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생존에 영향을 받으면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료는 본질적으로 윤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고윤석 회장
한국의료윤리학회 고윤석 회장(55·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은 '의료인-제약산업 관계 윤리지침'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면서 환자와 의사의 신뢰 구축을 위해 윤리가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의료계는 의약분업 이후 공공의 신뢰를 얻어나가는 과정이 성공적이지 못해 끊임없이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다가 결국 쌍벌제가 만들어졌다"면서 "공공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의료인의 자기정화, 자기제어 노력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정부는 약품비 구성의 많은 부분이 리베이트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의사들이 왜 리베이트를 받는가에 대한 고민 없이 제재방안을 마련했다.
이 때문에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고, 이는 환자와 의사관계에서의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환자는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지출한다.
의사들은 환자의 신뢰를 얻지 못해 수익에 타격을 받게 되고, 리베이트처럼 다른 곳에서 이익을 얻으려 하게 된다. 결국 의료비용은 더 증가하게 되고 정부는 의사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또다른 제재나 법안을 만든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료윤리학회는 작년 3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의사와 제약사간 관계 윤리지침(안)'을 만들어 공청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의료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수가 인상인데 이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제도적인 부분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의료인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행동규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 회장은 그동안 제약사, 의료기기업체가 의료인 교육에 기여한 게 전혀 없다고 무시하는 것은 안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학술대회에 세계적 석학을 초대하거나 장소를 빌리는 등의 비용을 학회가 전액 부담했다면 우리나라 의학 발전은 늦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와 제약의 상호협조 관계를 국가가 절대로 경시해서는 안된다. 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의료를 무조건 제어하려고 하면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가게 된다"면서 "어떤 수준에서 서로 합의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의료인은 자정 노력을 계속하고 의료집단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형병원에는 병원윤리위원회,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이해상충위원회 등 윤리 관련 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그 위상은 바닥이다.
고윤석 회장은 병원 차원에서도 윤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형병원도 윤리경영에 중점을 두지 않으면 병원 신뢰가 손상된다"며 "사회에서 요구가 커지면 병원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기관윤리가 강화되면 구성원 윤리는 더 강화된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의료윤리학회가 만든 지침안은 지난 19일에 이어 9월 22일 2차 공청회에서 의견 수렴을 거쳐 확정된다.
또한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한국제약협회,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에 지침 수용 여부를 물어 공동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확정된 지침은 각 의과대학, 학회에서 하는 전공의 교육, 의협에서 하는 교육을 통해 홍보하고 각 의료기관에 배포될 계획이다.
고 회장은 "의료환경이 더 나아지면 지금 만들어진 것보다 더 엄격한 윤리지침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면서 "의료인은 자정 노력을 통해 환자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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