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충돌했다. 정부가 관련단체와 충분히 협의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여론몰이를 하자 의료계는 대규모 집회로 맞섰다. 분업후 의정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의료계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의료현안이 터질 때마다 정부, 국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의료계. 의사집단과 사회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는 무엇일까. 또 무엇을 버리고, 새겨야할 지 집중모색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험난한 도전 직면한 의료계 ②장롱면허자가 바라본 의사
③의사가 된 샐러리맨과 환자
④'라포르' 가로막는 3분진료
의사면허를 취득했지만 청진기를 내려놓고 다른 직업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의사면허를 가지고 언론사 기자로, 혹은 공무원으로, 변호사로 뛰고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의료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또한 때로는 환자로서 자신의 선배나 후배 앞에 섰을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보며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질까.
비록 의료법 등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이들이 의료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국민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는 늘 의사와의 대화를 갈구한다"
환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보호자로서 의사 앞에 서는 이들은 현직에 종사하는 의사동료들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가족이나 친지들이 진료 받을 때 병원에 따라가 주사제나 항생제가 어떤 성분이냐고 의사나 간호사에게 물어볼 때가 있지만 답변해 주는 분들이 적어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서울의대를 졸업한 한겨레신문 김양중 의료전문기자의 말이다.
그는 "물론 업무가 바빠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지만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며 "성실하게 답하기는 힘들더라도 이름이라도 알려주는 친절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반응은 비단 김양중 기자만이 아니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장롱면허 의사들은 하나같이 의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환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환자는 늘 자신의 질병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으며, 의사와 한마디라도 더 대화하길 원하지만 이러한 요구에 고개를 돌리는 의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의사가 조금만 마음을 열고 대화의 물꼬를 트면 의사와 환자, 국민의 갈등은 의외로 쉽게 풀릴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중론이다.
연세의대를 졸업한 복지부 국제협력팀 이강희 사무관은 "가끔 동네의원을 가는데 한번은 진료데스크 위에 놓인 모니터에 뭐가 적혔는지 궁금해 고개를 내밀어 본 적이 있다"며 "그러자 그 의사가 모니터를 완전히 내 쪽으로 돌려 하나하나 보여주고 어떤 약인지도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일이 있고 나니 그 의사에게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기고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며 "모니터를 돌려 준 사소한 모습에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에 내 스스로도 놀랐다"고 회상했다.
“환자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이처럼 사소한 배려가 환자에게는 큰 감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주 약간의 노력만으로 환자에게 존경받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양중 기자는 "의학정보라는 것이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다 보니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과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국민들의 수준에 맞춘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역사 의사의 사명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이강희 사무관은 “의사는 의료의 핵심"이라며 "병원의 시설과 서비스에 불만이 있더라도 의사의 따뜻한 한마디나 정성스런 설명을 들으면 환자들은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고 충고했다.
“환자도 예의과 도리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의사들의 노력과 함께 환자들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줄 때 아름다운 진료환경이 만들어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환자가 병원을 찾은 이상 의사의 말을 경청하고 지시에 따라야 하며, 무엇보다 의사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법무법인 히포크라에서 의료소송 전문변호사로 활동중인 박호균 변호사. 그는 의료분쟁도 결국 불신이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의료분쟁이라는 것은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라며 "환자가 의사를 믿고 의사가 환자를 자신의 가족처럼 치료한다면 의료분쟁은 매우 예외적인 사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허위 의료정보도 의사와 환자간 불신을 조장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과장되고 때로는 허위로 작성되는 의료정보를 믿고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
김양중 기자는 "인터넷 의학정보의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보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며 “이렇게 얻어진 의학정보로 의사에게 불필요한 요구를 하거나 지시를 어기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결국 환자들이 올바른 정보를 취할 수 있도록 인터넷 의학정보를 정화하고 선도하는 것도 의사들의 몫이라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김 기자는 "무분별한 인터넷 의학정보를 정화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의료단체 뿐이다"며 "의협이나 병협 등 관계기관들은 이러한 정보를 제어하고 올바른 의학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렇다면 의사와 환자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이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과 기술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의료가 ‘의료서비스업’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의사들은 대화의 기술이나 타협에 서툴다는 뜻이다.
이강희 사무관은 "의사들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된 문제"라며 "의사소통 전문가들로부터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는 등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과 전문의로 의성법률 사무소에서 활동중인 이동필 변호사는 "의대, 인턴, 레지던트로 바쁘게 정해진 레일을 걷게 되는 의대교육 특성상 대화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의대 교육과정이나 수련과정에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포함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복지부 의료정책기획팀에서 근무중인 손영래 사무관은 "그간 국내 의학은 진료행위의 과학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사회학적 문제는 간과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의학교육 커리큘럼을 개선해 이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 발짝씩 다가가자”
이들은 의료계와 국민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민들은 의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 효율적으로 개선해 가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중론이다.
이강희 사무관은 "감기와 같은 사소한 질병으로 진료실에서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을 불평하는 국민들이 많지만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와 비교해 봐도 이는 불평할 것이 못된다"며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에서도 의사를 만나기 위해 몇날 몇일을 기다리는 예가 허다하다"고 이해를 구했다.
이어 그는 "본인부담금이 과하다고 느끼더라도 이는 의사들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며 "이는 건강보험을 포함한 의료체계 전반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양중 기자는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기 위한 의료정책은 의료공급자와 소비자, 정부, 언론 등 관련된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하는 중요과제"라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발짝씩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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