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회 이세라 명예회장

어느 의사(이하 A)가 최근 겪은 의료분쟁을 보자.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불편한 50대 후반의 여자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다. A는 다른 기초적인 진찰과 검사를 하고 위내시경을 시행했다. 내시경 소견과 조직검사에서 만성 위염 소견이 보여 위장약을 처방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증상이 개선되지 않았다. A는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했다. 상급병원에서 위내시경을 포함한 검사를 시행했는데 위암 4기로 판명됐다.
Borrmann 분류에 의한 위암 4기는 위벽 전체가 암세포로 변화된 것이지만, 경험이 많은 의사도 놓치기가 쉬운 질환으로 의료계에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의료인이라면 '죽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 암 4기에 이른 환자를, 내시경까지 진료한 의사가 어떻게 암인지를 모를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는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만에 치료 중 사망했다. 환자의 보호자는 오진에 의한 책임을 A에게 물었다. A는 결국 유족에게 수천만 원을 배상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법원은 의사가 내시경 교육을 이수한 것을 들어 의사의 법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줄여줄까? 대부분은 판결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법적 책임을 조금도 줄여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내시경 교육을 왜 받을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학구열이나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크겠지만, 내시경 인증의와 관련된 평점 때문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검진기관 평가 관련 평점도 연관돼 있다.
공단의 검진기관 평가 대상인 의료기관의 의사는 내시경 인증 연수교육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와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에서만‘ 받아야 평점을 인정받는다. 물론, 다른 단체에서도 내시경 연수교육을 받을 수는 있다. 다만 위 두 학회가 아닌 다른 교육 기관에서 위대장내시경 연수교육을 받을 경우 공단의 검진기관 평점을 받을 수 없다.
까놓고 이야기한다면,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기관의 평점을 받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를 두고, 내과 전문의들이 주축이 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와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가 '타기관에서 내시경 연수교육을 받을 경우 건강검진 기관의 평가 평점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내내 주장하고 있고, 이를 공단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외과 의사들이 위헌소송까지 진행하는 '의료계 내부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는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인증의와 관련한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와 대한의학회의 입장은 '인증의 제도로 인해 비 인증의가 차별이나 행정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의학회는 내시경 인증의의 평점 인정이나 불인증에 대해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다. 게다가, 이 문제와 관련한 '주도권'을 내놓기 싫은 내과 단체는 외과 의사들이 내시경과 관련해서 벌이는 교육이나 노력을 폄하하는 발언마저 하고 있다. 의료법이나, 대한의사협회의 인증의 관련 방침에 대한 이해 없이 말이다.
필자는 외과 의사로서 내시경 연수강좌를 외과 단체가 아닌 내과 단체에서 받은 사실이 있다. 교육을 시행한 내과 단체에 깊이 감사한다. 그렇지만 실제 위대장내시경이라는 의료행위를 실행한 것은 의사 개인의 학습에 대한 열정과 노력 아래 이뤄졌다. 개인적으로 내시경을 하는 외과 의사들에게 배웠다는 의미다. 내시경으로 인해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당연히 의사 개인이 분쟁에 대한 책임을 진다. 연수 평점이 해결하거나 처벌을 감면해 주지 않는다는 소리다.
외과는 내과에서 전원한 환자를 수술하는 것은 물론, 위대장내시경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천공 손상 환자들도 치료한다. 외과와 내과는, 내외과 구분에 앞서, 동료이고 동지인 것이다.
외과 단체와 가정의학과 단체가 '자신들이 시행하는 내시경 교육에 대한 검진기관 평가 평점 부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이를 독점했다는 이유로 내과 단체가 여전히 '독점'을 외치면서 의사 동료들 간 단합을 해치는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정치계와 관료들로부터 의료계가 내내 공격받는 상황에서 '동지끼리의 내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내시경을 하려는 의사들은 스스로를 위해, 환자를 위해, 건강검진 평점을 받기 위해서 내시경 연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상황이 이럼에도, '내과 단체에서만' 시행하는 내시경 연수강좌를 수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부의 욕심일 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