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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빠진 총액계약제 논의

안용항
발행날짜: 2009-11-23 08:59:26

안용항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

오래전부터 간간히 나온 총액계약제 이야기가 다시 솔솔 나오고 있다. 공단은 공급자 단체가 총액계약제에 대한 수용 의사를 내비친다면 수가 인상률에 반영을 하겠다는 미끼도 던졌다. 아마도 총액계약제를 밀어붙이기 전에 의료계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론에 따르면 정형근 이사장은 "행위별수가제는 과잉 진료의 소지와 국민 의료비 통제의 곤란 등 문제점이 많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액계약제나 포괄수가제, 인두제 등 다양한 지불 제도를 연구해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정형근 이사장의 총액계약제 도입 이유라면 문제가 있다.

먼저 ‘과잉 진료’를 살펴보자. 무엇이 과잉 진료 인가? 적정 진료와 과잉 진료의 의미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병명이라도 환자의 나이, 전체적 건강 상태, 라이프스타일, 의사의 지시에 따른 순응도 등에 따라 적정 진료와 과잉 진료의 기준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즉 환자는 ‘동일한 기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생명체’라서 동일한 적정 진료나 과잉 진료의 기준으로 비교될 수 없다.

또한 의료기기의 발달은 동일한 질병에 대한 의료비용을 증가시키기 마련이다. CT나 MRI가 없는 시절엔 방사선 검사를 했다. 하지만 보다 정밀한 검사를 추구하는 의료의 특성이 고비용의 MRI가 방사선 촬영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충수염 수술 경우, 과거에 직접적 수술 방법만을 하였지만 최근에는 복강경 수술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경우 CT나 MRI 사용이나 복강경 수술이 과잉 진료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신체를 중요시하는 문화적 배경은 몸과 얼굴의 수술 자국을 줄이고자 원하는 타당한 동기가 된다. 이 경우 복강경 수술로 흉터를 줄이는 것이 과잉 진료라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무엇이 과잉 진료인가의 문제는 그 시대의 가치문제까지 연결되어 점점 규명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적정 진료’와 ‘과잉 진료’는 ‘각종 치료에 대한 환자의 동의 여부’와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적정 진료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없는 의료 특성상 환자의 동의가 있었다면 과잉 진료나 과소 진료라는 이름을 붙이기 힘들어 진다.

정 이사장이 언급한 ‘국민 의료비 통계 곤란’을 살펴보자. 이것은 총액계약제 도입 이유로는 더욱 이상한 말이다. 국민 의료비의 영역은 국가마다 다르게 잡는다. 프랑스와 영국을 상호 비교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국민 의료비의 통계 방법과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개인이 인삼을 사먹는 것을 국민의료비에 넣어야 할 것인지, 각종 종합비타민이나 유사 약을 외국이나 약국에서 사먹는 것도 국민 의료비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지 등의 통계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즉 ‘국민 의료비 통계 곤란’은 행위별수가제이기 때문에 곤란한 것이 아니라 통계 범위의 문제인 것이다.

행위별수가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definition)하기 어려운 ‘과잉 진료’보다는 총액수가제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즉 총액계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총액계약제로 각기 다른 환자들을 마치 똑같은 환자처럼 취급해 하나로 묶어 버린다. 결국 그들은 환자 치료가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리겠다는 이야기이다.

개별 차이가 격심한 환자의 경우를 무시하고 환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은 의료인에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 의료인이 항상 선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의료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예측 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그래서 환자 치료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환자 치료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눈을 감아도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즉 환자가 자신의 질병치료를 그렇게 받겠다는 명료한 계약을 한 경우에는 가능하다(물론 이 경우에도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는 예외로 남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 계약 내용에는 치료의 범위나 치료의 내용이 상세하게 포함될 것이다.

즉 총액계약제의 당사자인 환자가 자신이 총액계약제에서 지불할 비용만큼만 치료받겠다고 주장한다면 진정한 계약 사회에서는 불가능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총액계약제 때문에 자신의 치료를 허술하게 받기 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상적 사람이라면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좀 더 좋은 치료를 원하기 마련이다.

정말 환자들이 총액계약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직접 치료받는 환자가 아니며 제3자에 불과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원하는가? 총액계약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환자의 적정 치료가 아니라 일부 환자의 희생을 눈감고 의료보험비용‘만’을 줄이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총액계약제에서의 환자는 행위별수가제의 환자보다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총액계약제에서 환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총액계약제의 근본적 문제점은 감추어두고 의사들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방법으로 피해가려 할 것이다.

좀 더 나아가보자. 우리나라의 근본적 의료 문제는 총액계약제나 행위별수가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계약제 인가’라는 문제이다. 총액계약제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약 당사자의 충분한 의견이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반영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환자의 의견이 무시되고 의료계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환자나 의료계의 의견보다는 관료의 의견이 우선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총액계약제를 원한다면 환자 자신이 자신의 치료가 제한될 수 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환자는 그러한 치료의 제한을 기꺼이 받아들여야한다. 즉 계약의 당사자인 환자는 자신의 계약 내용을 알고 동의해야하며 계약의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려면 ‘진정한 계약’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따라서 총액계약제든 행위별수가계약제든 상관없이 ‘진정한 계약’의 의미를 살리어 현행과 같은 환자와 의료인이 원하는 것은 무시되고 오직 ‘복지 관료의 의도와 명령’만이 인정되는 현행 체제가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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