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모 원장은 최근 처방전을 발행할 때마다 조심스러워 진다. 약국에서 DUR(의약품 처방·조제지원 서비스)을 돌려보고 병용금기 약물이 있으면 전화해 확인하기 때문이다. 대기 환자로 바쁜 상황에서 일일히 병용금기 약물을 확인할 수도 없는 김 원장으로서는 답답한 상황. 약국에서 처방이 잘못내려진 것 아니냐는 전화를 해 올 때마다 김 원장은 환자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이 앞선다.
DUR의 주도권이 약사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기관의 DUR 설치율은 저조한 반면 약국에서의 DUR 설치율은 거의 9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처방전 발행 전에 의료기관이 먼저 병용금기 약물을 점검해야 하지만 도리어 약국이 의원에 처방전을 확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약국 설치율 85%…의원급은 고작 3.1% 그쳐
8일 기준으로 전국 2만여 약국 중 DUR 2차 모듈이 설치된 곳은 대략 1만 8천여 곳. 설치율은 85%선에 이른다.
반면 의원급은 2만 6266개 기관 중 고작 3.1%에 해당하는 816곳만 DUR 모듈을 설치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약국이 모듈 설치 후 DUR 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의원들은 DUR 시행은 커녕 앉아서 전자차트 업체가 모듈을 설치해 주기만 기다리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용금기와 관련, 약국의 확인 전화를 심심찮게 받는다는 게 일선 개원가의 전언이다.
약국-의원 DUR 설치율 차이, 왜?
약국의 DUR 설치율이 높은 이유는 절반에 가까운 약국들이 주로 약사회가 자체 개발한 약국 관리 프로그램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자체 프로그램 'PM2000'에 DUR 모듈 설치를 지난 해 말부터 지원하기 시작해 올 1월 말 전국 설치를 마쳤다.
약사회 자체 프로그램에 DUR 설치가 완료되자 타 전자차트 업체들도 서둘러 약국에 DUR 모듈 설치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약사회의 판단이다.
반면 의원급에서는 전자차트 업체가 모듈 설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질적인 자체 청구 소프트웨어 없이 업체의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하는 의원들에게 DUR 모듈 설치를 미뤄도 업체로서는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DUR 모듈 설치 '안'해주나 '못'해주나?
DUR 대책 TF 소위원회 윤창겸 위원장은 "전자차트 업체가 의료계의 자체 청구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점을 악용, 기술 보완이나 DB 구축 등을 핑계로 설치를 차일 피일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자차트 업체들이 심평원에 설치비 지원을 받기 위해 일부러 설치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원급 청구 소프트웨어 업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A업체가 설치에 나서지 않다 보니 다른 업체들도 그저 눈치를 보며 미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자차트 업체는 "기술 보완 등을 이유로 DUR 설치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A 업체 관계자는 "지원비를 받아내기 위해 설치를 미룬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면서 "다만 안정성 보완을 위해 각종 테스트를 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DUR 시범사업 당시 1차 모듈과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DUR 모듈의 설치가 큰 난이도가 요구되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자차트 업체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조제 중심 DUR, 복병이 기다린다
의원급의 DUR 설치가 늦어지면서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조제 중심의 DUR 확립이다.
약사회는 DUR 2단계 시범 사업부터 전면적인 참여를 선언하며 DUR에 불참 의사를 밝힌 의협과 대조를 이룬 바 있다.
의료계는 약사회가 DUR의 주도권을 쥘 경우 조제 중심 DUR 확립을 통해 의사 처방에 대한 감독권을 획득하고, 이를 근거로 차후 성분명처방의 근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약사회가 성분명 처방의 실현을 위해 DUR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뜻이다.
조제 감독권을 획득해야 하는 의료계로서는 다급한 상황이지만 현재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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