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직업은 의사다.
하지만 아침마다 찾아가는 곳은 병의원이 아닌 구치소다. 수 차례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두꺼운 철창문을 지나서야 그의 진료실이 나온다.
14년간 '구치소 주치의'로 지내온 그는 최근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명예를 얻었다. 서울남부구치소의 터주대감 이학용 의료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를 만나기로 한 10월 28일 아침, 서울남부구치소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천왕역 인근에 있다는 말만 듣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모른다"였다.
그 연유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구치소를 찾아가 보니 머리속의 이미지와는 사뭇 딴판이었다. 얼핏보면 넓은 공원 위에 조성된 연수원을 연상시킨다.
이학용 의료과장은 "택배 기사들도 이 앞에서 종종 헤매곤 한다"면서 "설마 여기가 구치소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웃어보였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 허가가 나자 그를 따라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른 철창문을 두어곳 더 지나는 사이 교도관과 수용자들을 보고 나서야 이곳이 구치소라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얀 복도 끝에서 방사선실과 원격진료실, 조제실 등이 모인 진료 공간이 나타났다.
일반인뿐 아니라 기자에게도 낯선 공간. 이 과장이 병의원을 버리고 구치소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의대생 시절부터 공공의료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공의료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죠. 처음엔 보건소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구치소 지원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는 1998년 8월 지원해 벌써 14년 동안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보건소나 구치소나 장소만 다를 뿐 공공의료의 역할에서는 기능이 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군항공의료원에서 군의관으로 전역한 그였지만 처음 구치소에 왔을 때는 말 못할 고충도 많았다. 봉직의 등 그간 지내면서 경험한 진료 공간과 구치소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기 때문이다.
격리된 공간에서 수용자를 진료한다는 특수성뿐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 급작스런 응급 전화와 짠 급여 등이 어깨를 짓눌렀다.
"병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의사의 지시에 대부분 순응 합니다. 하지만 수용자들 중 몇몇은 왜 약을 안주느냐, 아픈데 밖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식으로 꾀병을 부리곤 합니다. 그럴 땐 세금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1600명이 수용된 구치소에서 약 복용자 비율은 30% 정도. 과다 처방이 아니냐고 묻자 "수용자들의 얼토당토 않는 요구를 막아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용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수십번이나 고소, 고발을 당했다는 것. 지금도 3~4건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직무유기라고 고발을 당해도 소신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수용자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지요. 그들을 말로 설득하는 것도 교정, 교화의 일부입니다. 구치소 의사들은 '치료'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정'도 하고 있는 셈이죠."
10월 26일 제67주년 교정의 날 기념 행사에서 이학용 과장이 대통령 표창을 받고 있다.
구치소의 진료는 보건소와 마찬가지로 예방의학적 측면에서 특수한 기능과 역할을 가진다는 뜻이다.
구치소 진료를 통해 정신·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의 수용자를 배출하면 수용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힘든 일도 있지만 보람도 크다. 그에 말을 빌리자면 보람 때문에 정년까지 딴 생각 안하고 이 일만을 하겠단다.
기자가 찾은 날도 좋은 소식이 들렸다. 과거 만성신부전으로 고생을 했던 수용자가 감사 편지를 보내왔던 것. 크리스마스 등에 날아오는 카드 한장, 전화 한통이 그에겐 활력소다.
지난 26일 제67주년 교정의 날 기념 행사에서 주인공은 이학용 과장이 됐다.
14년간 구치소 터줏대감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
그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돌렸다.
"그간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의사라고 해도 구치소에서 일한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믿고 지지해준 아내와 딸 덕분에 살다보니 이렇게 좋은 일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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