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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병원 피해의사에게 찍힌 '범법자' 낙인 지운다

발행날짜: 2014-09-04 05:54:31

의료정의시민연대 결성…"인증병원마저 사무장병원, 정부 책임도 있어"

'사무장병원 피해 의사회원들의 모임(사피모)'이 구성된 지 어느덧 3년째. 최근 사피모를 전신으로 의료정의시민연대(의정연)가 결성됐다.

이들은 억울하게 사무장병원에 취직한 의사들도 도매금으로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로 취급받는 현실이 아쉽다며 인식 개선에 총대를 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가 인증한 기관마저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나타날 정도로 정부 역시 사무장병원 근절과 단속에 책임을 방기한 부분이 있지만 아직도 제도는 의사들만 공공의 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정연에 따르면 초창기 50여명으로 시작한 회원들이 지금은 2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지만 그만큼 피해를 입은 회원들이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의정연을 이끌고 있는 오종배 공동 대표를 만나 사피모가 의정연으로 리뉴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사무장병원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의료정의시민연대가 결성된 이유는?

한달 전에 사피모를 전신으로 의정연을 다시 출범시켰다. '사무장병원 피해 의사회원들의 모임(사피모)'라고 처음 시작을 했지만 인식이 좋지 않았다. 봉직의의 권익을 대변하는 병원의사협의회 이사로서 이런 사태가 전형적인 봉직의 피해사례라는 생각에 나선 부분도 있다. 사무장병원에서 일한 '범죄자'인데 무슨 피해자냐는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다.

이런 인식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입은 회원들까지 덩달아 피해자 모임이라는 말을 꺼리기 시작했다. 범법에 가담한 사람으로 돼 있으니 전면에 나서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할 회원들마저 자꾸 숨어 지내려고 한다.

이름을 바꾸고 재출범한 이유는 간단한다. 이제 피해자라는 말을 빼고 의사를 범법자로 만든 제도 개선에 총대를 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무장병원에 대한 피해보다는 전체적인 제도적인 측면을 이야기 해보려는 것이다.

소속 회원은 200명을 훌쩍 넘겼다. 매년 50명 이상씩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회원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사무장병원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원 수가 늘어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선의의 피해자란 어떤 뜻인가?

사무장병원인줄 인지하지 못하고 봉직의처럼 취직하는 의사들이 있다. 이들은 꿈에도 정말 사무장병원인줄 몰랐다가 나중에 환수 조치 등 뒤통수를 맞는다.

사무장병원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법인인 것처럼 속여 의사를 채용하는 경우 지금 상황에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선의의 피해자도 '범죄자'라는 낙인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몇 십억에 달하는 환수를 받는 경우 인생이 파탄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명확히 사무장과 고용계약을 하지 않은 의사는 선의의 피해자다. 법인인 척 거짓말 하는 곳에 모르고 취직한 의사도 선의의 피해자다. 사무장병원 취직 의사 중 절반 정도는 이런 유형으로 분류된다.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공단 변호사나 서울시의사회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복지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속았을 뿐이고 무지했을 뿐이지 무슨 잘못이 있나. 같은 동료 의사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의 눈총도 너무 서운하다. 일부 의사들 중에는 우리를 일컬어 의료계의 암세포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서럽고 억울할 뿐이다.

구체적인 사례는?

한 회원은 외국 유학 길에 올랐다가 2004년 한국에 들어와 취직을 준비했다.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 좋은 자리가 있어 면접을 보러갔다. 오너였던 산부인과 원장은 "최근 요양병원이 뜨고 있으니 명의만 빌려주면 다른 곳에 하나를 더 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의사에게 명의를 대여해 주는 것이니 불법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면대를 해줬지만 봉직의 개념으로 간 것이다.

봉직의로 1년간 열심히 일한 끝에 지역에서 인기 있는 병원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그러던 중 원하는 대학병원에 자리가 나서 옮기게 되면서 다른 의대 동기를 병원에 소개시켜 주고 나갔다. 새롭게 들어간 의대 동기도 친구가 소개시켜준 병원이고 오너 역시 산부인과 의사인 줄만 알고 취직을 했다.

산부인과 원장은 종종 병원에 들러 원무과 직원에게 호통도 치며 관리에 나섰기 때문에 사무장병원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의대 동기는 그 후 1년을 일하다가 2006년에 나갔다. 문제가 터진 것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3년이었다. 경찰 쪽에서 과거 사무장병원에 취직했으니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두 의대 동기들은 이 전화가 오기 전까지 일했던 곳이 사무장병원인지 몰랐다. 당시엔 의사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것이 불법도 아니었기 때문에 명의 대여가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지만 조사 과정에서 실제 오너가 산부인과 원장이 아니라 다른 원무과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많다. 이런 회원들조차 환수의 연대 책임을 지고 인생이 파탄난다. 정부가 정말 사무장병원을 근절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의사들에게 덤터기를 씌워 일을 수월하게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무장병원 근절책은?

사무장병원은 적발 자체가 어렵다. 적발을 위해 사회적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포상금도 내걸고 경찰 수사도 하지만 허탕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사를 한다고 해서 다 밝히기도 어렵고 정상적인 병원을 조사해서 고생시키는 부분도 있다.

사무장병원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진신고를 활성화하면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지금도 자진신고 제도가 있지만 진료비 환수의 연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진신고를 안 한다. 자진신고를 한 의사의 경우 행정처분 경감해 주면 사무장병원은 바로 근절된다.

공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무장병원이라고 해도 모두 비정상적인 곳은 아니다. 사무장병원에 면허 대여만 한 사람은 별로 없고 봉직의처럼 진료를 하고 봉직의처럼 생활을 한다. 이런 곳에 취직한 의사들도 다른 병원과 차이를 잘 못느낀다고 한다.

화재 참사로 유명했던 모 요양병원도 사무장병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기관조차 적발되기 전까지는 '복지부 지정 전문요양병원'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의사나 환자가 느끼는 차이가 없다. 오너쉽에서만 차이가 난다. 그런데 5년, 10년이 지나서 그 때의 진료비를 다 환수하라고 하는 건 너무한 처사다.

공단은 국민들에게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국가 재정을 축내는 의사들을 잡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나. 정부는 의료를 민간에 맡기고 별다른 투자를 안하다가 나중에 민간 기관에 문제가 있으니까 환수하겠다고 한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덩치가 커진 이후에 사무장병원이 적발되야 그에 상응하는 진료비 환수액이 생기니 밑질 게 없는 장사다.

정부가 정말 사무장병원을 척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의사에게 자진신고를 받아서 행정처분을 면제시켜 주면 바로 사무장병원이 근절된다. 의사들을 속여 병원을 운영한 사무장에게만 민사소송으로 환수시키면 된다.

의료정의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의료에 관계된 의료 수요자인 환자나 보호자 그리고 공급자인 보건의료인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바로 의료정의라고 생각한다.

복지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사람들이 건강과 의료서비스에 대해서 만큼은 천부인권처럼 당연시 하기도 한다. 그런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의료공급자들이다.

공급자를 제도가 범죄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도 구제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의사 조정을 하는 기전이 필요하다. 논의의 절차가 합리적이지 못하니까 관치의료라는 말이 나온다.

사무장병원을 근절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도 몇 년간 '근절 목소리'만 나왔지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 의료 수요자만 중요한 게 아니라 공급자도 중요하다. 의료정의가 구현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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