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룰'이 없었다. '눈치'와 '정치'만 있었다.
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 단체가 약 보름동안 진행하는 수가협상 이야기다.
부대조건은 공급자 단체의 피만 말리는 수단에 불과했고,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는 병원과 의원 챙겨주기에는 '근거'가 없었다.
건강보험 재정 누적흑자 8조원이라는 곳간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라는 벽에 막혀 구경도 못했다.
건보공단은 수가협상 초반부터 작심한 듯 늘어나는 진료비를 억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진료량 연동제'를 전유형에 부대조건으로 던졌다.
연초부터 총진료량 관리에 관심을 보여왔고, 가입자 단체도 부대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던 터라 건보공단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공급자 단체는 보다 완화되긴 했지만 '진료량 연동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총액계약제'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
병원을 제외한 다른 유형은 자체적으로 분석을 해봐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회원 정서를 고려해야만 했다.
부대조건 수용 여부에 따라 수가 인상률은 고작 0.1%가 왔다갔다 한다. 0.1%는 유형에 따라 최소 1백여만원에서 최대 1백억여원 수준이다. 이걸 더 받으려고 공급자 단체와 건보공단은 서로 눈치싸움을 한다.
그러나 결론은 '부대조건' 없음. 그럼에도 치과와 한방을 제외한 병원, 의원, 약국은 작년과 비슷하거나 작년보다 높은 인상률을 받아냈다.
특히 대한병원협회는 진료량 연동제를 비롯해 유형세분화, 회계자료 제출 등 세개의 부대조건과 함께 1.4%라는 낮은 인상률을 제시 받았다.
결론은 부대조건 없이 1.7%(1.8% 인상과 같은 효과) 인상을 얻어냈다. 부대조건도 안받았는데 0.3이라는 숫자는 무슨 근거로 더 얻은 것일까.
병원은 협상 시한인 2일 자정을 넘기고 '협상결렬'을 선언며 수가협상을 비난하는 성명서까지 배포해놓고 가던 발길을 다시 돌려 상상치도 못했던 수치를 받아냈다.
이 같은 의문은 의협과 대한약사회에도 마찬가지다. 양 측은 모두 건보공단으로부터 2.8% 인상률을 제시받았다. 결과는 여기에 각각 0.2%, 0.3%가 더해졌다.
정치적인 '눈치'가 작용했다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과 원격진료 수행에는 병원과 의원의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계산이 들어간다.
건보공단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맡긴 수가협상 연구결과에서 약국은 인상 순위가 1위이였기 때문에 병원과 의원보다는 0.1%라도 더 높아야 한다.
올해 처음 수가협상에 참여했던 의협 이철호 부회장은 "수가협상 구조 자체가 서로 피를 말리는 짓"이라고 표현했다.
단체장 상견례에서 약사회 조찬휘 회장 역시 "수가협상 마지막날은 자정까지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5월 한달은 숨막히는 시간"이라고 묘사했다.
근거도 없이 더해지는 숫자에 '의문'보다 '공감'이 가능한 수가협상은 정말 있을 수 없을까 하는 또다른 의문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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