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이 복귀를 선언하면서 의정 대화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하지만 의대 학사 정상화 대책과 의대 정원, 공공의료 등을 둘러싼 의정 입장 차가 여전해 이를 좁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공론화위원회로 정책의 결정 주체가 '정부와 의료계'에서 '국민'으로 확장되는 구조 전환이 예고된다. 의료계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 논리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대화의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대 증원 VS 재논의…의정 입장 차 여전
14일 의대생의 복귀 선언으로 이들의 요구인 의대 학사 정상화 방안에 대한 정부, 의료계 대화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의료계는 의대생 제적 방지와 불이익 없는 복귀, 교육과정 재설계 등을 요구하는 한편, 이를 논의할 협의체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료계 요구는 특혜라는 정부·시민사회 반대에 부딪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학사 조정 등의 유연화 조치는 어렵다는 입장이며 의대 학장들 역시 교육기간 압축 등 학사 조정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이 복귀한 이후에 교육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
의대 증원에 대한 입장 차도 여전하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기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내년부터 강원·경남·전남·제주 등 4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의사제를 시범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 의견을 수렴해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지역의사제에 필요한 의대 증원분을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이 커 실제로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반면 의료계에선 의대 정원 감원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수도권에선 의사 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AI 기술 발전 등으로 의사 업무 효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존 인력을 재분배하는 것으로도 지역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실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근 설문조사를 통해 전 정권 의료 개혁 정책 재검토, 법적 부담 완화, 수련환경 개선 등을 대화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정부와의 소통이 진전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의대생·전공의 복귀를 위해선 대학과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공의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역 의료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강화를 기치로 공공의료기관 재정 지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정책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이고 국민 지지를 받는 만큼, 정치적 추진 동력이 강한 상황이다.
반면 의료계는 단순한 인력 증원이나 정치적 구호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기존 의대 정원부터 합리적으로 활용하고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수의료 수가 현실화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공공의대 설립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으며, 교육 인프라와 수련 체계도 미비하다는 우려다.
■공론화위원회 의료계에 불리…새 전략 필요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기 어려워 보이면서, 정책의 향방이 국민 판단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참여형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의정 갈등 해결을 선언하면서다.
의대 정원은 의사수급추계위에서 결정되지만 자문·심의 기구인 만큼, 공론화위가 상위 권한을 갖게 되면 결정이 번복될 수도 있다. 의료계 입장에선 수급추계위와 국민을 모두 설득해야 하는 이중의 노력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더욱이 이런 구조 변화가 이뤄진다면 의료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사 부족 문제와 지방 의료공백을 실감하고 있다는 여론이 우세하면서다.
실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병원 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응답자의 63.4%가 병원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89.2%는 이로 인한 환자 안전 저하를 우려했다. 91.8%는 인력 확충 필요성에 공감했다. 또 공공의대 설립(83.1%), 공공병원 의사 부족 및 재정 문제 정부 책임론(83.1%)에도 높은 지지를 보였다.
의료계가 이런 여론을 뒤집기 위해선 단순한 반대 입장을 넘어선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방안이 없다면 여론을 뒤집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공론화위원회 논의가 투명하게 진행될 텐데, 예전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나 자기 입장만 고집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공론화위 결론은 위원들만의 합의로 나는 게 아니라, 논의를 지켜보는 국민이 어떤 주장을 더 타당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갈린다"며 "의료계도 공론의 장에서 얼마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주장만이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내부 통일 중요 "의사들도 감내해야"
의료계 내부 목소리 통일도 중요하다. 지난 2020년 9.4 의정 합의가 힘을 받지 못한 이유는 의료계 내부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인식이다. 당시 이 합의는 의협 회장 탄핵 시도로 이어지는 등 전공의 단체를 비롯한 의료계 내부의 거센 반발을 직면했다.
이는 협상의 정당성과 지속 가능성을 스스로 약화시켰고 결국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데 명분을 제공했다는 것. 의료계 메시지가 외부에서 힘을 받기 위해선 내부 공감대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복지수석전문위원은 "의정 합의 당시 최대집 회장은 협상 파트너로서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지만, 내부 설득에는 실패했다"며 "회원들의 반발과 전공의 단체의 탄핵 시도가 있었고, 그로 인해 합의 이행력이 사라졌다. 내부에서 동의하지 않은 합의는 정치적으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의대생 복귀 선언이 국민에게 의료계가 양보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이런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계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선 의대생·전공의가 특혜가 아닌 부담을 감내한다는 인식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의료계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특혜'라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며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강조해온 전문성의 당위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부족했던 교육과 수련 과정을 모두 감당하려는 노력으로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올 한 해만큼은 이런 힘든 과정을 함께 견디자는 마음으로 후배들을 격려하고, 선배들도 책임 있게 도와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국민이 의료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교육, 수련, 의료의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결국 국가 발전의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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