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상대가치 상시 조정을 예고하면서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가 과보상 영역에서 꾸준히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될 것이라는 우려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12월 의료비용분석 결과 발표를 기점으로 상대가치 상시 조정 체계 마련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과보상된 영역은 낮추고 저보상된 기본진료·진찰·마취 수가를 끌어올려 균형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제도개선은 단순한 배분의 문제가 아닌, 저보상된 쪽으로 보상을 옮기는 취지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검체 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이 이번 정책의 핵심 재원 확보 방안으로 지목되면서 의료계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의료계에선 이런 정부 정책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로 가는 청사진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급자단체와의 협상이었던 기존의 상대가치 점수 개편이, 데이터를 통한 2년 단위의 기술적 조정으로 전환되면서다.
상대가치 상시 조정이 도입된다면 정부 입장에선 꾸준히 과보상 영역에서 재원을 확보할 수단이 생기는 것. 또 정부는 상대가치 상시 조정으로 얻은 재원으로 소아·분만·중증·응급 등 필수의료 영역을 보상할 '보완형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렇게 된다면 진찰료 인상 폭이 검사 수익 감소 폭보다 적거나, '심층 진찰료 시범사업'처럼 더 많은 진료 시간과 노력 투입을 조건으로 할 수 있다. 검사에서 줄어든 수익을 다른 저보상 항목으로 보전하겠다는 정부 약속이 공수표가 될 수 있는 것.
정부 정책에 대한 의료계 불신도 이런 우려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는 약속했던 '검체 검사 위·수탁 제도개선 협의체'가 가동되지 않으면서다. 더욱이 정부가 스스로 발주한 연구용역에서 나온 상호 정산 제도화 결론도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렇게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된 만큼, 의원급 입장에선 먼저 삭감하고 후에 보상하겠다는 불확실성을 믿을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더욱이 지난해 1월 3차 상대가치 개편 당시에도 재정 순증 없는 재분배 방식은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것'이라는 의료계 우려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우려를 해소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가 이미 불신을 초래했던 정책과 유사한 개편을 재차 추진하면서, 의료계의 '경험적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대한의사협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진찰료 보상이 불확실해지면서 의원급 수익 구조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원급은 생존을 위해 국민 건강보험이 통제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이 밖에 정책 수가로 추가 보상을 제공하는 만성질환 관리 등의 영역으로의 이동도 예상된다. 정부가 유도한 대로 진찰 시간을 늘리는 등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지만, 결국 의원급의 순수익 감소나 업무 강도 증가가 불가피하다.
김 법제이사는 우선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과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미 협의체 미가동 및 연구용역 묵살 등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사안이 있었던 만큼, 약속했던 협의체를 즉시 가동해야 한다는 요구다. 또 이를 통해 의원급이 제기하는 우려에 대한 실질적인 해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원 이동에 대한 투명한 로드맵도 요구했다. 정부는 위·수탁 개편으로 확보될 예상 재정 규모와 그 재원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저보상 수가에 구속력 있게 연동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법제이사는 "3차 상대가치 개편 등 과거 재정 순증 없는 수가 조정의 경험으로 의료계 전반엔 '결국 삭감만 이뤄지고 재정 이동은 없을 것'이라는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며 "정부의 균형 수가 정책은 표면적으로 필수의료 강화를 내세우지만, 행위량이 많은 검사 수가를 억제해 건강 보험 재정을 억제하려는 목표가 병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상대가치 상시 조정과 검체 검사 개편으로 재원을 확보하고 공공정책 수가 도입을 통한 필수의료 보완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의원급은 단기적이고 확실한 수익을 불확실한 미래의 보상과 교환하도록 요구되고 있다"며 "절차적 정당성 회복과 재원 이동에 대한 투명한 로드맵 제시 없이는 정책적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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