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카프 궁전을 끝으로 이스탄불을 떠나 다음 일정인 사프란볼루로 이동한다. 버스는 오리에트특급의 종착역이었던 시르케지(Sirkeci)역을 지나 갈라타다리를 건너간다. 구시가지에서 황금뿔만을 넘어 신시가지로 건너가는 것이다. 창밖으로 다리 위에서 월척을 노리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들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저들 사이에 합류해볼까'하는 충동이 인다. 고기가 낚이지 않는다면 세월이라도… 그렇다면 아내는 같이 버스에서 내려줄까? 갈라타다리는 뒷날 다시 올 예정이라서 그때 설명한다.
버스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나 보스포루스다리에 진입한다.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길이는 30km이고, 가장 좁은 곳의 폭은 750m이다. 보스포루스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스탄불 시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보스포루스라는 이름의 유래는 그리스신화로부터 비롯되었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어느 날 하계를 굽어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했다.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였다.
이오는 갑자기 나타나 "처녀여, 제우스에게나 어울릴 아름다운 처녀여, 그대가 잠자리를 함께 하면 제우스가 얼마나 기뻐할까?"라면서 유혹하는 제우스를 피해 달아났다. 그렇다고 야심을 접을 제우스가 아닌지라 달아나는 이오 앞의 대지에 구름을 드리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 때문에 달아날 길을 잃은 이오와 결국 사랑을 이루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눈치를 채고 들이 닥치자 제우스는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고, 헤라는 제우스에게 이 암소를 달라고 했다. 헤라는 눈이 백 개나 되는 아르고스를 시켜서 이오를 감시하게 했지만,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아르고스를 죽이고 이오를 구출해냈다1). 이오는 헤라를 피해 바다(이오니아해)를 지나 소아시아로 달아났는데 이오가 건넌 곳을 '암소가 건너다'라는 의미로 보스포루스 해협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처음 다리를 놓은 것은 페르시아제국의 황제 다리우스1세(기원전 522년~485년)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513년 그리스와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보스로루스에 도착한 다리우스1세는 해협을 건너기 위하여 배들을 엮어서 주교(舟橋)를 만들었다고 에 기록했다.
현재 보스포루스해협에는 두 개의 다리가 걸려 있는데, 첫 번째 다리는 영국의 프리만폭스앤파트너스사가 건설했다. 길버트 로버트경과 윌리엄 브라운의 설계로 1970년 2월 착공하여 1973년 10월 완공하였다. 우리가 건넌 제1 보스포루스다리는 1,560m로 현존하는 현수교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길다. 데크의 넓이는 33.4m이고, 주타워의 높이는 165m이고 주타워 사이의 거리는 1,074m이다. 다리와 해수면 사이의 거리는 64미터이다.2)
버스로 6시간 정도를 달려 사프란볼루에 도착했다. 중간에 휴게소식당에서 닭고기 바비큐로 점심을 들었다. 그런데 오이와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에 올리브오일을 칠 수가 없었다. 올리브오일을 담은 병에 날벌레가 여러 마리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렌틸콩 스프는 맛이 오묘했고 닭고기는 조금 짠 편이었다. 디저트로 나온 수박이 먹을 만해서 그만 용서하기로 했다. 같이 점심을 먹은 젊은이들은 이날처럼 거친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듯 곁들여 나온 빵으로 요기하는 눈치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무조건 잘 먹기로 작정하고 있는 나는 나온 음식은 모두 챙겨 먹었다.
사프란볼루에서는 먼저 흐드를륵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는 작은 공원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무료지만 관광객들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 가려해도 돈을 내야 하는지 궁금하다. 언덕에서는 사프란볼루 마을 마을전체를 굽어볼 수 있다.
마을은 맞은편의 하산데데언덕과 흐르들륵 언덕 사이를 지나는 계곡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동안 때마침 오후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진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오래 전에 영월에 갔을 때 동강변 산록을 따라 울려 퍼지던 스님의 낭낭한 독경소리가 겹쳐진다. 흐드를륵의 작은 공원에는 결혼식 화보를 찍는 신랑신부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나 터키나 10월은 결혼을 많이 하는 때인가 보다. 신랑이나 신부나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참 좋을 때다.
사프란볼루라는 지명은 마을에서 붓꽃의 일종인 사프란을 많이 재배한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사프란의 노란색 암술만 모아 말린 것을 약재나 향수, 향신료로 사용한다. 사프란 1kg을 얻으려면 사프란꽃 16만송이가 필요하다는데, 4만개의 씨앗을 뿌리면 겨우 한 개만 싹이 트고, 꽃은 9월과 10월 사이에 단 하루만 깊은 밤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게다가 꽃이 피어있는 동안에만 암술을 채취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보다 비싼 향신료’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사프란볼루에서도 더 이상 사프란을 재배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프란볼루는 1994년 유네스코가 마을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는 특별히 2천여채의 전통목조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대부분 200년이 넘은 것이고 300년이 넘은 것도 많을 뿐더러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터키에서 이렇듯 옛날 건물들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암반으로 된 지형이라서 지진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로 집을 지었다. 전통가옥은 목재로 골격을 세우고 짚을 섞은 진흙으로 벽을 바르거나 벽돌을 쌓아 벽을 완성했다.3)
1층은 창고로 쓰고 2층을 살림집으로 하는 집들은 2층이 튀어나와 있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들어서 있어, 때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골목도 있다.
[사진; 진지 하맘(왼쪽), 그리고 아라스타 바자르(오른쪽 위)와 터키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에크멕(오른쪽 아래)
아라스타 바자르 위에 있는 오래된 진지 하맘 부근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이 하맘은 6백년 전에 진지라는 무아진이 지었다고 한다.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진지는 의사도 어쩌지 못하는 환자도 말끔하게 치료하곤 해서 감동한 파샤가 상금을 주어 치하했고, 그 돈으로 목욕탕과 마을을 거쳐 가는 대상들을 위한 숙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프란볼루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머물러 쉬던 곳이었다. 오래 전에는 터키 군인들이 신던 푸틴이라는 신발이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4)
아라스타 바자르는 사프란볼루에 사는 사람들이 옛날 방식으로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직접 파는 장터인데 그 역사가 350년이나 되는 유서 깊은 곳이다. 가죽 수제화나 금속공예제품, 솜씨 좋은 여인들이 뜬 레이스제품 들을 볼 수 있고 특히 쫀득쫀득한 터키 젤리 '로쿰'이 인기를 끈다.
아라스타 바자르 곳곳에서 로쿰을 시식해보라는 아름다운 터키 처녀들을 만날 수 있다. 바게트처럼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 에크멕이 커다란 원반모양으로도 만든다는 것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에크멕(Ekmek)은 빵을 좋아하는 터키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이다.
사프란볼루에서는 느리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대서 특히 관심이 많았지만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인지 가게가 늘어선 바자르의 시끄러운 골목길 분위기는 전혀 느리게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인사동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상가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뒷골목에 들어서면 느리게 움직이는 마을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사프란볼루는 여전히 슬로우시티였다.
참고자료
1)한 대균 지음.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을 읽다 49-51쪽, 이담북스, 2011년.
2) Wikipedia. Bosphorus Bridge. https://en.wikipedia.org/wiki/Bosphorus_Bridge
3) 이종헌 지음.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 193-196쪽, 2013년
4) 안효원 지음. 고맙습니다 31-343쪽, 이야기쟁이낙타,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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