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를 완성하는 법에 대하여

경북의대 2학년 노정연
발행날짜: 2025-04-14 05:00:00
  • 경북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노정연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약 6개월이 지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네 편의 글을 작성해 오면서 이번만큼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막막했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불운과 불행이 연이어 몰려오는 듯한 요즘입니다. 상식이라 믿었던 것들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곳곳에서 마음 아픈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너무 거대해서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불행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듯합니다.

개인적인 불행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방안을 마련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광범위한 불행에 대해서는 아직 면역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셨거나, 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답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시의성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어제의 해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일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희미한 낙관이 구체적인 절망으로 변질되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기도 하고요.

당연히 저는 이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아마도 모두가 그런 것처럼요.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를 두려워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거대한 문제에 직면한 사람은 패닉에 빠지기 쉽습니다. 상황에 대해 열렬한 분노를 쏟아낼 수도 있고, 외압에 짓눌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무기력감에 허우적대기도 하죠. 저 또한 여러 비극적인 소식들을 접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절 괴롭혔던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은 목적 없는 분노와 무기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 중 하나를 한 영화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퍼펙트 데이즈>는 한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언뜻 보면 거창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영화의 내용은 그렇게 흥미진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한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따라갈 뿐이라서요. 그는 매일매일 그에게 주어진 일과를 성실히 수행합니다.

일과가 끝난 후에는 분재를 가꾸고, 헌책방에서 책을 사서 읽고, 올드팝을 듣거나 카메라를 다루기도 하면서요. 또한 동료나 가족이, 혹은 생면부지의 타인일지라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을 줍니다.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땐 다소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들던 제목이었지만, 영화를 다 본 후엔 이보다 완벽한 제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꼭 엄청난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매일이 비슷한 하루인 것만 같아도 '퍼펙트 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성심성의껏 스스로를 돌보며, 자신을 돌보듯 타인을 돕는 삶.

꼭 거창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당장 모든 상황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바꿔 나가는 것. 가장 쉽지만 또 어려운,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저는 이보다 더 완벽한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흔히들 현재를 제외한 시간대, 즉 과거나 미래를 떠올릴 때면 주요 사건들을 위주로 단편적인 장면들을 떠올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결론 또는 결과가 조명되고, 그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과정은 잊히기 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상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까지 같이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더 공을 들여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로서 타인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의 하루를 '퍼펙트 데이'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로 인해 스스로의 진정한 '퍼펙트 데이'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모두 각자의 '퍼펙트 데이'를 완성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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