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진료 페러다임 변화와 걸림돌
의약분업 이후 의료기관들은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절경영, 원스톱진료 등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환자들은 ‘3시간 대기, 3분 진료’로 고통받고 있으며 병원에 대한 불신도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진료분야가 점점 세분화되면서 의사도, 환자도 고립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새로운 대안진료가 무엇인지 집중취재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3세대 환자 중심의 진료 상륙
<중>의료의 질 발목잡는 건강보험
<하>불가능 딛고 세계 최고를 향해
“하루가 다르게 새 치료법이 개발되고, 진료과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전공이 세분화되면서 종양내과 의사인 나도 폐암 항암치료 외에는 잘 모른다. 암은 단칼에 완치가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의료환경에서 대안은 통합진료 밖에 없다”
서울아산병원 이정신 진료부원장의 말이다.
그의 통합진료 예찬론은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통합진료를 하면 다른 과 동료의사들에게 치료계획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의사에게는 새로운 페러다임이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면서 “이를 통해 환자는 검증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통합진료는 의료 발전과 환자 위한 최선책"
서울아산병원 박승일(흉부외과) 교수는 통합진료야 말로 진정한 원스톱진료라고 단언했다.
그는 “환자가 어느 과에서 처음 진료를 받느냐에 따라 치료방향이 결정되거나 방사선종양학과에 갔다가 종양내과 등으로 뺑뺑이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폐암 환자가 여러 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흉부외과, 호흡기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 등 관련 진료과 의사들이 한꺼번에 모여 병기에 맞는 치료법을 모색하고, 검증된 최상의 치료를 제공하는 게 원스톱진료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게 의료 발전을 위해서도,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게 박 교수의 일관된 견해다.
이는 서울아산병원 통합진료팀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교수가 아니더라도 많은 대학병원 교수들은 통합진료가 이상적인 환자 중심 진료모델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통합진료는 적어도 우리나라 건강보험 환경에서는 뿌리 내리기 어려운 치명적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진찰료 산정지침에 따르면 동일한 상병에 대해 2인 이상의 의사가 동일한 날에 진찰을 한 경우 진찰료는 1회만 인정된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폐암1팀은 매주 화요일 오후 3시 15분부터 호흡기내과, 종양내과,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교수 5명이 한꺼번에 진료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진찰료는 1회 밖에 청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병원은 통합진료 환자 1명을 볼 때마다 진찰료 4개를 포기해야 한다.
반면 통합진료를 하지 않고 다른 의료기관처럼 환자들을 뺑뺑이 돌게 하면 진찰료를 모두 청구할 수 있다.
암환자들이 수차례 내원해야 하는 번거러움과 고통을 덜어주고, 최선의 치료방침을 정하기 위해 어렵게 통합진료를 정착시켜가고 있지만 건강보험 수가는 환자들이 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를 왔다 갔다 해야 정상 진료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러 과 교수들의 의견을 종합할 필요가 있는 암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통합진료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가체계의 개선이 시급하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에 구성된 대장암 4개팀, 폐암 2개팀, 비뇨기암 2개팀, 식도암 1개팀, 유방암 1개팀, GIST 1개팀이 모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감수하고 있다.
통합진료를 하는 의료기관 입장에서 보면 손실은 외래 진찰료 수입만이 아니다.
의사 1명이 단독진료를 할 때 시간당 10명을 진료한다면 통합진료는 1~2명 이상 볼 수가 없다.
혼자 진단, 치료방향을 결정하지 않고 여러 과 교수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이견을 조율하다보면 3배, 4배의 시간이 소요되는 건 당연하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지난 한해 위암팀 268명, 폐암팀 250명, 대장암팀 171명 등 모두 848명을 통합진료했다.
대형병원에 암환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통합진료를 하지 않고 단독진료를 했다면 8천명도 진료할 수 있지만 이상적 진료모델 구축을 위해 고스란히 포기한 것인데 진찰료조차 청구할 수 없는 현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환자 중심 진료 정착 위해 통합진료수가 인정 시급
이 때문에 환자 중심의 의료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통합진료수가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정신 진료부원장은 “통합진료를 받는 환자 입장에서 보면 5번 내원해야 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면서 “적어도 진료에 참여한 의사들의 진찰료는 모두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승일 교수도 “병원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자선단체는 아니다”면서 “진료한 만큼 수가를 보존해줘도 병원에 이익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정부가 통합진료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진료에 대해서는 국립암센터도 할 말이 많다.
국립암센터는 개원 직후부터 위암, 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특수암 등 암 종류별 센터화를 실현, 국내 협진시스템을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국립암센터 역시 통합진료를 이상적 모델로 설정하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것은 수가와 관련이 있다.
국립암센터의 한 의료진은 “암환자 한명을 두고 여러 과 의사들이 같이 진료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면서 “이를 위해 정부와 공단 등에 수차례 수가체계를 개선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수가가 개선되지 않으면 의료진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없다”면서 “환자들이 여러 과를 돌면 진찰료를 다 인정하면서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통합진료를 하겠다는데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통합진료수가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의사들은 돈 밖에 모른다고 한다”면서 “수가가 개선되면 환자들은 그만큼 더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가족부도 통합진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통합진료는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일부 대형병원에서 통합진료를 하고 있지만 확산되지 않는 것은 수가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진료과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과간 벽을 허물고 통합진료가 보편화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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