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시행된 의약분업이 올해로 10년이 됐다. 5차에 걸친 의료계의 파업 등 우여곡절 속에 시작된 의약분업의 여파는 아직도 한국의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전히 의약분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며, 의정간에 생긴 감정의 골은 한국의료의 발전을 위한 소통을 막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10년이 된 의약분업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한국의료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의약분업은 한국의료 패러다임 전환 (2) 의약분업 문제점과 정당한 평가
(3) 한국의료, 다시 출발점에 서다
의약분업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료는 큰 변화 혹은 위기를 맞고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는 급격히 늘고 있으며, 의료전달체계는 급속히 무너져 의료기관간 역할 구분이 모호해졌다. 의약분업의 핵심정책이었던 실거래가상환제는 리베이트 파고를 넘지 못한 채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한국의료의 변화가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는 내리기 힘들다. 고령화와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 이용의 증가 등 다른 변수로부터 의약분업 효과만을 온전히 분리해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약분업 정책효과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 진보-보수사이의 논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건강보험 진료비 급증…의약분업 도입 탓?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 진료비는 매년 급격하게 상승한다.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액은 10년간 205%가 증가했는데, 2000년 12조 9122억원에서 2009년 39조 3390억원으로 늘었다. 또한 요양급여비용 중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1년 23.46%에서 2009년 29.56%까지 확대됐다.
특히 병원급 이상에서는 병원(요양병원 포함)의 급여비가 350.8% 증가한 것을 비롯해 상급종합병원 165.1%, 종합병원 153.1% 등의 상승세를 보이면서 사실상 분업 이후 급여비 증가를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의원급 요양기관의 경우 분업 이후 급여비가 53.7% 상승하는데 그쳐 전체 요양기관 종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약국 역시 134%로 전체 평균을 소폭 상회하는데 그쳤다.
건국대 김원식 교수는 "의약분업 이후 고가약 처방이 증가하였고, 약제비 증가요인은 높은 수준의 조제기술료부분 추가와 의약품의 가격인하 구조나 유인이 없는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의료계는 의약분업 이후 2000~2009년 사이 약사 조제료만 18조4324억원을 부담했다는 점이 건강보험 재정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요인을 설명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김충환 과장은 "노인인구 및 만성질환자의 증가, 보장성 확대 등으로 의약품 사용량이 증가한 측면이 있다"면서 "10년간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건강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병원 이용량이 늘어난 요인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70세 이상 노인 1인당 월 진료비는 2000년 6만2569원에서 2009년 23만3055원으로 272.5%나 증가했다. 시민단체들은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에 대한 대한 수차례의 수가인상이 건보재정의 급증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항생제 처방률·약사 임의조제 감소했나
이러한 논란은 항생제 처방률과 약사의 임의조제를 두고도 이어지고 있다.
먼저 복지부에서 내놓은 자료들은 항생제 처방이 줄었다는 것이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국에서 전체 항생제의 48.7%가 소비됐지만 의약분업으로 이를 차단해 전체 항생제 사용량이 약 30% 감소했다.
항생제 처방률 역시 2000년 54.7%,에서 209년 30.85%까지 줄어들었다. 주사제와 스테로이드제, 다제처방 등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복지부 방혜자 사무관은 "정부는 항생제 처방 감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면서 "다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편이어서 지속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의대 이윤성 교수는 "약국에서 무분별하게 처방되던 항생제가 의사 처방에만 의존하게 되니 항생제 처방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반면 의료계는 항생제 생산실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2000년 국내 항생제 생산실적은 9093억원이었지만 2007년 1조2848억원까지 늘었다며 항생제 처방이 줄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사협회 송우철 이사는 "항생제 처방 건수가 굉장히 많이 줄었는데, 항생제 생산도 줄었어야 하는데 데이터상에 불일치가 있다"면서 "의약사가 동의할 만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의조제에 있어서도 의료계는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8년 보사연의 '의약분업 종합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마련을 위한 연구'에서는 약사들의 24%가 임의조제를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의협은 대체조제 건수가 2002년 8582건이었지만, 2007년 15만6678건으로 5년새 18배나 급증한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실상 실패작이 된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
반면 의약분업의 한 축이었던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는 제도적 한계를 뚜렷이 드러내며 의약품 마진을 사실상 인정하는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의약품 처방·투약에 따른 경제적 이윤동기를 제도적으로 배제하려던 실거래가 상환제제도는 상한금액에 의한 거래관행이 형성되면서 의료비 절감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요양기관이 상한금액보다 싸게 구매할 이유가 없고, 제약사 입장에서 현행 상한가를 유지시키려는 강력한 동기가 존재하다보니 할인, 할증 이면계약 등 강력한 동기가 존재한 것이다.
전체 의료기관의 실거래 신고가격은 상한가의 99.5%에 이르고 있으며, 실거래가 조정실적 역시 06~08년 177억 연평균 0.66%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나 의료계는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책의 한계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실거래가제는 약가마진을 인정하지 않아 음성적 리베이트 등의 문제가 양상된고 있으며, 의약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유인동기가 배제돼 약제비 절감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고시가 상환제도로의 회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실거래가상환제를 유지하기 위한 실거래가 조사에 손을 놓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의사간 빈부격차 심화
한편 의약분업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일차의료기관의 위축과 대형병원의 성장이다. 의약분업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정부가 의약분업 이후 서둘러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나서지 않아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평가다.
의약분업 파업사태가 어느정도 마무리된 2001년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 중에서 13.1%를 차지했으나 2009년에는 15.9%까지 점유율을 늘렸다. 종합병원의 경우 12.6%에서 14.3%로 늘었고 병원은 6.0%에서 12.2%로 약 2배 이상 진료비 점유율이 확대됐다.
특히 병원들의 경우 외래환자 급증이 진료비 점유율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의원은 2001년 전체 진료비 중 차지하는 비율이 32.9%에 이르렀으나 2009년에는 22.8%로 급감했으며 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의사들의 삶도 점점 더 고달파지고 있다. 의료계에도 '부익부 빈인빅' 개념이 본격화되고 있다.
2009년 진료비를 균등하게 4등분한 결과, 상위 6%에 해당하는 1666곳의 의원급 의료기관의 총 진료비가 하위 58%인 1만5808곳 의원의 진료비와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격차는 의료기관의 폐업, 의사의 자살 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문제로까지 주목받게 됐다.
국민-의약사-정부 신뢰관계 회복 불투명
의약분업이라는 파고를 거치면서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관계는 완전히 무너져 내린 뒤,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의정간의 신뢰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정책에 의료계는 대부분 반대로 일관하고 있고, 정부도 의료계를 비판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
한 개원의사는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관계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고, 의사는 환자를 기계적으로 대하는 슬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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