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 &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공동기획]
장기 기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전히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선 현장의 의료진들이 경험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장기 기증 인식률을 높이고, 이를 촉진하는 공동기획 시리즈 ‘오늘, 장기이식병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8회] 기억의 벽,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
양현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Wall of Remembrance’, ‘기억의 벽’을 아시나요? 이 벽은 사회적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장소로, 많은 이들의 눈물과 기억이 담겨 있는 공간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할 때 우리는 이런 추모의 공간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그 벽 앞에서 유족들이 슬픔 속에 추모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비극적인 희생이 남긴 상처와 그들의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억의 공간은 단순히 슬픔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희생을 통해 남아있는 이들이 삶과 의미를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합니다.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기념 공원의 추모의 벽이나 순직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을 기리는 추모의 벽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는 단순한 애도가 아닌, 우리의 현재 삶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미래를 더 밝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은평성모병원에도 특별한 기억의 벽이 있습니다. 병원의 G층에 위치한 장기이식병원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에서 바로 만나게 되는 ‘Wall of Remembrance’는, 은평성모병원에서 장기기증을 통해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며 그들이 남긴 생명 나눔의 정신을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이 벽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그들의 희생으로 이어진 새로운 삶을 떠올리게 하고 장기기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간을 담당하는 소화기내과 의사로, 제 환자들 중에는 간이식이 절실히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 기증자를 기다리며 이식 순위와 점수만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끔 진료가 끝난 후 이 기억의 벽 앞에 서면, 벽에 새겨진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보며 깊은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분들이 단순히 기증자가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가 기다리던 것은 그저 한 사람의 ‘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였고, 남편이었으며, 딸이고, 아들이었던 사람의 희생이라는 사실이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한 사람의 장기기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이어지고, 그 희생이 또 다른 인생에 새로운 미래로 이어진 것이지요. 기억의 벽은 이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는 시간을 일깨워 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장기기증은 단순히 의학적 이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을 의미 있게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장기기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이들에게 그 희생은 단순한 기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미래입니다. 은평성모병원의 기억의 벽은 바로 그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순간, 실제로 기억의 벽 앞에 서서 또는 기억의 벽 앞에 서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어지는 경험을 통해 장기기증의 생명 나눔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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