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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대불제도 소송 사실상 의료계 '완패'

박양명
발행날짜: 2020-05-01 05:45:58

대불금 추가 징수에 개원의 800여명 집단 소송 결과 '패'
잇단 패소에도 재도전 "아직 위헌 소송 판결 남았다"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에 문제가 있다며 의료계는 수년 동안 법원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좀처럼 통하지 않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는 개원의 873명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금 대불비 부담액 부과 징수공고 처분 취소 2심 소송에 대해 29일 "원고 항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결과를 유지한 것.

손해배상금 대불 제도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법원 판결 및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요양기관이 제때 지급하지 않을 때 조정중재원이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돌려받는 제도다.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47조 제2항 및 제4항과 같은 법 시행령 제27조 제1~3항을 근거로 하고 있다.

조정중재원은 약34억9000만원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요양기관 개설자에게 손해배상금을 부담토록 하고 있다. 부담 금액은 기관당 최저 3만원에서 최고 600만원 이상이다.

손해배상 대불제도 관련 법조항
이번 소송의 발단은 조정중재원이 제도 초기 마련했던 재원이 바닥났다며 2018년에 다시 개원의 2만9675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금 대불비로 7만9300원을 부과, 징수한데 따른 것이다.

사실상 손해배상 대불금을 둘러싼 의료계와 조정중재원의 2차전인 셈이다.

의료계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던 2012년부터 손해배상 대불제도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적게는 7명, 많게는 30명까지 참여하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산하 시도의사회를 통해 소송 참여자 모집에 나서기도 했다.

2018년 조정중재원이 다시 한번 대불금 징수에 나서자 873명에 달하는 개원의가 소송에 참여했다. 재원 부족에 따른 손해배상 대불금 추가 징수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법률 유보원칙 및 포괄 위임법 금지 원칙에 위배되며 개인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 가능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 환자는 대불제도 당사자임에도 재원 확보 대상에서 정작 배제돼 있어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다.

의협은 "안정적 진료환경에 대한 보장 없이 일방 당사자에게만 대불비 부담 의무를 지우는 것은 법 적용의 형평성에 어긋나고 과실책임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귀책사유를 불문하고 보건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납부토록 하는 것은 헌법상 자기책임 원리에도 위반된다"고 덧붙였다.

조정중재원은 재원 고갈을 이유로 2018년 손해배상금 대불비를 추가 징수했다.
법원도, 헌법재판소도 조정중재원 손 들어줘

결과는 의료계의 '완패'.

2012년 제기한 소송에서도, 2018년 다시 이뤄진 법적 다툼에서도 법원은 조정중재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 자체에 공감하고 있었다. 의료기관 개설자라면 누구나 의료사고 발생과 경제사정 악화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고 대불제도는 모든 개설자 사이에서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발생 후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기관 운영이 곤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손해배상 대불금 징수 시점으로부터 1개월 이전에 추후 구체적인 부담액이 공고될 것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없어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전했다.

헌법재판소마저 손해배상 대불금 관련 법 조항은 위헌이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초기 재원 마련 이후 추가로 징수할 비용은 결손을 보충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라며 "보건의료기관 개설자에 대해 대불비 부담금을 시행 초기와 같은 정도의 금액으로 정기적, 장기적으로 징수할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의료행위 절대량이 많은 의료기관일수록 제도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대불비 부과 산정기준은 의료행위 위험성과 절대량이 주로 고려될 것"이라고 판시했다.

잇단 패소에도 남아있는 희망은 2차 위헌 소송

의료계가 법적 다툼에서 거듭 지고 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2018년 의협이 다시 제기한 위헌 소송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헌 소송에는 241명의 개원의가 참여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3년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조정중재원이 '정기적·장기적'으로 부담금을 징수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협은 여기에서 위헌의 이유를 찾고 있다. 현시점에서 해당 규정의 위헌성을 다시 다퉈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조정중재원 차원에서도 제도 검토 의지를 갖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를 시행한지 7년째 접어든데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의료계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조정중재원은 약 5900만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손해배상금 대불사업의 효율적 운영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제도 초기부터 지적했던 문제가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라며 "앞으로 추가 징수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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