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투비닥터 편집팀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가 분리 상태를 극복하고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에서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왔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1956)』 중에서
바야흐로 봄 날씨가 만개한 요즘,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위해 밖으로 향한다. 지난해 사상 최초로 천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프로야구(KBO)는 올해도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탁 트인 공원 곳곳에서는 각종 페스티벌이 열리고, 전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일 성황이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해외여행 상품도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기 일쑤다.
침대에 누워 6인치짜리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유명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는 요즈음이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간접 경험의 접근성에도, 사람들은 점점 더 '직접 가보는 것'에 열광하고 있다. 어쩌면 이 욕구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 삶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짜 연결은, 스크린 너머가 아닌 '현장'에 있다. 그리고 내게 그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간 야구장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저녁 식사 후 야구 중계를 보곤 하셨는데, 어느 날 내가 경기에 관심을 보이자 곧장 야구장에 데려가셨다.
아버지가 응원하시는 구단인 기아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였는데, 대전에서 자란 필자에게 너는 한화 이글스를 좋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정작 원정팀 응원석인 3루를 예매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날 한화 이글스는 대승을 거뒀지만, 경기 결과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보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 공의 궤적 하나하나에 같이 기뻐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 안에 속해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 들었고 나 역시 괜스레 기분이 좋아서 이후로도 아버지 어깨 너머로 조금씩 야구를 보고, 야구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 아는 척도 하곤 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 혼자 서울에서 자취하게 되면서 SNS와 각종 콘텐츠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절대적인 연결은 쉬워졌지만, 정작 혼자라는 고독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야구장에 다시 가기 시작했다.
중계 화면이 훨씬 더 잘 보이고, 티켓팅은 전쟁이며, 경기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더 긴데도 자꾸 구장으로 발길이 향했다. 경기 내용보다 중요한 건, 야구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역동성, 열기, 하나 되는 느낌,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같이 열광하는 것… 오직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생각해 보니 야구장 밖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종종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오랜 기간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갔다. 수록곡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열정이 있었지만, 부모님 없이 서울로 향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많이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혼자 곤두선 상태로 대기하다가, 콘서트 시작 음악이 나오며 긴장이 탁 풀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몽글몽글하고 반짝거리는, 분홍색 바람으로 온 공연장이 뒤덮인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던 일본인 팬분과 간단히 간식도 나누고,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웃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노래에 웃고, 떨리고, 환호할 수 있던 그 모든 순간은, 같은 대상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가 모두 연결된 덕택이었다.
이렇게 무엇이든 직접 가서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지만, 학업에 열중하던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입학과 동시에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주저함이 커졌다. '내가 이 돈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 '모든 걸 즐기고 오지 않으면 아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따라붙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에만 가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이왕 가는 건데 소위 말하는 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후회 없이 모든 것을 하고 오지 않으면 마치 실패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바꿔준 것은 뜻밖에도 한 인디 페스티벌이었다. 바쁜 시기였고, 아는 가수도 많지 않아 공연 전날까지 망설였지만, 친구의 권유로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했다.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지금 내가 갈 때가 맞는지 고민했지만, 막상 도착한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따뜻했다.
자유롭게 듣고 싶은 공연을 감상하고, 때로는 잔디밭에 누워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간식도 사 먹으며 부푼 마음으로 하루를 가득 채웠다. 직접 가서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도, 완벽하게 즐겨야 할 부담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 사회를 살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직접 경험에 더욱 열광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그런 연결이 근본적으로 우리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지 못할 때도 많다.
나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시간 속에, 또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프롬이 말한 바와 같은 '분리 상태 극복'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때로는 비록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더라도, 같은 무언가에 열광하고 있는 그 느낌이, 고독을 덜어주는 강력한 힘이 된다.
직접 간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곳의 사람들과 숨을 섞고 열기를 공유하며,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 번 지나간 경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우리의 하루하루는 그저 스쳐 가는 순간이 될지도, 커다란 온기를 선사하는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화 이글스의 이번 시즌 가을야구 진출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