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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자격시험장에 남아 족보 만들던 의사 '불합격'

박양명
발행날짜: 2017-01-30 05:00:58

의학회 "시험 유출은 부정행위, 응시자격 2년 제한"…법원 '적법'

시험이 끝난 후 그 자리에 남아 시험에 뭐가 나왔는지 기억해서 적고 있다면, 이는 부정행위일까?

법원은 "그렇다"고 했다.

지난해 제 59회 1차 전문의 자격시험 결과 병리과는 30명 중 28명만이 합격했다. 불합격자 2명 중 한 사람인 A씨는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2년간은 전문의 자격시험을 볼 수 없다.

A씨가 한 부정행위는 시험문제 유출.

병리과 필기시험은 총 2교시로 이뤄진다. 1교시와 2교시 사이에는 30분의 쉬는 시간이 있다.

A씨는 시험이 모두 끝난 뒤 시험문제를 기억해 내 백지에 적고 있었다. 1교시가 끝나고도 시험문제 복기를 했고, 2교시가 끝난 후에도 제자리에 남아 복기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게 된 시험감독관은 A씨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 한참 시험문제를 기억해내고 있는 A씨를 시험본부로 데리고 가 자술서를 받았다.

A씨에 따르면 당시 병리과 전공의 30명은 시험문제를 복원해 후배 전공의에게 전달하려고 각자 암기할 문제를 할당했다. 소위 '족보'를 만들기로 한 것. A씨는 자신 몫의 시험문제를 복원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전문의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대한의학회는 의사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5조 7호를 적용해 불합격 처분을 내렸다. 5조 7호는 문제(지)의 일부나 전부를 유출하는 행위를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의사전문의자격시험 부정행위자 처리지침 3조에서 말하는 부정행위는 전문의 시험과 관련해 응시자 자신의 실력 이외 타인의 도움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을 이용해 공정한 시험 평가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의학회는 시험장 칠판과 OMR 카드 등에도 수험자 유의사항으로 '문제(지)의 일부나 전부를 유출하는 행위를 부정행위 처리 대상'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자료사진
A씨는 앞으로 2년 동안 전문의 자격을 딸 수 없다는 게 억울하다며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시험지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게 아니라 시험이 끝난 후 기억에 의존해서 적었고 우연히 옮겨 적은 장소가 시험이 끝난 시험장이었을 뿐"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시험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복기하는 행위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이전에는 시험지 자체를 유출했던 것과 비교해 비난의 정도가 훨씬 경미하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까지 3년 이상 늦어지는 불이익은 크다"고 호소했다.

과거 대한의학회가 부정행위를 한 응시자에게 불합격 처분 및 응시자격 2년 제한의 처분을 내렸던 경우는 두 번이다.

구체적으로 2006년 시험이 끝난 후 문제지 및 답안지 제출 요구에 불응한 경우, 2008년 시험 종료 후 문제지를 내지 않고 외부로 유출했을 때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마저도 A씨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고 상고를 포기했다.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재판장 이균용)는 "할당 받은 문제를 복원하기 위해 시험 직후 기억한 문제를 백지에 적는 것은 시험문제 일부를 유출할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시험장을 벗어난 후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복원, 유출하는 행위도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면 원칙적으로 부정행위에 해당한다"며 "적발이 어려워 규정에 따라 규제 대상이 된 예가 없었던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기출 문제의 공개 및 유출이 금지돼 있는 시험에서 문제를 복원해 소위 족보를 만들어 다음 응시생에게 배포하는 것은 시험의 공정성을 심히 훼손하는 일"이라며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자들이 관행적, 조직적으로 문제를 유출하고 있었으므로 문제 유출 행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도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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