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정확도는 곧 의료의 질" 정도관리 우리가 사수한다

발행날짜: 2025-04-22 11:58:27 수정: 2025-04-22 12:57:42
  • 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 정도관리 현장…'검체' 택배사로 변신
    크레아티닌 검사 오차 10.8%→0.2% 검사 정확도 개선 노력

"이 상자들이 전국 병원으로 떠나는 거예요. 이게 모두 '검체'입니다."

직원이 손짓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2000여 개의 소포 상자가 줄지어 서 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대한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 사무실은 택배사로 변신했다. 4월 21일 월요일 아침 8시부터 50여 명의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포장 작업은 일주일이 걸립니다. 이걸 잘해야 됩니다." 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 윤여민 사업국장(건국대병원)의 안내를 받으며 냉동고가 줄지어 늘어선 방으로 이동했다. 영하 70도를 유지하는 냉동고 10여 대가 죽 늘어서 있다. "이 건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이 여기예요." 윤 국장은 웃음 섞인 설명을 이어갔다.

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는 1년에 8번, 전국 2000여 의료기관에 검체를 보내 정도관리 성적표를 낸다. 사진은 전국으로 보낼 검체를 작업하는 모습.

"병원마다 결과가 다르면 환자는 어떻게 될까?"

대한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는 1년에 8차례, 전국 2000여 의료기관에 '미지의 검체'를 보내 진단검사의 정확도를 평가한다. 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크레아티닌 등 527개 검사항목에 대해 표준 검체를 제작해 보내면, 각 병원은 이를 일상적인 방식으로 검사하고 결과를 협회에 보낸다. 협회는 이 결과를 분석해 해당 병원의 검사가 얼마나 정확한지 '성적표'를 발행한다.

"마치 전국 모의고사 같은 시스템입니다." 윤 사업국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사람이 A병원에서는 당뇨, B병원에서는 정상으로 나오면 환자는 혼란스럽겠죠. 우리는 이런 차이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의료진의 판단 중 70%가 검사 결과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사 정확도는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특히 내분비내과, 혈액종양내과, 신장내과 등 진료과는 미세한 검사 결과의 변화에도 민감하다.

크레아티닌 검사 오차 10.8%→0.2%로 감소…정확도 개선 '고군분투'

협회의 노력이 실제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크레아티닌 검사'다. 신장 기능을 평가하는 이 검사는 건강검진의 핵심 항목이다.

"2011년만 해도 크레아티닌 검사의 평균 오차율이 10.8%나 됐어요. 하지만 2019년에는 0.2%로 크게 줄었습니다." 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특히 4회 이상 꾸준히 외부정도관리에 참여한 검사실은 오차가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정도관리학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크레아티닌 검사의 오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모습이 선명하다. 효소법을 사용하는 검사실은 대부분 ±3% 이내의 오차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전통적 방법(Jaffe법)도 보정을 통해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 사무실 내 냉동고 모습. 냉동이 필요한 검체는 냉동고에 보관한다.

정도관리는 국민이 받는 검사 결과를 어디서든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근간이라는 게 윤 사업국장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만성질환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크레아티닌 같은 검사의 정확도는 조기 진단과 치료 기회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봤다.

협회가 정도관리용 검체를 만드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용화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 검체를 직접 모아 자체 제조하는 방식이다.

유 사업국장은 냉동고 가득 채워진 검체들을 가리키며 "상품화된 검체에는 보존제가 들어 있어 실제 환자 검체와는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환자 검체를 풀링(pooling)해서 만든 자가제조 검체를 많이 사용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도관리협회 내년 50주년…꾸준히 성장

1976년 설립된 대한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는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1991년 사단법인으로 정식 승인받은 이후, 협회의 사업 규모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협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연혁표가 걸려있다. 참여 기관 수는 1977년 44개에서 시작해 2009년 1012개, 2015년 1395개를 거쳐 현재 2031개에 이른다. 프로그램 수도 2015년 11개에서 현재 95개로 대폭 증가했다.

검체 택배를 챙기는 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 사무실은 택배사를 방불케한다.

협회가 급성장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현 건물로의 이전과 2018년 '진단검사 질 가산료' 제도 도입이었다. "2016년 이전까지는 서울대병원 함춘회관 내 작은 사무실에서 80개 항목만 운영했어요. 문정동으로 이사 오면서 프로그램이 300개로 늘었고, 이후 꾸준히 확대됐죠."

특히 2018년 건강보험 수가에 '질 가산료' 제도가 도입되면서 참여 기관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7년까지 주로 대형병원 위주로 참여했다면, 2018년 건강보험 수가에 '진단검사 질 가산료' 제도가 도입되면서 중소병원과 의원급까지 대거 참여하게 됐다. 이 제도는 외부 정도관리 참여와 우수검사실 인증 등을 통해 최대 8%의 가산료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주효했다.

"30cm 자가 35cm로 측정된다면?"

정도관리협회 윤영안 홍보섭외부장은 정도관리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가령 30cm 자를 전국에 뿌렸는데, 어떤 검사실에서는 29cm라고 보고하고 또 어떤 곳은 35cm라고 보고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답이 있는 공통 보고서를 봤더니 나 빼고 다 30cm라고 했는데 나만 35cm라고 보고했네. 우리 검사실 큰일 났네, 뭐가 잘못된 거지?라고 깨닫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발견했을 때 검사실은 원인을 찾게 된다. 가령 우리 검사실은 온도가 높아서 자가 늘어나 있었네. 에어컨을 켜자는 식. 이렇게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정도관리의 핵심이다.

진단검사정도관리협회 사무실 입구

"보이지 않는 의료의 질, 지킵니다"

"검사의 정확도는 보이지 않는 의료의 질입니다." 윤 사업국장은 환자도 의사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검사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후 4시, 협회 직원들은 마지막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국 의료기관으로 배송될 이 검체들은 대한민국 진단검사의 정확도를 지키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윤 사업국장은 정도관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크레아티닌 검사의 오차가 10.8%에서 0.2%로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환자들이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보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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