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진료비 삭감과 의학적 임의비급여, 급여 불인정 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의료계가 지난해 말 설립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ational Evidence-based Healthcare Collaborating Agency·원장 허대석)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보면 의학적 근거를 증명하더라도 수가로 인정된다는 보장이 없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18일 서울대 삼성암연구동 이건희홀에서 ‘2009년도 상반기 연구주제 수요조사’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허대석 원장은 “보건의료연구원은 의료행위의 기준을 만드는 입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허 원장은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만 진료현장에서 인정되지 않아 괴리가 심한 의료행위나 요양급여기준 등 의료제도와 관련된 불합리한 사항으로 인해 환자와 의료인이 불편을 겪는 것들이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연구주제”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보건의료연구원은 크게 네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우선 질환별로 사용되는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기술의 임상적 효과나 안전성 및 경제성 등을 포함한 의료기술 분석을 담당한다. 당뇨병환자에게 지속적인 피부하 인슐린 주입의 효과 및 비용효과 분석이 일례다.
또 임상 진료 행위, 패턴, 질 평가를 통해 사망률과 생존율, 삶의 질, 만족도 등을 분석하는 성과 평가도 주요한 업무다. 예를 들면 자궁근종 완전적출 수술과 일부 수술을 받은 환자간 삶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책적으로 필요한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기술의 임상효과를 비교분석하는 실용임상연구나 연구성과를 확산시키는 것 역시 보건의료연구원의 몫이다.
이날 보건의료연구원 설립 이후 처음으로 열린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은 보건의료연우원의 향우 활동에 상당한 관심을 드러냈다.
한 참석자는 “임상연구를 거쳐 과학적 근거가 입증되면 그 결과를 가지고 어떻게 정부와 보험자를 설득할 것인지, 근거가 있는 의료를 제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는지 궁금하다”면서 “근거가 축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허대석 원장은 “영국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연구원과 비슷한 NICE가 의학적 근거를 마련하면 NHS(National Health Services)에서 반드시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어떤 형태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임상 가이드라인을 설정한다 하더라도 수가와 연계되지 않으면 의료계의 원성만 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자 보건의료연구원 측은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수가와 연동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근거가 만들어지면 심평원이 활용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심평원과의 기능 중복을 우려하기도 했으며,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통제해야 한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서울대병원 모교수는 “조직검사 한번이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엑스레이나 CT 검사를 남발하는 관행이 있다”며 비용효과적 의료 정착의 필요성을 주문하고 나섰다.
허 원장은 “검사가 너무 범람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영국의 NICE의 경우 위암수술후 몇 달에 한번 외래진료를 받는 게 바람직한지 그 자체도 연구 대상”이라고 소개했다.
병협 참석자는 “심평원은 연간 3700억원 이상을 삭감하고 있는데 보건의료연구원은 차별화해 달라”면서 “과도한 다빈도 상병 의약품만 적절히 통제해도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편 보건의료연구원은 당초 13일까지 마감예정이던 대국민 연구주제 제안 접수기간을 28일까지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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