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주년 특별기획=소통을 말한다]
의료법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충돌했다. 정부가 관련단체와 충분히 협의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여론몰이를 하자 의료계는 대규모 집회로 맞섰다. 분업후 의정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의료계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의료현안이 터질 때마다 정부, 국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의료계. 의사집단과 사회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는 무엇일까. 또 무엇을 버리고, 새겨야할 지 집중모색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험난한 도전 직면한 의료계
②장롱면허자가 바라본 의사
③의사가 된 샐러리맨과 환자
④'라포르' 가로막는 3분진료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는 엄청난 시련을 겪어왔다. 조제권을 약사들에게 넘겨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분업 직후 건강보험 재정난이 터지자 의료기관도 고통분담을 요구받았고, 환자들의 알권리 의식 신장과 급부상하기 시작한 시민단체들이 병의원의 아픈 치부를 하나하나 들춰내면서 의료계는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사회 지도층에 대해 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시대 흐름 역시 의사집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건강보험 적자, 혈세먹는 하마...끝이 안보인다
건보료 6.5% 인상 '밑 빠진 독 물붓기'
식대급여화 등 압박...건보재정 또 '빨간불'
건보 상반기 7600억 적자 '돈' 감안 않고 씀씀이 늘려
분업 이후 의료계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건강보험 재정파탄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부는 2001년 의약분업 후폭풍으로 건보재정이 악화되자 재정안정을 위해 진찰료 통합과 같은 재정지출 구조조정, 진료비 심사 강화 등에 착수했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몇 년 전부터 다소 안정을 찾아가던 건강보험 재정이 만성질환자 및 노인인구의 급증, 지속적인 보장성 확대 등의 영향으로 다시 적자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자 정부는 또다시 극약처방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의료급여제도 변경, 외래환자 본인부담 정률제 전환 등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정을 범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포석이 깔려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의료급여제도는 그간 재정누수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의료급여환자의 의료 과다이용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본인부담 정률제도 정부 입장에서는 보장성 강화의 축을 경증환자에서 중증환자로 전환한다는 명분을 살리면서 일부 의료수요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 재정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정부의 정책기조는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분명 큰 위협이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은 의료계와의 충분한 소통과 타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후 정부는 의료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채 힘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게 적지 않았고, 그 결과 의료기관과 의사들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도덕적 지탄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정부가 2001년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재정절감방안을 발표할 당시 의료기관의 부당청구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의료기관 압박용으로 활용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신의료급여제도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단체들이 비판하고 나선 것도 밀어붙이기식 행정과 무관치 않다.
의료계 관계자는 “건보재정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재정 안정화를 위해 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적 압박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정부와 의료계간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항생제 남용 병·의원 공개' 소송
"백혈병 환자들, 병원에 수백억 치료비 더 냈다"
'진료비 바로알기 시민운동본부' 발족
의료분쟁 해결비 올 2400억…신경외과 1인당 1904만원
환자들의 권리 의식이 급격히 신장되면서 소비자들이 의료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도 분업 이전과 다른 양상이다.
백혈병 환자들은 과다청구된 진료비를 돌려달라고 집단 민원을 냈고, 아이 엄마들은 무통 주사비 반환요구에 나섰다.
의사의 고유권한으로 여겨졌던 항생제, 주사제 처방률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결국 정부를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선택진료비가 낮은 의료수가 보존용이란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환자와 시민단체들은 지속적으로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의료기관들은 이런 시대적 요구를 수용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고, 시민단체와 견해가 충돌하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단적으로 의료기관들은 항생제, 주사제 처방률을 공개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다고 반발했지만 막상 정부가 실행에 옮기자 부랴부랴 처방행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의료기관들은 정부의 처방률 공개결과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이 처방률 공개를 요구하기 전에도 잘못된 관행을 고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시민단체의 선택진료비 폐지 요구를 놓고 보더라도 의료계는 저수가 보존책이란 주장만 되풀이할 뿐 환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앞으로도 의료문제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라면서 “병원과 정부도 국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변화된 자세가 요구 된다”고 꼬집었다.
환자의 알권리 신장은 의료분쟁의 증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일부 성형외과의원을 중심으로 제기되던 의료분쟁이 이제 대학병원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형시술 관련 피해구제 신청건수는 2006년 한해만 71건에 이른다. 지난 2004년 38건에 불과하던 것이 2005년에는 52건으로 늘어 증가세가 뚜렷하다.
물론 의사의 잘못된 처치로 인한 의료분쟁은 마땅히 법의 심판을 물어야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던 환자들이 이제 평등한 관계, 즉 충분히 설명 들을 권리를 중요시하고 있지만 상당수 의사들은 여전히 여기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분쟁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라며 “시신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부와 의료계, 시민단체의 합의 아래 의료분쟁 중재기구를 설립하는 등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20평 사는 의사가 100만원도 못 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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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5#한편 그간 존경받는 지도층이던 의사는 이에 걸 맞는 도덕성을 실천하라는 요구에도 직면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인의 세금탈루, 부정청구 등의 사건들이 연일 언론에 등장하면서 의사집단은 도덕성에도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최근 의협 로비사건, 통영에서의 의사 성폭행사건 등도 마찬가지 사례다.
부천의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통영의 의사 성폭행사건은 사실 의사라기보다 우리에게 치료받아야 할 환자라고 봐야 한다”면서 “어느 집단에나 소수의 문제아가 있음에도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의료계가 이런 항변에 그치지 않고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에 대해 과감하게 무거운 징계를 내려 무늬만 전문가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길 희망하고 있다.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안정 기조와 보장성 강화, 환자들의 권리 신장, 의사집단에 대한 높은 도덕성 요구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가 정부와 시민, 사회단체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며, 부단히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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