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순비대칭증 수술 환자에게 마취제를 과다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산부인과 의사가 6년여간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이 때문에 이 의사는 3억 4천여만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건의 경위
소음순비대칭증이 있던 J씨(당시 23세)가 P산부인과의원을 방문한 것은 2004년 2월.
산부인과 P원장은 그 다음날 소음순절제수술에 들어갔다.
P원장은 우선 환자에게 마취를 하기 전 항생제 과민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피부반응 검사를 한 후 특이사항이 없자 H간호조무사에게 향정신성 의약품인 도미컴 5cc와 프로포폴 12cc를 잇따라 정맥주사하게 했다.
P원장은 마취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움직이자 간호조무사에게 프로포폴 2cc씩 4회 더 정맥 주사하도록 시켰다.
이후 P원장은 소음순을 절제하기 시작했지만 환자가 다시 엉덩이를 움찔하자 수술을 쉽게 하기 위해 간호조무사에게 프로포폴 10cc가 혼합된 생리식염수 100cc를 정맥주사에 연결해 주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환자는 그 직후부터 갑자기 흉복부근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호흡이 정지되더니 맥박산소계측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러자 P원장은 환자에게 3중 기도확보법을 실시했고, 간호조무사는 같은 건물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P원장의 남편 A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119에 신고했다.
A원장은 급히 수술실로 달려와 환자에게 흉부압박을 하고, 두차례에 걸쳐 기관내삽관술을 시도했지만 기관 입구가 잘 보이지 않아 실패했다.
A원장은 10분여 후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앱부배깅(ambu-bagging)을 계속 했다.
C대학병원은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 1시간여 동안 4ℓ 정도의 수액을 투여하고,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자 기관내삽입을 시도해 성공했지만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환자는 2008년 7월 호흡부전으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망인 측 손해배상 청구
환자의 가족들은 J씨가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2006년 10월 P원장과 A원장, H간호조무사를 상대로 9억 6천여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다 건강보험공단은 의사 등의 과실로 인해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보험급여로 1억 1천여만원을 지급했다며 구상금을 청구하고 나섰다.
피고들의 주장
피고들은 수술 직후 망인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한 사실은 있지만 P원장, A원장의 응급조치로 즉시 호흡이 회복됐다고 주장했다.
C대학병원에서 과다한 수액 투여, 무리한 기도삽관, 검사를 위한 환자 이동시 산소공급조치 소홀 등으로 인해 망인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피고들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의 판단
청주지방법원은 2008년 12월 "P원장은 전신마취로 수술을 하면서도 마취전문의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간호조무사에 불과한 H씨로 하여금 프로포폴과 도미컴을 주사하게 하면서 이를 지켜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간호조무사가 마취제를 용법에 맞지 않게 주입하고, 용량을 초과 사용했다고 점도 환기시켰다.
망인에 대한 프로포폴 적정 투여량이 최대 120mg인데 200mg을 투여했고, 도미컴을 프로포폴과 함께 투여할 때에는 적정 투여량인 2~3mg보다 더 적은 양을 2~3분 동안 서서히 주사해야 함에도 5mg을 일시에 투여한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수술중 망인에게 호흡정지가 발생하자 피고 P원장과 이에 개입하게 된 A원장이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잘못으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들은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연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C대학병원에 과실이 있다는 피고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C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새로이 망인에게 폐부종이나 뇌부종이 발생해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망인의 호흡정지가 갑자기 발생해 예상하기가 어려웠고, 다소 많은 양의 마취제를 투여한 잘못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호흡정지에까지 이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피고들의 책임을 60%로 제한, 2억여원을 연대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연대해 공단에 6890만원을 지급할 것도 주문했다.
2심 재판부, 1심 뒤집다
반면 대전고법은 2009년 9월 피고들 중 P원장에게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프로포폴 및 도미컴 과다 투여, 기도 확보 실패 등이 모두 P원장의 의료상 과실이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망인에게 저산소혈증에 의한 뇌손상이 발생함에 있어 C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일부 경합했다 하더라도 P원장은 공동 불법행위자 중 1명으로서 손해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못 박았다.
2심 재판부는 P원장의 책임 범위를 1심 60%에서 70%로 상향해 원고측에 2억 6천여만원을, 공단에 8375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P원장의 남편인 A원장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원장이 망인에게 두차례 기관내삽관술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정만으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H간호조무사가 의료법 위반 또는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H씨는 수술 당시 산부인과 전문의인 P원장의 입회 아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 주사했다"면서 "H씨가 정맥주사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에게 의료법 위반 또는 어떠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도 1990년 5월 의사가 주의의무를 다 한다면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주사케 할 수도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원고 측과 P원장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주목할 점은 대법원이 C대학병원의 과실도 인정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C대학병원 의료진의 수액 과다투여 등 과실도 망인의 뇌손상 및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피력했다.
다만 대법원은 "C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사망에 기여한 바가 훨씬 더 크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이 병원 의료진의 과실만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P원장과 C대학병원 의료진의 행위는 각기 독립해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서로 공동불법행위 관계에 있다"고 분명히 했다.
원고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C대학병원에 대해 대법원이 공동불법행위를 했다고 판단함에 따라 향후 P원장과 C대학병원이 손해배상 범위를 놓고 또다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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