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오랜 교육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러시아 화가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에서도 의대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밤새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을 보면 시험 전날의 긴박감 속에 흰셔츠 차림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두 학생이 눈에 띈다.
한명은 졸린 잠을 깨우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서 탁자에 기대어 열심히 자료를 보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손위에 있는 두개골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봐서 시험과목은 해부학으로 생각된다. 외투를 입은 다른 학생은 무릎위에 책을 둔채 담배를 피우면서 긴장을 푸는 모습을 하고 있다. 창가에 앉은 다른 한명은 잠시 쉬는 듯 딴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잔뜩 외운 해부학 용어를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풍경은 여전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의학과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단순한 임상의가 아닌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의사과학자는 기초과학과 의학을 융합하여 새로운 의료기술과 치료법을 창출하는 연구자로, 융합적 사고를 배양해야 한다. 임상의사가 이러한 융합적 사고를 배양하기 위해 우리는 의과학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83년 티모시 초크 등이 공동작업한 예술작품은 의학 유전학의 발전과 그에 따른 임상의학 뿐만 아니라 기초학문 및 타학문의 연계를 조명하며, 오늘날 의사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에 대해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유전학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53년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낸 이후, 유전학은 의학의 핵심 분야가 되었다. 유전학적 발전은 정밀의학과 유전자 치료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질병의 원인을 단순히 유전적 요소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환경적 요인과 생활 습관이 질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의사과학자는 유전학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임상 경험과 기초과학적 사고를 결합하여 보다 포괄적인 치료법을 연구해야 한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해도, 그 발현 여부는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유전체 연구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기전 연구, 환경의학, 빅데이터 분석 등의 학문을 융합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학교육이 양적 확대에만 집중되고 있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의료 발전을 이루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양성할 때 그들이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단순한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의사 수를 증가시키는 정책은 의료 환경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사례는 존재한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는 인재 양성에 힘썼지만, 귀족 중심의 경직된 체제 때문에 양성된 인재들이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진나라 등으로 유출되었다. 특히 위나라의 서하학파(西河學派)는 이러한 인재양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하학파는 귀천을 기준으로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전국에서 다투어 서하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당시 위나라는 귀족 중심의 경직된 체제 때문에 이러한 인재들이 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위나라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진나라와 같은 외부 세력으로 유출되었고, 이는 위나라의 국력 쇠퇴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 의료계의 인재 정책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단순한 양적 확대보다, 의료 시스템 내에서 인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이후에 유럽에서 유입된 많은 인재들 덕분에 의료 및 생의학 연구가 급속히 발전했다. 1930~40년대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및 반(反)나치 성향의 과학자들은 미국의 생의학과 임상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록펠러 재단과 같은 기관의 연구 지원은 생리학, 유전학, 면역학 등의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럽 출신 과학자들은 의학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미국 국립보건원이 확장되면서 생의학 연구가 더욱 성장했다. 이는 의료진 양성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연구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료인이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며 의학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 및 필수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된 의대 정원 확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불확실성이 크다.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의료 개혁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선, 배출된 의사들이 사회의 요구에 맞게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이에 맞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가 배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기초의학 실습부터 임상 실습까지 질 높은 교육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전공의 수련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2000명 규모의 의대 정원 확대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의대 교육의 부실화, 수련 병원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의료 불균형 심화, 의사과학자 양성 저하, 필수의료 기피 현상 악화 등이 우려된다. 따라서 단순한 의사 수 증가보다는 의료 시스템의 질적 향상과 인재 양성 전략을 신중하게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는 의료의 미래를 고려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실질적인 의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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