이 타인의 조직검사 결과지를 잘못 전달했고, 서울대병원이 멀쩡한 환자에게 유방암 절제수술을 했다며 두 병원을 상대로 1억 33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2008년 4월 세브란스병원과 담당의사인 K교수가 3958만원을 손해배상하되, 서울대병원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7월 두 병원과 수술 집도의 N교수 등이 연대해 5천여만원을 배상하라며 1심을 뒤집었다.
N교수가 조직을 재검사하거나 최소한 세브란스병원 조직검사 슬라이드와 파라핀 블록을 대출받아 재검사하는 등 종양이 암인지 여부를 정확하게 진단한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할 주의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원심 판결 중 서울대병원, N교수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N교수로서는 조직검사 슬라이드 제작 과정에서 조직검체가 뒤바뀔 가능성 등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대비해 새로 조직을 채취해 재검사할 주의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파라핀 블록을 대출받아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다시 만들어 재검사한 이후 유방절제술을 시행할 주의의무 역시 없다고 판단했다.
세브란스병원 병리과 의료진의 과실로 조직검체 자체가 뒤바뀐 것이어서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대출받아 재판독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침윤성 유방암'으로 판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의사에게 평균적으로 요구되는 진단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법리를 오해했거나 심리를 다하지 아니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환기시켰다.
반면 대법원은 세브란스병원의 상고를 기각했다.
세브란스병원 병리과가 다른 환자의 조직검체에 K씨 라벨을 부착해 판독한 과실이 있고, 수술로 인한 환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한편 의료계는 서울고법이 이 사건에 대해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모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자 의사-의사, 병원-병원간 신뢰를 잃게 만들고, 불필요한 재검사를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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