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필수의료 현장이 만성적인 인력난과 인프라 부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일선에서 중진료권 단위의 공동 대응체계와 법제화된 협의체 구성 등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23일 열린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중진료권 역할과 거버넌스 토론회'에서 지역 의료 현장의 현실과 이를 지탱하기 위한 중진료권 단위의 협력 필요성이 강조됐다.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이건세 교수는 주제 발표를 통해 순천·여수·광양을 중심으로 한 의료 현장 상황을 조명했다. 현재 해당 지역 필수의료 체계는 민간의 자발적 희생에 기대고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순천 지역의 필수의료는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민간병원이 대부분 수요를 담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응급·분만·소아과 등의 영역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확보조차 어려운 상태라는 우려다. 이에 따라 365일 당직이 불가능해지면서 심장중재술 등 필수적인 수술도 요일에 따라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야간·공휴일엔 보상을 높여도 인력 확보가 어려우며, 고위험 분만이나 저체중 신생아 같은 상황에선 환자를 어디로 보낼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의료기관 간 협력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 생활권' 단위의 진료체계가 행정구역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순천 의료기관의 환자 중 절반은 광양, 여수, 고흥 등 인접 지역에서 온다. 그러나 이들 지역과의 예산 분담이나 책임 조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순천시가 매년 수십억 원을 들여 재단 설립을 추진하더라도 여수나 광양은 '우리 지역 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
그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중진료권 단위 거버넌스, 지자체 협의체, 민간의료기관 협력 등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병원에 단기적인 수가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부여해 중장기적 자원 배분과 권역 협력체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최근 민간병원도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협력체계를 설계하거나 조정할 권한은 부여하지 않고 일부 예산만 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이런 구조로는 민간이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라고 떠맡기는 셈이고, 실질적 거버넌스는 여전히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의 건강보험 수가 체계는 병원이 자기 병원 환자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다른 병원이나 지역 전체의 필수의료를 함께 고민하거나 협력할 유인은 없다"며 "결국 개별 병원이 아닌 중진료권 단위에서 필수의료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인력 확보와 예산 지원, 시설 투자가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옥민수 교수는 발제를 통해 지역 입장에서 본 중앙정부 정책의 한계와 대안을 조명했다. 옥 교수는 지금의 정부 정책은 지역이 실질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권한도 자원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중앙정부의 목표 설정은 그저 선언에 불과하다는 우려다.
그는 현 상황은 의사 수 자체보다 '지역 간 격차'가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실제 10만 명당 의사 수 통계를 보면 대도시와 도지역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관련 대책으로 제시된 의대 증원 정책에선 늘어난 정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가 부족해, 활용 방식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옥 교수는 실제 기존의 지역인재전형과 공공보건장학생 제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의 '지역필수의사계약제'는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정책은 한계가 명확한 만큼, 특수 목적 의대 설치와 함께 해외 사례를 참고한 패키지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재정 구조의 비효율도 꼬집었다. 진료량이 적은 지역일수록 수가 가산은 무용지물이라는 이유에서다. 고정적 비용 성격의 예산·기금을 중심으로 인건비와 인프라에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다.
일례로 울산대병원 응급실의 경우 24시간 유지해도 밤에 중증 환자가 두세 명뿐이어서 진료량과 연동된 보상 방식으론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그는 특히 공공보건의료기금 설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앙은 계획과 평가 결과를 토대로 기금을 배정하고, 지역은 이에 따라 집행 권한을 갖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요구다. 또 이를 위한 법률적 근거로 공공보건의료법 또는 김윤 의원 발의 특별법안을 언급했다.
옥 교수는 "법엔 필수의료위원회를 설치하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 지역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되는 위원회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관심이 적고 예산 지원도 없다 보니 실질적인 거버넌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중진료권 단위 위원회를 추가로 설치한다고 해도 권한과 예산 없인 의미 없다. 병상관리나 건강보험 시범사업 평가 등 실질 권한을 함께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젠 24시간 진료체계를 유지하느냐를 넘어, 아예 필수 진료과 자체가 없는 지역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기본계획만 있고 실행할 사람도, 돈도 없는 구조는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기획, 권한, 재정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중진료권 단위 협력체계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향후 정책 설계에 이를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조승아 공공의료과장은 현재 복지부는 전국을 70개 중진료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병상 배치, 책임의료기관 지정, 응급의료체계 정비 등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또 지자체 간 경계를 넘는 협력이 가능하려면 법적 권한과 재정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고유의 권한을 존중하되, 중진료권 단위로 조율이 필요한 부분은 별도의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금 역시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닌, 국정과제 수준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돼야 의미가 있다고 봤다.
조승아 과장은 "지자체 관계자들의 강한 애정과 의지를 현장에서 확인했다. 이런 흐름을 중앙정부나 국회 차원에서도 도울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다만 진료권 개념은 고정된 틀이 아니며, 도로 개통이나 병원 신설 등 지역 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 가능하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하면 현장에선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에 적극적인 지자체도 있지만, 관심이 적은 지역도 있는 만큼 정책 간 형평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며 "복지부는 올해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 수립과 중진료권 체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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