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학습 기반 영상 판독, 자연어 처리 기술을 이용한 진료 기록 분석,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의료계에서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일부 전문과목에서는 이미 숙련된 전문의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이며, 향후 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2025년 창간기획 특별 좌담회를 열고, 의료 인공지능의 임상 적용 가능성과 한계 및 제도적 과제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이 날 좌담회는 일산백병원 신성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서울성모병원 최준일 영상의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 "아직은 도입 초기"…의료계, 생성형 AI 실용성 탐색 본격화
이 날 모인 의료전문가들은 임상현장에서 AI는 아직 활용도가 낮지만, 향후 급격하게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일산백병원 신성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대학 교수 입장에서 인공지능 사용영역은 진단과 연구로 나눌 수 있는데, 연구할 때 논문이나 데이터 분석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가장 도움이 되는 분야 중 하나가 영상의학과나 병리과에서 주로 진행하는 '판독'인데, 진단검사의학과에서도 골수 판독 등 분야에서 사용 가능하다"며 "또한 진단검사의학과는 종합 검증 후 레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데 만약 AI로 대체된다면 결과물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은 기술의 완성도나 실효성, 경제성 등을 따져봤을 때 병원이 쉽게 도입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
신성환 교수는 "학회에서 AI 업체가 본인들의 제품을 홍보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현재 단계에서는 애매한 면이 많다"며 "아직 의료현장에 보급되는 AI를 제대로 평가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현재로서는 업체가 제품을 홍보하면 전문의 입장에서 데모버전을 사용하고 체험해 보는 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AI 도입 후 의사의 업무능률이 2배 이상 오른다면 병원에 구매를 요청할 수 있지만 현재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아직까지는 큰 도움을 받기 어렵지만 관건은 향후 얼마나 빠르게 발전할 것이냐고 본다. 지금 발전 속도로 봐서는 굉장히 이른 시일 내 AI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은 최근 개발되는 AI는 과거와 달리 개인의 필요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박진식 이사장은 "루닛의 맘모그래피나 뷰노의 딥카스 등 기존의 AI는 정해진 의료 데이터를 대량으로 학습해 특정 질환을 진단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수준이었다"며 "기업이 상업적으로 개발한 제품을 병원이 구입해서 쓰는 방식으로 병원이 자체 개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챗GPT 등 생성형 AI는 일상적이고 복잡한 판단이나 문서 작성에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 병원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우리 병원에서는 환자 사망 사례를 분석할 때 AI를 활용하고 있다"며 "특정 환자가 기존에 고위험군이었는지, 예측하지 못했는데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인지 등을 분석해 환자안전 강화에 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한 고객경험관리실은 AI에 미리 VOC 중요도 판단 기준을 입력하고 이에 맞게 점수를 매겨 쉽게 분류하고 있다"며 "매번 같은 답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는 사람도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개발된 프로그램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며 "과거에는 병원 차원에서 AI 도입 여부를 결정했다면 현재는 직원 개개인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최준일 영상의학과 교수는 "기존 AI는 엑스레이에서 이상 부위에 표시하고 확률 수치를 제시하는 등 정형화된 기능만 수행하고 진단은 의료진의 영역이었다"라며 "하지만 생성형 AI는 직접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복잡한 판단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단순한 이미지 분석을 넘어 의학적 설명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AI 진보가 체감된다고 강조했다.
최준일 교수는 "향후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들이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병원에서는 기본적 문서 작업 자동화나 진료 보조 설명 생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영상의학과는 판독에서 자연어로 작성된 소견서를 구조화된 리포트로 바꾸는 작업에 생성형 AI(Large Language Model)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AI와 사람이 각각 잘하는 분야를 나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의료진 입장에서는 연구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다. 논문 초안 작성이나 문헌 정리, 연구 아이디어 정리 등에 유용하다. 의대 교수뿐 아니라 공대, 인문계 등 전 분야 연구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불신에서 공감대로…AI 수용하는 의료계
AI 기술이 의료현장에 도입되던 초창기에는, 이에 대한 의료진의 거부감 또한 상당했다.
서울성모병원 최준일 교수는 "AI 개발 초창기에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불신 및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부감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안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아직 유용한 AI가 부족하다는 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조금씩 시도해 보는 흐름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영상의학과는 인력이 워낙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해 기존에 100명 보던 환자를 200명까지 볼 수 있게 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또한 AI 도입에 대한 거부감에 공감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 재조정은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구조적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AI에 대한 의료진의 거부감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내 자리를 위협하는 기술을 스스로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라며 "하지만 AI 도입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개발된 AI 솔루션을 받아들이기만 하다가는 국내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AI 산업 자체를 국내에서 육성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의료인이 대체되는 게 아니라, AI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새 역할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산백병원 신성환 교수는 "과거 FTA나 농수산물 시장 오픈 등 모두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AI도 비슷한 문제"라며 "누군가는 당연히 반감이 들겠지만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으면 점점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1차의료, 경증 예진 자동화로 '내원 감소' 현실화
의료진들은 '1차의료'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 예상했다. 경증일수록 AI의 예진 기능이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은 "인공지능 도입으로 1차 의료부터 변화할 가능성 높다"며 "1차의료는 환자 입장에서 병원을 가야 하는지,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은데 AI가 사전 판단을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CTTP 기반 예진 프로그램을 실제 응급실에서 시범 운영 중인데, 환자의 증상만 입력하면 AI가 매우 정확하게 진단과 처치 방향을 제안해 준다"며 "같은 흉통 환자라도 집에서 지켜봐도 될지, 심근경색이 의심돼 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한지. 실제 의사 판단과 거의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들이 AI 예진과 실제 병원 진료 결과와 유사하다는 것을 경험하면 스스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향후 2~3년 내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날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 분야는 어려운 수술이나 항암제 처방 등 부작용이 많은 상급종합병원 영역"이라며 "부작용이 적을수록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 일차의료부터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이러한 AI 발전은 의사 인력 수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
박진식 이사장은 "AI 기반 진찰 시스템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구현된다면, 전체 의료진 중 10% 정도는 없어도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중환자실 등 고난이도 진료 역시 모니터링·판단·투약 결정 등에 있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의료 업무가 자동화되고 의료진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세종병원은 이미 병실·중환자실 위험도 모니터링을 시스템화해 운영 중"이라며 "하지만 오히려 AI 경보를 통해 더 이른 시점에 의료진이 환자를 확인하고 더 자주 현장에 올라가야 해서 인력 감축은 없었다"고 말했다.
영상의학과 최준일 교수 또한 "의료기관에 내원하는 횟수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AI가 처방까지 할 수 없으므로 의료기관은 계속해서 존재하지만,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내원 횟수가 많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준일 교수는 "영상의학과나 진단검사의학과 등 환자 비대면 중심 과들은 AI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지만 기초 진단검사는 특정 증상이 나타나 시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발달한다고 횟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AI가 경증질환 초기상담 등 일차의료를 선별 및 분류하면 불필요한 병원 방문이 줄어들 수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병원 방문 빈도 자체가 높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의미 있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개원과 관련해서는 감기 등 1차진료는 어느 정도 영향 있을 수 있지만, 현재는 피부나 미용, 성형 등이 강세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일산색병원 신성환 교수는 AI 기술 발전에 따라 분야별로 의사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어떤 분야는 의사가 더 필요해지고, 어떤 분야는 필요성이 낮아질 것"이라며 "기존에도 의사 수는 많은데 필요한 분야에 없다는 문제가 계속됐는데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이유로 의대증원을 시도했는데 필수진료를 기피하는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단순 인력 증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책 실패라는 점을 보여줬다"며 "향후 더 큰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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