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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쏠림현상 개선하려면

허대석 교수
발행날짜: 2012-01-02 05:00:28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COLUMN#

심평원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의 빅5 병원이 지난 3년간 거둬들인 진료비 총액은 5조 7천억 원으로 이는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 44개소가 청구한 진료비 총액인 16조 6천억 원의 3분의1에 해당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원정 진료로 인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출한 진료비가 2조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2008년부터 10%씩 매년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이렇게 환자가 몰리는 현상은 서울과 지방 사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수도권 병원 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환자 집중현상은 중소병원뿐 아니라 환자가 많은 대형병원에서도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었다. 작년 10월 1일부터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과 가벼운 질환에 대하여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이용 시 약국 본인부담률을 인상했고(약국약제비 차등제도), 만성질환자가 단골의사를 정해 진료를 받을 경우 진찰료 본인부담을 감면해 주는 만성질환관리제(선택의원제)가 금년 4월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리와 같은 환자 쏠림현상이 없는 미국이나 유럽의 제도를 응용할 수는 없을까? 미국의 경우 병원의 등급에 따른 의료비 차이가 매우 커서, 중증질환이 아니라면 엄청난 의료비가 소요되는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진료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제논리가 환자들의 흐름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회보장성 의료를 실시하는 유럽에서는 강제성을 가지는 환자후송체계를 통하여 의사가 내린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의료기관이 결정된다.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영국 런던의 유명 대학병원에서 한국의 대형병원처럼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경우, 의료기술에 대하여 저수가로 보상하고 있고 의료기관 종류에 따른 수가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의해 환자의 흐름이 결정되는 미국방식은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의료기관이 결정되는 사회보장형 의료전달체계(유럽)는 의료기관 선택을 환자가 자유롭게 해왔던 자유방임형 의료전달체계에 익숙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조치로 인식되고 있어 현실적 적용은 불가능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1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상급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제도가 거의 요식적인 행위로 전락한 것은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의 환자들은 왜 서울로 가는가? 환자들은 서울지역 대형병원의 우수한 의료 질 때문에 원정진료에 따르는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방의 의료계 종사자는 환자들의 선입견이 실제 의료의 질보다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심평원이 조사한 의료기관별 중증도 보정 사망비 자료를 살펴보면, 사망률이 높은 21개 병원의 대부분은 지방 소재 병원들이다. 환자들은 의료의 질을 선입견에만 의존하여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환자들이 체감할 만큼 지방 소재 병원과 중소병원들이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실질적인 대책은 의료제도의 기본 틀과 맞물려 있어 몇 가지 제도를 고친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되나,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전략중의 하나는 환자 care 문제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대형병원들이 신의료기술 위주로 발전을 선도해 왔으나, 의료의 본질인 환자care에는 소홀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한 번의 뛰어난 시술로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환자의 경과를 관찰하면서 생활습관을 바꿔주고 약제도 조정해 주어야 하므로, 환자가 자주 쉽게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이 유리하다. 필수의료기술 수준은 수도권 대형병원과 차이가 없으면서 세심한 care까지 할 수 있다면, 거주지 의료기관의 의료의 질이 더 우수하다고 환자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첨단의료기술로 cure시킬 수 있는 질환은 많지 않다. 오히려 제대로 된 care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목 말라 하고 있다는 점을 해결한다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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