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건의료 인력 정책이 의사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다학제적 협업이 전제돼야 하는 보건의료체계의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7일 국회 '건강과 돌봄 그리고 인권 포럼'은 토론회를 열고 올바른 의료 개혁을 위한 보건의료 적정 인력 기준 필요성 및 제도화 방안을 논의했다.
인하대학교병원 예방관리과 임준 교수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의사에만 매몰된 현 보건의료 인력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 등 의사 인력 확충을 중심으로 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는 ▲의료 인력 양성 ▲수련환경 개선 ▲지역·필수의료 지원 ▲의료기관 기능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데, 초점이 의사 인력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
■ 의사 중심 정책에 쏠린 정부…다학제 협업 본질 외면
임 교수는 보건의료 현장은 의사 혼자서는 운영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중환자실 운영엔 중환자 전문 간호사, 체외순환사, 응급구조사 등이 필수적이다. 재활치료 분야 역시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등 다양한 직종이 협업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기능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이들 직종에 대한 투자나 인력 양성 계획을 사실상 배제한 채, 의료 문제를 오직 의사 수 증원으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적 구조도 문제로 꼽았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 외에도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 응급구조사 등 다양한 직역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여전히 이들 직역을 포괄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민간 자격 기반으로 활동 중인 다양한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제도적 관리나 수급 계획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은 일정 연차 이후 의료 현장을 떠나는 비율이 높고, 다수는 비의료 분야로 이직하거나 단기 계약 일자리에서 종사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비활동 보건의료 인력'의 활용 방안 없이 신규 양성만 확대할 경우, 의료계 내 인력 과잉과 서비스 질 저하라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다.
임 교수는 단순히 증원만 하는 보건의료 인력 정책이 아니라, 공급과 수요를 연결하는 인력 관리 계획과 직종 간 연계성을 고려한 인력 배치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공공병원의 인력 기준 강화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임 교수는 "공공병원이 지역 내 최소 수준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기준점이 돼야 한다. 그 기준은 단지 법적 최소 기준을 넘어 지역 상황과 의료 수요를 반영한 '적정 기준'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며 "공공의료기관의 인력 기준 강화는 민간 병원의 서비스 질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의료 인력 확충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구성과 분포, 직종 간 연계성과 팀 기반 수련환경 조성이 핵심이다"라며 "단순히 의사 정원을 늘리는 접근은 결국 인력 불균형과 노동조건 악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적정 인력 기준 법제화 시급…"병원 존폐와 연계돼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재수 기획실장 역시 주제 발표를 통해 의료 현장의 다직종 노동자들은 의료개혁에서 배제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관련 근거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수치로 제시했다. 실제 지난해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에 연장 근무가 일상화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하루 30분 이상 초과 근무를 하고 있고, 인력 수준에 대한 불만을 표한 비율은 73.9%에 달했다. 임신 중 쉬운 업무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77.7%, 초과 노동을 경험한 비율도 39%에 달하는 등 노동 강도와 환경의 심각성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의료기관은 최소 인력만을 배치하며 인건비를 감축하고 있고, 이는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 저하, 높은 이직률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혁은 결국 인력 문제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것.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과제로 '직종별 적정 인력 기준의 법제화'를 제안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과 의료법 개정을 통해 직종별로 법적 정원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병원 운영에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현재 의료법 제36조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인력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기준은 모호하거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간호사, 약사, 치료사 등 대부분 직종에 대해선 단순히 '필요한 수'만을 명시해놓았을 뿐, 병원 현장에서 이를 평가하거나 준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부재하다는 것.
그는 "인력 기준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환자 안전, 의료 질, 노동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표가 돼야 한다"며 "적정 인력 기준의 제도화는 의료기관 구조 개혁과 병상 재편, 나아가 보건의료 노동자 보호와 서비스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는 병상 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것이 아니라, 인력 기준을 중심으로 병원의 존폐를 판단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병원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며 "선순환 인력 정책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도 사람이다"…PA 차출에 병동 공백 심화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 한양대학교병원 공지현 간호사는 전공의 사직과 PA 제도화 이후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의사 부재로 간호사들은 백지상태에서 공부하며 공백을 메웠지만, 과도한 업무와 고용 불안이 여전하다는 우려다.
특히 그는 PA를 고용하기 위해 기존에 병동에 있던 3년 차 이상 경력 간호사들이 대거 차출됐다고 강조했다. 내부 공채 형식이었지만, 실상은 반강제 이동이 다수였다는 것.
또 일부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등의 조건으로 선발됐지만, 구체적인 조건은 극비에 부쳐져 현장 간호사들 간에도 이질감을 유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년차 병동 간호사의 빈자리는 1년 차 미만 간호사들이 다수 투입됐으며, 이들이 곧 선배가 돼 교육까지 담당하는 구조가 됐다는 것.
병상 가동률 변화에 따라 간호사 채용 기준이 달라진 상황도 전했다. 인력이 빠진 만큼 채우지 않아도 등급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상향되는 현행 제도는 병원의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되지만, 현장 안전에는 역행하는 구조라는 비판이다.
실제 의료 대란 당시 환자 수 감소로 신규 채용이 중단된 병원이 상당수다. 하지만 최근 병상 가동률이 다시 오르고 있음에도 병원은 단기 인력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것. 이는 안정적인 간호 제공 체계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실질적인 업무가 어려운 1년 차 간호사를 간호 등급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요구다.
공 간호사는 "간호사도 사람이다. 누군가는 퇴근길에, 누군가는 출근 직전 전화로 '오늘 쉬라'고 통보받는다. 퇴원이 많아졌다고 바로 근무표가 바뀌는 게 일상"이라며 "PA로 갔다가 돌아오면 무엇이 기다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병동 복귀가 아닌, 어디론가 다시 떠나야 한다. 필요할 땐 몰아넣고 돌아오면 자리가 없다. 그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2년 차 간호사가 병동에서 제일 선배인 상황이다. 환자들이 고년차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하면, 데려갈 사람이 없다. 우리는 환자가 느끼는 불안감을 매일 체감한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버티라고만 한다"며 "지금 필요한 건 예산이 아닌 계획이다. 향후 10년 뒤를 보면서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가 각자 역할을 나눠 갖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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