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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의 럭셔리 제국, LVMH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2-08-31 08:59:45

김민주 대표, 리드앤리더

우리 주위에서 보는 럭셔리 브랜드를 얼마나 아는가?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까르띠에, 프라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티파니, 펜디, 불가리, 아르마니, 롤렉스 등 많이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럭셔리 브랜드들이 몇 개의 럭셔리 대기업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이비통을 비롯하여 펜디, 불가리, 헤네시, 모에생동, 겐조, 마크제이콥스, 셀린느, 도나카란, 쇼메, 토마스 핑크, 그리고 최근 들어 TV에서 광고가 나가고 있는 태그호이어 등 무려 60개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바로 LVMH다. 구찌,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세르지 로시, 발렌시아가는 PPR에 속해 있고, 까르띠에, 몽블랑, 피아제는 리슈몽(Richemont)에 속해 있다. 이 세 기업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은 LVMH다.

2011년에 LVMH는 매출 312억 달러, 순익 70억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 규모는 다른 업종의 대기업에 비하면 크게 높은 수준은 아니나 매출 대비 순익 비율이나 브랜드 가치로 보면 압도적인 성과다. 전 세계 유명 브랜드들의 브랜드 가치를 매년 발표하는 인터브랜드에 의하면 루이비통은 18위에 랭크되어 있다.
LVMH는 가방 브랜드 기업인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주류 브랜드 기업인 모에헤네시(Moët-Hennessy)가 인수합병하여 만들어진 회사인데, 이 회사의 회장이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이다. 그는 2011년 5월 기준, 41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여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자,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부자다.

베르나르 아르노의 성장과정과 초기 경력을 보면 럭셔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프랑스 북부의 벨기에 접경 지역인 루베(Roubaix)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의 명문공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을 졸업한 후 1971년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견 건설회사에 입사한다. 1976년에 그는 아버지를 설득해 회사를 4,000만 프랑에 매각하고 휴양시설 개발 사업으로 방향을 틀어 페리넬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1979년에 아버지를 이어 회사 대표직을 맡지만 1981년에 프랑스에 미테랑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대거 펼치자 크게 실망한다. 그래서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 가서 휴양시설 개발 사업을 펼친다.

미국 체류 중에 뉴욕시에서 아르노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에게 이런 질문을 우연히 하게 된다. ‘프랑스 하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그 택시기사는 무엇이라고 답변했을까? 에펠탑. 루브르, 베르사이유 궁전, 개선문, 세느강, 프랑스대혁명이라고 여러분은 답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기사는 ‘크리스찬 디올이요’라고 말했다.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지금도 유명하지만 럭셔리 브랜드가 그리 많지 않았던 1980년대에는 더욱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답변이 아르노의 운명을 바꾸고 말았다.
아르노는 1984년에 프랑스로 돌아와 사업 기회를 보다가 1987년에 투자기업과 함께 파이낸셜 아가셰(Financiere Agache S.A.)를 설립하여 누적 적자로 쓰러져 가던 부삭 (Boussac Saint-Freres) 회사를 전격 인수한다.
아르노는 부삭의 여러 사업 중에 크리스찬 디올과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Le Bon Marché)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사업을 모두 매각한다. 아르노의 두번째 타겟 기업이던 LVMH는 1987년 루이비통과 모에헤네시 두 회사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기업이다. 1987년 금융위기로 LVMH 주가가 폭락하자 그 틈을 타서 크리스찬디올 기업을 통해 LVMH의 대주주가 된다. 파이낸셜 아가셰는 아르노의 지주기업으로 크리스찬디올 기업의 지분 68.6%를, 크리스찬 디올은 LVMH 지분 42.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1989년에 LVMH CEO로 취임한 아르노는 기존 경영진을 모두 바꾸고 럭셔리 기업 사냥에 본격 나선다. LVMH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패션와 가죽, 향수와 화장품, 시계와 주얼리, 와인과 양주, 그리고 유통 분야에 걸쳐 있다. 다른 럭셔리 기업과는 달리, LVMH는 면세 백화점 DFS, 화장품 쇼핑몰 세포라를 보유하고 있다.

전통 있는 럭셔리 기업들이 LVMH의 파상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간 것은 이들 대부분이 소규모 가족기업으로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했기 때문이었다. 냉철한 아르노는 이들의 약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체계적이면서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또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는 역사와 전통에 의존하므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브랜드를 인수합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2000년대 들어, 인수합병으로 규모는 이전보다 배가 되었지만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등 회사는 잠시 주춤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2002년부터 아르노 회장은 그의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중지하고, 부동산을 정리하고 비핵심 자산을 처분하여 수익성 우선 전략으로 선회한다. 아르노는 현대미술 옥션에 관심이 많아 인수합병을 통해 설립한 필립스드퓨리를 이 때 아쉽게도 매각하고 만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어 세계경제가 호전되자 럭셔리 붐을 타고 LVMH 매출은 다시 크게 늘어난다. 2008년에 미국발 경제침체가 들이닥쳤지만 중국과 한국, 중동의 붐을 타고 LVMH의 매출은 다시 크게 늘어난다. LVMH의 2011년 매출은 2010년에 비해 무려 16퍼센트, 순익은 22퍼센트나 늘어났다. 하지만 현재 중국과 아시아 경기가 식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큰 폭의 매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LVMH는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기업이지만, 각 브랜드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고유한 개성과 창의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디자이너 개인의 직관과 소신을 중요시하고, 재료구매•생산•광고컨셉트•모델분장 등 모든 권한을 디자이너에게 주어 브랜드의 정체성이 디자이너로부터 소비자에게 훼손되지 않고 전달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유통과 마케팅은 본사에서 관리하고 전세계적으로 100% 직영점만 운영해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경영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설회사를 매각하고 휴양시설 개발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뉴욕시의 택시 운전사로부터 영감을 받아 럭셔리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가족기업 차원으로 운영되던 럭셔리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한 다음에 현대 경영 방식을 접목해 럭셔리 제국으로 탈바꿈을 시켰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의 탁월한 경제학자 존 K. 갈브레이스는 이미 1950년대에 프랑스에게 이렇게 조언한 바 있다. ‘1등 할 가능성이 없는 분야에서 체력만 소진하지 말고 프랑스는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 즉 고가의 럭셔리 산업에 정진해야 한다.’베르나르 아르노는 존 갈브레이스의 날카로운 조언을 200퍼센트 이해하고 지금의 화려한 럭셔리 제국을 건설했다.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이사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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